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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성공 신화-76화 (76/328)

[76화] 남을 울린 사람은 언젠가 피눈물을 흘리는 법

링링링.

침대 맡에 놓아 둔 핸드폰이 벨소리를 토해 냈다.

손을 뻗어 핸드폰을 집어든 겨울은 발신자를 확인하고, 기쁜 마음에 통화 버튼을 눌렀다.

“대산 씨! 오랜만이네요.”

[제가 너무 일찍 전화한 건 아니죠?]

소심한 버릇은 아직도 고치지 못했는지, 장대산이 상당히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아니에요. 이제 일어나려고 했어요.”

[어젯밤에 대리로 승진했다는 얘기를 재성 씨한테 들었어요. 정말 축하해요.]

“대산 씨의 축하를 받으니, 이제야 대리로 승진한 실감이 나는 것 같은데요?”

[그럴 줄 알았으면, 더 빨리 전화할 걸 그랬나 보네요.]

“하하, 농담인 거 알죠?”

[그럼요. 지금 남아공은 여름이라서 상당히 덥겠네요.]

“요하네스버그가 내륙 고원에 위치하고 있어서 그런지 우리나라처럼 무지막지하게 덥고 그러지는 않아요. 한국은 어때요? 많이 춥나요?”

[아무래도 그렇죠. 작년 겨울이나 이번 겨울이나 비슷한 거 같아요. 그나저나 최준하가 다시 입사한 거는 들으셨어요?]

“아, 재성 씨한테 들었어요.”

[후우, 저는 그놈이 겨울 씨를 또다시 괴롭힐 거 같아서 걱정이 돼요.]

겨울도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때는 살짝 걱정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에이, 무슨 소리예요. 신입 사원이 어떻게 대리를 괴롭혀요.”

[아차, 겨울 씨 이제 대리였죠?]

“그리고 그놈이 아프리카로 올 일은 죽어도 없을 거 같으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하긴… 그렇겠네요.]

“이제 재수 없는 놈 얘기는 그만하죠.”

[좋아요. 아, 그러고 보니 포상금도 엄청나게 많이 받았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쓸 생각이에요?]

겨울은 시무식 당시에 포상금으로 10만 달러를 받았지만, 세금을 공제하고 난 후의 실제 수령액은 6만 2,000달러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도 7,500만 원에 가까운, 엄청난 거액이라서 감지덕지하고 있었다.

겨울은 부모님과 가을에게 용돈을 보내고, 나머지 돈은 언제나 그래 왔듯이 통장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 돈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참이었는데, 마침 장대산이 그에 대해서 물어오고 있었다.

“글쎄요… 잘 몰라서 그냥 저축해 놨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특별하게 사용할 일이 없으면 주식투자를 해 보는 건 어때요?]

겨울도 그 생각을 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남아공과 한국은 7시간의 시차가 있었다.

장이 열리는 시간이 이곳에서는 새벽 시간.

게다가 출장을 자주 다니다 보니, 주식 시세를 확인해 볼 수 없다는 문제점도 가지고 있었다.

겨울은 장대산에게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을 털어놓았다.

[우량주에 장기투자 한다고 생각하고, 잊어버리는 방법도 있어요. 잘만 하면 적어도 은행 이자보다는 수익률이 높을 겁니다.]

“그 방법도 있었네요. 대산 씨도 주식투자를 하고 있나 봐요?”

[저는 학창 시절부터 꾸준히 해 오고 있어요.]

“제가 장기 투자할 만한 주식이 있을까요?”

[음, 자동차 시장은 화석 연료를 사용하는 자동차에서 전기 자동차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돈이 생길 때마다 전기 자동차 선도기업인 테슬라의 주식을 조금씩 매입하고 있구요.]

겨울도 그 점에 대해서는 장대산과 같은 생각이었다.

콩고 지점에 근무할 당시에 전기 자동차 배터리에 사용되는 코발트를 확보하기 위해서 노력했으니까.

“대산 씨, 테슬라의 현재 주가는 어떻게 되고, 향후 주가는 어떻게 될 것 같나요?”

[하하, 뭔가 업무하는 것 같네요.]

“아, 불편하셨다면 미안해요.”

[아뇨. 전혀 그렇지 않아요. 대리님이 물어보셨는데 대답을 안 할 수 없죠. 현재는 주당 120달러 선을 유지하고 있는데, 적어도 1년 안에 500달러는 넘을 것 같아요.]

“오, 테슬라의 주가가 오른다는 근거라도 있나 보네요?”

[네. 있어요.]

“혹시 그게 자료 형태면 저한테도 보내 주실 수 있나요?”

[그럼요. 기다려 보세요. 지금 바로 보내 줄게요.]

전화를 끊고 잠시 기다리니, 정말로 장대산은 이메일로 자료를 보내왔다.

첨부파일을 열어 본 겨울은 깜짝 놀랐다.

자료의 우측 상단에 ‘Top Secret’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인쇄되어 있는, 테슬라와 미국 상무부가 공동 제작한 자료가 떡하니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장대산은 이런 극비문서를 보내올 때마다 취득 경로에 대해서는 아예 입을 닫았다.

어차피 물어봐도 대답해 주지 않을 것이기에 이번에도 물어볼 생각은 없었다.

극비문서를 꼼꼼히 읽은 겨울은 기다리고 있을 장대산에게 전화를 걸어서 고맙다는 말부터 전했다.

[언제는 입사 동기끼리는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라면서요.]

“세상에, 아직도 그 말을 기억하고 있어요?”

[그럼요. 저는 신입 사원 연수받던 때가 아직도 선명해요.]

“대산 씨가 보내준 자료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면 안 되겠죠?”

[제가 이 자료를 확보할 정도면, 정보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될 거예요.]

즉, 외부로 이미 유출되었다는 뜻이었다.

극소수의 사람에 한해서.

장대산과 통화를 끝낸 겨울은 은행 계좌에 접속해서 잔고를 확인했다.

1억 3,900만 원.

엄청난 금액이었다.

불과 1년도 안 된 시간에 번 돈이었다.

10만 달러의 포상금과 세 번의 성과급, 그리고 월급까지 착실하게 모아 둔 결과였다.

“비상금으로 1,000만 원 정도만 남겨 놓으면 되겠지, 뭐.”

겨울은 즉시 인터넷에 접속해서 증권 계좌 개설 방법을 검색했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네?”

제일 평판이 좋은 증권사의 어플을 노트북과 핸드폰에 다운로드해서 계좌를 개설했다.

그러고는 애초에 마음먹은 대로 은행 계좌에는 1,000만 원을 남겨 놓고 나머지 돈을 증권사 계좌에 이체시켜 놓았다.

준비를 모두 마치고 장대산이 언급한 테슬라를 검색해 보았다.

“이 돈이면… 테슬라를 몇 주나 매수할 수 있으려나?”

계산기를 두드려 보다가 겨울은 실망을 금치 못했다.

“쩝, 1억 2,000만 원으로 고작 900주도 매수할 수 없다니…….”

* * *

“부장님, 아프리카 법인 놈들 너무하는 거 아닙니까?”

공항에 자신들을 마중 나온 사람들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신대환 차장이 화를 터트렸다.

홍성훈 부장도 화가 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자신들이 권고사직을 거부했다 하더라도, 회사에서 이렇게 야비하게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만약에 자신들이 강하게 반발하면, 회사는 옳다구나 하고 나서서 해고처리를 할 것이었다.

지금까지 겪은 수모를 생각해서라도 절대로 그렇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때를 기다리며 이곳에서 숨죽이고 있다가 기회가 되면 잡아챌 생각으로 끓어오르는 화를 삭였다.

“신 차장, 회사의 의도가 무엇인지 모르고서 하는 소리야?”

“알기는 하지만…….”

홍성훈 부장이 짜증을 내자, 신대환 차장이 꼬리를 바닥까지 내렸다.

“공항에서 시간 낭비하지 말고, 시내로 들어가자고.”

“네, 부장님.”

두 사람은 시내로 이동하기 위해서 택시를 잡아 탔다.

“부장님, 저희가 버티고 있으면, 최 부회장님이 구제해 줄까요?”

그의 말에 홍성훈 부장은 작년 11월 말에 겪은 사건을 떠올렸다.

그때, 박철헌 사장의 비리에 연루된 혐의에 엮여 자기도 징계위원회에 회부당해서 권고사직 처분을 받았다.

더 이상 회사에 남아 있어 봐야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사표를 제출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상심에 빠져서 술집에서 폭음하고 있을 때, 뜻밖에도 최성진 부회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허겁지겁 그가 기다리고 있는 강남의 주점에 달려가 보니, 그 자리에는 박철헌 사장을 비롯한 고정 멤버들이 모여 있었다.

최성진 부회장은 언젠가는 곁으로 부를 테니까, 치욕스럽더라도 사표를 내지 말고 끝까지 버티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러면서 놀랍게도 그 자리에서 대한 그룹을 접수할 원대한 계획을 모두에게 늘어놓았다.

그때가 오면 중용해 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그 이후로 마음을 바꿔 온갖 비난을 감수하며 권고사직을 거부하고 지금껏 버티는 중이었다.

“신 차장, 권토중래라는 말 몰라? 언젠가는 우리한테 좋은 날이 올 거니까, 참고 기다려 보자고.”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적어도 일이 년은 버텨야겠지.”

“그때까지 이 척박한 아프리카에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가슴이 답답하네요.”

“이 나라는 아프리카에 위치하고 있다뿐이지, 유럽과 거의 비슷해. 생활하는 데 큰 문제는 없을 거야.”

“후우, 아프리카 법인이 우리들에게 어떤 업무를 맡길까요?”

“글쎄… 그건 나도 모르지.”

홍성훈 부장도 답답한지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 * *

월요일.

잠자리가 바뀌어서인지 아니면 앞날이 불안해서인지, 홍성훈 부장과 신대환 차장은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일어나자마자 식당에 내려가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올라온 두 사람은 오늘 할 일을 의논했다.

“부장님, 아프리카 법인은 출근시간이 8시라고 합니다. 이곳 지리도 익힐 겸 슬슬 걸어가 볼까요?”

“신 차장은 아프리카 법인 본부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어?”

“핸드폰으로 길 찾기 앱을 사용해 본 결과,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알았어.”

로비로 내려가기 위해서 엘리베이터를 탄 두 사람은, 먼저 타고 있던 사람이 이상하게 신경이 쓰였다.

외모와 차림새로 보아 한국 사람이 분명했다.

홍성훈 부장은 그 사람이 눈에 익었다.

어디서 봤을까 골똘히 생각하는 도중에 엘리베이터가 1층에 멈췄다.

1층 로비에서 오정수 과장을 기다리고 있던 겨울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사람을 보고 멈칫했다.

자기를 꼬셔서 아프리카 법인으로 발령 나도록 만든 홍성훈 부장.

동명이인일 거라 생각했지만, 그런 예상이 틀렸다는 듯 그가 이곳에 나타났다.

겨울이 아는 척 해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오정수 과장이 겨울을 발견하고 말을 걸어왔다.

“한 대리, 많이 기다렸나?”

“아닙니다. 방금 전에 내려왔습니다.”

“가지.”

“과장님,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온 한국 사람들 중에서 제가 한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인데?”

“저희 법인으로 전입한 홍성훈 부장입니다.”

“어쩐지… 낯이 익더라니.”

“법인으로 가는 것 같은데… 아는 척을 해야 할까요?”

“그렇게 하자고.”

오정수 과장과 겨울은 어슬렁거리며 따라오는 두 사람에게 다가가서 말을 건넸다.

“혹시 이번에 대한 그룹 아프리카 법인으로 전입해 온 홍성훈 부장님과 신대환 차장님 아니십니까?”

“맞습니다만…….”

홍성훈 부장이 의도적으로 끝말을 흐렸다.

즉, 신분을 밝히라는 얘기였다.

“저는 아프리카 법인 관리팀에서 인사를 담당하고 있는 오정수 과장이라고 합니다.”

“FTA라는 팀명을 가진 태스크포스에 근무하고 있는 한겨울 대리라고 합니다.”

한겨울 대리.

홍성훈 부장은 그 이름을 단숨에 기억해 냈다.

작년에 박철헌 사장의 지시를 받아서 아프리카로 쫓아 보낸 장본인이 자기였는데, 어떻게 잊어버릴 수 있겠는가.

그와 동시에 머리가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입사한 지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은 겨울이 어떻게 대리로 승진했다는 말인가.

잘못 들었을 수도 있었다.

그는 혹시나 싶어 한번 건드려 보기로 했다.

“오 과장은 나를 알고 있습니까?”

“몇 년 전에 일주일짜리 교육을 같이 받은 적이 있습니다.”

“아, 그렇군요. 한겨울 씨는 그동안 잘 있었나요?”

겨울은 은근히 기분이 상했다.

홍성훈 부장에게 약을 올려 주고 싶은 마음에 일부러 대리라는 직위를 크게 강조했는데, 막상 당사자는 듣지 못했다는 듯 직위를 생략해 버렸다.

일부러 그랬을 거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부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부장님께서 저를 아프리카로 보내 주신 덕에 영어와 프랑스어를 완벽하게 터득했고, 1월 1일에 대리로 승진할 수 있었습니다.”

“…한 대리, 지금 나를 놀리는 건가?”

겨울의 말투에 가시가 섞여 있다고 판단한 홍성훈 부장이 불편한 기운을 담아서 한마디 내뱉었다.

“그럴 리가요. 저는 그저 사실을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지금 나한테 덤비는 것 같은데?”

“후우, 그럼 저를 사지로 몰아넣은 부장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큰절이라도 올릴까요? 부장님은 제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바보멍청이로 보이십니까?”

“그, 그게…….”

예상외로 대차게 들이대는 겨울의 기세에 홍성훈 부장은 말문이 컥 막혔다.

그러든지 말든지, 겨울은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남을 울린 사람은 언젠가 피눈물을 흘리는 법입니다.”

이 말과 함께 매몰차게 등을 돌린 겨울이 유유히 호텔 밖으로 걸어 나갔다.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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