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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빨로 지존 헌터-130화 (130/146)

# 130

회귀빨로 지존 헌터

- 6권 9화

간편하게 퇴각을 계획한다는 태욱의 말은 중국을 포기하겠다는 말과 동일시됐다.

국가를 위한 애국심.

그리고 삶의 터전을 이대로 버려 버리기에는 그의 신념이 허락하지 않는 것이었다.

"많은 희생이 비롯돼 안정을 되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노력해 보겠지만, 지금의 상대는 그것을 할 수 없습니다. 커다란 헤일 앞에서 어떠한 유조선이라도 버텨 낼 수 없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만약 자신이 몸을 뺄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퇴각을 했을 것이다.

데몬을 대면하고 느낀 그대로였다.

냉철한 머리는 퇴각을 종용했고 상대를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하나.

시간을 벌며 많은 희생자를 발생시키지 않는 것.

그것이 태욱에게 내려진 사명이나 다름없었다.

"일단은 제가 시간을 벌겠습니다. 퇴각 준비를 마치면 곧바로 퇴각해 주십시오."

태욱은 장쯔진과의 대화를 마치고 데몬의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그런 그의 뒤를 따르는 이가 있었다.

바로 은비.

커다란 도끼를 잃어버린 그녀는 주변에서 대체할 무기를 찾고 있었다.

최대한 손에 맞는 무기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만족할 만한 무기를 찾기란 힘이 들었다.

다행히 커다란 무기를 손에 다 쥐어 보고 만져 보며 창고를 뒤진 결과 하나의 무기를 손에 쥘 수 있었다.

청룡언월도(靑龍偃月刀).

푸른 용이 하늘을 승천하듯 감아 올라간 커다란 반달 모양의 도(刀).

기다란 사정거리가 지금까지 사용하던 은비의 양날 도끼와는 달랐지만, 당장 양손을 놓고 전투를 치룰 수는 없었다.

별다른 방법 없이 손에 쥔 무기가 아직까지는 어색하지만, 태욱을 혼자서 전장에 보낼 수 없기에 자리를 잡은 것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무기는 오히려 짐이 될 뿐이야."

태욱의 담담한 말에 은비는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누가 익숙하지 않은 무기야? 난 그저 도끼가 더 마음에 들었을 뿐, 이걸 사용하지 못하는 건 아니야."

후웅.

후웅.

허공에 휘두르는 은비의 모습이 꽤나 능숙해 보였다.

"이래도 익숙하지 않은 무기야?"

"아무리 그래도 저 녀석은 상대하기 꽤나 까다로울 거야."

두 사람이 투닥거리며 데몬 앞에서 이야기하자, 데몬은 심기가 상한 듯 일갈을 터뜨렸다.

"어디서 여유를 부리는 것이냐!"

데몬의 목소리에는 강력한 피어가 담겨져 있었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단숨에 모든 시선은 데몬에게 집중했다.

'뭐지?'

은비는 당황했다.

처음 느끼는 기분이었다.

정신은 또렷했지만, 신체 어느 곳이라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

몬스터 피어는 신체 능력을 일정하게 떨어뜨리는 역할을 한다.

자연스럽게 전투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 기본이었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상태였다.

아예 몸이 얼음장처럼 굳어져 전혀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게 진정한 피어라는 것인가?'

은비는 눈앞에 찾아온 미지의 두려움에 놀라고 있을 당시 태욱은 재빠르게 몸을 수습했다.

'공포에 짓눌린 게 아니다.'

주변의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마치 중력이 더욱 강력해진 기분이군.'

실제 기분뿐만이 아니었다.

주변의 돌멩이들이 바닥을 파고 들어가는 것은 기본이고 잔잔한 흔들림 또한 일어나고 있었다.

데몬의 고유 스킬.

중압(重壓).

전투를 시작하면 자신의 활동 반경의 중력을 뒤바꿔 버린다.

커다란 중력의 힘으로 짓누르는 그의 고유 스킬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일시적인 마비 현상을 만들어 냈다.

신체에 있는 혈액이 제대로 돌지 않아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시간이 흐르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올 것이지만, 데몬은 그것을 기다리지 않았다.

"다크 볼!"

검은 구체가 태욱과 은비를 향해 날아왔다.

칠흑과도 같은 어둠의 구체가 날아오는 것을 보고 은비는 재빠르게 움직이려고 했지만, 아직 신체의 움직임이 돌아오지 않았다.

태욱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구체를 피하고 은비의 앞에 나섰다.

"아쿠아 실드!"

"실드!"

"파이어 윌!"

"어스 윌!"

"방어 태세!"

"금강불괴!"

자신이 터득한 방어 스킬을 연속해서 펼쳐 냈다.

얼마나 큰 파괴력을 낼 수 있는지를 확인하지 못한 상태이기에 될 수 있는 모든 방어 기술을 쏟아부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자신과 계약돼 있는 소환수들도 그의 앞에 나란히 서 있었다.

소환력과 정령력을 이용한 방어 수단이 펼쳐져 나온 것이다.

화르르르르.

콰르르릉.

챙.

채채채챙.

쩌저저적.

각 속성의 방어벽이 펼쳐지고 마침내 데몬이 쏘아 낸 검은 구체에 닿았다.

쩌적.

구체의 속력이 빠른 것이 아니었다.

마치 무른 두부를 손가락으로 누르듯 방어벽이 하나씩 깨져 나가는 것이었다.

"안 돼!"

쩌쩌적.

마치 종잇장 찢겨 나가듯 찢어진 방어벽들은 모두 단번에 그 목적을 잃고 바닥으로 내팽개쳐졌다.

'버텨 낸다.'

오직 태욱의 머릿속에는 검은 구체를 버텨 내는 것 말고는 다른 생각이 없었다.

깨어져 들어오는 검은 구체가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제발, 제발.'

하나.

두 개.

세 개.

방어막을 뚫고 들어오는 숫자가 늘어날수록 태욱의 동공은 더욱 커졌다.

'제발!'

마침내 마지막 실드가 남았을 때 태욱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쨍그랑.

믿고 있던 마지막 실드가 그대로 깨어져 나간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자신에게 타격은 전혀 오지 않았다.

"휴우."

옆에서 깊은 숨 소리가 들려왔다.

태욱은 단번에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눈치챘다.

바로 은비였다.

처음에는 회복되지 않은 신체 능력 덕분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허수아비처럼 자신에게 날아오는 검은 구체를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신체 능력이 돌아옴과 동시에 태욱을 둘러메고 단번에 자리를 이탈했다.

꽤나 시간을 벌어 준 태욱의 방어막이 자신을 살릴 수 있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기에 그녀는 태욱의 등을 두드렸다.

"좋아, 이제 2차전 시작인가?"

온몸을 움직이며 상태를 파악한 은비는 매섭게 데몬을 노려보고 있었다.

"우리가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서면 왠지 자존심이 많이 상한단 말이지."

은비는 자존심 핑계를 대면서 데몬 앞에 당당히 맞서겠다는 의지를 보냈지만 태욱은 괜한 도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기회를 최대한 살려 낸다.'

하지만, 그가 말린다고 하지 않을 은비가 아니기에 태욱은 최대한 기회를 엿보기로 마음먹었다.

'어떻게 해서든 데몬의 능력을 그대로 복사해 낸다.'

태욱이 할 수 있는 최대.

성장을 하기 위해 어떤 것이라도 해야 된다.

가장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눈앞에 있는데 그것을 놓칠 리 만무했다.

"그럼 한 방이라도 먹여 볼까?"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지원이 은비를 향해 말했다.

"그럼요. 저희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에요?"

"그래, 우리가 함께 있다."

영리와 금강철인이 다가와 나란히 데몬의 앞에 섰다.

5인 파티.

그들이 지금까지 성장한 이유.

마왕군을 저지하기 위함임을 잊지 않았다.

은비는 동료들을 보고 외쳤다.

"적어도 표정이라도 찌푸리게 만들어 줘야 하는 거 아니겠어?"

엄청난 포부를 농담처럼 내뱉는 은비였다.

하지만, 그녀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간다!"

데몬은 앞으로 튀어 나가며 커다란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는 은비의 행동을 비웃듯 피해 냈다.

단 한 동작.

한 걸음 뒤로 물러선 것이다.

정확하게 은비가 들어오는 타이밍을 읽어 내고 더 깊숙하게 이동을 하지 않도록 그녀의 움직임을 먼저 보고 나중에 움직였다.

수준이 다른 차원의 움직임이었다.

고작 한 동작으로 피할 수 있었던 것은 깊이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뭐지?'

태욱은 스킬을 사용하지 않고 피해 낸 데몬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렇게 수준이 높았다고?'

그의 기억 속에 있는 데몬은 이렇게까지 수준이 높지 않았다.

상대를 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데몬의 스킬 때문이었다.

그가 스킬을 이용하면 여기 있는 모두가 한 번에 덤벼든다고 하더라도 그를 제압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기에 후퇴를 종용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스킬도 사용하지 않았고 단순히 은비의 공격에 대한 본질을 꿰뚫어 본 것이었다.

"언제까지 피할 수 있나 보자."

은비는 연속해서 공격을 가져갔다.

모든 공격을 피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합!"

상단.

하단.

측면.

찌르기.

연속된 동작이 물 흐르듯 이어졌지만, 어느 것 하나 데몬에게 닿지 않았다.

빠르게 추가 공격을 이어갔지만 점점 숨이 차오르는 은비 말고는 변하는 상황은 없었다.

"가소롭군. 이 정도 실력이었나?"

데몬의 목소리가 마치 벌레를 내려다보는 것과 같았다.

자신의 힘의 몇 퍼센트를 사용해야 될까 고민을 하고 있었다.

수하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녀석들이다.

죽어 버린 수하들에 대한 예를 갖추기 위해 상당량의 힘을 사용하려고 했지만, 상대가 너무 나약했다.

어쩌면, 녀석들이 다 같이 뭉쳐서 싸웠다면 이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이런 녀석들에게 내 힘을 모두 보여 준다는 것 자체가 사치나 다름없군.'

온 힘을 다 보여 주는 것이 죽어 버린 수하에 대한 보답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상대의 실력을 확인하는 순간 그조차도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먼저 간 녀석들의 마지막 분풀이라고 해 두지.'

데몬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스킬 중 하나를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은 바로 '광염의 채찍'이었다.

광대한 마나양을 바탕으로 자신이 주로 사용하는 무기인 채찍에 겁화의 불을 감싸는 스킬이었다.

불꽃이 일렁이는 모습을 보고는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도록 만드는 부과적인 효과도 있는 데몬의 주된 스킬이었다.

"먼저 떠나간 나의 수하들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너희에게 특별하게 본좌의 스킬을 보여 주마. 겁화의 채찍."

태욱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데몬의 스킬에 흉내 내기를 시전했다.

"흉내 내기!"

태욱이 기다리던 타이밍이었다.

데몬에게서 무엇이라도 받아 가려고 타이밍을 재고 있었지만, 이렇게 기회가 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스킬이었다.'

패시브 스킬과 데몬이 사용하는 헬파이어 정도만 가지고 복귀를 한다고 해도 꽤나 수확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태욱이었다.

친히 그가 겁화의 채찍을 사용해 주는 탓에 원하지 않던 커다란 보석을 주운 것과 같았다.

물론 억만금의 값어치를 하는 물건을 주웠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살아서 돌아가지 못한다면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돌아갈 수 있을까?'

태욱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도주로는 어느 곳 하나 밝지가 않았다.

어둠을 손으로 더듬더듬 헤집으며 걸어가는 것과 같았다.

고민에 대한 정답은 없었다.

몸으로 부딪혀 몸소 체험하는 방법밖에 남지 않았다.

'모든 힘을 쏟아붓는다면?'

태욱은 고개를 저었다.

모든 힘을 다한다고 해도 확신을 할 수가 없었다.

"버서커 모드!"

고민을 해서 답이 나온다면 신중하게 상황을 지켜보겠지만, 지금은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자신에게 기회가 찾아오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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