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 성공 신화-249화 (249/328)

[249화] 코너에 몰린 사람들

“…케냐와 모잠비크가 일대일로 프로젝트로부터 탈퇴하지 못하도록 만들기 위한 과정에서 벌어진 사건입니다.”

[이 친구들아… 그렇다면 장 국장이 체포되지 않도록 만들었어야지…….]

왕지쉰 국장이 장황하게 늘어놓은 변명이 먹혀들었는지, 자오린 부총리의 목소리가 살짝 누그러졌다.

“장 국장이 책임진다고 해서 저희는 철석같이 믿고 있었습니다.”

[하아… 하여간 알았어. 미국 놈들이 장 국장을 어떻게 처리할지 알고 있는 것이 있나?]

지금까지는 애피타이저였고 이제부터가 진짜였다.

자존심 강한 자오린 부총리를 이곳으로 불러들이기 위해서는 거짓말을 해야 하기 때문에.

미리 구상해 놓은 시나리오를 다시 한번 떠올린 후, 그의 질문에 대답했다.

“부총리님, 미국은 우리나라의 입장을 고려해서 조용히 사건을 마무리 지을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 천만다행이군.]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장 국장의 처리건과 관련해서 루퍼트 장관이 부총리님을 뵙자고 합니다.”

[아무래도 그래야 하겠지. 내가 어디로 가면 되나?]

“내일 오후 3시에 이곳에서 만나자고 합니다.”

[알았으니까 이제 그 얘기는 그만하자고. 그런데 천 외교부장은 어떻게 하다가 테러범 놈들에게 납치된 거야?]

“사실은 저희가 이곳에 오기 전부터 몰디브 정부로부터 테러에 대한 경고를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냐와 모잠비크가 일대일로 프로젝트로부터 탈퇴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위험을 감수하고 이곳으로 왔습니다.”

왕지쉰 국장은 어젯밤에 일어난 사건을 진실과 거짓을 교묘하게 섞어서 한 편의 단편소설을 써 내려갔다.

“…현재 천 외교부장의 핸드폰 전원이 꺼져 있는 상태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술을 마셨다는 말이야!]

또다시 자오린 부총리의 목소리에 화가 담기기 시작했다.

“부총리님, 저희가 술을 마신 이유는 장 국장의 작전을 돕기 위한 일종의 계책이었습니다.”

[계책?]

“저희가 술을 마셔 주면 루퍼트 장관을 경호하는 인원들이 줄어들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럼 미국 놈들은 천 외교부장이 테러범들에게 납치되는 모습을 지켜봤겠네?]

“물론 그럴 가능성이 있지만… 저는 아주 낮게 보고 있습니다.”

[왜?]

“저희가 술을 마시는 시간에 루퍼트 장관 납치 작전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네들을 감시하던 미국 놈들이 루퍼트 장관을 구하러 달려갔다는 뜻인가?]

“저는 그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알았어. 내일 보자고.]

뚝.

자오린 국장이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휴우, 십년감수했네.”

핸드폰을 귀에서 떼면서 왕지쉰 국장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 *

크리스 요원의 동시통역을 통해서 왕지쉰 국장의 통화 내용을 실시간으로 전달받은 겨울은 무언가 생각난 것이 있다는 듯 급하게 입을 열었다.

“루퍼트 장관님, 천 외교부장 구출 작전에 미국도 참여하는 게 어떨까요?”

“자오린 부총리한테 최대한 생색을 내라는 말씀이겠죠?”

역시 세계 최강 국가의 국무장관답게 겨울의 의도를 단숨에 이해했다.

하지만 겨울은 루퍼트 장관보다 더 멀리 내다보고 있었다.

“생색만 내지 말고, 천 외교부장을 구출하는 작전에 참여한 정보국 요원들의 인건비도 받아 내야 합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요?”

예상대로 리퍼트 장관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제가 미국 정보국 요원들을 천 외교부장 구출 작전에 참여해 달라고 부탁한 이유는 다름 아니라 몰디브 때문입니다.”

“몰디브 때문이라고요?”

겨울의 의도를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루퍼트 장관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몰디브 경찰이 천 외교부장을 단독으로 구출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파루마 경찰국장님이 자오린 부총리한테 거액의 인건비를 청구하면 콧방귀를 뀌면서 가볍게 무시할 겁니다. 하지만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의 국무장관께서 거액의 인건비를 청구하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과연 자오린 부총리가 콧방귀를 뀔 수 있을까요?”

“나는 한 부사장님이 그렇게까지 멀리 내다보고 있었는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몰디브 정부를 위해서라도 최대한 많이 인건비를 청구하도록 하겠습니다.”

“루퍼트 장관님의 멋진 활약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하하하, 알았어요.”

루퍼트 장관과 대화를 마무리한 겨울은 고개를 돌려서 하마드 부통령에게 말을 걸었다.

“하마드 부통령님도 부총리한테 생색을 많이 내셔야 할 겁니다.”

“내일 협상장에 저도 참석하는 겁니까?”

“몰디브 정부도 장 국장 구출 작전에 참여했기 때문에 참석하시는 게 맞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정말 죄송한 말씀이지만, 내일 협상장에서 하마드 부통령님은 목소리 톤을 많이 낮춰 주십시오.”

하마드 부통령은 겨울의 의도를 즉각 눈치챘다.

중국에 밉보여서 좋을 것은 하나도 없었으니까.

약소국이 겪어야 하는 설움이라고 생각하니 속이 쓰렸다.

“루퍼트 장관님께 협상에 대한 전권을 일임하면 됩니까?”

“그렇게 하는 편이 몰디브에 많은 이득이 될 겁니다.”

“하여간 무슨 말인지 알았어요.”

그때, 시계를 쳐다보고 있던 하도진 실장이 겨울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부사장님, 이제 움직여야 할 시간입니다.”

“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루퍼트 장관이 호기심을 담아 질문을 던졌다.

“한 부사장님, 지금 어떤 상황입니까?”

“어젯밤에 천 외교부장하고 한 내기를 끝내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천 외교부장이 내기 장소에 나타날 리가 없는데, 어떻게 내기를 끝낸다는 말씀입니까?”

“루퍼트 장관님이 내기 장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내기는 무효 처리 됩니다. 중국을 실격시키기 위해서는 오후 1시에 장관님은 내기 장소에 계셔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만… 너무 빨리 가는 것 아닙니까?”

“칠리마 부통령님과 루사토 부통령님과 점심 식사 하는 일정을 잡아 놨습니다.”

“역시 철저하시네요.”

* * *

샹그릴라 호텔의 레스토랑에서 정명훈 사장은 칠리마 부통령, 루사토 부통령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겨울 일행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정 사장님, 자리가 넓은 것을 보니, 점심 식사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우리 말고 또 있나 봅니다?”

“네, 그렇습니다.”

“그분들이 누구인지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조금만 기다리시면, 자연스럽게 아시게 될 겁니다.”

똑똑.

마침 노크 소리와 함께 여러 명의 사람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들에게 시선을 돌린 루사토 부통령은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 있어서는 절대로 안 되는 루퍼트 국무장관이 일행 중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서 반가운 목소리로 그들을 맞이했다.

“루퍼트 장관님, 오랜만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칠리마 부통령님도 오랜만입니다.”

“그렇기는 합니다만, 장관님께서는 몰디브에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그 얘기는 식사하면서 나누는 것으로 하고, 먼저 일행들을 소개시켜 드리겠습니다. 이분은 몰디브의 모하메드 하마드 부통령…….”

제법 긴 상견례가 끝나자마자, 주문을 넣어 놓은 음식들이 서빙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점심 식사가 마무리됐다고 판단한 정명훈 사장은 주인 자격으로 입을 열었다.

“루사토 부통령님, 칠리마 부통령님, 이제부터 저희가 나누는 대화는 외부에 유출돼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목에 칼이 들어오는 한이 있더라도 비밀을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루사토 부통령의 뒤를 이어서 칠리마 부통령이 대답했다.

“이제부터 한겨울 부사장이 지난 일요일부터 오늘 오전까지의 일을 두 분께 자세하게 설명해 드릴 예정입니다. 궁금하신 것이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질문해 주십시오.”

“네, 알았습니다.”

“한 부사장, 이제 시작해.”

정명훈 사장이 겨울에게 바통을 넘겨주고 뒤로 물러났다.

겨울은 가벼운 헛기침을 통해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모은 후, 차분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저희가 TTM에 참석하기 위해서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장대산 부사장한테 중요한 얘기를 하나 들었습니다.”

“어떤 얘기였습니까?”

“중국의 천유런 외교부장이 휴가를 빙자해서 이곳에 온다는 얘기였습니다. 그가 이곳에 오는 목적은 대충 눈치채셨겠지만, 케냐와 모잠비크가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탈퇴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저희는 그의 의도를 분쇄하기 위해서…….”

겨울은 ‘천유런 외교부장 강제로 휴가 보내기 작전’에 대해서 개괄적으로 설명했다.

뒤이어 장대산 부사장이 장쉬렌량 국장 체포 작전을, 데사이 국장은 천유런 외교부장을 납치한 사건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했고.

“…해서 계륵에 불과한 천 외교부장은 오늘 밤에 풀어줄 생각입니다.”

또다시 겨울이 장대산 부사장의 말을 이어받았다.

“두 부통령님께서 점심 식사에 초대된 이유는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탈퇴하기 위한 과정 중 하나입니다.”

“천 외교부장이 루퍼트 장관님과의 내기에서 진 것으로 우리나라와 케냐는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탈퇴하는 게 아니었습니까?”

“중국 정부는 천 외교부장이 개인적으로 한 내기라고 우기며 인정하지 않으려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죠?”

겨울의 신호를 받은 루퍼트 장관은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중국 정부의 자오린 부총리를 이곳으로 부른 상태입니다. 제가 책임지고, 케냐, 모잠비크, 몰디브를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탈퇴시켜 드리겠습니다.”

“저희는 장관님만 믿고 있겠습니다.”

“제가 조금 있다가 왕지쉰 국장에게 전화할 예정입니다. 두 분의 부통령님이 저를 조금만 도와주십시오.”

“저희가 어떻게 도와드리면 됩니까?”

“제가 왕 국장과 통화할 때 옆에서 몇 마디 거들어 주시면 됩니다.”

“하하, 알겠습니다.”

드디어 약속된 시간이 되자, 루퍼트 장관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왕지쉰 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루퍼트 장관님.]

어지간히 전화를 받기 싫었는지 신호가 간 지 한참 만에 왕지쉰 국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왕 국장님, 천 외교부장님은 돌아오셨습니까?”

[아직입니다.]

“몰디브 경찰에 신고는 하셨습니까?”

[조금 전에 했습니다.]

“천 외교부장님이 무사히 구출되기를 기원하겠습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부터 왕 국장님과 통화하는 내용은 녹음할 예정입니다. 자오린 부총리님을 만난 자리에서 저하고 통화한 내용이 재생될 수 있으니까, 발언하는 데 신중을 기해 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겁을 잔뜩 집어먹은 듯 왕지쉰 국장의 목소리가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곳은 천 외교부장님과 만나기로 약속한 샹그릴라 호텔이고, 지금 시간은 오후 1시 30분입니다. 천 외교부장님이 약속 장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제가 내기에 이겼다고 생각하는데, 이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천 외교부장님은 테러범들에게 납치됐기 때문에 내기는 무승부 처리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천 외교부장이 테러범들한테 납치된 증거가 있습니까?”

[…….]

“설령 천 외교부장님께서 불상사가 생겨서 이곳에 오지 못했더라도, 왕 국장님이라도 오셔서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시는 게 예의 아닙니까?”

[…제가 전화로 설명해 드렸잖습니까.]

켕기는 것이 있는지 왕지쉰 국장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왕 국장님이 언제 저한테 전화해서 설명했습니까? 제가 전화해서 물어보니까 마지못해서 대답한 거잖아요. 제 말이 틀렸습니까?”

[…….]

“그리고 이곳에 칠리마 부통령님과 루사토 부통령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모르고 계셨습니까? 칠리마 부통령님이 전화를 바꿔 달라고 하십니다.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루퍼트 장관에게 핸드폰을 넘겨받은 칠리마 부통령은 다짜고짜 쓴소리부터 내뱉었다.

“왕지쉰 국장님, 우리 모잠비크가 비록 소국이기는 하지만,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미안합니다.]

“천 외교부장님이 정말 테러범들한테 납치된 게 맞습니까? 내기에서 질 것 같으니까 소문을 그렇게 낸 건 아니고요?”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그러면 아니라는 증거를 제시해 보세요!”

[하아…….]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왕지쉰 국장의 한숨 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선명하게 흘러나왔다.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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