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 성공 신화-37화 (37/328)

[37화] TV를 팔아 보자

싱칼라 회장은 충분히 매력적인 제안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잠비아에서의 대한 전자 TV에 대한 인지도는 상당히 높은 편이었으니까.

하지만 정명훈 지점장이 제안한 20% DC는 살짝 아쉬운 감이 들었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그는 호주머니에 또 다른 무언가를 숨겨 놓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해 보기 위해서 싱칼라 회장은 살짝 욕심을 내보기로 했다.

“정 지점장님, 가격이 조금 비싼 것 같습니다.”

비즈니스 협상에서 시작할 때부터 가지고 있는 패를 공개하는 바보 멍청이는 없다.

정명훈 지점장도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두 개의 패를 숨겨 놓고 있는 중이었다.

이제 슬슬 두 번째 패를 꺼낼 때가 되었다.

“회장님, 20% DC도 제가 떼를 써서 받아 낸 가격입니다.”

“그건 알고 있습니다만, 우리가 남도 아닌데 조금만 신경 써 주십시오.”

“이것 참…….”

정명훈 지점장이 의도적으로 말끝을 흐렸다.

겨울은 맡은 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 재빨리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어… 지점장님, 그러지 마시고 이번엔 싱칼라 회장님 부탁 한 번 들어주시는 게…….”

“흠, 아무리 그래도… 후우… 알겠어. 한 번 시도는 해볼게.”

겨울의 안절부절못하는 행색에 정명훈 지점장이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러고는 TV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최홍주 이사에게 전화를 걸어 목소리를 높여 가며 실랑이를 벌였다.

거의 10분 정도 목소리를 높여 가며 실랑이를 벌인 끝에 거칠게 전화를 끊으며 씩씩댔다.

그러고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물을 벌컥벌컥 단숨에 들이마셨다.

“싱칼라 회장님, 죄송하지만 물 한 잔만 더 주실 수 있습니까?”

“그럼요.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잠시 후, 비서가 물을 가지고 오자, 정명훈 지점장은 또다시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사실 그가 물을 두 잔까지 마셔 가며 오버액션을 보인 이유는 뜻한 바가 있어서였다.

싱칼라 회장도 이 정도면 비록 한국어로 통화했지만, 상황이 어떤지 충분히 인식했을 거라고 판단하고 약간 상기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회장님, 도움을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정 지점장님, 본사 담당자가 뭐라고 합니까?”

“그게… 아무리 떼를 써도 20% 이상 DC는 불가능하답니다. 단, 필요한 모델을 최대한 빨리 알려 주면, 이달에 생산해서 공급해 주겠답니다.”

싱칼라 회장은 정명훈 사장이 엄살을 부리고 있음을 눈치챘다.

늘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던 그가 너무 감정을 드러내며 보란 듯이 통화를 했기 때문이다.

다만, 어디까지 할인율이 그가 원하는 데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때문에 우선 반대급부 먼저 제공해 보기로 결정했다.

“정 지점장님, 조금만 더 신경 써 주시면 안 됩니까?”

“그건 좀…….”

“25%를 DC 해 주시면, 제가 근사한 선물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마음 급한 싱칼라 회장이 정명훈 지점장의 말을 중간에서 끊으며 제안했다

반면에 정명훈 지점장은 이게 웬 떡이냐 싶었다.

흥정의 원리는 의외로 간단했다.

바이어는 최대한 싸게 제품을 구입하기를 원하고, 셀러는 최대한 비싸게 팔기를 원하는 것.

그런 밑밥을 깔고 점차 가지고 있는 패를 꺼내 놓으면서 절충점을 찾아가는 것이다.

정명훈 지점장은 자신들의 이익을 조금이라도 늘려 볼 생각에 25%선에서 가격 협상을 마무리 지을 생각이었다.

선물까지는 생각지도 못하고 있던 것이다.

최후의 패인 30% DC를 꺼내지 않게 되어 내심으로 기뻤지만, 정명훈 지점장은 전쟁터에서 닳고 닳은 지휘관이었다.

그는 일부러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사장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25%는 정말 어렵습니다.”

“정 지점장님…….”

겨울도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 싱칼라 회장과 함께 옆에서 부담스러운 눈길로 정명훈 지점장을 바라보았다.

“에라, 모르겠다. 제가 책임지고 25%로 해 드리겠습니다.”

“하하하! 고맙습니다.”

싱칼라 회장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큰 목소리로 웃었다.

“오늘 중으로 단종 예정인 TV 모델을 사장님께 이메일로 전송해 드리겠습니다. 이달에 생산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늦어도 다음 주 화요일까지는 모델명과 수량을 말라마 과장한테 알려 주셔야 합니다.”

“염려 마십시오.”

“계약은 모델과 수량이 확정되면 체결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피곤한 행색을 보이기 위해 눈을 감은 채 미간을 손가락으로 집는 정명훈 지점장.

하지만 기대감에 부풀어 있는 눈빛이 감은 눈 안에 숨겨져 있었다.

싱칼라 회장이 잠비아에서 막대한 부를 쌓은 이유는 다름 아니라 약 때문이었다.

잠비아는 워낙 가난한 나라라서 병원 문턱을 넘어보지 못한 국민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이 점에 착안해서 가정상비약을 수입해서 국민들에게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그야 말로 대박을 친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선물을 주지 않을까 하는 정명훈 지점장의 예상대로 싱칼라 회장의 머릿속에는 약 유통 사업과 관련한 한 아이디어가 있었다.

얼마 전에 임원 중 한 명이 약 유통 사업과 관련해서 기막힌 아이디어를 그에게 제안했다.

그 아이디어를 정명훈 지점이 실현해 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그는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내 들었다.

“정 지점장님, 제가 원하는 약을 공급해 주실 수 있습니까?”

정명훈 지점장은 싱칼라 회장의 물음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약을 제외하고 얼마든지 공급이 가능하다.

하지만 약을 수출하기 위해서는 심각한 문제도 있었다.

의약품은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공산품과는 달리 수입 절차가 상당히 까다롭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수입 허가를 받는 데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 이상 걸리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절대로 약을 수출할 수가 없다.

그가 이런 문제점을 열거하자, 싱칼라 회장은 별 고민 없이 응수했다.

“수입 허가는 제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원하시는 약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면 공급해 드리겠습니다.”

“우리나라는 모기와 물로 인한 질병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말라리아와 콜레라 치료제를 공급해 주십시오.”

“음, 두 질병에 대한 치료제는 회장님의 회사에서도 수입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정 지점장님, 제가 두 종류의 치료제를 굳이 한국에서 수입하려는 이유를 알고 있습니까?”

대충 감이 잡혔지만, 신나게 얘기하고 있는 싱칼라 회장을 위해서라도 모른 척 시치미를 뗄 때였다.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한국에서 제조한 제품에 대해서 상당히 좋은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점을 마케팅 활동에 적극 적용하면, 충분히 승산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종의 프리미엄 마케팅 전략이라고 보면 되겠네요?”

“네, 그렇습니다.”

“알겠습니다. 두 질병에 대한 치료제는 제가 책임지고 공급해 드리겠습니다.”

“정 지점장님만 믿고 있겠습니다.”

* * *

구두 계약을 하고 현지 사무실로 돌아온 정명훈 지점장은 최홍주 이사와 통화를 시작했다.

“단종 예정 모델은 최대한 빨리 나한테 보내 줘.”

[벌써 보내 놨어.]

“역시 일처리 하나만큼은 깔끔하네.”

[그나저나 할인율은 몇 %로 확정됐어?]

굳이 애기해 줄 필요는 없었다.

“출하 가격 대비 30% DC.”

[에이, 뻥치지 말고.]

“진짜야.”

[안 속아. 25% DC지?]

“어.”

[역시. 그럼 약속대로 아프리카 법인에 40% DC 해서 공급하면 되지?]

“그래 주면 더욱 고맙고.”

[수고했어. 월요일에 통화하자고.]

“그래. 늦었다. 이제 자라.”

최홍주 이사와 통화를 끝낸 정명훈 지점장은 세세한 의논을 위해 직원들과 회의를 시작했다.

“말라마 과장은 싱칼라 회장과 TV 모델과 수량을 확정해.”

“네, 알겠습니다.”

그때, 겨울이 발언권 요청했다.

“말라마 과장님, 화물기에 여유 공간은 충분하지만, 무게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무게가 많이 나가는 대형 TV보다 중소형 TV 위주로 제안하는 것이 저희한테 조금이나마 이익일 겁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정명훈 지점장은 갑자기 궁금증이 일었다.

“음, 한 부지점장. 대형 TV와 중소형 TV를 수출했을 때 우리의 실적이 어느 정도 차이가 날까?”

“제가 이곳에 오면서 대충 계산해 봤는데, 적어도 50만 달러 정도는 차이 날 것 같습니다.”

“그렇게나 많이?”

“네. 이후 싱칼라 회장을 어떻게 구워삶느냐에 따라서 조금 더 늘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의 말에 정명훈 지점장이 고개를 돌려 말라마 과장에게 말을 걸었다.

“말라마 과장, 부지점장 얘기 들었지?”

“네, 들었습니다.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계약서 작성은 말라마 과장이 할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잠시 대화가 중단된 틈을 이용해서 가쿠타 과장이 발언권을 요청했다.

“지점장님, 말라리아와 콜레라 치료제는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대한제약에서 공급해 달라고 하면 좋아할 걸? 약은 당장 급하지 않으니까, 천천히 알아보는 것으로 하자고.”

“네, 지점장님.”

“이제 다른 얘기를 해볼까?”

이 말과 함께 정명훈 지점장은 가방에서 9,000달러가 들어 있는 봉투를 꺼냈다.

순간, 말라마 과장과 가쿠타 과장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겉으로는 아닌 척했지만, 그들도 보너스를 받았으면 하는 기대를 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두 사람은 한 부지점장이 싱칼라 회장한테 보너스 조건을 제안한 이유를 알고 있나?”

가쿠타 과장은 지난번에 겨울과 대화를 나눌 때 지금 월급 가지고 생활하기 어렵다고 푸념을 늘어놓은 적이 있었기에 설마 그것 때문인가 싶었다.

하지만 확실하지도 않았고, 안다 쳐도 지금은 모르는 척을 할 때였다.

“모르겠습니다.”

“한 부지점장이 여러분한테 인센티브를 지급해 주기 위해서 이 조건을 삽입했어. 이제부터 내가 인센티브를 지급해 줄 테니, 한 명씩 와서 받아 가도록.”

“네, 지점장님.”

“이번 계약을 성사시키는 데 말라마 과장이 제일 많이 고생했으니까, 2,000달러를 받도록 해.”

말라마 과장은 대한 그룹 아프리카 법인에 입사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지금까지 인센티브를 받아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처음으로 월급에 네 배에 해당하는 인센티브를 받게 된 것이다.

인센티브를 받도록 만들어 준 겨울에게 진심으로 고마웠지만, 정명훈 지점장의 면전이라서 편안하게 감사 인사를 전할 수는 없었다.

“지점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한 부지점장한테 별도로 인사하고.”

“그렇게 하겠습니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운전기사에게는 500달러를 건네주도록.”

“네, 지점장님.”

정명훈 지점장은 가쿠타 과장에게 1,500달러를 지급했고, 나머지 5,000달러는 겨울에게 봉투째 건네주었다.

당연히 겨울은 이의를 제기했다.

“지점장님, 죄송합니다만 저는 이 돈을 받을 수 없습니다.”

“보너스를 제안한 사람이 누구인지 잊었어?”

“지점장님께서 노력해 주지 않았다면, 저희는 결코 이렇게 많은 보너스를 받을 수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부지점장은 내 지시를 따르지 않겠다는 뜻인가?”

“죄, 죄송합니다.”

정명훈 지점장이 정색하자, 겨울이 곧바로 사과했다.

“아무튼 이미 건네줬으니까 부지점장이 이 돈을 구워 먹든, 삶아 먹든 관여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순간, 겨울은 그의 말에서 빈틈을 하나 찾아냈다.

그는 생각난 즉시 실행에 옮겼다.

정명훈 지점장에게 받은 돈의 절반을 봉투에 넣어서 그에게 되돌려 준 것이다.

“…부지점장, 지금 뭐 하는 짓인가?”

“지점장님께서 제가 이 돈의 사용처에 대해 관여하지 않겠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이것참, 내가 내 발등을 찍었네.”

정명훈 지점장이 자책했지만, 기쁘다는 듯 입가에는 미소가 서려 있었다.

“흠흠… 지점장님, 킨샤사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지금 바로 공항으로 출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뻘쭘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 겨울이 재빨리 화제 전환을 시도했다.

“그래.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

흙수저 성공 신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