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 성공 신화-107화 (107/328)

[107화] 허세가 필요할 때

겨울의 말을 달리 해석하면 딜을 하자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해리슨 상원의원도 겨울에게 무보수로 자기들을 도와 달라고 부탁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하고, 겨울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한 대리님, 우리한테 원하는 게 있습니까?”

당연히 원하는 것이 있었다.

조만간 설립 예정인 컨설팅 회사의 연착륙을 위해서라도 미국의 도움은 필수적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원하는 것을 대답하면, 애초에 계획한 대로 큰 것을 얻어 내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결정적인 순간을 위해서 아껴 두기로 마음먹었다.

“상원의원님, 기회가 되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한 대리님이 우리를 도와준다고 생각하면 될까요?”

“긍정적으로 생각하셔도 될 듯합니다.”

“휴우, 다행이네요.”

해리슨 상원의원이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해리슨 상원의원과 협력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장대산의 도움이 필수였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께름칙한 것이 남아 있었다.

이 점을 털고 넘어가지 않고서는 결코 그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상원의원님, 다른 질문을 해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요.”

“대산 씨는 사전에 모든 계획을 알고 있었습니까?”

“네.”

“일반인에 불과한 대산 씨한테 극비 문서를 함부로 유출해도 됩니까?”

“음… 한 대리님이 오해하고 있는 게 하나 있는데, 대산이는 다른 직업이 하나 더 있습니다.”

해리슨 상원의원이 잠시 뜸을 들인 후 입을 열었다.

이런저런 정황으로 보아 하건대, 대산은 정보 기관에 소속된 요원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럴 때는 모두를 위해서 모른 척하는 것이 최고였다.

“대산 씨의 신분에 대해서는 더 이상 묻지 않겠습니다.”

“이해해 줘서 고마워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테슬라의 주가는 연말에 600달러를 넘어갈 수 있습니까?”

“내가 답변하기 전에 이런 질문을 한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제가 지인들에게 그렇게 될 거라고 철석같이 약속했거든요.”

“투기 세력들이 너무 빨리 끼어드는 바람에 그 시기가 앞당겨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한 대리님, 이제 제가 질문해도 됩니까?”

“네, 말씀해 보십시오.”

“1월 중순부터 지금까지 한 대리님의 주변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얘기해 줄 수 있습니까?”

겨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세계 최강의 정보력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이 자신의 행적을 모른다는 점이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게다가 미국 정부는 작년 11월부터 자기를 은밀하게 보호하고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겨울은 이 점을 콕 집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한 대리님이 인맥을 넓힌 콩고민주공화국, 탄자니아, 우간다는 친중국 정책을 펼치고 있는 중입니다. 따라서 세 나라는 우리나라의 영향력이 거의 미치지 않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나이지리아는 친 중국 정책을 펼치지 않는다는 뜻입니까?”

“갑자기 나이지리아는 왜 언급하는 겁니까?”

“제가 맺은 인연 중에 바하리 나이지리아 대통령님도 포함되어 있어서 그렇습니다.”

해리슨 상원의원은 적잖이 놀랐다.

예전부터 미국은 아프리카의 맹주인 나이지리아와 전통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중국이 나이지리아에 적극적인 구애를 펼침으로 인해서 자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진 상태였다.

예전의 긴밀한 관계로 회복하기 위해서 뒤늦게 공을 들이고 있지만, 워낙 중국의 영향력이 강해서 그런지 성과는 거의 없는 편이었다.

그런데 겨울이 바하리 대통령을 잘 알고 있다고 한다.

만약에 겨울의 도움을 받는다면 나이지리아와의 관계 회복에 한발 더 내디딜 수 있는 희망이 있었다.

단, 겨울이 자국과 손을 잡았을 경우에.

해리스 상원의원은 살짝 흥분된 가슴을 억누르고 겨울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한 대리님, 바하리 대통령과 어느 정도 친합니까?”

자신의 몸값을 올리기 위해서라도 지금이야 말로 허세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24시간 언제든 통화할 수 있는 사이입니다.”

“음…….”

해리슨 상원의원이 믿지 못하겠다는 듯 말끝을 흐렸다.

이에 반해 겨울은 출장오기 직전에 부투야 실장에게 들은 말이 있어서, 거리낄 것이 전혀 없었다.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간다고 판단했는지, 장대산이 조심스럽게 귓속말을 했다.

“한 대리님, 아버지는 허세 부리는 것을 매우 싫어합니다.”

즉, 바하리 대통령과의 친분 관계를 증명하라는 얘기였다.

핸드폰으로 나이지리아 시간을 확인하니, 충분히 통화 가능한 시간대였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이 있듯이 겨울은 즉각 행동으로 옮겼다.

“해리슨 상원의원님, 바하리 대통령님과 전화로 인사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드릴까요?”

“네? 정말 가능합니까?”

“한번 시도해 보겠습니다.”

해리슨 상원의원과 대화를 중단한 겨울은 바하리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한 대리님.]

자기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신호가 가자마자 바하리 대통령이 바로 전화를 받았다.

“바하리 대통령님, 그동안 잘 계셨습니까?”

[그렇기는 합니다만, 미국에 무슨 일로 가셨습니까?]

“급한 용건이 있어서 출장 왔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스피커폰으로 전환해도 되겠습니까?”

[원하는 대로 하세요.]

겨울은 스피커폰으로 전환하고 바하리 대통령과 통화를 이어 나갔다.

“바하리 대통령님, 제가 미국에 급하게 온 이유는 차기 대선에서 야당 후보 1위를 달리고 있는 토머스 해리슨 상원의원님을 병문안하기 위함입니다.”

[한 대리님은 해리슨 상원의원님을 어떻게 알고 계시는데요?]

“제 친구의 아버지가 해리슨 상원의원님이십니다.”

[이야, 한 대리님은 대단한 분을 알고 계시네요.]

바하리 대통령이 내뱉는 감탄사가 VIP 병실에 스며들었다.

“대통령님, 해리슨 상원의원님께서 인사를 나누고 싶어 하십니다. 통화 가능하십니까?”

[그럼요. 얼른 바꿔 주십시오.]

겨울은 해리슨 상원의원에게 핸드폰을 건넸다.

두 사람은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한참을 통화했다.

[…몸조리 잘하시고, 다음에 통화하겠습니다.]

“네. 대통령님, 이제 한 대리님을 바꿔 주겠습니다.”

해리슨 상원의원에게 핸드폰을 건네받은 겨울은 바하리 대통령과 통화를 이어 나갔다.

[한 대리님, 미국의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습니까?]

“아직 얘기를 꺼내지 않은 상태입니다.”

[우리 연합군은 한 대리님을 믿고 있는 거 알고 있죠?]

“네, 알고 있습니다.”

[한 대리님의 전화는 24시간 아무 때고 받을 테니까, 상의할 게 있으면 연락주세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겨울이 통화를 끝내자, 해리슨 상원의원이 득달같이 질문을 던져 왔다.

“한 대리님, 바하리 대통령이 언급한 연합군은 뭡니까?”

“연합군에 대해서 설명해 드리기 전에 1월 중순부터 제가 아프리카를 떠나오기 직전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씀드리는 게 먼저일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우간다의 유전 지대에서 탄자니아의 동부 해안을 연결하는 송유관 건설 공사의 입찰이 3월 중에 있을 예정입니다. 저는 송유관 건설 공사를 수주하기 위해서 대산 씨가 보내준 테슬라와 관련한 정보를 이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탄자니아의 문두야 부통령과는 작년 11월에 인사를 나눴지만 서먹서먹한 사이라서, 그와 친분이 깊은 부투야 실장을 공략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겨울은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바통고 대통령을 만난 얘기부터, 탄자니아로 출장 가서 일어난 사건까지 비교적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설명 중간에 대산이 보충 설명해 주었음은 물론이었다.

“…현재는 알제리까지 연합군에 가담한 상태입니다.”

“한 대리님, 연합군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입니까?”

“중국 정부와 체결한 일대일로 프로젝트와 관련된 모든 계약을 파기하고, 부채를 전액 탕감 받는 것이 목적입니다.”

“네?! 정말입니까!”

좀처럼 놀라지 않는 모습이던 해리슨 상원의원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네, 그렇습니다.”

“중국 정부가 연합군들의 요구를 들어줄 것 같습니까?”

“저는 미국의 역할에 따라서 성패가 결정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겠죠?”

“연합군들이 중국의 몰염치한 행동을 국제사회에 공론화시키고, 미국이 뒤에 떡하니 버티고 있으면 어떤 상황이 벌어지겠습니까?”

보나마나 빤했다.

중국이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공들인 나라들도 부채를 탕감해 달라고 주장하고 나올 것이었다.

중국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눈물을 머금고 연합군들의 요구 사항을 들어줄 수밖에 없을 것이고.

“한 대리님, 우리가 연합군들 중에서 누구와 대화를 나누면 됩니까?”

“저와 대화를 나누면 됩니다.”

“한 대리님이 연합군들로부터 전권을 받았다고 판단하면 됩니까?”

“부투야 실장님이 미국과의 대화 창구는 반드시 저로 하겠다고 하셨는데, 같은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해리슨 상원의원은 부투야 실장이 자국과의 대화 창구로 왜 겨울을 선정했는지 대충 감 잡았다.

즉, 겨울에게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이권을 챙겨 주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겨울은 현재 대한 그룹 소속이지 않은가.

어떤 이권을 주라는 얘기인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연합군들이 한 대리님에게 협상에 대한 전권을 준 이유가 있을까요?”

지금까지는 애피타이저였고, 이제부터가 메인 요리였다.

겨울은 이와 같은 상황이 올 것으로 예상하고 구상해 놓은 방안을 차분하게 정리한 뒤, 해리슨 상원의원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저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어서였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고마움의 대가를 대한 그룹에 주겠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됩니까?”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분들은 대가를 저한테 주기로 했습니다.”

“한 대리님은 대한 그룹 소속이잖아요?”

“사실은 조만간에 대한 그룹을 퇴사하고 컨설팅 회사를 설립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컨설팅 회사라면…….

해리슨 상원의원은 어제 오전에 장대산과 나눈 대화 내용이 떠올랐다.

장대산에게 미국에서 본업에 충실 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지만, 아들은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는 의견을 강하게 피력했다.

친한 친구가 회사를 설립 예정인데, 같이 동참해야 할 것 같다는 명분을 대면서.

이런 정황으로 보면, 겨울과 사전에 교감을 주고받은 것이 분명했다.

그는 자신의 추측이 맞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산 씨가 컨설팅 회사에 동참하면 영광이기는 합니다만, 아직 구체적인 대화를 나눠 보지는 못했습니다.”

해리슨 상원의원은 겨울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시선을 돌려서 장대산에게 물었다.

“대산아, 어떻게 된 거니?”

“열흘 전쯤에 한 대리님이 술에 취한 채로 저한테 전화를 걸어와서,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 왔다면서 신세를 한탄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향후 계획을 물어봤는데, 창업하는 것과 친구의 작은아버지가 CEO로 있는 무역 회사에 입사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더라고요.”

겨울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머리를 식힌다며 남아공의 케이프타운에 가서 술을 진탕 마셨고…….

그때 장대산에게 전화해서 주저리주저리 술주정을 했는지 어떤지는 기억에 없었다.

‘내가 그랬다고? 그런데 왜 기억에 없지?’

겨울이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에도 두 사람의 대화는 계속됐다.

“그래서 네 생각은 어떠냐?”

“한 대리님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컨설팅 회사에 참여하는 것이 여러모로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겠지?”

“저는 미국을 상대하는 카운터 파트너를 맡고 싶습니다.”

“카운터 파트너라…….”

끝말을 흐린 해리슨 상원의원이 눈을 내리깔고 생각에 잠겼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정리하고 최선의 방법을 도출하기 위해서 그의 머리는 쉼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해리슨 상원의원이 입을 열었다.

“한 대리님과 대산이 컨설팅 회사를 설립해서 우리를 도와 중국의 야욕을 분쇄시켜 주십시오. 그렇게 해 주시면, 우리 미국은 조건 없이 연합군들의 손을 들어 주겠습니다.”

이제 9부 능선까지 넘었다.

눈앞에 보이는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서 겨울은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상원의원님, 부탁 하나만 들어주십시오.”

“얘기해 보세요.”

“저희가 설립하는 컨설팅 회사가 시행착오를 겪지 않으려면, 상원의원님의 적극적인 후원이 필요합니다.”

“그야 당연한 얘기 아닌가요?”

“좋습니다. 협상 타결됐습니다.”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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