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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성공 신화-247화 (247/328)

[247화] 제발 살려 주십시오

겨울과 하도진 실장은 불나방 퇴치 작전이 무사히 끝나기를 기다리며 안가에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순간, 하도진 실장의 표정에 한 자락의 그늘이 지나갔다.

그와 동시에 겨울에게 말을 건넸다.

“부사장님, 천유런 외교부장, 왕지쉰 국장, 장쉬엔량 국장이 동시에 납치되거나 체포되면 어떻게 하죠?”

겨울이 애초에 수립해 놓은 계획은 천유런 외교부장과 왕지쉰 국장을 납치하고 장쉬엔량 국장에게 뒷설거지 역할을 맡기는 거였다.

그런데 장쉬엔량 국장이 루퍼트 장관 납치 작전에 참여하는 바람에 뒷설거지를 맡을 수뇌부가 모조리 사라졌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제일 쓸모없는 인간을 남겨 놓아야 할 것 같네요.”

이 말과 함께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한 부사장님.]

“데사이 국장님, 현재 상황이 어떻습니까?”

[리야 요원이 두 인간들을 떡으로 만들어 놓고 있는 중입니다. 이대로라면, 30분 안으로 작전을 끝마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긴급하게 드릴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네, 말씀해 보십시오.]

“왕지쉰 국장을 그곳에 내버려 두고 철수해 주십시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데사이 국장의 대답에 싫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겨울은 그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했다.

중국 정부로부터 왕지쉰 국장의 몸값도 받아 내고 싶은 것이리라.

그런데 왕지쉰 국장을 그곳에 내버려 두고 오라고 했으니, 이를 탐탁히 여길 리 없었다.

그의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서 얼른 말을 이어 나갔다.

“국장님, 지금 장쉬엔량 국장은 루퍼트 국장을 납치하기 위해서 자리를 비운 상태입니다. 그래서…….”

겨울은 현재 돌아가고 있는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천 외교부장의 몸값을 미국에 나눠 주지 않아도 되니까, 인도 정부 입장에서는 훨씬 이익일 겁니다.”

[아하,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조금 있다가 뵙겠습니다.”

똑똑.

겨울이 전화를 끊기를 기다렸다다는 듯이 공항에서 VIP들을 영접하고 돌아온 정명훈 사장, 신지훈 실장, 호영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마음 급한 정명훈 사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상황부터 물었다.

겨울은 방금 전에 데사이 국장과 통화한 내용까지 자세하게 보고했다.

“…천 외교부장 납치 작전과 장쉬엔량 국장 체포 작전은 한두 시간 이내에 종결될 것 같습니다.”

“천 외교부장의 휴가 장소는 어디로 결정됐지?”

“이곳의 지하실로 결정됐습니다.”

“중국 놈들이 묵고 있는 안가와 고작 3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까?”

“원래 등잔 밑이 어두운 법입니다.”

“하긴… 그렇겠군. 장쉬엔량 국장 일당은 어디에 감금시킨다고 하던가?”

“루퍼트 장관님이 묵고 있는 숙소로 결정됐습니다.”

“외교부장은 퀴퀴한 지하실 신세를 지고, 부하들은 스위트룸 신세를 지다니. 하여간 아이러니 한 세상이라니까.”

그때, 정명훈 사장의 눈에 핸드폰으로 무언가 열심히 검색하고 있는 호영이 들어왔다.

“정 이사, 뭐하고 있어?”

“2년 전에 우리나라가 인도에 K―9 자주포 100문을 얼마에 수출했는지 검색하고 있었습니다.”

“얼마에 수출했어?”

“K―9 자주포 100문 중에서 10문은 한국에서, 90문은 인도의 L&T에서 라이선스 생산하는 조건으로 7,200억에 수출했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라이선스 없이 K―9 자주포 100문을 우리나라에서 전량 제작해 수출하는 것으로 추진해야겠군.”

“사장님, 방산 회사와 인도 정부가 직접 계약하도록 유도하는 게 아니었습니까?”

“정 이사, 설마하니 그러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K―9 자주포 100문을 인도에 수출하는 건은 저희 SH무역이 책임지도록 하겠습니다.”

“하하하, 알았어.”

잠시 대화가 중단된 틈을 이용해서 겨울이 입을 열었다.

“사장님, VIP들은 무사히 입국하셨습니까?”

“몰디브 정부 측에서 적극 협조해 주는 바람에 별다른 문제 없이 입국했어.”

윙윙―

그때, 겨울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누가 걸어온 전화인지 알고 있다는 듯 그는 지체 없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데사이 국장님.”

[지금 안가로 이동하는 중입니다. 5분 이내에 도착할 예정이니까, 안가의 대문을 열어 놔 주십시오.]

“바로 조치를 취해 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겨울은 재빨리 정명훈 사장에게 말을 걸었다.

“지금 데사이 국장님이 천 외교부장을 납치해서 이곳으로 오고 계신답니다.”

“하 실장, 밖으로 나가서 대문을 열어 놓느라고.”

“네, 사장님.”

짧게 대답한 하도진 실장이 급하게 현관문을 열고 뛰어나갔다.

“우리는 지하실에 내려가서 데사이 국장 일행을 기다리자고.”

지하실은 예상한 대로 정말 단출했다.

천장에 매달려 있는 형광등, 실링팬, 싸구려로 보이는 침대 하나가 전부였으니까.

게다가 지하실에서 피어오르는 특유의 곰팡이 냄새는 덤이었다.

“천 외교부장이 술에서 깨어나면 기겁하겠는데요?”

지하실 내부를 호영이 이리저리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그때, 술에 만취해서 축 늘어져 있는 천유런 외교부장을 업은 정보국 요원이 지하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제법 힘들었는지 천유런 외교부장을 침대에 내팽개치듯 던져 놓고 한숨을 돌렸다.

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겨울이 화들짝 놀라 뒤따라 들어온 데사이 정보국장에게 물었다.

“천 외교부장이 술에서 깨어나면 어떻게 하려고 이렇게나 거칠게 다룹니까?”

“이곳으로 출발하기 직전에 치사량에 가까울 정도로 수면제를 먹여 놨으니까, 내일 아침까지는 죽은 시체처럼 누워 있을 겁니다.”

“아… 그것 참… 그렇군요. 아무튼 수고 많으셨습니다.”

* * *

“손님, 일어나세요.”

테이블에 머리를 박은 채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왕지쉰 국장은 누군가 흔들어 깨우는 통에 힘겹게 눈을 떴다.

바텐더인 리야가 뿌연 시야를 뚫고 들어왔다.

“…리야 씨, 무슨 일입니까?”

“영업 시간이 종료돼서 문을 닫아야 해요.”

왕지쉰 국장은 얼른 상체를 일으켜 세우다 멈칫했다.

자신의 곁에 앉아 있어야 할 천유런 외교부장이 눈에 보이지 않은 탓이었다.

“엄… 리야 씨, 나하고 같이 있던 손님은 어디에 있습니까?”

“30분 전에 술에 너무 취했다면서 숙소로 돌아가셨어요.”

“에이, 나도 깨워서 데리고 가지.”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아, 아닙니다. 그나저나 그 손님이 아무 말도 없이 그냥 갔습니까?”

“네. 팁은 고사하고 술값도 결제하지 않고 돌아가셨어요.”

순간, 왕지쉰 국장은 엉큼한 생각이 들었으나, 곧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천유런 외교부장은 자기의 물건에 손대는 것을 상당히 싫어한다.

“이것 참… 미안합니다. 술값하고 팁은 내가 대신 결제해 줄게요.”

“고마워요.”

“흠흠, 내일 또 와도 되죠?”

“후후후, 내일은 휴일이에요. 다른 날에 오세요.”

리야에게 신용카드를 돌려받은 왕지쉰 국장은 비틀거리며 바를 빠져나갔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리야 요원은 핸드폰을 들어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국장님, 상황 끝났습니다.”

[정말 수고 많았다. 내일 아침에 비행기를 타고 본국으로 돌아가도록 해.]

“네, 국장님.”

딸깍.

전화를 끊은 데사이 국장은 모두에게 통화 내용을 간략하게 알렸다.

“조금 전에 왕지쉰 국장이 바를 떠났답니다.”

“이제 증거 인멸 과정만 남아 있겠네요?”

윙윙―

장대산 부사장이 걸어온 전화였다.

겨울은 곧바로 그와 통화를 시작했다.

“네, 장 부사장님.”

[방금 전에 장쉬엔량 국장을 포함한 불나방들을 모두 체포 완료했습니다.]

“사상자는 없었습니까?”

[우리 측은 멀쩡하고 중국 측의 요원들 세 명이 가벼운 찰과상을 입었습니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루퍼트 장관님이 아침 9시에 이곳 안가에서 대책 회의를 하자고 합니다.]

“알겠습니다.”

딸깍.

겨울이 전화를 끊자, 데사이 국장이 질문을 던져 왔다.

“어떻게 됐습니까?”

“작전은 무사히 끝났고, 내일 오전 9시에 대책 회의를 하자고 합니다.”

잠시 후, 왕지쉰 국장이 안가의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 모습이 모니터에 비춰졌다.

대기하고 있던 수행원이 왕지쉰 국장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국장님, 외교부장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이미 오셨잖아.”

“두 분이 외출하신 이후로 제가 이곳에 있었는데, 외교부장님은 돌아오시지 않았습니다.”

왕지쉰 국장은 온몸에 남아 있는 알코올이 한순간에 날아갔다.

호텔부터 이곳까지는 느린 걸음으로 걸어도 10분 정도.

30분 전에 바에서 출발한 천유런 외교부장이 아직까지 도착하지 않았다는 의미는 중간에 불상사가 발생했다는 뜻이다.

대형 사고가 발생했음을 직감하고 그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전원이 꺼져 있다는 기계음이 들려올 뿐이었다.

“아이고… 큰일 났네.”

루퍼트 장관을 납치하는 것보다 실종된 천유런 외교부장을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급하게 장쉬엔량 국장에게 전화 걸어 보니, 천만다행히도 신호가 갔다.

[여보세요.]

“장 국장님, 큰일 났습니다. 외교부장님이 실종된 것 같습니다.”

[지금 전화하신 분은 누구십니까?]

“네? 누구라뇨?”

뒤늦게 목소리와 억양에서 이질감을 느낀 왕지쉰 국장이었다.

놀랍게도 상대방은 자신의 이름을 정확하게 언급했다.

[혹시… 왕지쉰 국장입니까?]

순간, 왕지쉰 국장은 천장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수화기를 통해서 들려온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른 사람이 아닌 루퍼트 장관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장쉬엔량 국장의 핸드폰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는 납치 작전이 실패했다는 뜻.

이 사건으로 인해서 불어올 후폭풍을 생각하니… 온몸에 식은땀이 소나기 내리듯 주르르 흘러내렸다.

[여보세요. 왜 대답이 없습니까?]

“…네, 맞습니다.”

[나를 납치하라고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왕 국장이라고 들었는데, 사실입니까?]

“…….”

[왕 국장, 나를 납치하려고 시도한 것에 대한 대가는 반드시 치러야 할 겁니다. 그럼 이만.]

뚝.

루퍼트 장관이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하아…….”

다리에 힘이 풀린 왕지쉰 국장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 * *

천유런 외교부장은 속이 쓰려서 더 이상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래서 냉장고에서 물이라도 꺼내 마실 생각으로 천천히 눈을 떴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리야의 몸에서 나는 향수 냄새가 아닌, 축축하고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에 퍼뜩 일어나 벽에 붙어 있는 스위치를 찾아서 전원을 켰다.

눈에 보이는 것은 한쪽 벽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싸구려 침대 하나.

혹시나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볼을 꼬집어 보았지만, 짜르르 아픔이 전해 오는 것을 보니 꿈은 절대로 아니었다.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혹시… 테러범들에 의해서 납치된 게 아닐까?”

그러다가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테러범들이 자기를 납치했으면, 이렇게 온전히 내버려 둘 리 없었으니까.

“갱들이 나를 납치했다는 말인가? 왕 국장은 옆방에 가둬 놓았나?”

쾅!

그가 혼잣말을 내뱉는 사이, 머리에 복면을 쓴 괴한들이 지하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괴한들은 지하실 한가운데에 철제 의자 두 개를 내려놓고 한쪽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그러고는 바들바들 떨고 있는 천유런 외교부장의 사지를 로프로 묶은 후, 철제 의자에 앉혔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제법 몸짓이 되는 사람이 천유런 외교부장의 맞은편 의자에 앉으며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이름.”

천유런 외교부장은 순간 마음이 놓였다.

복면을 쓴 괴한들이 파키스탄에 본거지를 둔 테러범들이었다면, 당연히 자신의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을 테니까.

“…천유런입니다.”

“몰디브에 무엇을 하러 왔나?”

절대로 몰디브 입국 목적을 사실대로 밝힐 수는 없었다.

“여행 왔습니다.”

퍽!

데사이 국장이 무방비 상태로 있던 천유런 외교부장의 가슴팍을 발로 강하게 걷어찼다.

“컥!”

쿠당탕!

천유런 외교부장이 볼썽사납게 벌러덩 뒤로 자빠졌다.

데사이 국장은 지하실 바닥에 넘어져서 버둥거리고 있는 그에게 경고를 날렸다.

“천유런 외교부장, 우리가 당신을 모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나 봐? 다음에도 거짓말하면, 당신의 팔다리 중에 하나를 부러뜨려 줄게.”

순간, 천유런 외교부장은 조금 전까지 품고 있던 일말의 꿈과 희망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놈들이 자신의 신분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으로 봐서 몰디브의 이름 없는 갱단이 아니라 테러범들이 분명했다.

“제발… 살려 주십시오.”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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