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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더하기 회귀는 먼치킨-117화 (117/200)

117화

미하일은 바흐람이 아직 돌아오지 않아 대기 중인 정보대 요원 몇 명을 거느리고 출발했다. 하루만인 1월 16일에 미하일까지 다섯 명의 일행이 닿은 곳은 다르빌 근교의 최전선.

“곧 다르빌입니다, 자작님.”

“이쪽에 이런 길이 있다는 건 나도 처음이야. 어떻게 이 동네 사람도 모르는 걸 알고 있지?”

익숙한 듯이 나무 사이 수풀을 헤치며 오솔길을 달리는 요원들. 미하일과 미하일의 말은 낯선 그 길을 허덕거리면서 겨우 따르고 있었다. 정보 전사. 네마냐가 그 요원을 부르는 표현이었다.

‘정보와 전사라니. 정말 안 어울리지만 적어도 여기선 어울리는 표현이라니까. 싫어도 인정할 수밖엔 없겠군.’

“저희야 원래부터 이 동네에 살던 사람들이니까요. 고향 나샤와가 여기서 사흘이면 닿는 곳 아닙니까?”

“참, 그랬지. 나샤와가 무너진 지 벌써 3년째라 말하지 않으면 기억을 못 한다니까.”

고삐를 잡으면서 미하일은 마저 숨을 골랐다. 강변에 늘어진 수풀 주변으로 은폐한 채 이동 가능한 길이 있단 것도 처음 알았다.

“그나마 이런 길이 있으니 그동안 아무 문제 없이 사방을 헤집고 다닐 수 있던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 사방에 출몰하는 고블린 도적 떼를 피하기 어렵죠.”

“전쟁 발발 전까지 최대한 박멸하려곤 했는데, 그게 안 되더군.”

“애초에 너무 많습니다. 경비대 수준의 토벌 병력으론 수백 단위씩 다니는 고블린을 잡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니까요.”

그게 가장 중요한 원인이었을 것이다. 이미 이전에도 수십 단위의 산적 고블린들은 각지에 출몰하고 있었다. 네마냐와 미하일의 일행이 보르크라는 거대한 전사형 고블린을 처음 만난 것도 그때였다. 주변을 돌아다니던 고블린 떼를 맞닥뜨린 덕분이었다.

“두고두고 말썽이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걸 일일이 탓하고 있을 때는 아닌 것 같군.”

“왜 그러십니까?”

“저것 봐.”

다르빌을 가리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여전히 이 시점에도 다르빌 자체는 새로 완성된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채 멀쩡했다. 다만 그 배경이 어딘가 께름칙할 뿐이었다.

“전방에 연기가 자욱한 것 같아. 정말 적이 침공한 모양이야.”

“저것만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얼굴에 엄청난 흉터 자국을 가지고 있는 정보대 장교, 주가시빌리가 제동을 걸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주가시빌리?”

“평소에도 크고 작은 싸움은 있었습니다. 상부에 보고할 만큼의 대규모 싸움은 아니었을 뿐 현장에선 저런 일은 비일비재했습니다.”

“이번엔 내가 직접 왔을 정도야. 적이 그간 거의 쓰지 않는 주술을 쓴다는 건 결코 가볍게 생각해선 안 돼.”

고블린 국가에서의 주술이란, 인간에게 있어 마법보다 훨씬 중대한 의미였다. 날붙이 무기나 근력, 민첩한 정도를 제외하면 보통의 문화나 기술에서 고블린은 인간에 비하면 비교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특히나 마나를 자유롭게 사용해서 큰 힘을 발휘한다는 건 인간의 큰 장점이지.”

현 족장이 산맥 너머에서 군단을 몰아오기 전만 해도 그랬다. 이제는 마도사들이 어떤 이유인지 대량으로 양성되기 시작했다지만 주술에 조심스러운 것도 여전하다. 주가시빌리도 미하일의 지적에 대해선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렇다면 좀 위험하지만 좀 더 전방으로 나가 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다르빌에 들어가서 확인해 보는 건? 공식 확인을 받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그것도 지금으로선 곤란할 겁니다. 보나 마나 내부 혼란을 막기 위해 도시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상황이라서요.”

“참, 그것도 그렇지. 빨리 처리하려고 신분을 밝혔다간 도시에 혼란이 더 일어날 수도 있고……. 그래, 그냥 우리가 직접 전방으로 가자고.”

미하일은 머리를 긁적이며 어쩔 수 없는 결론을 내놓았다. 전방을 뒹구는 방식은 자신보다야 네마냐라면 좋다고 하겠지만 필요하다면 감수해야 한다.

“무기는 있으십니까? 전방은 아주 위험한 곳이라서 저희도 생환을 장담하기 어려운 곳입니다.”

“걱정하지마. 한 몸 지킬 정도는 되니까.”

미하일은 안장 옆에 고이 매여 있던 활과 화살집을 들어 보여 주었다. 주가시빌리는 피식 웃음을 흘리면서 자신의 발목에서 무엇인가를 꺼내어 건넸다.

“활만으로는 혹시 모릅니다. 단검도 하나 가지고 가시죠. 이번에 영지 공방에서 대대적으로 뿌린 아콜타데리움 합금이랍니다. 써 보니, 세 번 정도 오라 비슷한 기운을 낼 수 있더군요.”

“그새 영지 공방에서? 수완도 좋군.”

“저희는 임무 특성상 인당 세 개를 받으니 걱정하지 말고 받아 두십시오. 나중에 따로 얘기해서 더 받으면 됩니다.”

그렇다면야 미하일도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이미 가지고 있는 활도 아일라가 직접 준 제품이긴 하지만, 새로 받아든 단검도 놀라웠다.

“놀라울 정도로 가벼워. 잘 쓰도록 하지.”

역시 발목께에 매듭을 지어 단검을 묶은 미하일은 그새 숨을 고른 말에 박차를 가했다. 주가시빌리도 재빨리 말을 몰며 주의를 당부했다.

“조심하십시오. 정말 고블린 본대가 접근 중이라면 최대한 전투가 벌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몸을 피하기에 전방에 은·엄폐할 마땅한 장소가 없긴 합니다만…….”

“내게도 다 생각이 있으니 염려 말고 서둘러 움직이자. 영주께서도 우리가 얼른 돌아오길 기다리실 테니까.”

정찰대는 빠르게 강변의 수풀에 의지하며 북쪽으로 향했다. 갈수록 짙은 연기는 점점 커져만 갔다. 일행의 미간도 덩달아 찌푸려졌다.

“가관이군. 심지어 한 군데서 생긴 연기도 아니었어. 다행히 도시나 요새는 아닌 것 같지만.”

“아마 감시 초소들일 겁니다. 적이 다르빌 쪽으로 이동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거점들이죠. 평소 같으면 많아 봐야 서너 군데 정도일 텐데 이상하군요. 다르빌에서 군대가 반격을 취하지도 않다니.”

“다르빌 쪽도 문을 굳게 닫을 모양이야. 좋지 않은 예감이 드는데.”

미하일이 잠시 고개를 돌려 쳐다본 다르빌은 문을 열어 대피하는 주민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뿐, 분명 주둔 중일 병사나 기사대조차 전혀 성벽 위로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무슨 일이 났는지 분명하군요. 저쪽 좀 보시죠! 허…….”

좀 더 앞서 둔덕 위로 올라간 주가시빌리와 동료들이 어딘가를 보며 연신 혀를 찼다. 회색빛의 안개로 둘러싸인 도시에서 눈을 쉽게 떼지 못하던 미하일은 억지로 시선을 돌리며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왜, 무슨 일인데? 아.”

재의 숲. 만약 가능하다면 그런 표현으로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다르빌 북쪽으로 마치 경계선을 이루듯 퍼져나가던 숲이 새까맣게 타들어 가 있었다. 곳곳의 초소는 무너지고 황량하기 짝이 없었다.

“일부 초소병들은 잡혀서 본보기가 되었군요.”

“이런…….”

정찰병으로 선발된 이들은 시야가 뛰어난 만큼 확실하게 보였을 것이다. 더군다나 나샤와 학살의 생존자들이라면 치를 떨지 않을 수 없겠지. 저 멀리 말뚝에 꿰이거나 허공에 교수형을 당해 있거나 십자가에 박혀 있는 사람의 형태는 미하일에게도 확실히 보였다.

“웩!”

누군가는 참지 못하고 구역질과 함께 속을 게워내기까지 했다. 분명 가족이나 동료 또는 지인 누군가를 저렇게 보냈을 기억이 되살아난 탓이다. 그 앞을 너무나 태연하게 행군하는 고블린 군대. 아무것도 모르는 미하일이 봐도 속이 뒤집히는 광경이었다.

“정말로 왔어. 왔다고, 네마냐. 네 말이 맞을 리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막연히 이야기로 듣고 그것을 입증하는 듯한 여러 사건이 터졌다. 그걸 막기 위해 사방을 뛰어다녔건만, 그런데도 자신은 고블린의 대침공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은연 중에 믿고 있었다.

“실은 여전히 부정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어. 불안하고 위태로워도 지금의 상태가 계속 이어질 수 있으리란 희망을 품은 거지. 바보같이.”

어느새 일행의 눈앞을 지나던 바다 같은 작은 고블린 부대가 지나갔다. 그다음으론 다시 사람과 비슷한 아니, 일부는 사람보다 거대한 체격을 가진 고블린들이 지나갔다.

“저거 하나에 병사가 몇이 달려들어도 이길까 말까인데, 저렇게 수백 명도 넘는 놈들이 있단 말인가?”

“아주 특수하고 교묘하게 교배해서 만들어 낸 종류일 겁니다.”

“나도 들었어. 최근에야 전사형 고블린이란 이름으로 알려졌다던데.”

주가시빌리는 벌써 그것도 옛날얘기라며 한 가지 새로운 정보를 전해주었다.

“이제 저들은 스스로를 ‘오그르’라고 부르기 시작했답니다. 그네들 말로는 ‘먹어치우는 자’라는 뜻이죠.”

“먹어치운다. 그러니까 우리의 세계를 먹어치우겠다, 이 소리군. 적절하네.”

“그렇게 태연하실 때가 아니란 겁니다. 이전 전사형 고블린일 때야 극소수여서 분류할 필요가 없었죠. 독자적인 분류가 생겼다는 건 이제 대규모로 생산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개잡놈의 것들.”

“쉿, 목소리가 큽니다.”

주변이 점차 고블린 군단 통제 영역이 되어갔다. 서서히 강변을 순찰하는 녀석들도 보였다.

“이만하면 된 것 같습니다. 얼른 돌아가시죠. 얼른 영지군을 출발시켜서 전쟁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래야지. 그만 돌아가자고.”

각자의 말머리에 밀착한 채로, 일행은 조심스럽게 방향을 바꾸었다. 그리곤 발각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길을 찾아 나갔다.

* * *

“떠나갑니다.”

“여기까지 발각되지 않았다고 생각한 모양이지. 놀라울 정도로 가까이 다가왔어.”

쉼 없이 내뿜는 연기에 휩싸인 그림자는 역시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무심했다.

“바로 추격대를 내어 잡지 않아도 괜찮습니까? 저들이 돌아가면 곧바로 다른 군대가 달려올 것입니다만.”

“괜찮아. 후, 영주들이 좀 달려오는 정도로는 우리가 선발대조차 격파할 수 없으니까. 차라리 영주들의 병력보다 이놈의 호흡기병이 더 문제지, 쿨룩!”

연기로도 쉽게 다스려지지 않는 대족장은 장죽을 잠시 떼더니 무엇인가를 뱉었다. 점성이 무척 짙은 핏빛의 타액이었다.

“괜찮습니까, 족장?”

“사힌, 그냥 바깥 공기를 오래 쐬면 그럴 뿐이다. 더 나빠질 것도 좋아질 것도 없지.”

“언제든 말씀하십시오. 강한 게 필요하다면 주인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걱정스러운 듯한 사힌이란 사내의 이야기에 장대한 고블린의 신체는 다시 웃음을 뱉어냈다.

“크큭,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군. 자네 탑의 주인이나 준비를 끝내 놨는지 연락이나 해 보라고. 시간에 대지 못하는 걸 나는 싫어하니까.”

“염려 마십시오. 마시스 성산은 비록 손에 넣지 못했다지만 타격을 입혔죠. 거기다 엘자르 산은 여전히 우리 손에 있습니다.”

말을 마친 두 존재는 이제 고블린 군대가 지나가는 길의 반대쪽, 강 너머 그림자를 드리우는 엘자르 산을 바라보았다. 마시스 산과 옆에서 서로 건너다보는 두 산. 연신 기침을 뱉으면서도 우레이미야는 웃음을 흘렸다.

“흐흐……. 누구도, 마시스 옆에 그만한 마나의 샘이 있단 건 몰랐겠지. 그 바가반드의 애송이에게도 드디어 한 수 먹여 줄 수 있는 기회인가?”

“기다려 온 순간이군요. 몇 번이고 우리를 그렇게 물 먹인 바가반드 아닙니까.”

대꾸 없이 이번엔 정찰대가 사라진 방향을 쳐다본 우레이미야가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뒤쪽에서 소리나 낌새도 없이 대기 중이던 픽스 기병대 한 무리가 튀어나왔다. 조악한 말투로 부관이 재빨리 물어왔다.

“주군, 무슨 일인가.”

“너희가 해 줘야 할 일이 하나 생겼구나.”

“크릉, 적의 배제인가.”

신이 난다는 듯 역시나 오우거 종류인 부관은 입맛을 열심히 다셨다. 가벼운 코웃음과 함께 족장의 간단한 브리핑이 이어졌다. 코웃음 너머로는 오백 기의 기병이 그 콧김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적을 다 죽일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최대한 비참한 꼴을 만들어 줘라. 많은 후방 마을과 요새에 그 꼴을 보여 주어야 한다.”

“공포심 조장이로군…….”

주변에 들릴락 말락 한 소리로 사힌이 중얼거렸다. 인간이 감히 중간에 말을 섞는 것에 화라도 난 듯 부관이 잠시 쳐다보았지만 이내 족장에게 시선을 다시 옮겼다.

“알겠나? 최대한 많은 후방의 인간들에게 우리에게 맞서지 못할 만큼 철저히 겁을 안겨 주라는 거다.”

“그건 내게 맡겨라, 족장. 얼마든 해낸다.”

“인간들 앞에서 비참하게 도망이나 치다 죽은 그림보쉬와 배신자들 꼴을 드러내진 않겠지.”

몇 달 전, 아주 보기 좋게 인간들 손에 놀아나 도망치다 전사한 그림보쉬. 그 병력 대부분은 나코르잔의 변절자들에게 도망쳤다. 분노한 족장은 자신의 수중에 남은 그들 가족과 생환한 일부 병사를 모조리 꼬챙이에 꿰어 죽였다. 그걸 생각한 부관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딴 배신자가 되는 일은 없다.”

“좋아, 아주 좋아. 이제 그만 가서 내 명령을 사방에 퍼뜨려라. 인간은 모두 죽이고 그들이 만든 것은 모두 재로 만들어라.”

“살육! 파괴! 혼돈! 망각!”

―우우!

일부러 하야스단 인들에게 공포심을 주도록 서툰 하야스단어로 지시하고 어려운 단어까지 가르쳤다. 병사들은 네 단어를 읊는 부관을 따라 거센 함성을 질렀다.

“출격해라!”

부관의 짧은 명령. 단숨에 픽스와 병사 500여 쌍은 본진을 이탈하여 갈대밭으로 뛰어들었다. 그 대열의 뒤를 쫓던 족장의 시선은 곧 다시 한없이 무심해졌다. 곧 마지막 대오의 흔적마저 새로 피워 낸 장죽의 연기 속에 묻혔다.

“네마냐라고 했던가. 다들 당황하는 모양이던데, 그 요주의 애송이는 이번엔 어떻게 대응하나 한번 보자고. 재밌겠어.”

자신의 픽스 안장 한편에 똑바로 매여 있는 거대한 월도를 매만지는 우레이미야의 눈길은 꽤나 매서웠다.

- 118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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