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
회귀빨로 지존 헌터
- 3권 12화
지금까지 아무런 욕심도 부리지 않았던 그가 간곡하게 부탁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선물을 쥐어 주려고 노력했던 어제는 콧방귀도 안 뀌더니, 오늘 이렇게 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을 보니 스틸도 호기심이 튀어나왔다.
"어디다 사용하려고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그게, 어제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인공지능에 사용하려고 합니다."
태욱의 말에 스틸은 머리를 망치로 맞은 것 같았다.
'실패작을 그렇게 사용한다고?'
어디에 사용할지는 너무나 뻔했다.
인공지능이라고 하는 녀석에 심장 부위에 사용할 것이다.
항상 많은 양의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정도 크기라면 꽤나 많은 양의 에너지가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불규칙하게 에너지가 뿜어지는데?"
"그건 괜찮습니다."
태욱이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하자, 오히려 당황하는 것은 드워프 스틸이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그 커다란 단점은 커버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결을 하려는 것인가에 대한 호기심이 피어올랐다.
"진짜, 이걸로 괜찮다고? 우리가 완벽하게 만든 다른 무구를 줄 테니 다른 걸 선택해도 무방하네."
"아닙니다. 저는 이걸로 충분합니다."
태욱은 아티팩트를 손에 쥐고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 * *
"자 받아."
지원의 손에 놓인 것은 아침부터 스틸과 크리트 태욱 3명이서 같이 돌아다니며 받아 낸 아티팩트였다.
"그걸 심장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면 돼."
차분하게 태욱에게 설명을 듣고 나니, 지원은 깜짝 놀랐다.
과분출되는 에너지를 모아서 일정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자 들쑥날쑥하면서 튀어나오는 에너지가 문제였다.
마법석으로 하려면 더 커다란 크기를 지녀야 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크기가 증가했다.
그에 반면, 지금 손에 놓인 아티팩트의 크기는 같은 힘을 낼 수 있는 마법석에 비하면 1/4크기밖에 되지 않는다.
작아진 크기만큼 인공지능의 크기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이거 때문에 여길 오자고 한 거였여?"
"아니, 그냥 드워프들과 인연을 만들고 싶어서 왔는데, 벌써부터 개발이 돼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어."
"다른 드워프들은 여기에 쓰일 다른 광물을 찾아보자고 하던데."
막힌 곳을 한 번에 뚫어 줄 수 있는 태욱의 조언이었다.
이제 결과는 본인이 만들어 내야 한다.
"저, 드워프 여러분, 잠시만 제가 연구할 수 있는 공간을 내어 주시면 안 될까요?"
지원은 드워프들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이곳에 있는 다른 드워프들은 모두 그녀가 만드는 물건이 완성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거부할 이유 따위는 없었지만, 그래도 드워프 마을의 규칙이라는 것이 있을 것이다.
먼저 그들의 의견을 구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한 지원의 생각은 정확하게 틈을 파고들었다.
"이렇게 먼저 이야기를 해 주니, 우리로서는 고맙네. 오늘 회의 시 안건에 올려 볼 테니 잠시만 기다리겠나?"
곁에서 듣고 있는 스틸이 지원의 등을 토닥이며 대답했다.
드워프 회의는 모두가 투표를 하는 직접민주주의로 이뤄져 있었다.
행사를 하거나, 일정에 큰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는 대표가 정하지만, 마을 내 외부인이 들어오는 커다란 안건에 대해서는 회의를 통해 이뤄지게 돼 있었다.
"그럼, 저 아가씨가 우리 마을에서 산다는 건가?"
"그렇지, 일단 개발을 하려면 여기 있어야 된다고 하니까."
"나는 찬성, 반대 누구 있어?"
"반대는 없는 것 같은데?"
그들의 회의는 서로를 물어뜯고 깎아내리기 위한 대화가 아니었다.
마을에 궁극적인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이냐 아니냐가 중요했지, 각자의 손해와 이익은 중요하지 않았다.
많은 드워프는 그녀가 만들어 낼 인공지능이라는 것에 꽤나 관심이 있었다.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곁에서 완성될 때까지 모든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좋다고 모든 드워프가 생각했다.
결국 회의 끝에 지원은 여기 드워프 마을에 잠시 동안 남기로 결정했다.
"미안, 같이 가지 못해서."
같이 온 동료들과 돌아가지 못해서 아쉬운 표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지원이었다.
"아니에요, 언니. 꼭 해야 되는 거잖아요."
영리는 그런 지원을 꽈악 하고 껴안았다.
그녀의 성공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를 것 같은 영리는 재빨리 몸을 돌렸다.
"얼마면 될 것 같아?"
그녀와 떨어져 있을 시간을 계산하는 은비.
"빨리 돌아오시오."
어색한 듯 인사를 건네는 금강철인.
"난 널 믿는다."
마지막으로 태욱까지 각자의 스타일에 맞춰서 인사를 건넸다.
지원도 갑자기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인공지능 개발에 힘을 써야 되는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태욱의 옆에서 그 정보를 듣는 것이 실마리를 찾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다.
그 실마리를 찾았고 성공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더 이상 동료들이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 내 힘으로 하는 수밖에 없어.'
아무도 도움을 줄 수 없었고, 보이지 않는 미래를 스스로 해쳐 나가야 했다.
"그럼 일단 우리 아버지만 잘 부탁할게."
"그래."
"한 달 내로 돌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테니까, 그때까지만 기다려 줘."
지원의 눈에는 의지가 보였다.
"늦게 돌아오면 우리 모두가 멀리 도망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빨리 돌아와."
"그래요 언니, 우리가 기다릴게요."
금세 눈물을 그치고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는 영리였다.
Chapter 3
지원을 드워프 마을에 두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태욱과 일행은 도심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게 얼마 만에 돌아가는 건지 모르겠어요."
영리의 감탄 어린 음성은 마치, 파병에서 돌아가는 군인의 느낌을 강하게 풍겼다.
"우리가 1, 2년씩 떠나왔던 것도 아니고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았어."
"그래도요, 오랜만에 돌아가는 기분인걸요?"
모두 영리와 같은 마음이었지만, 겉으로는 표현하고 있지 않았다.
디지털 시대는 체감 시간이 굉장히 빨랐다.
뭐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확인이 가능했고, 부족한 것이 있더라도 주위를 살피면 구할 수 있는 것이 많았다.
하지만, 드워프 마을로 들어가는 순간 그 모든 것을 포기했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그래도 이제 조금만 가면 금방 도착하니까 왠지 가슴이 두근거리는걸요?"
영리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달랠 겨를이 없어서 계속해서 떠들었다.
분위기 메이커가 기쁜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다들 미소를 잃지 않았다.
하지만, 그 미소는 오래가지 않았다.
모두가 심각한 표정으로 굳어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자신의 눈으로 보고 있는 광경이 믿기지 않았다.
고층 건물이 멋진 위용을 펼치고 있어야 할 도심지에는 곳곳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마치, 막 시가지 전투를 마친 듯한 모습이 보였다.
은비는 과거의 자신이 바라보던 대구의 모습과 비슷한 향기를 느꼈다.
'너무나 익숙해.'
마치, 전혀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일어나는 몬스터 습격과 같은 모습이었다.
여기저기 사람들의 흔적에서는 다급함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몬스터 습격."
낮게 읊조리는 그녀의 음성에 태욱은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한 충격을 느꼈다.
'뭐지?'
회귀 전에 몬스터 습격이 이뤄지기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 있었다.
지금까지는 조금씩 변화되는 것이 있어도 큰 사건의 변화는 없었다.
예상 가능한 수치 정도로 변하고 있을 뿐, 이렇게 단번에 변화된 세상을 직접 보기는 처음이었다.
'어떻게 된 거지?'
변화된 것에 적응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어쩌면, 자신이 가장 공을 들여온 곳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있었다.
'한성 중공업.'
태욱의 계획에서 가장 주축이 되는 기둥과 같은 곳이었다.
지원 그리고 한성 중공업이 태욱의 계획의 시초나 다름없었다.
'그곳은 어떻게 됐지?'
만반의 준비를 끝내 놓고 드워프 마을로 향한 것이 아니었다.
"일단, 한성 중공업으로 향한다."
정신을 추스르고 판단할 시간이 없었다.
만약 한성 중공업이 잘못된다면?
처음부터 차근차근 세운 계획이 모두 틀어져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바로 지원의 가족을 다치게 만드는 일이었다.
'그것만은 절대로 있을 수 없어.'
순식간에 굳어지며 빠르게 움직이는 태욱을 아무도 제재하지 않았다.
그의 동료들은 굳어진 표정만큼 심각한 일은 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 *
-치이이이익.
"여러분 긴급 속보입니다."
커다란 전광판에서 갑자기 뉴스 앵커의 얼굴이 튀어나왔다.
서울 도심지 한가운데 있는 커다란 광고판에 익숙한 얼굴이 튀어나오자, 사람들은 모두 관심을 가졌다.
"갑작스런 몬스터의 습격이 이뤄졌습니다."
시민들은 첫 멘트를 듣고 나서 다시 제 할 일을 하듯 발걸음을 옮겼다.
"에이, 또 무슨 영화 광고인가?"
"뭐, 이런 식으로 낚시한 게 한두 번인가?"
대수롭지 않게 행동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들에게 있어서 몬스터 습격은 대서특필을 해서 알릴 정도의 사건이 아니었다.
그만큼 몬스터는 일상생활에 아주 깊게 들어와 있었다.
광고판에서 이뤄지는 상황들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바라볼 정도로 몬스터들에 대한 이미지는 거부감이 아니라 익숙함일 뿐이었다.
영화, 광고, 드라마.
곳곳에서 소비되는 형태의 이미지는 모두 몬스터였다.
그러나 몬스터를 실제로 볼 수 있는 확률을 가진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관리의 부재.
시간이 흐르면서 낙후된 시설에서 튀어나오는 몬스터들이 고작이었다.
오히려 몬스터를 보면 복권을 사야 될 정도로 운수가 터졌다고 말을 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몬스터를 보지 않은 사람에게도 몬스터는 무척이나 익숙한 것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발걸음을 옮기던 시민들이 제자리에 멈춰 섰다.
항상 화면 안에만 있던 몬스터들의 모습을 두 눈으로 직접 맞닥뜨린 것이다.
"이, 이게 뭐야?"
"어?"
날것 그대로의 몬스터.
주위를 둘러봐도 헌터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국가가 관리하는 안전 요원도 존재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호기심에서 시작되는 그들의 감정은 조금씩 변화되기 시작했다.
처음 몬스터를 봤다는 감정에서 시작되는 호기심.
그리고 이어지는 설마? 당연하게 안전장치는 구축됐겠지, 라는 의심.
의심이 거듭되면서 나타나는 불안.
아무런 해결책도 나오지 않고, 실제로 광고판에서 알려지는 특급 소식이라는 것이 실제라는 사실.
처음에는 의문이 들었지만, 곧 그것은 공포가 돼 사람들의 뇌리를 사로잡았다.
"꺄아아아악!"
"살려 줘!"
비명을 내지르는 그들의 눈에는 공포감이 실려 있었다.
실제 맞닥뜨리는 몬스터의 시선에 절로 몸이 굳어지는 것은 기본이고, 심지어는 소리를 내지르지 못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이제 몬스터는 스크린 속에 나오는 이미지 속 괴물이 아니라, 실제 목숨을 위협하는 야수나 다름없었다.
몬스터는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