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
회귀빨로 지존 헌터
- 6권 11화
태욱은 지금 자신이 보는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막아 내기 위해 치켜세운 채찍이 데몬의 채찍과 서로 얽히며 더욱 강한 힘을 내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본래 겁화의 채찍은 불을 강한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며 그것을 밖으로 표출해 낸다.
주변에 강한 불꽃이 있을수록 그 힘이 더욱 증대되는 것이었다.
이것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던 태욱은 뒷걸음치다 쥐를 잡은 격이 됐다.
'이거라면?'
태욱의 눈이 번뜩 하고 뜨였다.
상대의 공격을 막아 내는 것만으로도 타격을 입어 제대로 된 대응도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겁화의 채찍 두 개가 맞부딪히며 데몬의 공격을 효율적으로 막아 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아낸 지금부터는 소극적으로 전투를 할 필요가 전혀 없어진 것이다.
이제부터는 데몬에게 타격을 주지는 못하지만, 그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아 낼 수 있는 방법이 생겨난 것이었다.
'그 방법을 사용하면 되겠군.'
태욱은 지금 당장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바로 주변을 차갑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강한 화염으로써 그 힘을 키워 나갈 수 있다면, 냉기는 겁화의 채찍에 적이 될 수 있었다.
물론 어쭙잖은 냉기 마법으로는 그의 힘을 짓누르기 어려울 것이다.
당연한 것이다.
강한 화염은 냉기가 자신의 내부로 파고들기 전에 모두 날려 버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서로 비슷한 힘이 맞부딪혔을 때, 서로의 힘이 상충되며 0으로 한없이 수렴하게 되는 상태를 찾아야 했다.
그것이 아니라도 냉기의 힘이 더욱 강력해야 가능한 처사였다.
'내가 가진 가장 강한 냉기 계열은?'
해결책의 실마리를 찾았다.
하지만, 방법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실제로 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는다면 이론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것을 증명해 내기 위해서라면 그 이론을 실체로 옮기고 이곳을 탈출하는 것이 증명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태욱은 일전에 엘리자베스와의 전투가 떠올랐다.
블리자드.
'지독한 냉기. 그것이라면 이 화염을 이겨 낼 수 있을까?'
만약 이겨 내지 못해도 상관이 없었다.
일시적으로 약해지는 데몬의 공격을 피하고 단숨에 이곳을 탈출해 나갈 수만 있다면 상관없었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데몬의 공격을 비등하게 버텨 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태욱뿐이었다.
자신이 블리자드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 뒷선으로 물러난다면?
누군가 한 명이 데몬을 상대해야 했다.
'젠장.'
결국 또 하나의 벽에 막혀 버렸다.
태욱은 자신의 아랫입술을 강하게 물었다.
답답한 상황에서 튀어나오는 버릇이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금강철인이 데몬에게 튕겨져 나가듯 앞으로 쏘아졌다.
"하합!"
기합을 내지르며 앞으로 튀어나간 그의 모습은 불꽃이 사그라들기 전 강하게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금강철인!'
마음속으로 그의 이름을 울부짖었지만, 이미 입술은 블리자드 마법을 영창 하고 있었다.
"냉기의 감옥에 갇혀 영원히 그 고통 속에 살지니 모든 열기는 그 내부로 사라질 것이며 힘이 있는 자들은 모두 얼음 속으로 갇혀 버려라!"
기다란 마법 영창이 끝나자 하늘은 마치 어둠이 찾아오듯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강하게 내리쬐는 햇빛을 숨기듯 먹구름이 그 자리를 섭렵하고 강한 냉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마법 영창을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 수없이 머리를 굴리는 태욱의 의사를 정확하게 알아챈 것인지, 다른 동료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는 것인지 금강철인의 마음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당장의 상황을 탈출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모두 대피해!"
폭풍우의 한가운데로 금강철인과 데몬이 그대로 빨려 들어갔다.
"안 돼!"
"금강철인!"
"아저씨!"
지원과 은비 그리고 영리가 그의 이름을 울부짖었지만, 눈보라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태욱의 탈출 신호와 동시에 이곳을 탈출해야 됐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아니라면 후일을 도모할 수 없었다.
* * *
"젠장!"
데몬과의 전투를 가까스로 벗어난 태욱은 입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금강철인이 눈보라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선했지만,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무력감.
어떤 몬스터 앞에서도 이러한 것을 느낄 수 없었다.
오직 마왕뿐이라고만 생각했지만, 그 기억을 또다시 떠올리게 만들어 준 데몬이 싫었다.
"......."
"......."
아무도 입을 열지 않고 침묵의 분위기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동료를 잃은 슬픔.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것은 감정의 기억이 옅게 흩어지기 위한 것이지 온전하게 잊을 수는 없었다.
가장 먼저 입을 뗀 사람은 바로 은비였다.
"앞으로 우리가 대비해야 될 대상이 또 하나 늘었네."
지독한 현실 직시였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 앞으로를 대비해야 돼.'
태욱도 그녀의 말에 동감했다.
데몬과의 전투에서 그가 느낀 것은 무력감이었다.
흉내 내기 스킬을 통해 모든 스킬을 통달할 수 있기에 약간의 자만심을 가진 것도 사실이었다.
어떤 위기가 찾아와도 쉽게 탈출을 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이번 기회에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
"아무리 그래도."
태욱이 은비의 말에 동조하자 지원이 입을 열었다.
연속된 슬픔이 그녀에게 찾아왔다.
드워프들의 멸종과도 같은 상황.
동료를 잃은 슬픔.
모든 것이 그녀를 감성적이게 만들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의 희생을 잊자는 이야기가 아니야. 왜 그가 이런 선택을 했는지를 이해해야지."
금강철인.
그가 어떤 마음으로 데몬에게 달려들었는지 속마음을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스스로가 희생해 다른 동료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자신이 원하는 바를 모두 이뤘기 때문에?
다행스럽게도 그의 희생에 따른 결과가 나쁘지 않았다.
전장을 탈출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으니까.
하지만, 금강철인을 같이 데려가지 못한 것은 마음에 짐이 됐다.
더욱 강해진다.
앞으로 어떤 위기가 찾아와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힘을 기른다.
그것이 남겨진 이들에게 최후의 과제가 됐다.
태욱은 저 멀리 사라져 가는 태양을 바라봤다.
"태양은 사라지는 게 아니야. 잠깐 그 모습을 감출 뿐, 언제라도 다시 우리에게 빛을 비춰 주지, 금강철인 그는 사라진 것이 아니야. 언제라도 우리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다면 그는 사라진 것이 아니야."
태욱은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아 담담하게 내뱉었다.
지원과 영리도 태욱의 감정을 눈치챘는지, 두 사람은 더 이상 태욱의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 * *
"어떻게 된 거야? 그들이 사라지다니?"
한성에 소속돼 있는 종합병원에 비상이 걸렸다.
극비리에 조용하게 치료를 받고 있던 두 드워프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전달받은 직후였다.
"죄송합니다. 그들이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외부의 소행인가?"
"확인해 본 결과 강제로 움직인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병원장은 발을 동동 구르며 병원장실 내부를 계속해서 돌아다녔다.
가만히 있을 수 없을 정도의 불안함이었다.
만약 그들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되면 한성에서 어떤 이야기가 흘러나올지 뻔했다.
병원 내부의 보안을 상급으로 올리라는 사전 지시가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보안을 철저히 하기 위해 보안 요원도 추가했다.
하지만, 드워프들이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린 것이다.
"혹시 그들이 살고 있는 거주지로 가지 않았을까요?"
비서는 드워프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곳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라는 말을 던졌다.
아무런 이유 없이 이곳에서 사라질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오? 지금 여기에 보안 요원들이 몇이나 있었는데? 그들의 눈을 모두 숨기고?"
"죄, 죄송합니다."
병원장이 버럭 하고 소리를 내지르자 비서는 고개를 숙였다.
"하아, 어디로 갔단 말인가?"
한탄스런 그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 * *
병원장이 그토록 찾고 있던 드워프들은 현재 미국의 요원들과 함께 이동 중에 있었다.
자리 한편에 누워 있는 드워프 둘은 깊은 잠을 자고 있었다.
"뒤처리는 깔끔하게 한 거지?"
"네, 물론입니다."
하이든은 이곳에 자신이 혼자 파견된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목적지에 도착을 하니, 자신 이외에 다른 인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특수 임무에서 빛을 발하는 인원들이 이곳에 모두 모여 있었다.
'이렇게까지 중요한 임무인 건가? 고작 드워프를 데려가는 것이?'
하이든이 착각을 하는 것이 있었다.
드워프가 국가적 경쟁률을 높이는 데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이번 임무는 아주 특수 임무였다.
모든 흔적을 지우고 미국으로 걸리지 않게 들어가는 것을 계획하고 있었다.
하이든은 이곳에서 고작 막내 역할에 불과한 것이었다.
주위에 있는 요원들의 경력은 모두가 하이든을 능가했다.
오히려 그들이 보기에 하이든은 유치원생이나 다름이 없었다.
경력이든 지식이든 모두가 차원이 달랐다.
하나같이 모두가 높은 등급에 랭크돼 있는 스페셜리스트였다.
움직이는 동선에 낭비라는 것이 하나도 묻어나지 않았다.
최대한 빠르게 그리고 은밀하게 움직이는 그들은 마침내 드워프들을 병원 밖으로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최대한 은밀하게 이동한다."
"네, 알겠습니다."
첫 번째로 이동하는 것은 바로 미니 벤이었다.
가족과 레저용으로 자주 이용하는 이 자동차는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 차량이었다.
쉽게 눈에 띄지 않고 어디로 이동을 하든 의심을 받지 않는 자동차였다.
최대한 은밀하게 임무를 수행해야 되기에 누구 하나 특출 나는 인물이 없었다.
오히려 하이든만이 푸른 눈을 가진 외국인의 모습을 가지고 있어 눈에 띌 뿐이었다.
"운전은 내가 하지."
동양인으로 보이는 50대 남성.
코드네임 제로라고 불리는 그의 이름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모두가 제로라고 부를 뿐이었다.
이동거리는 짧게 여러 번 반복됐다.
차량에서 차량으로.
두 개의 차량을 몇 번이고 오가며 흔적을 지운 요원들은 마침내 부산에 도착했다.
커다란 배편이 드나드는 물자 항구가 아닌, 작은 고기잡이 어선들이 밖으로 나서는 조그마한 항구.
은밀하게 움직이기에는 이곳보다 좋은 곳이 없었다.
"모두 이동한다."
제로의 명령에 맞춰 요원들은 자로 잰 듯이 움직였다.
누구 하나 행동에 오차가 없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동하는 요원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마치 부분 반복이라도 하는 듯 보였다.
'이제 이곳을 빠져나가기만 하면 된다.'
요원들 중 누구라도 긴장을 하는 이들이 없었다.
자연스럽고 당연하듯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에 하이든은 깜짝 놀랐다.
'감정이 없는 사람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