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회귀빨로 지존 헌터
- 1권 11화
일부러 사람들이 많은 대로변에 있는 카페를 선정한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지은은 상당히 남들을 경계했다.
쉽게 사람을 믿을 수 없었고, 소극적인 면이 겹치면서 더욱 밖으로 나오기 무척이나 힘든 헌터였다.
"반갑습니다, 강태욱입니다."
태욱은 쭈뼛쭈뼛거리는 지은을 향해 손을 뻗었다.
"히이힉."
소스라치게 놀라며 팔을 뒤로 내빼는 지은이었다.
그녀는 갑작스레 다가온 태욱의 손에 깜짝 놀란 것이다.
머쓱해진 태욱은 손을 들어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상당히 낯을 많이 가리는 타입인가?'
지은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슬쩍 스캔했다.
깔끔하게 정돈된 머리.
불안한 기색이 역력할 때 보이는 손톱 끝 뜯기.
한곳에 고정하지 못하는 눈동자.
떨리는 목소리.
그리고 잔뜩 치켜세운 긴장.
이 모든 신체 메시지가 알려주는 것이 있었다.
불안.
"저, 저기...... 저, 정말인가요?"
떨리는 목소리는 지은이 느끼는 불안감을 충분히 전달했다.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거죠?"
태욱은 약간 상체를 뒤로 넘긴 채 그녀의 질문에 되물었다.
공포감이 있는 상대에게 굳이 접근을 하여 이야기할 필요는 없었다.
적정한 거리가 만들어 주는 심적 안정감을 느끼는 것이 상대와 대화하기 편리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킬을 보여 주면 이, 일억을 주신다는 게......."
목소리 끝에 흔들리는 떨림이 큰 용기를 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태욱은 약간의 시간을 두고 대답을 했다.
"......물론입니다...... 스킬만 정확하다면......."
중저음의 묵직하고 신뢰감 주는 그의 목소리에 지은은 조금씩 진정되고 있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의 사이에서 서서히 긴장이 풀어지고 있었다.
태욱이 이곳에 온 이유는 단 하나였다.
바로 스킬을 직접 배우기 위해서다.
<헌터넷>
[공간 가방을 만들 수 있는 분께 요청 드립니다.
스킬을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면 사례해 드리겠습니다.
사례금 : 1억.]
태욱이 헌터넷에 올려놓은 글을 보고 연락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본래 공간 가방은 공간계 스킬을 가진 사람과 마법 부여라는 특수 스킬을 가진 사람이 합작하여 만드는 아티팩트와 다를 바가 없었다.
물론 공간계 스킬의 종류도 많지만, 아공간이라는 스킬이 있어야지만 공간 가방을 만들 수 있었다.
그렇기에 태욱은 헌터넷에 마구잡이로 글을 올린 것이다.
흔하게 사기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렇게 나와서 거래를 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완벽한 믿음을 가지고 나왔다면 불안감도 없었을 것이고 당당한 모습을 보였을 텐데, 지금 지은은 전혀 그런 모습이 없었다.
'아마, 사냥을 잘 나서지 않는 쪽이군.'
지은과 같은 부류는 태욱이 알고 있었다.
레벨은 낮은데 새로운 사람도 두렵다.
사냥 역시 목숨을 걸고 하기 때문에 전투 자체가 싫어져 버린 사람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럼 시작할까요?"
태욱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 있자, 오히려 먼저 나서는 것은 지은이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듯, 태욱은 그저 지은의 행동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먼저, 아공간부터 보여 드릴게요."
그러더니 아무런 능력도 없는 가방에 스킬을 펼쳐 어둡고 깊은 공간을 만들어 냈다.
"아공간!"
"공간 왜곡!"
그리고 이어진 스킬에 태욱의 눈동자는 번뜩였다.
'공간 왜곡?'
전혀 생각지도 않던 일이 발생한 것이다.
태욱이 과거로 돌아와서 보는 첫 A등급 스킬이었다.
"초월적인 흉내 내기"
깜짝 놀라 절로 목소리가 커져 조절을 하지 못했지만, 지은은 태욱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잔뜩 긴장을 한 채 자신의 스킬을 영창하는 데만 집중을 하고 있느라 주변 사람들의 행동이나 음성은 전혀 귀담아 듣지 않고 있었다.
"이제 됐나요?"
스킬을 모두 보여 주고는 지은은 태욱에게 물었다.
자신이 할 일은 모두 끝났다.
그러므로 대가를 지불해 달라.
두 가지 의미가 담긴 "됐나요?"였다.
'스킬은?'
곁눈질로 스킬을 확인하니 스킬 창에 당당히 이름이 올려져 있었다.
이제는 그녀를 잡아 둘 이유조차 남지 않았다.
"네, 확인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태욱은 그 자리에서 폰뱅킹을 통해 바로 이체를 했다.
1억 원.
받는 이 : 김지은.
핸드폰 화면에 쓰여 있는 문구를 보더니, 금방 자신의 폰을 꺼내 드는 지은이었다.
이것저것 만지더니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이며 툭 하고 던지더니 후다닥 카페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녀의 행동을 본 태욱은 이해를 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꽤나 용기 낸 행동이었겠지."
그녀가 왜 그렇게 바쁘게 뛰어나갔는지 어림짐작하고 있었다.
다시 돈을 돌려 달라고 할까 봐 두려워서.
지은의 사정이 어떠한지는 정확하게 모르는 태욱이었지만 궁금하지도, 알 필요도 없었다.
어찌 되었든 태욱의 입장에서는 지출을 줄인 것이나 다름없었다.
본래 그가 생각했던 금액은 7억.
단순히 스킬을 보여 달라고 하더라도 의심하는 사람은 많았다.
쉽게 구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7억이라는 거금을 준비해 둔 것이다.
'이제는 혼자 사냥을 해도 충분하겠어.'
예상치 못했던 돈이 생긴 태욱은 바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네, 한성중공업 주식 좀 더 사려고요. 매수금은 6억입니다."
단 한 통의 통화로 태욱은 남는 여유 자금을 모두 투자했다.
어차피 조금이라도 빠르게 주식을 산다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생각에 따른 결과였다.
* * *
"파티 사냥 구합니다."
"힐러 한 분만 오시면 바로 사냥 가능합니다."
"레벨 20 딜러입니다. 팀 구합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헌터넷에서 팀을 구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직접 밖으로 나와 팀을 꾸리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이곳은 바로 레벨 20대의 헌터들이 가장 많이 찾는 던전.
흔하게 이 던전을 이렇게 부른다.
곤충 던전 혹은 버그 던전.
던전 내부로 들어가면 커다란 몬스터들이 즐비했다.
인간의 두 배 내지는 세 배 크기를 하고 있는 몬스터들이었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만큼 이들은 무리 지어 행동하지 않기 때문에, 상당히 사냥을 하기 용이한 던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사냥하기 좋은 던전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너무 많은 글들이 헌터넷에 올라오고 있으니, 이렇게 직접 현장에 나와 팀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던전 앞에 있는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만남의 광장이나 다름없었다.
"오늘 사냥 팀 구아나. 오신 분들 계신가요?"
번뜩이는 갑옷을 입은 채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있었다.
보통 팀의 장은 탱커나 정확한 오더를 내리는 힐러로 나뉜다.
탱커들은 자신의 능력 이상의 몬스터를 사냥하지 않기 때문에 안전제일주의 팀에서 팀장을 많이 맡고는 한다.
"구아나 팀에서 서포터를 맞게 된 김필입니다."
"저는 팀장 최성찬입니다. 보시다시피 탱커를 맡고 있습니다."
"저는 힐러 진욱입니다."
"딜러 차화현입니다."
각자 소개를 한 이후 팀장은 오늘 사냥에 대해 브리핑을 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주로 맨티스를 사냥할 예정입니다. 다들 숙지하셨을 거라고 알고 있지만,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맨티스는 앞발의 공격이 상당히 공격적입니다."
팀장이 이야기하는 몬스터는 바로 맨이터 맨티스였다.
사마귀와 같은 외형을 가지고 있지만 그 크기가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사마귀와는 전혀 달랐다.
최소 100배.
인간의 크기를 넘어서니, 단 일격에도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때였다.
흙먼지를 피우며 한 명이 던전 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것이었다.
"아, 안 돼! 위험해!"
사람들은 다급하게 남성을 세우기 위해 손을 뻗어 수신호를 하지만, 남성은 아무렇지 않게 던전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에이, 쯧쯧."
"또 시체 하나 치우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혀끝을 차며 괜한 목숨 하나 잃었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태욱은 던전 앞에 도착을 하자, 빨리 사냥할 욕심밖에 생기지 않았다.
A등급의 스킬.
그것도 공간 확장의 스킬을 익혔으니, 이제 사냥을 하면서 늦춰지는 일은 없었다.
"질주!"
태욱의 눈에 던전 입구가 보이자마자 망설일 시간도 없이 스킬을 사용했다.
실제로 눈앞에 보이자 사냥하고 싶은 욕구가 무럭무럭 피어오른 것이다.
단숨에 달려 나간 그의 신형은 이내 던전 게이트 안으로 사라졌다.
던전의 구성은 3단계로 이뤄져 있었다.
커다란 나무가 즐비해 있는 초반부를 시작으로, 중반에는 동굴로, 그리고 마지막은 아직 사람들이 확인해 보지 않은 지역이다.
미개척 지역.
앞에 어떤 몬스터들이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초입부에 약한 몬스터가 나오더라도 후반부에는 강한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경우도 있었고, 초입부에 즐비해 있는 강한 몬스터에 비해 후반부에 약한 몬스터가 출현한 경우도 많았다.
국가적 정책으로 인해, 던전은 중반 이후를 탐색하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그것도 다 나중에는 없어지겠지만.'
안전한 바운더리 안에서 성장을 한다면 분명 제약이 생긴다.
사람들이 기른 늑대가 야생의 늑대보다 사냥 실력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끝없이 생존을 해야 되는 야생의 늑대는 사냥 실력은 물론, 신체적 구성이 생존을 위한 방향으로 바뀐다.
하지만 인간의 손에 길러진 늑대는 전혀 다르다.
굳이 먹이를 구하지 않아도 되고, 살아가는 환경도 척박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사냥 실력은 퇴화하고 날카로운 감 역시 잃어버린다.
마찬가지로 인간들 역시 스스로 울타리 안으로 넘어와 실력을 퇴화시키는 것이다.
태욱은 질주를 멈추고 멀리서 보이는 한 형체를 바라보았다.
기다란 목을 가지고 있고, 그것보다 더 긴 갈퀴를 가지고 있는 몬스터.
평소 낫과 같은 날카로운 갈퀴를 접고 돌아다니다가 사냥에 나서면, 순간적으로 기다란 사정거리를 갖는 무시무시한 맨이터 맨티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질주를 통해 쉬지 않고 달려온 태욱이 만난 첫 번째 몬스터였다.
"오늘의 사냥 스타트는 너구나!"
태욱은 달리는 힘을 서서히 줄이는 대신 오히려 더욱 가속력을 높였다.
순식간에 맨티스의 곁을 지나쳤다.
마치 자신의 속도를 감당하지 못한 채 마구잡이로 튀어 나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한 번이면 이해를 하겠지만 두 번, 세 번 연속해서 맨티스의 곁을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쉴 새 없이 지속되는 질주에 맨티스는 흙먼지를 가득 뒤집어썼다.
"끼유웅."
먼지가 차분하게 내려앉을 때쯤, 맨티스의 정면에 태욱이 모습을 드러냈다.
"반갑다!"
지금까지는 계속해서 맨티스의 주위를 빠르게 맴돌 뿐이었지만, 지금은 무슨 일인지 제자리에 서서 태연하게 손까지 흔들며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태욱의 도발에 맨티스가 앞발을 길게 뻗으려고 움직였다.
콰득.
콰드드득.
그런데 맨티스는 제자리에서 전혀 움직이지 못한 채, 어딘가 결박되어 있는 모습을 보였다.
기다란 다리 아래쪽으로 가려진 몸통 부위에서 진물이 배어 나오더니, 금세 전신에 얇은 생채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주 얇은 선과 같은 미세한 상처를 타고 흐르는 액체가 바닥으로 미처 떨어지기 전, 맨티스가 태욱을 향해 거칠게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