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 성공 신화-39화 (39/328)

[39화]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 (1)

시간은 흘러서 7월 초가 되었다.

콩고 지점은 6월 중순에 잠비아의 싱칼라 회장에게 핸드폰 10만 대와 중소형 TV 3,000대를 무사히 수출 완료했고, 지금은 말라리아와 콜레라 치료제를 수출하기 위한 절차에 집중하고 있었다.

겨울 또한 부족한 업무와 언어를 배우기 위해서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었고, 특히 프랑스어 구사 능력은 비 온 후의 죽순처럼 쑥쑥 늘고 있었다.

정명훈 지점장은 특별한 일이 없을 경우에는 매월 첫째 주 월요일에 관할하고 있는 나라의 책임자들을 콩고 지점으로 불러들여 회의를 진행했다.

오늘 역시 그 회의 날이었다.

상석에 앉은 정명훈 지점장은 회의 참석자들의 면면을 훑어본 뒤,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한겨울 부지점장, 상반기 우리 지점의 실적을 회의 참석자들에게 공유하도록 하세요.”

“네, 지점장님.”

자리에서 일어난 겨울이 가쿠타 과장에게 무언의 신호를 보내자, 벽에 걸려 있는 스크린에 ‘상반기 콩고 지점’ 실적이라는 장표가 비쳐졌다.

겨울은 헛기침을 통해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자신에게 모으고 평소보다 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우리 콩고 지점의 상반기 판매 목표는 전년 동기 대비 10% 신장한 8,000만 달러였습니다. 저희가 상반기에 달성한 판매 금액은 전년 대비 75% 신장한 1억 4,000만 달러입니다. 1억 4,000만 달러를 각 나라마다 분석해 보면…….”

정명훈 지점장은 발표하고 있는 겨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가 겨울을 만나서 며칠 겪어 보고 느낀 점은 실력은 쥐뿔도 없으면서 의욕은 충만한 신입 사원이라는 것이었다.

해서 평가절하하고 있었는데, 겨울은 이를 악물고 쉬지 않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말 그대로 그는 잠시도 쉬지 않았다.

그리고 보란 듯이 한 달 만에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스스로를 증명해 냈다.

게다가 겨울의 아이디어 덕분에 콩고 지점은 상반기에 전년 동기 대비 75%까지 신장하는 경이적인 실적을 보여 주었을 뿐만 아니라, 콩고 지점의 모든 직원들에게 보너스까지 안겨 주었다.

보너스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콩고 지점의 모든 직원들은 겨울을 부지점장으로 확실하게 대우하고 있었다.

당연히 자신도 연말에 이사로 승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상태고.

정명훈 지점장이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겨울의 브리핑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하반기에도 최선을 다해서 1등 콩고 지점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네, 알겠습니다!”

“이제 지점장님의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드르륵―

아주 공교로운 시간에 정명훈 지점장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발신자를 확인한 그는 직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회의실 밖으로 이동해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법인장님.”

[잠시 통화할 수 있나?]

“네, 말씀하십시오.”

[상반기에 콩고 지점에서 큰 도움을 준 덕에 우리 아프리카 법인이 성장률 1위를 달성했네.]

“축하드립니다, 법인장님.”

[하하하, 고마워.]

정명훈 지점장은 안정혁 법인장이 이 얘기를 하려고 전화하지 않았을 거라고 짐작했다.

조금 있으면 이보다 기분 좋은 소식을 알려 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가만히 기다리니 그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서 다시 들려왔다.

[정 지점장, 우리 아프리카 법인이 1등을 달성한 기념으로 모든 직원들에게 성과급 100%가 7월 말에 지급될 예정이네.]

“법인장님, 그게 정말입니까?”

[그래. 방금 전에 사장님께 직접 전화 받았어.]

“저희한테 이런 날이 오다니, 꿈만 같습니다.”

[하하하, 나도 마찬가지라네.]

“직원들한테 이 기쁜 소식을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말이야, 며칠 내로 신입 사원한테 사표를 받아.]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정명훈 지점장은 조용히 녹음 버튼을 누르고 안정혁 법인장과의 통화를 이어 나갔다.

“한겨울한테 사표를 받으라고요?”

[정 지점장이 상반기까지 지켜보고 사표를 받는다고 했잖아.]

“제가 지켜봤는데, 사표 받을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 능력도 없는 신입 사원을 데리고 있으려는 이유가 뭔가?]

‘아프리카 법인을 1등으로 만들어 준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습니까?’

이 말이 식도를 타고 목구멍 끝까지 올라왔으나,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정명훈 지점장은 주먹을 꽉 쥐었다.

“계속 능력이 없다 하시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 겁니까?”

[3류 지잡대 출신에 영어 실력까지 개판이면 뭐, 빤하지 않은가?]

“법인장님께서 사표를 받을 명분을 찾아 주시면 고려해 보겠습니다.”

[명분은 방금 얘기했잖아.]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만약에 부당하게 사표를 강요받았다고 투서라도 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십니까?”

[그 형편없는 놈이 그럴 능력이 된다고 생각하나? 그럴 깡은 있고?]

“어쨌거나 저는 한겨울한테 사표를 요구할 생각이 없습니다.”

[뭐? 지금 내 지시를 어기겠다는 거야!]

“네, 법인장님.”

[하, 자네, 올해 임원으로 승진하고 싶지 않은가 봐?]

“네. 이 일 때문이라면 승진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알았네. 나중에 후회하지나 말라고.]

뚝.

화를 참지 못했는지 안정혁 법인장이 전화를 거칠게 끊어 버렸다.

“법인장님,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혼잣말을 흘리면서 정명훈 지점장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 지점장, 오랜만이야.]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장님.”

[흠, 안부를 물으려고 전화한 것 같지는 않고… 할 말이 있는가?]

“네, 사장님. 방금 전 안정혁 법인장에게서 협박을 받았습니다.”

[…그 친구가 뭐라고 하던가?]

“한겨울한테 사표를 어떻게든 받아 내라고 했습니다.”

[음…….]

이진호 사장은 생각할 것이 있는지 끝말을 흐렸다.

정명훈 지점장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빤히 알았기에 말없이 기다려 주었다.

잠깐 기다리자, 조금 전보다 더 차분해진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서 들려왔다.

[정 지점장, 증거는 확보해 놓았나?]

“네. 통화 내용을 녹음해 놓았습니다.”

[알겠네. 음성 파일은 나한테 보내 주고, 한겨울 씨한테는 비밀로 하라고.]

“그렇게 하겠습니다.”

* * *

정명훈 지점장과 통화를 끝낸 이진호 사장은 두 달 전, 서동호 실장과의 일을 기억에 떠올렸다.

그는 뜬금없이 찾아와서 겨울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대한 그룹에 입사했고, 연수원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프리카로 발령나게 된 이유를 상세하게 알려 주었다.

그러면서 최성진 부회장이 겨울에게 해코지를 가할 거라면서 유심히 지켜보라고 지시했다.

그는 곧바로 한겨울과 제일 가까이 있는 정명훈 지점장에게 은밀하게 지시를 내려놓았다.

두 달 동안 잠잠하던 탓에 잠시 잊고 있었는데, 이제야 마수를 드러낸 모양이었다.

“안 법인장한테 한겨울을 퇴사시키는 역할을 맡겼다는 말이지?”

윙―

혼잣말을 내뱉는 사이, 정명훈 지점장이 보낸 음성파일이 수신되었다.

딸깍.

그는 먼저 음성 파일을 실행시켰다.

음성 파일을 끝까지 듣고 난 그는 서동호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면담을 요청했다.

[네, 이 사장님. 시급을 요하는 일입니까?]

“제가 알아서 처리할 수 있는 일이지만, 실장님도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서요.”

[음, 알겠습니다. 지금 제 방으로 오십시오.]

“네, 실장님.”

이진호 사장은 난처한 상황에 빠져 버렸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송훈석 회장과 정통으로 마주쳤기 때문이었다.

“회,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송훈석 회장은 이진호 사장이 흠칫 놀라는 모습을 보는 순간, 무언가 있음을 직감했다.

“이 사장, 지금 어디가시는 겁니까?”

정말 난감했다.

거짓말을 할 수도 없는 것이 회장 비서실이 위치한 35층 버튼을 이미 눌러 놓았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제는 직진밖에 없었다.

“그게, 서 실장을 만나러 가는 중입니다.”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차 한잔하러 오라고 했습니다.”

“흐음… 그럼 제 방에서 같이 마셔도 되겠네요?”

“…회장님, 꼭 그래야 합니까?”

“네. 반드시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이진호 사장은 눈을 감으며 속으로 한숨을 내뱉었다.

결국 송훈석 회장 집무실에 불려온 서동호 실장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몰라서 이진호 사장에게 무언의 신호를 보냈지만, 당사자는 눈을 질끈 감을 뿐이었다.

둘 사이에 주고받은 신호를 눈치챘는지, 송훈석 회장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서 실장, 이 사장은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만났으니까 오해하지 마세요.”

“아, 그랬군요.”

“자, 이제 이 사장을 왜 불렀는지 얘기해 보세요.”

“그게 아니라, 이 사장이 저한테 할 말이 있다고 해서 오라고 한 겁니다.”

“흠, 이 사장, 내가 알면 안 되는 일인가요?”

“회장님께서 일개 신입 사원의 일까지 일일이 아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송훈석 회장이 관심을 두고 지켜보는 신입 사원은 모두 셋이다.

자신의 외동딸인 송지유.

미국의 엄청난 양부모를 둔 장대산.

그리고 묘하게 이유 없이 신경이 쓰이는 한겨울.

이진호 사장이 해외 법인들을 담당하고 있으니까, 분명히 겨울과 관련된 일일 것이다.

“혹시 한겨울이 또 사고를 친 겁니까?”

“아닙니다. 착실하게 회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무슨 일이기에 그렇게 심각한 표정입니까?”

도저히 버틸 재간이 없다고 판단한 이진호 사장은 결국 항복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실은…….”

이진호 사장은 두 달 전에 서동호 실장과 나눈 대화 내용과 정명훈 지점장에게 지시한 내용, 또 조금 전에 통화한 내용까지 거짓 없이 밝혔다.

“…해서 정 지점장이 안정혁 법인장과 통화한 내용을 녹음해서 저한테 보내왔습니다.”

“어떤 내용인지 들어 보십시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낸 이진호 사장은 음성 파일 재생 버튼을 눌렀다.

딸깍.

[정 지점장이 상반기까지 지켜보고 사표를 받는다고 했잖아.]

[제가 지켜봤는데, 사표 받을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 능력도 없는 신입 사원을 데리고…….]

음성 파일 재생 도중에 송훈석 회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이동했다.

그러고는 창밖을 내다보며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서동호 실장은 그가 화를 삭이기 위해서 자리를 뜬 것임을 알았기에 음성 파일 재생을 멈추라고 이진호 사장한테 슬쩍 신호를 보냈다.

덕분에 집무실에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약간이나마 화를 삭였는지 송훈석 회장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앉으며 입을 열었다.

“이 사장, 안정혁 법인장에 대해서 평가해 보세요.”

“주어진 일에는 최선을 다하고, 나름대로 능력도 갖추고 있습니다.”

“그가 한겨울을 회사에서 내쫓으려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판단하기에는 누군가의 지시를 받아서 어쩔 수 없이 그러는 것 같습니다.”

“그 누군가가 최성진 부회장이라는 말인가요?”

당연히 그렇겠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 사장은 안 법인장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회장님의 처분에 맡기겠습니다.”

송훈석 회장이 고개를 돌려 서동호 실장에게 의견을 물었다.

서동호 실장은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밝혔다

“곪은 상처는 한 방에 터트려야 빨리 낫는 법입니다.”

“결정적인 순간이 오기까지 내버려 두라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회장님께서 이번 일을 문제 삼아서 안 법인장을 해임시켜 버리면, 최 부회장은 또 다른 방법으로 한겨울에게 해코지를 가할 겁니다. 결정적인 증거를 잡을 때까지 안 법인장에게 구두 경고하는 선에서 마무리를 지었으면 합니다.”

“그렇게 합시다. 그 역할은 이 사장이 대신 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이제 나가서 일 보세요.”

“네, 회장님.”

축객령을 받은 이진호 사장이 집무실 문을 열고 나가자, 송훈석 회장은 서동호 실장에게 물었다.

“서 실장, 최 부회장이 일개 사원인 한겨울에게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음, 저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한겨울로 인해서 최준하가 해고당해서일 것이고, 또 다른 이유는 뭔가?”

“최준하가 연수원에서 한겨울에게 한 행동에 모든 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송훈석 회장은 곰곰이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첫 번째 이유가 너무 눈에 띄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두 번째는 자신과도 관련이 있을 거 같았다.

최준하와 한겨울은 같이 면접을 보고 대한 그룹에 입사했다.

당연히 자신의 딸 송지유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송지유와 한겨울이 제법 친하게 지내는 것은 자신도 알 정도였다.

송지유에게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이던 최준하가 이를 질투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최준하가 질투심을 느낀 이면에는 최성진 부회장이 웅크리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는 자신과 사돈을 맺어서 대한 그룹을 차지할 욕심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지유에게 경영권을 넘겨주기로 결정한 이상, 그의 입장에선 거치적거리는 것들을 제거하는 것이 맞았다.

“서 실장, 최 부회장의 움직임을 면밀하게 관찰해야 할 거야.”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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