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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동생의 감정을 따라갈 수가 없다-14화 (1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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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불을 피우고 벽을 통과하는 마술 쇼쇼쇼

해일은 망설임 없이 긍정했다.

“나야 거절할 이유가 없지. 괜찮다면 몇 가지 물어도 될까?”

“간단하게요.”

“몇 년 후까지 알고 있지?”

“대략 5년쯤이요.”

5년이라면 상당한 기간이었다. 귀한 정보를 툭 하니 내뱉는 재윤의 태도는 가볍기까지 했다.

“현재를 바꾸면 달라진 미래가 보이나?”

“아뇨, 볼 수 없어요.”

“그럼 서재윤 씨가 알고 있는 건 정해진 5년 치의 지식이라는 거군. 모두의 미래를 볼 수 있고?”

“아뇨.”

거침없는 재윤의 답에 조심스러운 질문이 이어졌다.

“그럼 누구의 미래를…… 아, 이런 걸 물어도 괜찮은지 모르겠군.”

“알려 드려야 거래가 되겠죠. 협조 관계가 된다면 앞으로 부탁할 일이 많거든요.”

거래라는 말이 차라리 이럴 땐 믿음이 갔다. 필요에 의해 오가는 정보였기에 해일은 한결 편안한 얼굴을 했다.

“거래라면 듣고 싶군.”

“제가 아는 미래는 저와 관련된 것, 그리고 제가 전해 들은 것과 본 것만이에요.”

“아버지와 무슨 관계이길래 그런 정보를 아는 거지?”

“에스퍼들이 포션을 팔지 않으니 찾아와 비싼 값에 사 가는데 소문이 안 돌았겠어요? 실제로 높으신 분들 중 마수 고기에 손댔다가 중독 증상 보이는 분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던 때라 나중엔 뉴스에까지 나왔어요.”

재윤은 알게 된 경로를 감추지 않고 답했다. 그 덕에 해일은 그의 예상과 근접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재윤이 미래를 경험해 봤다는 것을. 그게 어떤 식이든 최소한 다른 이들보다 5년 치의 경험치가 쌓인 예비 각성자임을 확신했다.

“이제 슬슬 나가고 싶은데요.”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이든 돕겠다.”

어리숙할 정도로 쉬운 믿음이었다. 증거도 없는 정보를 의심도 없이 신뢰하는 해일을 보며 재윤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까딱였다.

“뭐, 그럼 움직이죠.”

맨티스 머리를 들고 입구로 걸어가는 내내 해일은 계속해서 미래를 물었고, 재윤은 몇몇 질문에만 답을 돌려주었다. 그것만으로도 해일의 믿음이 견고해졌다. 재윤과의 대화에 집중하던 해일은 대신 들던 그의 핸드폰에 새 메시지가 뜬 걸 알아챘다.

“음. 서재윤 씨. 핸드폰을 확인해 봐야 할 거 같은데.”

재윤이 재하와 연락을 주고받는 것에 예민하다는 걸 알게 된 해일은 핸드폰을 건넸다. 핸드폰을 받아 확인한 해일은 손에 든 맨티스 머리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미친. 시발.”

재하가 보내온 이영우의 방문 소식에 피가 거꾸로 치솟는 것 같았다.

마수 앞에서도 침착했던 재윤의 기세가 순식간에 변했다. 고작 폰을 확인한 것만으로 살기를 풍기는 재윤에게 해일은 감탄했다. 그만큼 재윤의 기세는 일반인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강렬했다.

그렇다 해도 당장 누군가를 도륙할 기세인 재윤을 그대로 둘 수 없었다. 해일은 꽤 먼 길을 걷는 동안 재윤과 했던 미래 이야기를 떠올리며 그를 달랬다.

“미래에 개차반 같은 에스퍼들이 생겨난다 해도 아직은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 당장 이렇게 흥분할 일이 아니야.”

재윤은 자신의 욕설과 살기에도 침착하게 설득하고 지켜보는 해일의 존재가 새삼 눈에 들어왔다.

“후우…… 정말이지 당신처럼 형이 내 말 좀 믿어 줬으면 좋겠네요.”

“나야 각성자니까. 에스퍼가 된 후 내가 알던 세상과 다른 걸 보게 된 데다 다른 사람은 모를 일을 서재윤 씨가 말해 줬으니 믿는 거지.”

해일은 재윤이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회귀 사실을 짐작했다.

재윤은 이지적인 외모와 달리 수더분한 성격의 해일을 다시금 눈에 담았다.

미래에 대외적으로 활약하는 에스퍼 권해일. 효율이 높지 않았던 가이드에게도 항상 친절했고, 정식 가이드를 가진 후에는 작은 위협에서조차 최선을 다해 보호했던 인물. 그는 가이드에 대한 처우가 빠르게 개선되는 데 일조했다.

확실히 이 사람이라면 가이드에게 최고의 선택이었다.

‘어차피 형은 가이드로 각성할 거야. 그렇다면 이 사람이야말로 적격이지.’

결론을 내린 재윤이 여전히 자신에게 집중하는 해일과 마주했다.

“던전이 아닌 곳에서도 마음대로 힘을 쓸 수 있게 된다면, 그걸 가능케 하는 존재를 만난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아직은 가이드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은 시기였기에 설명하자 해일이 잠시 생각한 후 입을 열었다.

“무엇보다 소중하게 지켜 내야겠지.”

“잘 생각해 보세요. 가둬 놓고 나만의 것으로 하고 싶지 않나요?”

이 질문은 다른 에스퍼들이 가이드를 대하던 태도 때문에 꺼낸 말이었다.

해일의 미래를 알기에 믿으면서도 재윤은 그의 반응을 놓치지 않으려 주시했다.

“음, 그렇게 하면 상대가 힘들어하지 않을까?”

“전 가끔 그런 충동을 느껴요. 아무도 괴롭히지 못하게 가둬 버리면 어떨까.”

이번 건 제멋대로 구는 재하를 볼 때 재윤이 느끼는 감정이었다. 진심이 드러난 재윤의 분위기가 일변했다. 살기나 분노처럼 확 달라진 건 아니었다.

재윤에게 집중하던 해일은 집착마저 느껴지는 묵직한 감정에 미묘하게 거리를 벌렸다.

마음의 거리만큼 멀어진 건가 싶은 거리감에 재윤이 고개를 기울였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순수해 보이는 재윤의 표정에 해일은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답을 냈다.

“범죄만 아니라면 난 편견은 없으니 걱정하지 마.”

“……그런 뜻이 아닌데요. 보호해 주겠다는 의미예요.”

“오해하지 않을 테니 변명하지 않아도 돼. 응원하기는 힘들겠지만, 취향은 존중해.”

“이미 오해하고 있으신데요.”

권해일은 상당히 올곧은 성격이었다. 이런 반응이 더 믿음직스러워 재윤은 조금 안심했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맨티스 머리를 챙기려던 재윤은 집어 던진 탓에 으깨진 걸 보고 망설였다. 진액이 줄줄 흐르는 으깨진 벌레 머리를 재하에게 보여 준다면 이게 뭔지도 모를 것이다. 게다가 머리 쪽이 터지며 불쾌한 냄새가 퍼져 가방에 넣고 싶지도 않았다.

재윤의 망설임을 알아챈 해일이 양손에서 불을 피워 보였다. 명품 배우 같은 진지한 멋진 얼굴로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하는 것에 재윤은 술렁이던 마음이 가라앉는 걸 느꼈다.

“좋아요. 제 증거가 돼 주세요.”

“얼마든지. 믿음에 보답하지.”

* * *

재윤은 해일의 바이크를 대신 몰며 과속 딱지가 수없이 쌓였을 것 같은 속도로 집에 도착했다. 그만큼 재윤의 불안이 크다는 걸 인지한 해일은 잔소리하는 대신 군말 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아파트 입구로 향할 줄 알았던 재윤은 대뜸 중간쯤에 멈춰 서더니 외벽을 붙잡고 훌쩍 올라가기 시작했다.

“각성 안 했다며…….”

해일 역시 잠시 주변을 확인한 후 빠르게 재윤을 쫓아 벽을 탔다. 방어복 없이 높은 곳에 오르는 경우는 드물어 아찔했다.

재윤이 사라진 층으로 들어서자 활짝 열린 문이 보이고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러 왔다. 멈춰 선 재윤이 문 안쪽을 쳐다보고 있기에 해일 역시 같은 곳을 주시했다. 안에는 세 명의 남자가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콜록콜록, 도준이 넌 도림이 챙기라니까.”

“집에 데려다주고 왔어. 그보다 네 팔부터 좀 봐.”

“나 때문에 다치다니. 미안해, 재하야.”

“전 괜찮아요. 그보다 고기가 타서 큰일이네요.”

도준은 바닥을 치우면서도 연신 재하를 걱정했다. 재하는 팔에 얼음 팩을 댄 채 도준을 올려 보내려 했다. 그 곁에 안절부절못하는 영우는 감동한 눈빛으로 재하만 바라보고 있다.

“형.”

착 가라앉은 재윤의 목소리는 소란 통에 작기만 했다.

“어? 톡은 안 보더니 언제 왔냐?”

그 작은 소리를 유일하게 들은 재하는 급히 일어났다. 덴 팔이 쓰라린데도 영우가 걱정할까 봐 애써 웃고 있던 재하의 얼굴에 당황한 티가 역력했다. 하필 돌아와도 이 타이밍이냐 싶어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만큼 재윤의 무표정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

‘왜 눈을 그렇게 뜨니, 동생아.’

재윤이 그렇게나 경고했음에도 결국 재하는 두 사람과 함께했다. 여전히 재하는 조금도 위험을 느끼지 못했으나 재윤과 맞닥뜨리자 머쓱해졌다.

“형, 나와.”

무표정한 얼굴로 평소와 달리 감정을 삼킨 재윤의 딱딱한 말투에 재하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아니, 너도 괜찮다고 했잖아. 그리고 단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색하게 변명하는 재하의 태도에서 그가 재윤의 말을 완전히 무시한 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재윤은 화를 내는 대신 침착하게 재하를 밖으로 이끌었다.

“소개해 줄 사람이 있다고 했잖아.”

“어?”

재윤의 눈치를 보던 재하는 그제야 문 앞에 서 있는 미남을 발견했다. 단지 서 있을 뿐인데도 평범한 현관문을 세트장처럼 보이게 만들 만큼 존재감이 튀는 남자였다.

“어, 누구……신지?”

“서재윤 씨 형님이시죠?”

해일이 살짝 미소 지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가볍게 넘긴 머리가 살짝 이마 위로 흐트러지는 것조차 그림이 되는 미남이었다.

남자답게 잘생긴 얼굴은 보는 것만으로도 부러웠다. 저도 모르게 얼굴에 홀리려던 재하는 등 뒤에서 들려오는 세 사람의 목소리에 더욱 정신이 없었다.

“선배, 베란다 바깥 창도 열어야죠. 안에만 열면 환기가 안 돼요.”

“여기 환기 시설이 별로인가 봐. 재하가 이런 곳에서 살다니. 역시 기숙사 신청을 도와줘야겠어.”

“둘 다 남의 집에 신경 끄고 돌아가 줄래……요?”

당장이라도 뒤돌아서 좀 조용히 하라고 소리치고 싶은 걸 꾹 참고 웃는 얼굴로 말을 건넨 재하가 다시 앞을 보았다. 기다렸다는 듯 미소 짓는 해일에게 집중하자 배우상의 미남이 손을 내밀었다.

“이렇게 뵙게 되는군요. 반갑습니다.”

해일이 내민 손을 얼결에 붙잡으면서도 재하는 어안이 벙벙했다. 이 난리 통에 악수를 청하는 매너는 뭔지 묻고 싶은 걸 다시금 꾹 참아야 했다.

“아, 네. 그런데 누구시길래 동생이랑 같이 오신 건지…….”

“서재윤 씨께서 형님을 소개해 준다기에 열 일 제치고 달려왔습니다.”

믿음직스러운 미소가 소름 끼칠 수도 있구나.

재하는 집 안으로 들어간 재윤을 째려보았다.

견지호로도 부족해 또 다른 남자랑 친해져야 하는 건가. 피지컬만 봐도 숨이 막힐 것 같은 남자를 데려온 동생에게 중매쟁이로 나설 생각인지 묻고 싶었다.

‘그럴 거면 최소한 성별은 맞춰서 데려와 주면 안 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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