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꺅!
―으아아!
또 하나의 마을이 철저하게 파괴당했다. 간신히 덮쳐오는 화염과 칼날의 향연. 정찰대는 간신히 몸을 피할 수 있었다.
“제길! 저놈들 일부러 우리 뒤를 따라오면서 저러는 걸까요. 마치 과시라도 하는 것처럼.”
“과시도 되고 함정도 되겠지. 일부러 아슬아슬하게 간격을 두면서 우리 근처의 마을을 초토화하곤 곧바로 우릴 포위했으니.”
속수무책으로 마음의 짐이라도 덜기 위해 미하일은 틈틈이 몸을 돌려 화살을 쏘았다. 덧없이 날아가는 화살이 과연 얼마나 고블린을 쓰러뜨릴 수 있을까. 다만 이렇게라도 위안을 삼고 싶었다.
“추격하는 고블린들 규모는 어느 정도야?”
“글쎄요. 계속 한없이 퇴각하는 중이니 정확히 알 수야 없습니다만. 뒤쫓던 놈들만 삼백은 족히 되어 보입니다. 마을 입구에서 우릴 포위한 놈들까지 합하면 오백은 되겠군요.”
“상대하는 건 역시 무리겠지.”
화살 한 대를 마저 쏘아붙였다. 날아가서 어떤 놈의 어깨춤에라도 맞았는지 짐승 잡는 날 선 소리가 들려왔다.
“얼른 마을 곁으로 빠져나가자.”
“…….”
이미 이런 모습엔 익숙해졌을 척후병들일 텐데 이를 바득바득 가는 소리가 들렸다. 애써 모른 척하며 미하일은 주가시빌리의 멱살을 틀어잡고 호령했다.
“정신 차려! 여기서 우리 다섯 명이 삼백 기병을 상대할 수 없어. 우리가 할 일은 돌아가는 것뿐이야.”
‘그리고 처절하게 돌려주는 일이지.’
마지막 한마디를 미하일은 가만히 속으로 되뇌었다. 당장은 무사히 바가반드로 돌아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전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변 지역을 초토화하는 별동대들의 출현까지.
“여기서 영지로 가는 최단 경로는 우리가 온 길뿐인가?”
“……강을 직접 건너는 게 아니라면 다른 샛길은 없습니다. 강을 건너는 게 가장 빠르긴 하지만 나룻배를 타야 합니다.”
“자네가 몰 수는 없어?”
“고블린 침공 이후로 수로 침공을 막기 위해 인위적으로 마법 함정과 암초를 심어 놨죠. 어설프게 배를 몰았다간 몰살입니다.”
“제길.”
그렇다고 수백 기의 기병을 꽁지에 단 채로 마냥 계속 움직일 수는 없다. 사방을 채운 자욱한 연기 덕분에 잠깐 정체를 숨길 순 있어도 마을을 벗어나면 곧 따라 잡히고 말 것이다.
“인간, 잡아! 몇 명 안 된다!”
“크르릉!”
서열이 낮은 고블린들은 어설픈 하야스단 말과 신음을 흘리며 사방을 이 잡듯이 뒤졌다. 그 때문에 숨어 있던 마을 사람들까지 닥치는 대로 죽어 나갔다.
―으윽…….
―제발 목숨만은, 끅!
죽어 나간 이들의 피가 목구멍으로 끓어오르는 소리가 침묵에 빠진 거리로 흘러들었다. 말에서 내려 자세를 낮춘 미하일과 일행은 재빨리 거리를 건넛마을의 강변 쪽으로 다가갔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나룻배가 있었다.
“분명 이쪽 집 중 하나가 사공의 집일 텐데. 표시나 간판 같은 건 없는지 찾아보자고.”
“알겠습니다.”
미하일 자신도 흩어져 있는 대여섯 군데의 집 중 하나를 찾아갔다. 다행히 고블린들은 육로로 움직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조금 먼 엉뚱한 곳을 뒤지고 다녔다.
‘최소한의 시간을 번 셈이군.’
―쾅!
거칠게 문을 밀어붙이자 나무로 조잡하게 만들어진 잠금장치가 그대로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이미 피난민 행렬로 떠나간 모양인지 집 안에는 먼지만이 쌓여 있었다. 부디 사공의 집안은 아니었길 바라는 자신이 야속할 뿐이다.
“젠장.”
“바드란 님, 여깁니다!”
미하일의 가문 명을 부르짖는 쪽으로 급하게 달려갔다. 한층 허름한 집 안쪽 한구석에는 바들바들 떨고 있는 사공과 가족이 모여 있었다.
“이봐! 당신이 이곳 사공이야?”
“……누, 누구십니까?”
시선을 어디 둘지 모른 채 서로 아이를 품고 있던 부부가 기겁한 목소리를 냈다.
“시간이 없다. 누가 사공이지?”
미하일의 추궁에 작업복 차림이던 여자가 손을 들었다. 입은 옷으로 미루어보건대 남편은 그저 농부인 모양이었다.
“우리를 강을 따라 총독부 건너편으로 보내 주어야겠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나?”
“배를 띄우려면 반드시 노출될 겁니다. 적어도 우리 가족들까지 함께 움직이려면…….”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데?”
고블린들은 이미 마을을 겹겹이 포위하고 하나씩 집을 뒤지고 있었다. 끔찍한 소리도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마음이 조급한 미하일은 거의 다그치듯 물었다.
“십 분, 아니 최대한 서두르면 오 분은…….”
“그럼 빨리 움직여! 시간은 우리가 번다!”
허리춤에 차 두었던 활을 재빨리 뽑으며 미하일이 꺼낸 한마디였다.
‘제길. 보르크 이후로 고블린과의 싸움은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오늘 아주 그동안 밀린 몫까지 청산하게 생겼어.’
“얼른 배를 확보하도록 해. 우린 그동안 계속 당신네를 엄호할 테니.”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사공. 그들에게 기회가 있다면 바로 지금이 마지막일 것이다. 사공과 그 가족이 재빨리 자기 할 일을 찾으며 배를 찾으러 나섰다.
“우린 저들을 엄호하면서 적에게 발각되는 걸 마지막까지 막는다.”
“비밀 엄호라면 그나마 익숙하군요. 꼭 나샤와 멸망 때가 떠오르는 살풍경이지만 적어도 그때보단 할 만합니다.”
미하일과 나란히 정보대 척후병들도 대오를 갖추어 섰다. 창과 월도를 든 것이 둘, 궁수가 미하일까지 합쳐 둘, 지휘관용 채찍을 든 주가시빌리까지 총 다섯 명이었다.
“넌 왜 채찍이야?”
“전 특기가 채찍이거든요. 제대로 쓰는 채찍이 근접전에선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 드리죠.”
물론 그것만 믿는 구석은 아닌 모양이다. 한쪽 손에선 은은한 푸른 빛이 솟구치고 있었다. 쿡쿡 웃음을 흘리며 미하일은 수긍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움직이자!”
* * *
생존이 걸린 움직임은 모두 재빨랐다. 사공과 가족이 헛간에 넣어둔 나룻배를 끌어내는 사이, 미하일 일행은 골목을 감시했다.
“아저씨들, 어서 오시래요!”
“이쪽으로!”
초조한 시간을 보내자 곧 아이들이 달려와 떠날 준비가 끝났다는 걸 알려 주었다. 미하일과 주가시빌리 등은 발걸음 소리가 퍼지지 않도록 조심히 움직였다. 그게 별 소용 없었단 건 금방 드러났지만.
“저기 있다, 인간!”
“잡아!”
“죽어라!”
좁은 마을에서 언제까지고 조용히 탈출할 수 있으리란 기대는 헛된 것이었다.
“시부랄 것들, 쯧.”
다급해진 미하일은 급히 머리맡을 쳐다보았다. 불타는 서까래 하나가 들보에서 떨어질락 말락 버티고 있었다. 들보와 서까래가 연결된 아슬아슬한 부위를 겨누며 미하일이 소리쳤다.
“모두 장애물이 될 만한 걸 찾아서 밀어!”
―쐐액!
이럴 때 아일라가 특별히 제련해 선물로 준 특수 합금제 화살이 유용할 줄은 몰랐다. 미리 충전해 둔 마나의 힘이 더해진 화살은 중력을 거스르고 힘차게 서까래에 들이박았다.
―쿠당탕!
“끼엑!”
“어서 우회해라!”
불타는 장애물만큼은 키 작은 고블린 추격대로는 넘어설 수 없는 장벽이었다. 병사들도 근처 골목을 대충 수레 등을 엮어 가로막았다.
“막았습니다.”
“어서 가자. 잠깐 시간은 벌어 주겠지.”
그렇게 다섯 명은 뒤늦게 강변으로 달려나갔다. 물가에선 배를 급하게 강 중앙으로 밀어 넣느라 사공 가족이 끙끙대고 있었다.
“얼른 타세요. 이제 출발할 겁니다.”
“빨리 타자. 안 그러면…… 우왁?”
갑자기 뒤통수가 쎄하게 무언가의 흐름을 느꼈다. 정확히 이쪽을 향하고 있는 무언가.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미하일은 한쪽으로 급하게 몸을 던졌다.
―쾅!
사람 키만 한 날붙이가 달린 월도였다. 그대로 날아든 거대한 도검은 사공이 올라탄 나룻배까지 날아들었다.
―쿠르르릉!
흙먼지 바람과 튀어 오른 물이 제멋대로 뒤섞이며 아이의 비명이 찢어질 듯 터져 나왔다.
“흐흐……. 찾았다. 도망 잘 쳤지만 이젠 그것도 끝이다.”
“오그르……라고?”
시야의 한편이 무언가 끈적한 점성의 액체로 가려졌다. 만져 보지 않아도 그게 피라는 건 너무나 분명했다. 뜨끈한 피가 철철 흘렀지만 아프긴커녕 정신만 멀쩡해진 미하일은 억지로 눈을 찡그리며 초점을 맞추었다.
“진짜군.”
그랬다. 보통 고블린이라면 감히 부수지 못할 장애물을 단번에 달려들어 날려 버린 저 덩치. 한 손으로 도검을 날려 나룻배를 두 조각 내 버리는 근력까지.
“죽여라!”
거대 오그르는 이미 끝장이 났다는 생각에선지 여유만만하게 손가락을 뻗어 이쪽을 가리켰다. 죽이라는 그 명령에 고블린들이 신나서 달려들기 시작했다.
“인간, 인간!”
“죽여라!”
“죽…… 꿱!”
달려오던 녀석들을 미하일과 궁수 하나가 열심히 쏘아 넘어뜨렸다. 창과 도검을 가진 병사는 거기서 더 선을 넘어오는 고블린을 찔렀다. 창을 녀석들이 붙잡으면 주가시빌리의 채찍이 날름거리는 혀처럼 고블린의 살갗을 찢었다.
―쫙!
“배가 부서졌는데 어떡하지?”
“상류 쪽으로 거슬러가면 버려진 어선이 하나 있을 겁니다. 잠깐 봤던 기억이 납니다.”
“뭐?”
―휙.
화살을 날리기 무섭게 미하일은 머리를 숙여 날아오는 투창을 피했다. 재빨리 생각해 보았지만, 달리 방법도 없었다. 주변에 오백이나 되는 고블린을 두고 상류로 달릴 수도 없다. 이미 말이 있던 곳도 놈들이 장악해 버린 상태였다.
“이렇게 어이없게 끝나리라곤 생각조차 못 했는데, 인생이 참.”
“……하, 결국 또 이렇게 되는군요.”
주가시빌리는 미하일 머리를 노리고 달려든 투창을 채찍 끝으로 쳐내며 한숨을 쉬었다. 눈앞의 고블린들을 훑는 눈길은 날카롭지만, 이젠 익숙하단 눈치였다.
“죽는 거야 문제는 아니지만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 건 안타깝군요.”
―챙!
“그래. 하지만 어차피 우리가 전하지 못하면 곧 녀석들도 알게 될 거야. 그렇다면 깊이 후회할 것까진 아니지. 고블린을 꺾은 뒤를 보지 못하는 게 아쉬울 뿐이지.”
“풋, 아직도 의심하고 있으신 겁니까? 인간의 승리로 끝날 거란 걸?”
“내가 못 보면 그게 무슨 소용이람.”
“하긴요.”
피식거리면서 일행들은 마지막 힘을 쏟아 고블린을 밀어냈다. 어느새 눈이 다시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린 도보로 빠져나가기 어렵겠지만 적어도 한 가족이 도망할 시간은 벌 수 있겠어. 그렇지 않아?”
눈은 폭풍처럼 변해 삽시간에 사방의 시야를 마비시켰다. 고블린이 인간을 찾는 주요한 방법인 후각도 멀쩡할 리가 없다. 나샤와 생존자인 병사들도 미하일의 말을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사공을 부른 미하일은 자신의 인장 목걸이를 떼어 건네주며 당부했다.
“우리가 여기서 최대한 시간을 끌어볼 테니까 그사이에 총독부의 요새나 가능하면 강 건너 바가반드에도 상황을 알려 줘요. 적어도 당신들이 도망갈 시간은 벌 수 있을 테니.”
대답을 들을 틈도, 꺼낼 틈도 없었다. 사공은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인장을 받아들었다.
“조용히 기다리다가, 빛이 뿜어져 나오거든 무조건 마을 밖으로 도망치세요. 살아남길 바랍니다.”
미하일 바드란은 숨을 굳게 들이쉬며 나란히 앞을 틀어막은 네 명의 병사의 호흡을 느꼈다. 고블린들도 살짝 지친 듯 강변 끝까지 몰린 일행을 반원형으로 둘러싸고만 있었다.
“각오는 됐나, 제군?”
“이미 삼 년 전에 피난민으로 도망치면서 죽은 목숨인걸요. 적어도 마지막 순간에 싸우다 누군가 살리고서라도 죽으면 복을 누린 거죠.”
제일 어린 녀석이 과연 자기가 무슨 소릴 하는지는 알까 싶으면서도, 미하일은 아무렴 어떠랴 하는 마음으로 어깨를 토닥였다.
“제군은 일제히 나와 같이 지옥으로 달려가자고. 다들 눈 감아.”
말을 마친 영지 재무관은 목걸이에 매달린 백색 수정을 옷 안쪽에서 꺼냈다. 그리곤 어금니로 강하게 문질러 깨뜨렸다.
―파앗.
―퍼펑!
깨진 수정의 구멍 사이로 거센 신성 마나가 쏟아져 나왔다. 갑작스러운 붕괴로 쏟아져 나오는 엄청난 마나의 흐름에 일대가 눈부신 흰 빛으로 덮였다. 적마정석을 녀석들이 폭탄처럼 사용했었다. 미하일도 마찬가지 방법으로 과부하시킨 것이다.
“지금이야! 오른쪽 대열을 뚫는다!”
두 가지 신호였다. 사공 가족들은 재빨리 한쪽 구석의 대열이 얇은 고블린들 쪽으로 뛰었다. 다섯 군인은 눈을 뜨곤 그쪽으로 다가가 순간적으로 시력을 잃은 고블린을 썰어 버렸다. 문자 그대로 동강.
“끼에엑!”
몇 놈이 연달아 비명을 지르자 오르그가 분노한 목소리로 호령했다. 그리곤 아주 잠깐 다시 백병전이 이어졌다. 족히 열댓 마리의 고블린이 죽고 이십여 마리는 치명상을 입었을까. 창을 들고 휘두르던 병사 하나가 부러진 고목처럼 쓰러졌다. 허벅지에 투창이 제대로 박혀 있었다.
“무너진다!”
“밀어붙여!”
―촤악!
창병을 마무리하려던 고블린을 급하게 베어 넘겼다. 분수와도 같은 피가 상반신을 뒤집어썼다. 그러나 미하일은 반응할 틈도 없었다. 토악질을 유발하는 냄새가 코를 찌르니 정신만큼은 또렷했다.
“나샤와 만세!”
유언과도 같은 한마디를 내지르며 고블린 사이에 둘러싸인 궁수 하나. 곧 사방에서 찔러대는 창에 고통으로 핏빛 어린 눈을 치켜떴다. 그리곤 마력이 실린 검으로 한 놈씩 베어나갔다. 눈으로 차마 지켜볼 수 없는 끔찍한 광경이었다. 과부하 시킨 신성 마력이 마지막 버틸 힘을 계속 충전하는 게 아니라면 이미 진작에 전멸했을 테다.
“이 새끼들, 바드란의 검이나 받아라!”
기사학교에서 배웠던 것을 떠올리며 단검에 은은한 검기를 띄운 미하일은 울컥하며 함성과 함께 달려들었다.
“검기! 기사!”
“막아!”
고블린들의 조잡하게 줄로 얽매어 놓은 도끼, 투창과 각종 창이 달려들었다. 몇 가지는 눈가나 뺨, 옆구리를 스쳤다. 고통 속에서도 미하일은 힘껏 검을 휘둘렀다.
“꾸엑!”
“세다, 인간.”
“그르르.”
아무리 검술이 조악하고 엉성해 보여도 검기가 실려 있었다. 더군다나 사용자의 마나를 제대로 검기로 담아내는 아콜타데리움 합금제 단금이었다. 효과만은 분명했다. 그대로 두 동강 나는 고블린들이 태반이었다.
―뚝.
고블린들이 슬슬 겁에 질려 몇 발짝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미하일 일행도 이미 희망은 없다는 건 알았다. 뚝 소리와 함께 그나마 자신들을 지탱해주던 신성 마나 효과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크윽.”
그나마 서 있던 병사 셋은 비틀거리거나 무기에 의지해 간신히 버티는 중이었다. 그나마 멀쩡한 주가시빌리와 미하일은 망설임 없이 앞으로 나서 무기를 휘어잡았다.
“검을 놀리는 실력은 좀 웃기시던데 그래도 멀쩡하셨군요.”
“기사의 검술은 물리적인 세련됨보다는 마나를 얼마나 잘 휘두르냐에 달려 있거든. 보기엔 좀 웃길 수도 있겠지만.”
“그럴 리가……. 그냥 일반 검술 1 수업 때 많이 빠지신 것 같습니다만.”
주가시빌리의 웃으며 건네는 마지막 일침에 미하일은 숨길 것 없이 미소로 돌려주었다.
“인생은 한 번뿐인데 재미라도 있게 살아야지. 후회는 없다.”
“저도 다행히 끝에 후회는 없겠군요.”
“죽여라. 이제 물러서는 놈은 내가 직접 죽일 테니까 절대 후퇴는 없다.”
오그르가 다시 한번 준엄하게 명령을 내린 그때. 두 사람도 비장한 기합을 내지르며 각자 무기를 움켜잡고 달려나갔다. 아니, 달려나가려 했다.
―쐐액!
[파라 우라논…… 퓌르!]
허공을 휩쓰는 매서운 바람. 모든 것을 휩쓰는 광포한 열기였다.
“으악!”
“뭐합니까? 엎드려요!”
주가시빌리는 덮치듯 바드란 경을 붙잡아 바닥에 엎드리게 했다. 나머지 병사들이야 어차피 놀라 자빠지면서 저절로 피할 수 있었다. 땅바닥의 차가운 진흙에 살갗이 닿아 정신이 날카롭게 살아났다.
“헉…….”
하지만 열기만큼은 너무나 생생하고 강렬하게 뒤통수에 작열하고 있었다. 주변이 일시에 불에 타는 나무가 갈라지는 소리만 남긴 채 고요해졌다.
―따닥, 딱.
“괜찮으십니까?”
“어, 응……. 무슨 일인 거지?”
두 사람은 뒤늦게 허공을 바라보았다. 불길이 난데없이 쏟아져 내려 고블린 떼를 녹여 버렸던 그곳을 향하여. 그 시야에 들어온 것은.
“여, 고생 많았어. 다들 몸 상탠 괜찮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을 타고 있는 두 사람의 실루엣이 어렴풋이 보였다. 목소리는 어디선가 들어 본 것 같기도 하지만.
“……하라드?”
“섭섭한데. 하라드만 있는 게 아니라 무려 세 사람이나 왔다고.”
[그래.]
아아, 네마냐. 그리고 머릿속의 혼란함을 잠재우듯 부드러운 울림까지. 키메라도 함께 왔구나. 그렇다면 어떻게 두 녀석이 이 험한 강을 건너왔는지 알법한 일이었다.
“영주님 말이야, 군대와 영지 마무리를 하셔야지 척후대 때문에 움직여도 되겠어?”
미하일은 너덜너덜해진 소매로 얼굴을 닦아냈다. 누군가의 것일지 모르게 뒤섞인 피는 이제 무감각해서 아무렇지도 않았다. 입안까지 들어찬 피도 한가득 뱉어냈다.
“고생 많았어. 지금부터 이 쓰레기들 뒤처리는 내가 맡도록 하지.”
키메라에서 뛰어내린 누군가가 재무관의 등덜미를 두드린 뒤 곁을 지나갔다. 미하일은 누군지 보지 않아도 알 만한 사람이었다.
“부탁한다.”
“……이런, 설마하니 바가반드의 영주께서 직접 행차하실 줄은 몰랐는걸. 크헤헤.”
혓바닥으로 입맛을 다시는 오그르를 보며 네마냐는 한숨을 뱉었다.
“또 이 녀석들이군. 정말 지겹지도 않나?”
―스릉.
기다란 검은 뽑아 들리자마자 눈부신 광채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검을 길게 가로로 뻗은 채로 네마냐는 양손으로 손잡이를 부여잡았다. 그와 함께 건넨 말은 최후의 선언이었다.
“감히 이 광산왕님의 중요한 계산기를 건드리다니. 내 사람을 건드린 대가는 아주 처절할 거다. 괴물 녀석.”
그와 함께 네마냐는 첫발을 내디뎠다. 그리곤 바람 같은 속도에 몸을 맡기며 검기를 품은 채 달려들었다.
―쫘아악.
무언가 살갗이 질기게 찢어지는 소리. 그 소리와 함께 하야스단 인간들의 첫 반격이 시작되었다.
- 지도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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