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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더하기 회귀는 먼치킨-116화 (116/200)

116화

“야 씨, 도로가 완전히 얼어붙었네.”

“정월 보름이잖아. 그럴 만도 하지.”

보초를 선 병사들은 다시 돌아온 강추위에 거침없이 몸을 떨었다. 그나마 신경 써서 사령관이 양모 외투와 석탄 난로를 허용했다지만 모든 방법이 무소용이었다.

“정말 그렇다고 원래대로 이 초소를 철수할 수도 없고. 고블린 놈들도 이 추위에 멍청하게 길을 건너오진 않을 텐데. 그냥 철수하면 안 되나.”

그렇다고 사방에서 군대가 동원되는 비상 상태에 초소를 물릴 수는 없었다. 이래저래 아랫사람인 병사들만 죽어날 노릇인 것이다.

“이제는 진짜 석탄 난로를 가져와도 안 되네. 초소를 고쳐야 하는 거 아냐?”

“초소를 난방 잘되게 고쳐 놓으면 그 안에서 아주 자겠다?”

“최소한 얼어 죽지는 않을 테니까.”

“아 쓰벌, 또 하늘에서 쓰레기가 내리네.”

겨울철 하야스단에서 눈이란 존재는 대부분 애증을 넘어 혐오의 대상이었다. 한번 쏟아지기 시작하면 몇 날 며칠을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대차게 빗발쳤다. 그리곤 야속하게 찬바람에 빙판이 되어 버렸다.

“이거, 오늘 저녁까지 안 그치면 그대로 내일 빙판 되겠는걸?”

“야, 혹시 모르니까 저주 걸지 말라고. 안 그럼 우리가 바로 저 눈을 치울지도 모르니까.”

“끔찍하군.”

세상을 녹여 버릴 화염을 뿜는다는 전설의 드래곤이 온다고 해도 파묻힐 법한 강설이었다. 불과 수백 미터 앞 시야마저 흐릿한 이 상황. 눈 내리는 소리에 묻혀 세상은 모든 소음을 잃어버렸다. 마비되는 감각. 그래도 임무는 두 사람을 끝끝내 머무르게 했다.

“근데 아까부터 저건 대체 뭐람?”

벌써부터 허벅지 높이로 쌓여 가는 도로의 눈더미를 보며 욕하던 병사의 말이었다. 다른 동료의 시선이 그 말을 따라 정면으로 향했다. 한때는 황금빛 모래펄이 길게 뻗었다고 하여 ‘황금모래펄의 영지’로 불리던 곳이다.

“왜 그러는데? 뭐가 보여?”

“아니. 저기서 웬 꼬맹이 같은 그림자들이 움직여서 말이지. 숫자도 한둘이 아닌걸. 응? 좀 봐봐!”

“지랄. 뭘 잘못 먹었나. 이 겨울에 꼬맹이 떼라는 게 뭔 소리야.”

“그러지 말고 한번 봐봐.”

“쯧.”

귀찮지만 병사는 동료가 계속해서 일관되게 가리키고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어, 뭐야?”

눈을 비비며 다시 바라본 그의 시선. 하지만 여전히 저 멀리 지평선에 맞닿은 들판에는 알 수 없는 그림자들이 오가고 있었다.

“저런 크기면 딱 꼬마 아이들 크기이긴 한데.”

“거봐, 맞댔지? 저게 뭐야 대체?”

그렇게 두 사람은 한동안 갑론을박을 벌였다. 하지만 처음부터 두 사람 모두 염두에 두고 있는 가능성은 하나였다.

“……역시 그거겠지?”

“성인보다 작은데 무리로 이 겨울에 나돌아다닐 수 있는 게 얼마나 있겠어. 그거겠지.”

고개를 끄덕이며 합의한 두 사람은 재빨리 자신들이 해야 하는 규정대로 움직였다. 무엇보다도 당장 상부에 보급하는 것이 절실했다.

“지금 당장 보고해야겠다. 봉화대까지 누가 갈까? 내가 갔다 올까?”

“그래. 내가 망을 보고 있을 테니까…… 으억?!”

―쾅!

봉화를 굳이 피울 필요는 없었다. 거창하게도 고블린의 대군장은 화려한 마법 화력으로 선전포고를 대신했으니까.

―삐익!

“전방에서 폭발 발생! 마법으로 추정!”

“봉화를 피워! 후방에 얼른 알려라!”

이제 막 암피에르 조약의 발동으로 군대가 모이기 시작하는 하야스단이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침략은 어떤 순간에 이뤄져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인 것이다.

“후후, 놈들이 그래도 제법 준비를 했어. 우리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알아채고 연락하는 꼴이라니.”

“그러니까……. 두 해 전에 여길 치던 때랑은 꽤 다를 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탑의 주인께서 미리 이르지 않으셨던가요.”

“검은 탑의 녀석이야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심통이라도 부리려나 했지.”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남자가 나란히 픽스를 탄 채로 넉살 좋게 말대답하는 중이었다. 보통 인간이 타 있다면 성깔이 뒤집혀 바로 달려들 동물인 픽스지만 이 마법사에겐 익숙한 모양이었다.

“탑주께선 이미 문제의 원인을 내다보셨던 겁니다. 대족장께서 그렇게나 겹겹이 차단했던 상호 방위 조약이 다시 발동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렇긴 하지. 인간 영주 중에 그나마 위기를 알아채고 절망하거나 욕심이 그릇을 넘어선 놈을 간신히 포섭한 차였는데 말이야.”

“가스파리얀이야 그렇다 쳐도, 저번엔 바난드를 탈락시킬 좋은 기회였는데. 아쉽게 됐습니다.”

“그렇다 해도 무슨 상관이지? 모두 합쳐도 우리 군단으로 충분히 상대할 수 있으니까.”

우레이미야의 자신감 하나만큼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믿음을 입증이라도 하듯 족장의 뒤를 가득 채우고 있는 병사들은 거대한 덩치를 자랑했다.

“흠, 그러고 보니 이제 슬슬 군단 내부에서도 고블린 말고 다른 분류로 병사를 나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자세한 건 병과 쪽 애들이랑 나눠보면 알게 될 거다. 투사형 고블린들을 오우거로 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는 편이더군.”

“오우거라. 영 관심은 없으신 것 같습니다.”

“후……. 오우거든 고블린 전사든 모두 종말을 향한 행진에 있어선 마찬가지 도구들이지.”

폐부 깊숙이 연기를 들이마신 대족장은 언제나 들고 다니는 장죽을 픽스의 어깨에 툭툭 쳐 재를 털어냈다.

“뭐, 앞으로 오우거가 독자적으로 전투 규율을 쌓는 데 도움이 된다면 상관없겠지. 그보단 지금 제국의 움직임은 어때?”

“암피에르 조약군 말씀이시죠?”

방위 조약에 따른 반고블린 동맹군은 결국 제국의 군대가 절반의 역할이었다. 단독 왕국이 붕괴되고 남은 소규모 영지들만으론 근본적으로 힘이 부족한 탓이었다.

“이번에 제국의 증원군이 만 명가량 총독부로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기존 주둔군까지 고려하면 연합군은 3만 명 정도겠죠.”

“적진 않군.”

“우리 군에 비하면 호수에 자갈돌을 던진 수준이죠. 승리는 확실합니다.”

우레이미야는 시큰둥했다. 수월한 승리는 자신이 바라는 게 아니었으니까. 유혈이 낭자하고 시각적으로 충격적인 싸움이 고팠다. 처절하게 희망을 품고 싸우면서도 결국은 보답받을 수 없는 절망으로 향하는 그런 싸움을.

“아득한 절망을 맛보게 해 줘야지. 바가반드의 그 애송이가 아직도 정신 못 차린 놈들을 모아 놨다고 하니, 고생해서 찾아다닐 필요도 없고. 잘됐어.”

고블린의 본대 8만의 병력은 그렇게 순조롭게 이라크시스 강을 따라 남하했다. 첫 목표는 사슬과 같이 50개의 요새를 구축한 다르빌 자유국이었다.

* * *

나코르잔의 특사가 서남쪽 깊숙한 바가반드까지 온 것은 사상 처음이었다. 더군다나 그 독특한 민회에서 만장일치로 표결한 국가 간 외교문서까지 가져오다니.

“또 한 번 기록을 깼구나, 네가.”

박람회를 파하고 돌아온 일행 중에서도 아일라가 감탄사를 내뱉을 만했다. 네마냐도 의외라면서 편지 겉봉을 뜯었다.

“어쩐지 갑작스러운 국서라니 어딘가 급박해 보이는 점도 있었고요. 오체시, 아니 고블린 사절들은 돌아갔어?”

“그래. 밤길이 위험할지 모르니 묵었다 가라는 데도 그냥 가더라고. 답신할 내용은 나중에 타위비크로 전해 달라더군.”

대답을 그저 전해줄 뿐이지만 하라드 녀석도 어딘가 개운치 않은 부분이 걸리는 모양이다. 가까이 다가와 앉으면서 지팡이에 의지해 모을 기울였다.

“얼른 뜯어 보자. 어딘가 수상한데…….”

“그래.”

재빠른 손길로 뜯긴 편지에는 제법 세련되게 써 내려간 내용이 그려져 있었다. 이번엔 네마냐 자신의 이름도 정확하게 적혀 있었다. 그런데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게…….

“군단이 출정했다는 거군. 그래서 겸사겸사 특사가 급하게 달려온 거고.”

“출전?”

다들 예상했을 일인데도 순간 아연실색해지는 반응이었다. 언젠가 올 줄은 알고 있어도 지금 코앞에 닥치는 것과는 심리적인 체감이 다를 테니까.

“그래, 어째서 괴리가 느껴지나 했더니 박람회에 나코르잔이나 타위비크까지 초청할 시간이 없었잖아. 그런데도 급하게 왔다는 거니까.”

“애초에 박람회가 아니라 급보 때문에 왔단 이야기겠지.”

네마냐는 지체 없이 미하일에게 다가오란 손짓을 했다. 그리곤 곧바로 옆에 항상 대기 중인 양피지와 깃펜을 꺼내 들었다. 무언가를 끄적이더니 건네주었다.

“지금 당장 같은 내용을 복사해서 제국, 성국, 바난드 등 주요 세력마다 보내 주도록 해.”

“지금 바로?”

“아니, 그럴 필요도 없어 보이네.”

무언가에 이끌리듯 창가로 다가가 휘장을 걷어낸 아일라의 한마디였다. 그 소리에 나머지 일행이 의아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그게 무슨…….”

“왔다.”

문을 벌컥 열어젖히며 전령이 방 안으로 들이닥친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영주님, 급보입니다! 다르빌 전방에서 불순한 마나의 파형이 느껴졌습니다!”

“불순한 마나…….”

그렇지 않아도 최근 연이어 벌어지는 적마정석 사태에 신경이 곤두선 사람들이었다. 날 선 반응이 향하는 자연스러운 결론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신속하게 움직이는 게 장기라더니 정말이었어. 정말 그럼 이게 적의 대규모 침공이라 이건가?”

“적어도 다르빌 쪽에서 보내온 마지막 연락은 그랬습니다. 전방의 초소들이 모두 혼란스러운 상태라 통신이 마비된 모양입니다.”

“쯧. 하긴 아직 다르빌 사람들이 태세를 갖추기엔 아직 정비되지 않은 게 많지. 전령이라도 보내서 전방 사정을 확인해봐야 하나. 확실하지 않다면 출전은 조심해야 해.”

미하일이 팔짱을 낀 채로 꺼낸 말이었다. 정말 군단의 침입이라면 곧바로 조약군은 출동해야 한다. 그러나 그저 우연한 사건이나 실수라면 군대가 섣불리 출동하기 어려웠다.

“그래, 바난드의 절반도 호시탐탐 우리가 실수하길 바라고 있을 테지. 좋은 명분을 줄 수야 없고. 미하일, 네가 갔다 와 보겠어?”

“내가?”

그동안 병사를 부린다거나 모험에는 좀처럼 함께 한 적이 없는 미하일은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눈을 끔뻑했다. 자기 자신마저 의외라는 것처럼 슬쩍 놀란 모양이다. 바가반드 백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일라 씨와 하라드는 지금 곧바로 병사들 무장이랑 마법사들 준비시켜 줘요. 나머지 기사들과 병력 편제는 내가 알아서 준비할 테니까. 미하일 네가 외부 주민들에게 명성이 높으니까 겸사겸사 민심도 수습하기 좋을 거야. 돌아오는 대로 출발하자고.”

“이게 이라크시스 강변의 모래밭의 모닥불 옆에서 들었던 ‘대전쟁’의 서막이로구나. 어깨를 잘 풀어놔야지.”

아일라는 처음으로 네마냐와 동행하면서 고블린 전쟁의 내막을 들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네마냐는 기억해 주어 고맙다며 책상을 짚고 일어섰다.

“자, 전쟁의 시간이 왔습니다. 개인적으론 정말 달갑지 않은 상황이네요. 혹시나 우리가 잘 대처하면 긴장한 적이 움직이지 않을까, 그런 희망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블린 군단 측이 우세한 상태긴 하지. 우린 여전히 힘이 달리는 데다 발목을 붙잡는 놈들도 많고. 나 같은 대장장이는 따라가기도 힘들다니까?”

“그게 결국 다 군단과 손잡은 배신자들인 거죠. 가스파리얀처럼 물증까지 확실하지 않을 뿐이지.”

하라드는 네마냐의 머리맡 벽에 걸려 있는 가스파리얀의 편지를 가리켰다. 외면하지 말고 보라는 듯, 활짝 펼쳐진 두루마리였다. 이제 그 내용만큼은 하야스단 사람이라면 익히 알고 있었다.

“나중에 사건이 해결되고 나면 대체 무슨 정신으로 손을 잡은 건지 꼭 물어봐야겠어.”

아일라가 살아남는 것을 당연하게 전제하며 새기는 다짐이었다. 네마냐도 기꺼이 동의의 고갯짓을 끄덕였다.

“당연하죠. 반드시 그런 때가 올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은 일단 열심히 살아봐야겠죠.”

―짝짝!

손뼉을 치며 네마냐는 일과의 시작을 알렸다.

“자, 이제 그만 행동으로 보여 줍시다. 지난 반년간 우리의 준비를 말이죠.”

“명령을 받듭니다.”

세 사람은 오른손을 심장이 있는 가슴께에 대며 복종의 뜻을 밝혔다. 이 순간, 네마냐의 시선에는 가스파리얀, 페넬로파를 비롯해 동료와 심지어 엘레나까지 숱한 이미지가 스쳐 지나갔다.

‘이미 여기까지 많은 경로가 달라졌어. 이제 내가 얼마나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진 장담할 수 없겠지. 하지만 이미 우리는 흐름을 올라탔고 쉽게 꺾이진 않을 거다.’

다시 창밖을 내다보았다. 걷힌 휘장 사이로 쏟아지는 하야스단의 높은 산과 언덕들. 새하얗게 눈을 뒤집어쓴 고원의 풍경은 여전히 황량했다. 하지만 네마냐가 무력하게 피를 흘리며 쓰러졌던 그때와 지금은 이미 많은 게 달라졌다. 입맛을 다시는 네마냐는 가슴이 거칠게 뛰는 것을 느끼며 허리의 벨트를 굳게 움켜잡았다.

‘요오시, 토벌이다!’

- 지도로 이어집니다 -

- 117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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