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아버지가 누구냐?
사실 겨울도 백도어 프로그램의 정확한 뜻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당장 인터넷을 검색해서 대답할 자리도 아니어서 아는 대로 설명해 줄 수밖에 없었다.
“문두야 부통령님께서 어디에 계시는지, 누구와 통화했는지, 상대방과 어떤 메시지를 주고받았는지를 상대방이 모니터링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백도어입니다. 만약에 화웨이 스마트폰에 백도어 프로그램이 설치되어 있다면, 72시간마다 이러한 정보들이 중국에 있는 화웨이의 서버에 자동 전송된다고 들었습니다.”
겨울의 얘기에 문두야 부통령의 마음은 조급해졌다.
만약에 화웨이가 국영기업이 맞다면, 자신의 핸드폰을 중국 정부가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에.
부디 아니기를 바라면서 겨울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한 대리님, 화웨이가 중국 국영기업이라는 근거 자료를 가지고 있습니까?”
“자료를 가지고 있었으나,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해서 지금은 폐기한 상태입니다.”
“그 자료를 제가 얻어 볼 수 있습니까?”
“이유를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사실은 작년 연말에 CNOOC로부터 새해 선물이라면서 화웨이 핸드폰을 선물받았습니다.”
“부통령님만 받았습니까?”
“아닙니다. 마지리 대통령님을 포함한 고위 공무원들이 모두 받았습니다.”
그때, 잠자코 듣고만 있던 마사카 부통령도 한마디 내뱉었다.
“우리 우간다도 마찬가지 상황입니다.”
겨울은 핸드폰을 들어서 한국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4시 30분.
앞으로 두 시간 정도만 기다리면 장대산과 통화할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그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겨울은 배 째라는 심정으로 핸드폰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잔뜩 잠에 취해 있는 목소리.
미안한 마음이 들었으나 겨울은 내색하지 않고 통화를 이어 나갔다.
“대산 씨, 미안해요.”
[…새벽에 어쩐 일이세요?]
“지금 심각한 상황이 발생해서 부탁하려고 전화했어요.”
[어떤 상황인지 설명해 보세요.]
장대산도 심각성을 느꼈는지, 목소리가 바로 제자리를 찾아갔다.
“작년 연말에 중국의 석유 회사인 CNOOC가 탄자니아와 우간다의 대통령님과…….”
겨울은 두 명의 부통령에게 들은 얘기와 요청 내용을 사실 그대로 전달했다.
[자료를 보내 주는 건 문제가 안 되는데, 두 부통령님의 핸드폰에 백도어 프로그램이 설치되어 있는지부터 확인해 봐야 할 것 같네요.]
“확인해 줄 수 있어요?”
[물론이죠.]
장대산에게서 확신에 찬 목소리를 듣는 순간, 조급하던 마음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나도 모르게 대산 씨한테 많이 의존하고 있었구나.’
겨울은 마음속으로 장대산에게 진한 고마움과 안도감을 느끼면서 통화를 이어 나갔다.
“대산 씨, 화상회의를 했으면 하는데, 가능해요?”
[얼마든지 가능하죠.]
“그럼… 20분 뒤에 화상회의를 해도 될까요?”
[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통화를 끝낸 겨울은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두 사람에게 통화 내용을 자세하게 밝혔다.
“…회의실로 다시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두 대통령님도 이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늦었지만 화상회의에 다시 참여시키는 게 어떻겠습니까?”
“저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알겠습니다. 빨리 정부 청사로 돌아갑시다.”
정부 청사로 돌아가는 도중, 겨울은 가쿠타 과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합류해 달라고 요청했다.
다행히도 두 사람은 근처에 대기하고 있었는지, 제시간에 맞춰서 정부 청사 회의실로 들어왔다.
“한 대리님, 도대체 어떻게 된 상황입니까?”
“길게는 설명드릴 수 없고, 심각한 상황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정해진 시간이 되자, 마지리 대통령, 루군다 대통령의 모습이 대형 모니터에 나타났다.
문두야 부통령이 굳은 얼굴로 현재 상황을 간략하게 보고했다.
“…해서 급하게 화상회의를 요청한 상태입니다.”
[한 대리님, 하나만 묻겠습니다. 화웨이가 중국 국영기업이 확실합니까?]
“네. 제 이름을 걸고 장담합니다.”
[내 핸드폰에 백도어 프로그램이 설치되어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증명하실 생각입니까?]
“증명해 줄 IT 전문가가 지금 대기하고 있습니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입니까?]
장대산의 정체를 숨기기에는 일이 너무 커져 버렸음을 깨달은 겨울이었다.
이쯤에서 그의 정체를 드러낼 필요가 있었다.
“테슬라와 관련된 정보를 저한테 제공해 준 사람입니다.”
[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무조건 그를 신뢰해야지요.]
역시 효과가 직방이었다.
“테슬라와 관련된 얘기는 급한 문제부터 해결하고 난 후에 나누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하죠.]
“이제 제가 IT 전문가를 연결시켜 드리겠습니다.”
잠시 후, 장대산의 얼굴이 모니터에 비춰졌고, 화상으로나마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았다.
“장대산 씨, 두 대통령님의 핸드폰에 백도어 프로그램이 설치되어 있는지 확인시켜 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마지리 대통령에게 핸드폰 번호를 받은 장대산은 컴퓨터를 이용해서 무언가 작업을 수행한 후,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마지리 대통령님의 핸드폰에 백도어 프로그램이 설치되어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어떤 방법으로 증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마지리 대통령님께서 오늘 저녁부터 지금까지 누구하고 어떤 내용으로 통화했는지 내역을 확인시켜 드리겠습니다.]
장대산은 소형 카메라로 자신의 컴퓨터 모니터를 비췄다.
깜짝 놀라는 마지리 대통령의 모습이 대형 모니터에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있었다.
바로 뒤이어 장대산은 루군다 대통령, 문두야 부통령, 마사카 부통령의 핸드폰에 백도어 프로그램이 설치되어 있다는 사실까지 적나라하게 확인시켜 주었다.
[장대산 씨, 백도어 프로그램의 폐해에 대해서 설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중국 정보기관이 루군다 대통령님의 일거수일투족을 핸드폰으로 들여다보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화웨이가 중국 정부가 운영하고 있는 국영기업이라는 뜻으로 해석해도 됩니까?]
[제가 말로 설명해 드리는 것보다 미국 국무부에서 극비로 제작한 보고서를 통해 간단하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장대산은 ‘중국의 화웨이 제재방안’이라는 제목의 극비자료를 모니터에 띄워 놓고 한 장, 한 장 넘겨 가며 자세하게 설명했다.
이미 내용을 알고 있던 겨울은 두 대통령과 부통령의 표정 변화를 유심히 살피는 데 주력했다.
그들은 처음에는 놀랐다가, 중간에는 화난 표정, 마지막에는 얼이 빠져 있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만큼 정신적으로 충격을 많이 받았다는 뜻이리라.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다른 사람들이 들여다본다고 하는데,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겨울이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에도 장대산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화웨이의 스파이 행위를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서방국가들과 합동으로 정보통신 업계에서 퇴출시킬 예정입니다.]
[장대산 씨, 저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조만간 미국 정부에서 화웨이 제재 방안을 정식으로 발표할 예정입니다. 그때부터 행동으로 옮겨도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내 핸드폰에 설치되어 있는 백도어 프로그램은 어떻게 삭제해야 합니까?]
[IT 전문가를 불러서 삭제하셔도 되고, 제가 원격으로 삭제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럼 지금 당장 삭제해 주십시오.]
그때, 겨울이 할 말이 있다는 듯 발언권을 요청하고 입을 열었다.
“마지리 대통령님, 백도어 프로그램 삭제는 신중하게 생각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유를 설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CNOOC가 화웨이 스마트폰에 백도어 프로그램이 설치되어 있는지 모르고 있었을까요?”
[음… CNOOC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라는 뜻으로 들리는데, 내 추측이 맞습니까?]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CNOOC에 백도어 프로그램이 설치되어 있는 핸드폰을 증거물로 제시하면서 보상금이라도 왕창 뜯어 내십시오.”
[하하하! 알았습니다.]
그나마 조금은 기분이 풀렸는지 마지리 대통령이 환한 표정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문두야 부통령은 그간 겨울에게 가지고 있던 마음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기 위해 말문을 열었다.
“대통령님, 이번 기회에 핸드폰을 바꾸는 게 어떻겠습니까?”
[대한전자에서 생산하는 핸드폰으로 바꾸자는 말씀이겠죠?]
“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필요한 수량이 몇 대 정도 될까요?]
사실 500대면 충분했지만, 겨울에게 생색내기에는 수량이 너무 모자랐다.
“고위 공무원들까지 바꿔주려면 적어도 5,000대는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한 대리님, 우리 우간다도 5,000대 정도 필요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루군다 대통령도 즉각 화답해 왔다.
“감사합니다, 대통령님들.”
[한 대리님이 우리한테 준 선물에 비하면 약소합니다.]
“제가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선물은 제가 아니라, 장대산 씨가 드린 겁니다.”
[하하하, 그렇게 되는 건가요?]
루군다 대통령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큰 목소리로 웃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마사카 부통령이 다소 민감할 수 있는 질문을 꺼내 들었다.
“장대산 씨, 내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 답변하기 곤란하시면 대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질문을 들어 보고 판단하겠습니다.]
“장대산 씨는 이 기밀문서를 해킹을 통해서 취득하셨습니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제 아버지께 건네받았습니다.]
“아버님이 한국분일 텐데 어떻게요?”
[아닙니다. 미국 사람입니다.]
“그럼 아버님이 국무부의 고위 공무원이라도 되십니까?”
[선출직 공무원이라는 점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겨울은 장대산의 아버지 직업이 무엇이지 대충 감이 잡혔다.
선출직 공무원은 선거에 의해서 임명되는 공무원을 말한다.
미국의 경우에는 대통령, 상하의원, 주지사, 시장 등이 이에 해당된다.
장대산의 아버지가 극비문서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으로 봐서 고위직일 가능성이 높았다.
‘아무리 아들이라고 해도 극비문서를 건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
겨울이 의문에 빠져 있는 사이에도 마사카 부통령과 장대산의 화상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혹시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죄송합니다.]
장대산이 싫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드려서 정말 미안합니다.”
[괜찮습니다.]
“저희가 한 대리님으로부터 테슬라에 대한 정보를 건네받았는데, 알고 계십니까?”
[네. 통화했습니다.]
“한 대리님한테 이렇게 귀중한 정보를 건네준 이유를 제가 알 수 있습니까?”
[제가 마사카 부통령님께 이유를 설명해야 할 의무는 없다고 봅니다.]
마사카 부통령의 도를 넘는 질문에 장대산의 표정은 점차 싸늘하게 변해 갔다.
반면에 마사카 부통령은 실수를 깨닫고 얼른 사과의 말을 꺼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마사카 부통령님, 가급적이면, 선을 넘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네, 알았습니다.”
[이제 더 하실 말씀이 없는 것 같으니, 저는 이만 화상회의에서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이 말과 함께 장대산의 모습이 모니터에서 사라졌다.
그러자 루군다 대통령의 입에서 거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마사카 부통령, 왜 이렇게 눈치가 없는 겁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너무 짧았습니다.”
[이미 사람을 죽여 놓은 다음에 사과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
[제발 부탁인데, 나설 때와 물러설 때를 가려 주세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슬아슬한 분위기를 뚫고 겨울이 조심스럽게 발언권을 요청했다.
“루군다 대통령님, 제가 따로 전화해서 사과할 테니까, 노여움을 푸십시오.”
[후우, 장대산 씨한테 제가 미안해한다는 말을 꼭 전해 주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핸드폰 구입 문제는 마사카 부통령과 상의하도록 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오늘은 너무 늦은 것 같으니까, 나중에 다시 통화하죠]
“네, 좋습니다.”
루군다 대통령과 마지리 대통령은 겨울에게 사과와 작별의 말을 남기고 모니터에서 사라졌다.
“하아…….”
분위기를 망친 것을 깨달은 마사카 부통령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뱉었다.
겨울은 망연자실해 있는 마사카 부통령을 위해서 장대산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이곳의 상황을 전하고 그의 화를 풀어 주었다.
그리고 핸드폰 시계를 확인하니 어느새 시간은 자정이 넘어가고 있었다.
흙수저 성공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