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
회귀빨로 지존 헌터
- 6권 10화
데몬은 변화된 태욱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뭐지? 너무나 익숙한 이 기분은?'
분명 어디선가 느껴지던 익숙한 기운이었다.
그때 머릿속에 스치는 것이 있었다.
'츄르가. 녀석의 모습이 저 인간 따위에게 보여지는 거지?'
정확한 사정은 알 수 없었으나 츄르가의 모습이 인간에게서 비춰지자 데몬의 눈은 붉게 달아올랐다.
수하를 죽여 버린 것만으로도 모자라 지금 자신을 농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네 녀석이 날 능멸해?"
데몬의 분노가 삽시간에 공중으로 퍼져 나갔다.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가아아암히 네 녀석이!"
항상 침착하던 데몬은 일생일대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활활 타오르는 그의 채찍이 마구잡이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휘릭.
쾅.
쾅.
쾅.
쾅.
연속된 채찍의 움직임은 마치 뱀의 머리라도 되는 양 은비와 태욱의 급소를 향해 정확하게 찔러 들어갔다.
"흐흡."
갑자기 분위기가 변하면서 공격해 들어오는 움직임을 막아 내기란 무척이나 까다로웠다.
손목, 무릎, 머리 등 전투를 하면서 피해를 본다면 어디든 치명상이 될 수 있는 부분을 향해 날아오는 불타오르는 채찍은 지나간 모든 부위에 흔적을 남겼다.
욱신욱신.
은비는 가까스로 무기를 들어 막아 냈지만, 욱신거리는 통증까지는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청룡언월도의 긴 거리감이 채찍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오히려 거리감에서 밀리는 바람에 그녀는 더욱 힘겨운 전투를 이끌어 가고 있었다.
단박에 데몬의 공격에 재물이 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하나의 채찍으로 태욱과 은비 둘을 상대하고 있는 것이었다.
앞도적인 거리의 유리함을 바탕으로 전투를 이끌어 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태욱도 은비와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고통은 따로 느껴지지 않지만, 신체 반응속도가 점점 늦어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버서커 모드로 인한 통증 감화 현상으로 순간적인 대처가 가능했지만, 그것뿐이었다.
어느 하나 데몬을 앞서 나가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였다.
퍼퍼퍼퍼펑.
연속된 폭발음이 울리더니 시야가 뿌옇게 흐려진 것이었다.
'설마? 지원?'
멀리서 화력지원을 할 수 있는 유일한 헌터였다.
데몬과 나머지 두 사람의 사이에 희뿌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빨리, 후퇴 준비해."
태욱과 은비가 전투를 벌이는 모습을 본 다른 헌터들은 재빨리 발을 빼기 시작했다.
전투를 시작할 때에는 언제라도 스스로가 자폭을 할 것처럼 뛰어들 자신이 있다고 이야기했던 장쯔진이 제일 먼저 발을 뺐고, 그가 뒤로 후퇴하자, 다른 모든 헌터들이 썰물 빠지듯 우루루 빠져나간 것이었다.
'처음부터 말이라도 안 했으면.......'
오히려 그들이 아무 말하지 않고 태욱의 말에 후퇴를 준비했다면 이런 헛웃음도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기세등등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꽁무니 빠지게 도망간 그들의 뒷모습에 왠지 모르게 쓴물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그들의 행동이 잘못됐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태욱이 직접 본인의 입으로 후퇴를 종용했기 때문이었다.
"다들 정신 차려!"
태욱의 목소리에 모두의 눈빛이 번뜩였다.
더 이상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데몬은 더욱 거센 공격을 이어 가기 시작했다.
"기생충 같은 녀석들이!"
가장 먼저 목표물이 된 사람은 바로 태욱이었다.
데몬은 그에게 눈길이 가장 많이 이동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자신의 수하의 능력을 그대로 사용하는 녀석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감히, 네 녀석이 감히!'
그의 분노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버서커 모드로 전향한 태욱의 모습에 자꾸 츄르가의 모습이 연상됐기 때문이었다.
사실 조금만 침착하면 태욱의 모습과 츄르가의 모습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오롯이 공격에만 눈을 돌리는 것이 츄르가의 전투 패턴이었다.
방어를 등한시한 공격으로 상대방을 찍어 누르는 것이 츄르가의 특징.
하지만, 태욱의 모습은 그저 버서커 모드를 발동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과 비슷했지만, 전투 방향은 전혀 달랐다.
오히려, 침착하게 모든 상황을 지켜보면서 순간적으로 강한 파괴력을 뿜어내는 것이었다.
'이대로는 데몬의 공격을 버텨 낼 수 없어.'
태욱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거세지는 그의 공격 패턴에 해결책을 전혀 찾지 못하고 있었다.
적어도 한순간이라도 몸이 멈춰질 것 같은 당황스러운 상황을 만들어야 했다.
'지금 사용해야 하나?'
숨겨진 무기가 많으면 많을수록 마왕과의 전투를 준비할 수 있었다.
지금의 상황은 아니었다.
당장을 해결하지 못하고 죽어 버리는 것보다는 가진 모든 것을 보여 주고 새로운 해결책을 찾는 것이 더 미래 지향적인 것이었다.
"겁화의 채찍!"
태욱은 결국 고민을 하다가 데몬의 고유 기술인 겁화의 채찍을 꺼냈다.
* * *
데몬은 저항을 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고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들과 전투를 하면서 상대하기 힘들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고작 이런 녀석들 때문에.'
만약 전투를 하면서 강함을 조금이라도 느꼈으면 이렇게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나약했다.
제대로 된 반격은커녕 자신의 공격을 받아 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타격을 입는 것처럼 보였다.
'츄르가, 로콘, 다이치.'
금방이라도 용맹한 모습을 하고서는 자신의 앞에 나설 것 같았던 녀석들의 형상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네놈들의 복수는 정확하게 해 주마.'
적어도 마왕님이 원하는 녀석 하나는 산 채로 데려가야 했다.
그러니, 나머지 인간들에게 그 피해를 고스란히 돌려줄 것이다.
피의 축제를 열어 먼저 길을 떠난 3명의 수하들의 혼(魂)을 달래 줄 것이라고 마음먹었다.
그때였다.
인간 녀석이 하나의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데몬은 그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아, 아니 어떻게?"
자신이 지금 사용하고 있는 겁화의 채찍.
그것이 녀석의 손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투툭.
미약하게나마 침착함에 연결돼 있던 데몬의 이지가 끊어져 나가는 소리였다.
"이 녀석!"
데몬은 순식간에 앞으로 튕겨져 나갔다.
먼 거리에서 채찍을 이용해 상대방을 무릎 꿇게 만들던 그의 공격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오직 파멸.
그것을 위해 움직이는 전투 기계와 같은 모습을 보였다.
순간의 일격을 막은 것은 바로 금강철인이었다.
데몬의 순간적인 공격을 읽고 정확하게 방어하기 위해 사이로 들어갔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 그렇다면.'
동작을 읽어 내고 정확한 핀 포인트에서 공격을 흘려 낸다면 전혀 타격이 없을 것이란 확신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방어벽은 무색했다.
"크윽."
절로 신음 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완벽하게 막아 낼 수 있을 것이란 금강철인의 생각과는 달리 온몸으로 그 피해가 고스란히 전달됐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마치 커다란 망치로 머리를 때려 맞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충격이 온몸을 통과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버텨 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양팔에는 붉은 줄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다.
겁화의 채찍의 효과였다.
휘두름의 끝에서 살점이 뜯겨 나가는 채찍의 고유 특성과는 달리, 중간에서도 피해를 입는다는 사실을 몸소 깨닫게 됐다.
태욱은 자신의 앞에서 공격을 막아선 금강철인의 모습에 떨리는 마음을 가까스로 진정시켰다.
'늦을 뻔했다.'
정확하게 반응하지 못했다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금강철인은 데몬의 움직임을 보고 순간적으로 반응했지만, 태욱은 그렇지 못했다.
광속에서의 전투의 경험이 여기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태욱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기로 생각했다.
순간적인 스피드로는 데몬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렇다면?
약간의 방심을 만들어 내 그 시간에 도주할 계획을 세우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메스 텔레포트.'
그의 머릿속에 그려진 마법이었다.
'하지만, 어디서도 이 마법을 확인한 적이 없다.'
분명 과거의 마왕과의 전투 전에 살아남은 대마법사들이 종종 메스 텔레포트를 사용했다.
그때는 이미 인간들이 만들어 낸 과학의 산물들이 모두 부서졌기에 마땅한 이동 수단이 없었다.
먼 대륙 간의 이동에서는 메스 텔레포트가 필요했고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우대 효과를 받을 수 있었다.
'지금 내게는 그러한 스킬이 존재하지 않는다.'
한 번이라도 그 마법을 봤다면 여기 있는 인원을 이동시키는 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만약 스킬을 가지고 있다면 메스 텔레포트를 통해 이곳저곳을 이동하고 다녔을 것이다.
절로 숙련도가 올라가, 5명의 인원을 이동시키는 것에 어려움이 없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과학의 산물은 그대로 남아 있고 마법을 통해 이동을 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생각들이 넓게 퍼져 있어서 따로 마법사를 찾지 않았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렇다고 해서 아쉬움만 토로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저리 가!"
데몬은 자신의 공격이 막히자, 앞을 가리고 있는 금강철인을 다른 손으로 밀어 던져 버렸다.
촤르르르륵.
금강철인은 그대로 데몬의 힘의 이동 방향에 따라 쭈욱 하고 밀렸다.
"안...... 돼......."
어떻게든 뒤지지 않고 데몬의 힘에 맞서려고 했던 금강철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태욱과 데몬은 바로 앞에 마주섰다.
"네 녀석의 최후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공격이었다.
마치 슬로우 모션이라도 걸린 듯이 데몬의 동작 하나하나가 태욱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보인다. 보여.'
미지의 영역으로만 보였던 곳이 이제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었다.
스스로의 힘의 한계가 정확하게 모른 채, 삶을 살아간다.
평소에 자신이 느끼고 움직이던 것이 한계라고 생각한다.
더 높은 재능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이 필요한 환경이 없다면 자연스럽게 퇴화하는 것이었다.
태욱은 끝없이 성장해 왔다.
분명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만나 더욱 큰 힘을 필요로 했다.
가진 스텟은 은비와, 금강철인에 비해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지만, 그것을 지금까지 모두 활용해 내지 못했던 것이다.
더욱 큰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머리가 느낀 이후 몸의 한계까지 조금씩 사용량을 넓혀 왔던 것이다.
그 노력의 대가가 지금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었다.
'몸을 비켜 세운다.'
공격을 막아 내는 것은 비효율적이었다.
데몬의 공격에 맞서면 몸에 그만한 타격이 중첩돼 쌓인다.
피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피해 내는 것이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눈으로는 데몬이 휘두른 채찍의 줄을 쫒았다.
머리를 스치듯 종으로 떨어지는 채찍의 움직임이 눈에 선하게 보였다.
조금씩 태욱도 보이지 않는 미지의 영역에 눈을 떠 가고 있는 셈이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미래는 여전히 밝지 않았다.
피해 낸다고 해서 모든 상황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시간은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
계속해서 시간이 지날수록 태욱의 일행에게는 더욱 분리한 상황이 펼쳐질 뿐이었다.
태욱은 뭔가 이 상황을 타개해 낼 무언가를 떠올려야 했다.
'뭔가 분위기를 반전시킬 만한 상황을 만들어야 하는데.'
머릿속으로는 어떻게든 해결책을 만들려고 노력했지만, 손속에는 전혀 여유가 없었다.
휘몰아치는 공격을 가까스로 피해 내고 있을 뿐이었다.
후우웅.
날카로운 뱀의 머리 형상을 한 채찍이 다시 한 번 찔러 들어왔다.
'이건 피할 수 없어.'
어디로도 피해 낼 수 있는 공간이 보이지 않았다.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태욱의 행동을 보고 데몬이 한 곳으로 몰이사냥을 하듯 그의 회피 동선을 예측해 연속 공격을 자행한 것이었다.
막다른 곳에 몰려 버린 태욱은 겁화의 채찍을 위로 치켜세웠다.
피할 수 없다면 막아 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두 개의 겁화의 채찍이 서로 엉키듯 뒤섞였다.
휘리리리릭.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듯이 더욱 강한 불꽃을 내뿜으려 기세를 드러냈다.
'이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