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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성공 신화-250화 (250/328)

[250화] 완벽한 증거인멸

본의 아니게 테러범들에게 특별 대우(?)를 받고 있는 천유런 외교부장은 침대에 누워서 이런저런 가능성을 따져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내가 테러범 놈들에게 납치됐다는 사실을 루퍼트 장관도 알고 있을 테니까, 내기는 무효 처리가 됐겠지? 그나저나 왕 국장이 루퍼트 장관 납치 미수 건을 제대로 처리할 수나 있었을까? 으음… 나이가 한두 살인가. 본인이 알아서 처리했겠지.”

사방팔방 뻗어나가는 생각을 갈무리하고 천유런 외교부장은 곧바로 또 다른 생각으로 옮겨 갔다.

“이제 시간이 얼추 되지 않았나?”

덜컹!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지하실 문이 열리고 복면을 쓴 테러범들이 들어왔다.

천유런 외교부장은 침대에서 천천히 일어나 앉으며 반갑게 입을 열었다.

“이제 출발하는 겁니까?”

툭.

데사이 국장은 천유런 외교부장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손에 들고 있던 비닐 봉투를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

“이게 뭡니까?”

“당신이 입어야 할 옷과 복면.”

“제가 왜요?”

“당신은 이제부터 우리 동료나 마찬가지잖아.”

“아차차, 제가 깜빡했습니다.”

신속하게 복장을 갖춘 천유런 외교부장이 데사이 국장에게 또다시 말을 걸었다.

“저는 준비가 끝났습니다.”

퍽!

그때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정보국 요원이 주먹으로 천유런 외교부장의 관자놀이를 강하게 타격했다.

“컥!”

외마디 비명과 함께 천유런 외교부장이 지하실 바닥에 철퍼덕 쓰러졌다.

“이제 출발하자고.”

* * *

“으음…….”

죽은 듯 기절해 있던 천유런 외교부장의 의식이 점차 돌아오기 시작했다.

축축하고 쾌쾌한 곰팡이 냄새가 나지 않는 것으로 봐서 얼마 전까지 갇혀 있던 지하실은 아닌 것 같았다.

다만, 자신의 등을 떠받치고 있는 침대가 딱딱한 것을 보니, 그닥 좋은 환경이 아닌 것만은 확실했다.

‘천유런, 테러범 놈들에게 납치된 주제에 호화로운 호텔방을 기대했냐?’

자신의 처지를 마음속으로 비관하고 있으려니, 재수 없는 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 외교부장, 정신이 돌아왔으면, 침대에 일어나 앉아.”

뜨끔한 천유런 외교부장은 얼른 침대에 일어나 앉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이 어디입니까?”

“당신이 알고 있을 필요가 있을까?”

“하긴… 그건 그렇고, 나를 기절시킨 이유가 뭡니까?”

천유런 외교부장은 퍼렇게 멍든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물었다.

데사이 국장이 그런 조치를 취한 이유는 천유런 외교부장이 이곳의 지리를 알게 되는 위험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그렇다고 그 얘기는 해 줄 필요는 없었다.

“몰라서 물어? 당신이 탈출을 시도할까봐 그랬다. 이제 됐나?”

“제가 무슨 힘이 있다고 탈출하겠습니까?”

“알면 됐어.”

“이제 계획이 어떻게 됩니까?”

‘당신은 조금 있다가 몰디브 경찰과 미국 CIA에 의해서 무사히 구출될 예정이야.’

그러나 그런 속마음과는 달리 데사이 국장은 마음에도 없는 말을 꺼내놓았다.

“내일 새벽에 배를 타고 다른 섬으로 이동한 후, 밤에 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야.”

“저도 데리고 가주십시오.”

“우리가 당신을 왜 데리고 가야 하지?”

“일찍 풀려나면, 제가 직접 루퍼트 장관 납치미수 사건을 처리해야 합니다.”

“걱정 마. 루퍼트 장관 납치미수 사건은 당신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거야.”

“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중국에서 자오린 부총리가 몰디브로 오고 있다더군.”

천유런 외교부장은 온몸에 식은땀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자신의 어리석은 행동으로 인해서 자오린 부총리가 루퍼트 장관에게 개망신을 당하는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자존심 강한 그가 개망신을 당하는 순간, 자기는 살아도 산목숨이 아닐 것이다.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테러범 놈들과 같이 행동하는 것이 유리했다.

“자오린 부총리가 몰디브에 오면, 저는 죽은 목숨입니다. 제발 저를 파키스탄으로 데리고 가 주십시오.”

“이것 참, 난감하네.”

쾅!

그때, 지하실 문이 열리고 누군가 급하게 뛰어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대장님, 큰일 났습니다. 이곳이 몰디브 경찰에게 노출된 것 같습니다.”

“뭐야?! 그게 사실이야!”

데사이 국장이 과잉 반응을 선보이며 벌떡 일어났다.

“이곳 주변으로 경찰차들이 한두 대씩 모여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 그럼. 이곳을 빨리 탈출하자고.”

“네! 대장님.”

데사이 국장은 정보국 요원들과 함께 지하실 문을 박차고 나갔다.

순식간에 낙동강 오리알이 되어 버린 천유런 외교부장.

그들을 따라가기 위해서 닫힌 지하실 문의 손잡이를 돌렸지만, 밖에서 잠겼는지 열리지 않았다.

“개새끼들아! 나도 데리고 가라고!”

쾅쾅!

굳게 닫힌 문을 손바닥으로 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돌아오는 것은 지하실 벽을 맞고 돌아오는 메아리밖에 없었다.

“에이, 씨발…….”

욕설과 함께 침대에 몸을 던졌다.

쿵, 쿠궁……!

얼마 지나지 않아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심상치 않은 폭음 소리가 연속적으로 들려왔다.

탕, 타당…….

곧이어 이어지는 콩을 볶는 듯한 요란한 총소리.

테러범 놈들과 몰디브 경찰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테러범 놈들이 몰디브 경찰을 물리치기를 바라야 하는 내 신세가 처량하기 그지없네.”

그는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재빨리 불을 끄고 침대 밑으로 몸을 구겨 넣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덜컹!

지하실 문이 거칠게 열리고, 지하실에 조명이 환하게 들어왔다.

스미스 팀장은 재빨리 천유런 외교부장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확인에 작업에 돌입했다.

침대 밑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그의 모습이 보이자, 고글과 복면을 벗고 말을 걸었다.

“천유런 외교부장님 되십니까?”

“…네. 맞습니다만, 누구십니까?”

잔뜩 겁을 집어먹은 목소리.

“천 외교부장님을 구출하러 온 사람입니다. 볼썽사나우니까 침대 밑에서 빨리 나오십시오.”

“어이쿠, 미안합니다.”

이 말과 함께 침대 밑에서 기어 나오던 천유런 외교부장은 정말 깜짝 놀랐다.

자기를 구출하러 온 사람이 몰디브 경찰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누, 누구십니까?”

천유런 외교부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저는 CIA에 소속되어 있는 스미스 팀장이라고 합니다.”

“CIA가 저를 왜…….”

이유를 말하라는 뜻으로 천유런 외교부장이 일부러 끝말을 흐렸다.

“몰디브 경찰과 함께 천 외교부장님을 구출하라는 명령을 루퍼트 장관님께 받았습니다.”

‘하아, 그 인간의 오지랖 때문에 나만 죽어나게 생겼네.’

속으로 한숨을 내뱉고 스미스 팀장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루퍼트 장관님께 고맙다는 말씀을 전해 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지금 밖에서는 저희와 몰디브 경찰이 테러범들과 아직 교전 중입니다. 안전이 확보될 때까지 이곳에서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네, 알았습니다.”

덜컹!

그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하실 문이 열리고, 일련의 무리들이 뛰어 들어왔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남자가 복면과 고글을 벗고 침대에 앉아 있는 천유런 외교부장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천 외교부장님, 몸에 이상이 있는 곳은 없습니까?”

천유런 외교부장은 다시 한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자기에게 말을 걸어온 사람이 다름 아니라 몰디브 경찰의 총수인 파루마 국장이었기 때문이다.

“파루마 국장님께서 이곳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어쩐 일이라니요? 천 외교부장님이 테러범 놈들에게 불상사라도 당하기라도 하면, 우리나라는 멀쩡할 것 같습니까?”

“그런 뜻으로 여쭌 게 아니었는데… 오해가 생긴 것 같습니다. 저를 구출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파루마 국장이 정색하며 한마디 하자, 천유런 외교부장이 곧바로 꼬리를 내렸다.

“천 외교부장님, 제가 드린 질문에는 언제 대답해 주실 생각입니까?”

순간, 천유런 외교부장은 딜레마에 빠져들었다.

자신의 대답 여부에 따라서 운명이 결정되는 아주 중요한 순간.

묘안을 찾기 위해서 머리를 극한까지 회전시켰지만, 딱히 그럴듯한 대답거리를 찾아내지 못했다.

시간을 조금 더 끌 수밖에 없었다.

“파루마 국장님, 제가 대답하기 전에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네. 말씀해 보세요.”

“저를 납치한 테러범 놈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인간아, 잔대가리를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파루마 국장은 무표정한 얼굴로 천유런 외교부장의 질문에 대답했다.

“저희 몰디브 경찰과 미국 CIA에 의해서 체포되기 직전에 자폭해서 형체도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네?! 정말입니까?”

화들짝 놀란 천유런 외교부장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사실 파루마 국장이 이와 같은 얘기를 꺼낸 이유는 완벽한 증거 인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가 천유런 외교부장 납치 사건에 대한 진상을 파악하려고 덤벼들면 귀찮은 일이 벌어질 것이 확실하니까.

“네, 그렇습니다. 테러범 놈들의 배후를 캐는 일이 미궁으로 빠져 버리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그놈들은 파키스탄에 본거지를 둔 테러범들이 아니었습니까?”

“그렇게 추정하고 있을 뿐이지, 확실한 증거는 아직 확보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천유런 외교부장은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테러범들이 모두 죽었기 때문에 자기가 하는 말이 모두 진실이 될 것이기에.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이제부터 차근차근 증거를 수집해서 놈들의 정체를 파악해야 할 것 같습니다. 천 외교부장님이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그럼요. 제가 전폭적으로 도와드리겠습니다. 테러범 놈들은 저한테 몸값을 받지 못해서 그런지, 신사적으로 대해 줬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병원에서 종합 검사를 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파루마 국장님께서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

* * *

같은 시각.

왕지쉰 국장은 자오린 부총리와 통화 중에 있었다.

“부총리님, 몇 시쯤 출발할 예정입니까?”

[30분 있다가 출발할 예정이니까, 내일 오후 1시에 몰디브에 도착할 예정이야.]

“시간 맞춰서 공항에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고, 천 외교부장과 관련한 소식을 들은 것은 없나?]

“아직 없습니다만…….”

아주 공교로운 순간에 액정에 파루마 국장의 핸드폰 번호가 찍혔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그가 전화를 걸어왔다는 의미는 긴급 상황이 발생했다는 뜻이다.

“부총리님, 지금 몰디브 경찰국장이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그와 통화한 뒤에 다시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자오린 부총리의 전화를 끊은 왕지쉰 국장은 재빨리 파루마 국장과 통화를 시작했다.

“네, 파루마 국장님.”

[왕 국장, 나는 파루마 국장이 아니야.]

“혹, 혹시… 외교부장님이십니까?”

떨리는 심장을 겨우 부여잡고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맞아.]

“외교부장님, 이게 어떻게 된 상황입니까?”

[내가 괴한들한테 납치된 것을 몰디브 경찰과 CIA가 합동작전을 통해서 구해 줬어.]

“네? CIA 놈들이 왜요?”

[내가 어떻게 알아!]

천유런 외교부장이 버럭 화를 내는 소리가 수화기를 통해서 생생하게 들려왔다.

그의 본모습과 맞닥뜨리니 조금 전까지 걱정하고 있던 마음이 빠르게 사라졌다.

“…죄송합니다.”

[자오린 부총리님이 이곳으로 오신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사실이야?]

“네. 장 국장이 사고 친 건 때문에 루퍼트 장관이 불렀습니다.”

[그나저나 루퍼트 장관과의 내기는 어떻게 됐어?]

“그게… 실격패 당했습니다.”

[뭐야! 그게 정말이야?]

“루퍼트 장관, 칠리마 모잠비크 부통령, 루사토 케냐 부통령이 강하게 압박하는 바람에…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알았어. 지금 말레 종합병원으로 검사받으러 가고 있는 중이니까, 그곳으로 와서 보고해.]

“외교부장님, 자오린 부총리님한테 무사히 귀환했다고 전화해 주십시오.”

[나도 그러고 싶은데, 핸드폰이 없잖아. 내 대신 왕 국장이 전화 해드려.]

“그렇게 하겠습니다.”

딸깍.

전화를 끊은 왕지쉰 국장은 곧바로 자오린 부총리에게 전화 걸어서 천유런 외교부장이 무사히 귀환한 소식을 보고했다.

[왕 국장, CIA 놈들이 천 외교부장의 구출 작전에 참여한 이유를 물어봤나?]

“워낙 상황이 다급해서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천 외교부장을 만나기로 했으니까, 물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왕 국장, 당신은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았나!]

“…죄송합니다.”

[에이, 못난 사람들 같으니.]

뚝.

자오린 부총리가 화가 났는지 전화를 먼저 끊어 버렸다.

“하아, 일이 어쩌다 이렇게까지 꼬였는지.”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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