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 성공 신화-161화 (161/328)

[161화] 줘도 못 먹으면 바보

다음 날 아침.

겨울은 정명훈 사장의 집무실에서 장대산 부사장과 함께 모닝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사장님, 어제 오후에 이재성 대리에게 이상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어떤 소문인데?”

“대한 그룹의 최성진 부회장이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겨울의 얘기를 들은 정명훈 사장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정보들은 세상에 드러나서는 안 될 것들이 제법 많았다.

게다가 팀장급들은 고급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고.

만약에 그들이 악의적인 마음을 품고 최성진 부회장, 또는 다른 사람들에게 정보를 유출한다면… 생각만으로도 온몸에 솜털이 곤두섰다.

이런 사태는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최고였지만, 대한 그룹에서 H&J 컨설팅으로 이직하는 사람들의 신상명세를 모르고 있다는 것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그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조병석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정 사장님.]

“조 실장님, 이곳으로 오실 때 정재엽 인사담당 사장님도 같이 모시고 오셨으면 합니다.”

[제가 이유를 알 수 있습니까?]

“우리 회사로 이직할 직원들과 관련해서 상의드릴 것이 있어서 그럽니다.”

[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럼, 10시에 뵙겠습니다.”

딸깍.

전화를 끊은 정명훈 사장은 장대산 부사장에게 말을 건넸다.

“장 부사장, 보안과 관련한 조직을 별도로 신설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장대산 부사장은 정보 보안에 대한 필요성을 진즉에 인식하고 있었고, 이미 은밀하게 시스템을 구축해 놓은 상태였다.

그러나 비밀은 알고 있는 사람이 적으면 적을수록 오래 지켜지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검토해 보겠습니다.”

“장 부사장의 능력으로 최 부회장의 사람들을 걸러 낼 수 있겠지?”

“시간이 문제일 뿐,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이직한 직원들을 다음 주부터 우리 회사에 근무시키면 안 되겠네?”

“아무리 늦어도 다음 주 월요일까지 검증을 끝내 놓겠습니다.”

“부탁할게.”

장대산 부사장의 대답을 들은 끝낸 정명훈 사장은 겨울에게 말을 걸었다.

“한 부사장, 이제 됐지?”

“네, 사장님.”

“나라마다 인구 차이가 있는데, 다섯 개 나라가 똑같이 전염병 치료제를 10억 달러씩 수입할 필요가 있을까?”

사실 겨울도 그 점이 궁금해서 어젯밤에 5개국의 VIP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서 필요한 물량을 확인해 보았다.

결론적으로 우간다와 알제리는 여유, 콩고민주공화국과 탄자니아는 적당, 나이지리아는 부족이었다.

우간다와 알제리 측에 전염병 치료제 발주를 줄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이 걸작이었다.

남는 돈으로 진통제를 포함한 가정상비약을 발주하겠단다.

줘도 못 먹는 바보라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통화를 마무리했다.

생각을 끝낸 겨울은 VIP들과의 통화 내용을 자세히 언급했다.

“…보상금으로 받은 10억 달러는 무조건 소진해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어쩔 수 없지 뭐.”

“그리고 VIP들과 자원 수출과 관련한 대화도 잠깐 나눠 봤는데, 전적으로 사장님만 믿고 있겠답니다.”

“한 부사장, 나한테 너무 많은 부담을 주는 거 아니야?”

말은 그렇게 했어도 정명훈 사장의 표정은 생각보다 밝았다.

“저는 VIP들이 언급한 얘기를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알았어. 내가 최선을 다해 볼게.”

“네, 사장님.”

“아차, 중국은 언제부터 철수한다고 했지?”

“당장 다음 주부터 점진적으로 철수하기 시작해서 5월 말에 철수 완료 한다고 합니다.”

“이제 슬슬 바빠지기 시작하겠군.”

* * *

H&J 컨설팅으로 향하는 차 안.

송훈석 회장은 옆자리에 앉아 있는 서동호 실장한테 말을 걸었다.

“연합군들이 10억 달러라는 막대한 돈을 어떻게 조성했을까?”

“중국과의 협상 과정에서 추가로 피해 보상금을 받아 낸 것 같습니다.”

“그것이 10억 달러라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설명이 안 됩니다.”

“대한제약에서 커버할 수 있는 금액이 얼마나 될까?”

“품목과 납기에 따라서 달라지겠지만, 매월 2억 달러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만약에 납기가 6개월이라면, 38억 달러는 다른 제약 회사의 몫이겠네?”

서동호 실장은 송훈석 회장의 의도가 빤히 들여다보였다.

나머지 38억 달러까지 욕심내고 있는 중이리라.

하지만 그는 가능성이 없다고 내다봤다.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겨울이 SH무역에 일감을 나눠 줄 것이 확실했기 때문에.

“회장님, 아깝지만 나머지 금액은 SH무역에게 넘겨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지. 별수 있겠어.”

“그나저나 오늘 아침 출근길에 지유를 봤는데, 무슨 일이 있습니까?”

“왜?”

“평상시에 비해서 옷을 상당히 화사하게 차려입었던데요?”

“봄이라서 그렇겠지.”

그때, 조수석에 앉아 있던 조병석 실장이 뒤를 돌아보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회장님, 제가 그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얘기해 봐.”

“오늘 저녁때 입사 동기들 모임이 있답니다.”

“동기들이야 그동안 간간히 모이지 않았나?”

“동기 모임에 한 부사장이 오랜만에 참석한답니다.”

“음…….”

송훈석 회장이 생각할 것이 있다는 듯 입을 다물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 * *

임원 회의실.

정명훈 사장의 모두 발언을 시작으로 긴급회의는 정확히 오전 10시에 시작되었다.

“늘 말씀드리는 거지만, 이곳에서 나누는 대화 내용들이 밖으로 유출돼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이 점을 명심해 주시고, 정보 보안에 힘써 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오늘 긴급회의 안건은 나이지리아를 포함한 다섯 개의 나라에 의약품을 수출하는 거지만, 그전에 대한 그룹 측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얘기해 보세요.”

“신빙성은 상당히 낮은 편이지만, 한 부사장이 소문을 하나 입수했습니다. 그 소문 내용은…….”

정명훈 사장의 얘기를 듣고 있던 정재엽 사장은 창피한 마음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 문제에 대해서 충분히 고려했어야 하는데, 전혀 생각도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H&J 컨설팅으로의 이직할 사람들을 아직 낙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가 머릿속으로 스파이를 걸러낼 방법을 궁리하고 있는 사이에도 정명훈 사장의 얘기는 계속 이어졌다.

“…저희가 자체적으로 검증해 봤으면 합니다. 정재엽 사장님께서는 이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희가 1차적으로 걸러 내고, 목표로 한 채용 인원들보다 30% 많은 사람들의 이력서를 넘겨드리겠습니다. H&J 컨설팅 측에서 검증 후, 문제없다고 판단된 직원들을 이직시키는 게 어떻겠습니까?”

“정 사장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이제 전염병 치료제와 관련한 대화를 나눴으면 합니다. 한 부사장, 배경 설명을 먼저 해 주세요.”

“네, 사장님.”

겨울은 시선을 자신에게 모으기 위해서 일부러 큰 목소리로 대답하고 말을 시작했다.

“어제 오전에 오코사 실장께 협상이 타결됐고, 협정서에 사인까지 완료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와 대화를 나누던 도중에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하고…….”

겨울의 말을 들으면서 송훈석 회장은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 있었다.

거래 금액이 제법 큰 비즈니스의 경우에는 반드시 실무자와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서 계약을 체결한다.

하물며 국가 대 국가의 협상은 어떠하겠는가.

틀림없이 수십 명의 실무자들이 협정서 작성 작업에 참여했을 것이고, 본국에서도 협정서 내용을 충분 검증했을 것이다.

겨울이 차이점을 단박에 알아챘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China와 Chinese Government의 차이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겨울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그는 궁금함을 담아 그 이유를 물었다.

“가장 큰 원인은 시간 때문인 것 같습니다.”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였다.

시간에 쫓기다 보면, 전후좌우를 살필 수 있는 여유가 없어지기 마련이니까.

“중국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연합군들은 시간이 충분했잖아요.”

“그들에게 유리한 카드를 굳이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요?”

“하긴… 그렇겠네요.”

송훈석 회장의 뒤를 이어서 조병석 실장이 질문을 던졌다.

“한 부사장님, 아무리 그래도 단어 하나 수정하는 대가로 10억 달러는 너무 많은 것 아닙니까?”

“저도 VIP들과 통화하면서 그 점에 대해서 언급했는데, 주겠다고 하는데도 못 먹으면 바보가 아니냐고 하셨습니다.”

“하하하, 무슨 말씀인지 알았어요.”

“계속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0억 달러는 전염병 치료제 및 가정상비약을 수입하는 데 전액 사용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달 말까지 제안서를 작성해서 VIP들에게 보내줘야 합니다.”

“납기와 결제 조건은 어떻게 됩니까?”

“납기는 계약 체결 후 6개월이고, 결제 조건은 계약과 동시에 선급금을 지급할 예정입니다.”

정상호 사장은 의약품 수출에 대해서 겨울이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의약품은 사람들의 생명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공산품과는 달리 수입 절차가 상당히 복잡하고 까다롭다.

수입 허가를 받는 데 짧게는 최소 6개월이 걸린다.

게다가 아프리카 대륙의 나라들은 검사기관의 설비와 인력들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최소 1년은 기다려야 수입 허가를 받을 수 있다.

겨울은 아무 문제가 없다는 듯 쉽게 말하고 있었지만.

이 점을 바로잡아 줄 필요가 있다 생각하고 발언권을 요구했다.

“한 부사장, 의약품은 해당국에서 수입 허가를 받지 못하면, 절대로 수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네, 물론입니다.”

“수입 허가를 받으려면 최소 1년 정도 걸리는데, 어떻게 6개월 안에 수출을 끝낼 수 있을까요?”

“전염병 치료제와 가정상비약에 한해서 별도의 허가 없이 수입해 주기로 VIP들이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에 대한 증거로 각국의 대통령이 사인한 공문을 저희한테 보내 주기로 했습니다.”

“의약품 수입은 누가 대행합니까?”

겨울은 의약품 수입 대행 문제만 생각하면 아직도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이번 의약품 수출도 TV나 컴퓨터를 수출하는 유통 경로 사용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VIP들은 H&E 트레이딩을 통해서 수입받기를 원했다.

그들의 의도가 무엇인지 빤히 알기 때문에 강력하게 반대했으나, 귀를 닫고 들어 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에 한술 더 떠서 그들은 자신이 고집을 꺾지 않으면, 의약품 수입을 포기하겠다는 발언까지 서슴없이 내뱉었다.

결국 백기를 들고 그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H&E 트레이딩이 수입할 예정입니다.”

“대한 그룹 아프리카 법인은 빠지는 건가요?”

“네. 나름대로 복잡한 사연이 있으니까, 더 이상 묻지 말아 주십시오.”

정상호 사장은 VIP들의 의도를 단숨에 알아챘다.

겨울에게 이익 분배의 형식으로 10억 달러 중에서 일부를 나눠 주려는 것이리라.

이럴 때는 모르는 척 가만히 입 다물고 있는 것이 최선이었다.

“무슨 말인지 알았어요.”

“참고적으로 은센기 사장이 콩고민주공화국으로 귀국할 때, 전염병 치료제와 가정상비약 샘플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언제 돌아갈 예정입니까?”

“일요일이라고 들었습니다만,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도 있습니다.”

“알았어요.”

“이제부터는 정명훈 사장님께서 말씀하실 겁니다.”

자신의 역할을 120% 수행한 겨울이 물러나고, 그 자리를 정명훈 사장이 차지했다.

“저희는 의약품에 대한 지식이 백지상태입니다. 따라서 태스크 포스를 구성해서 제안서를 작성했으면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서동호 실장이 발언권을 요청했다.

“정상호 사장님, 저희 대한제약이 15억 달러를 책임질 테니까, 나머지 35억 달러는 SH무역이 책임져 주실 수 있습니까?”

“가능합니다.”

“태스크 포스의 리더는 H&J 컨설팅 측에서 맡는 것이 당연하지만, 전문가가 없기 때문에 저희 대한제약이 맡았으면 합니다.”

“찬성합니다.”

“태스크 포스에 참여하는 다른 제약 회사들은 SH무역에서 섭외해 주십시오.”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은 제법 오랜 시간 동안 의견을 주고받은 끝에, 태스크 포스 구성에 대한 합의를 끝냈다.

“수고하셨습니다. 오늘 점심은 주인인 저희가 대접하도록 하겠습니다.”

“한우가 어떨까요?”

“네! 좋습니다.”

은센기 사장과 가쿠타 부장에게 통역해 주느라고 지쳐 있던 호영이 특히 반색했다.

“하하하, 알았어요.”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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