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화] 변경된 작전 계획
“한 부사장님, 정 사장님은 어디 가셨습니까?”
대책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 안가에 도착한 루퍼트 장관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오시는 VIP들을 영접하기 위해서 공항에 나가셨습니다.”
“VIP들은 오늘 모두 도착하십니까?”
“네. 저녁 6시 30분에 콩고민주공화국의 부투야 실장님이 마지막으로 도착할 예정입니다.”
“VIP들과 같이 식사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 주실 수 있습니까?”
“VIP들께 여쭤보고 말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하마드 부통령, 파루마 경찰국장, 데사이 정보국장이 차례로 도착했다.
시침이 9를 가리키자, 상석에 앉아 있던 루퍼트 장관이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여기 계신 여러분께서 노력해 주신 덕분에 어젯밤에 진행된 작전이 무사히 종료되었습니다. 한 치의 빈틈이 없도록 완벽하게 작전 계획을 수립하고, 갑작스럽게 발생한 돌발 상황도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한겨울 부사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한 부사장님, 한 말씀하세요.”
“저는 여러분께 아이디어만 제공했을 뿐이기 때문에 필드에서 작전을 완벽하게 수행해 준 여러분께 모든 공을 돌리겠습니다.”
잠깐 말을 멈춘 겨울은 정중하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저희가 뒷수습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작전의 성패가 갈릴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 부사장님, 작전 계획이 완벽하지 않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사실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중국 정부가 작심하고 천 외교부장의 납치 사건을 파고들면, 몰디브 정부가 곤란한 상황에 빠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죠?”
하마드 부통령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저희가 천 외교부장을 납치한 가장 큰 이유는 케냐와 모잠비크가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손쉽게 탈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어젯밤에 루퍼트 장관님이 천 외교부장을 옴짝달싹할 수 없도록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럼으로 인해서 천 외교부장이 계륵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기존에 수립해 놓은 계획대로 진행하기에는 변수가 너무 많이 생긴 터라 장 부사장과 상의해서 긴급하게 작전을 변경했습니다. 제가 설명하는 도중에 궁금한 것이 있으면 지체 없이 질문해 주십시오. 먼저 인도 정보국은…….”
겨울의 설명을 듣고 있던 데사이 정보국장이 발언권을 요청했다.
“한 부사장님, 천 외교부장이 그렇게 많은 재력을 가지고 있을까요?”
“오늘 아침에 장 부사장님이 확인해 주었는데, 상당히 많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그 인간은 어떻게 많은 돈을 모았답니까?”
“뇌물을 받아 챙겼다고 합니다. 계속 말씀드리겠습니다. 데사이 국장님은 천 외교부장에게 몸값을 언급하지 마십시오. 그가 먼저 얘기를 꺼내도록 분위기를 조성하시고…….”
겨울의 설명이 일단락되자, 이번에는 파루마 경찰국장이 질문을 던졌다.
“한 부사장님, 천 외교부장이 과연 그런 선택을 할까요?”
“만약에 그가 오후 1시 이전에 풀려나면, 리퍼트 장관님을 만나러 가야 합니다. 내기에서 빤히 질 것을 알고 있는데,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겠습니까? 게다가 루퍼트 장관님의 납치 미수 사건도 그가 뒷수습해야 하는데요. 때문에 그는 어떻게 해서든지 풀려나지 않으려고 용을 쓸 겁니다.”
“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천 외교부장에게 몸값을 받아 내면…….”
겨울은 인도 정보국과 몰디브 경찰이 수행해야 할 역할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려 주었다.
“…겁을 잔뜩 집어먹을 수 있도록 양측이 심하게 총격전을 벌이셔야 할 겁니다.”
“하하,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파루마 국장과 대화를 마무리한 겨울은 시선을 돌려 루퍼트 장관에게 말을 걸었다.
“이제부터 루퍼트 장관님이 수행해야 할 역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얘기해 보세요.”
“장관님은 자오린 부총리를 몰디브로 부르십시오.”
“그렇게 불러야 하는 이유를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기회에 케냐, 모잠비크, 몰디브를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탈퇴시키려고 합니다.”
“아하, 무슨 말인지 감 잡았습니다.”
“하마드 부통령님은 일대일로 프로젝트로 인해서 중국에서 빌린 돈이 얼마인지 파악해서 루퍼트 부통령님께 알려 주십시오.”
“네?”
하마드 부통령이 겨울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루퍼트 장관님이 중국으로부터 빌린 돈을 탕감시켜 줄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말씀드리면, 모든 작전이 물이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진행돼야 한다는 겁니다.”
“네, 알았습니다.”
“이제 데사이 국장님이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실 시간이 됐습니다.”
* * *
천유런 외교부장은 치솟는 불안감에 좀처럼 마음이 안정이 되지 않았다.
이유는 테러범들의 행동이 자신의 예상 범주를 한참이나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테러범들의 질문에 순순히 진술하기는 했지만, 핵심을 찌르는 결정적인 질문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국하고, 테러범들은 원하는 것을 모두 얻어 냈다는 듯 자기에게 어떠한 위해를 가하지 않고 있었고.
“도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덜컹!
지하실 문이 열리고 복면을 쓴 괴한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천유런 외교부장은 재빨리 지하실 중간에 놓여 있는 의자로 이동해서 조신하게 앉았다.
데사이 국장은 그의 맞은편 의자에 앉으며 무뚝뚝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천 외교부장, 지금 풀어줄 생각인데, 어떻게 생각해?”
천유런 외교부장은 이게 웬 떡인가 싶었다.
지금 풀려나면 루퍼트 장관과의 내기에서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수립한 작전이 성공했다면, 그는 지금쯤 장쉬엔량 국장에 의해 납치되었을 것이니까.
그러니 당연히 루퍼트 장관이 약속 장소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내기에서 이길 경우, 몰디브를 급하게 찾은 목적은 무사히 달성할 수 있다.
그러다가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저한테 몸값을 요구하지 않고 풀어주는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정말 다행이었다.
만약에 천유런 외교부장이 이런 질문을 해 오지 않았더라면, 먼 길을 힘들게 돌아갈 뻔했으니까.
“당신 수행원인 장쉬엔량 국장이 루퍼트 장관을 납치하려다가 실패했어. 그래서 지금 몰디브가 발칵 뒤집힌 상황이고. 이곳에 남아 있다가는 후폭풍에 휘말릴 것 같아서 당신을 풀어주고 탈출하려는 거야. 이제 이해했나?”
데사이 국장의 말에 천유런 외교부장은 정신이 어질어질했다.
장쉬엔량 국장에게 루퍼트 장관을 납치하라고 지시내린 사람은 다름 아닌 자기였기 때문이다.
만약에 지금 풀려나면 뒷수습은 온전히 자신의 몫.
게다가 루퍼트 장관과의 내기에서 지는 것은 덤이었고.
자신의 책임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 풀려나는 시기를 미룰 필요가 있었다.
“저, 저를 살려 주십시오.”
“살려 준다니까? 풀어준다는 얘기를 못 들었어?”
“지금 풀려나면 저는 죽은 목숨입니다.”
데사이 국장은 고민하는 척하다가 일부러 과장되게 말했다.
“설마… 루퍼트 장관을 납치하라고 지시를 내린 사람이 당신이야?!”
“…네, 그렇습니다.”
“하… 이거 큰일 났네.”
“제발 살려 주십시오.”
“지금 당신을 찾기 위해서 몰디브 경찰이 눈에 불을 키고 돌아다니는 거 몰라? 당신을 데리고 있다가는 우리도 죽은 목숨이란 말이야.”
“도, 돈을 드리겠습니다.”
“이봐, 죽고 난 뒤에 돈이 무슨 소용 있겠어? 지금 당장 풀어줄 테니까, 루퍼트 장관 납치미수 사건이나 어떻게 해 보라고.”
“10억! 10억 달러를 드리겠습니다.”
데사이 국장은 천유런 외교부장이 손이 크다는 얘기는 하도진 실장에게 들어서 익히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클 줄은 미처 몰랐다.
‘도대체 이 인간의 재산은 모두 얼마인 거야?’
무섭게 일어나는 궁금증을 겨우 억누르며 천유런 외교부장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천 외교부장, 내가 방금 전에 말한 건 벌써 잊어버린 모양이지?”
“그, 그럼… 15억 달러를 드리겠습니다.”
데사이 국장은 이렇게 시간을 끌다 보면 몸값을 더 받아 낼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지만, 이쯤에서 만족하기로 결정했다.
15억 달러면, K―9 자주포를 200문 이상을 구입할 수 있는 엄청난 돈이었으니까.
“하아… 이거 진짜… 골치 아프네…….”
데사이 국장은 일부러 이마를 만지며 고민하는 척했다.
반면, 천유런 외교부장은 그의 행동에서 한 가닥 희망을 보았다.
테러범 놈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쐐기를 박아 놓을 필요가 있었다.
“20억! 20억 달러를 드리겠습니다!”
“이 새끼가… 우리가 양아치로 보여?”
‘양아치보다 더한 테러범 놈들이잖아.’
아무리 간덩이가 배 밖으로 나와 있다고 해도 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는 없었다.
“죄, 죄송합니다.”
“하, 좋아. 15억 달러에 합의하자고. 단, 조건이 있어.”
“어떤 조건인지……?”
“한계에 다다르면 당신을 포기할 수밖에 없어.”
“설마 지금 이곳을 탈출할 생각은 아니시겠죠?”
“대낮에 어디를 나돌아 다닌다는 거야!”
“그렇다면 저는 전혀 문제없습니다.”
“노트북과 은행 계좌번호를 가져다줄 테니까, 송금해.”
“지금이요?”
“싫어? 지금 풀어줄까?”
“아, 아닙니다. 준비가 되면 즉시 송금해 드리겠습니다…….”
* * *
“정말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당당히 들어오는 데사이 국장을 겨울이 격하게 반겼다.
“한 부사장님이 알려 준 대로 했을 뿐인데, 수고랄 게 있습니까?”
“어찌됐든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마지막까지 완벽하게 뒷수습 부탁드리겠습니다.”
“하하하, 염려 마십시오.”
“데사이 국장님, 정말 좋으시겠습니다.”
하마드 부통령이 부러운 표정을 지으며 한마디 보탰다.
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루퍼트 장관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하마드 부통령님, 몰디브의 몫은 자오린 부총리한테 충분하게 받아 드릴 테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하마드 부통령과 대화를 마무리한 루퍼트 장관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루퍼트 장관님.]
염라대왕보다 더 무서운 사람이 전화를 걸어왔는데, 받고 싶은 마음이 생기겠는가.
“왕 국장님, 천 외교부장님의 핸드폰이 꺼져 있는 이유가 뭡니까?”
[사실은 어젯밤에 실종되셨습니다.]
“제 전화를 피하기 위해서 일부러 핸드폰 전원을 꺼 놓은 건 아니고요?”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입니다.]
“몰디브 경찰에 신고는 했습니까?”
[점심때까지 기다렸다가 나타나지 않으면 그때 하려고 합니다.]
“오늘 1시에 만나기로 한 약속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외교부장님이 실종된 상태이기 때문에… 제가 뭐라고 말씀드릴 수 있는 권한이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장 국장의 저에 대한 납치 미수 사건은 누구하고 대화를 나눠야 합니까?”
[재차 죄송합니다만… 저는 권한이 없습니다.]
“좋습니다. 미국 정부의 입장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자오린 부총리님께 전화해서 내일 오후 3시까지 이곳에서 뵙자고 말씀드려 주십시오. 만약에 제 제안을 거부하면, 이 사건을 공론화시키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 * *
뚝.
잔뜩 뿔이 난 듯 루퍼트 장관이 전화를 먼저 끊어 버렸다.
“하아, 돌아 버리겠네.”
왕쥐쉰 국장은 한참 동안 장고에 들어갔다가 결심을 내리고 누군가에게 전화 걸었다.
[왕 국장, 무슨 일인가?]
“부총리님, 이곳 몰디브의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서 긴급히 연락드렸습니다.”
[도대체 어떤 상황인데 호들갑을 떠는 거야?]
“어젯밤에 천유런 외교부장님이 실종됐는데, 느낌상 납치당한 것 같습니다.”
[뭐야?! 그게 사실이야?]
진심으로 깜짝 놀랐는지 자오린 부총리의 목소리가 천둥처럼 들려왔다.
“네, 그렇습니다.”
[용의자가 누구인지 밝혀냈나?]
“파키스탄에 본거지를 둔 테러 단체인 것 같습니다.”
[그놈들이 왜?]
“그 테러범들이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었답니다.”
[아이고…….]
“그것보다 더 심각한 사건이 어젯밤에 발생했습니다.”
[또 있어? 빨리 얘기해 봐.]
“어젯밤에 미국의 루퍼트 국무장관의 납치미수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설마… 우리나라가 범인은 아니겠지?]
묻는 자오린 부총리의 목소리가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정보국의 장쉬엔량 국장이 범인입니다.”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지른 거야? 무조건 오리발 내밀어!]
“그럴 수 없는 것이… 장 국장이 미국 측에 체포된 상태입니다.”
[뭐라고?!]
흙수저 성공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