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
26장 - 솜사탕 같은 상담사 (1)
솜사탕을 처음 먹어본 건, 대학에 들어온 뒤였다.
동기들과 함께 에버랜드…… 그러니까 당시 상호로는 ‘자연농원’에 놀러갔던 날이다.
돈 때문에 새터(새내기 새로배움터)도 가지 않았던 나로서는 큰 결단이었다.
대학 새내기로서 추억 하나 정도는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그곳에서 솜사탕의 실물을 처음 봤다.
열심히 구경하는 나를 보고 신경미가 사줬던 듯.
한참을 못 먹고 쳐다만 보고 있었더랬다.
동기들이 서울까지 가져갈 거냐고 놀렸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그랬다는 이야기다.
이제는 지수한테나 사주지, 내가 먹을 일이 없다.
그 지수도 너무 달다며 썩 즐기지는 않았던 것 같고.
사실 먹거리가 워낙 다양해진 요즘은 어린이날이 아니면 보기 힘들게 된 간식이기도 했다.
DMC역 인근에, 그 솜사탕을 파는 노인이 있었다.
아마 일흔은 족히 되었을 흰머리의 남자.
봄이 완연해지며 하늘공원을 찾는 인파가 많아진 까닭이겠지만, 월요일 오전부터 잘 팔릴 것 같지는 않다.
묘한 기분으로 다가선 내가 마수걸이 아닐까 싶었다.
“안녕하세요. 솜사탕 하나 주시겠습니까?”
“응? 아, 예. 애기랑 나들이 나오셨나?”
“아뇨. 제가 먹으려고 합니다.”
“응? 어…… 그래요. 금방 드릴게.”
별난 사람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혼자 솜사탕 사먹는 어른이 흔하지는 않겠지.
솜사탕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빤히 보는 어른도.
가열된 설탕이 공기와 만나면 실처럼 가늘게 늘어진다.
그것을 실타래의 형태로 감으면, 이후에는 인장력으로 인해 자연스레 날아와 붙게 되는 것이다.
몇 스푼의 설탕이 그렇게 뭉게구름처럼 커져갔다.
거의 흠 잡을 데 없는 구의 형태로.
노인은 막대 끝의 구름을 무심하게 바라보고 있다.
별달리 주의가 필요해서 그렇다기보다는, 다른 곳을 볼 이유도 딱히 없어서 그냥 시선을 두고 있는 눈치.
약간의 조급함이나 불안함도 없이 그는 완벽하게 움직였다.
그 능숙함에 괜한 호기심이 들었다.
그는 이 일을 몇 년이나 해왔을까.
자연농원이 막 생겨난 시절부터였을까.
아니면 나처럼 은퇴한 뒤에야 시작한 실버 챌린지일까.
새하얀 솜사탕을 만드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을까, 아니면 그저 하루하루 먹고살고자 애쓰고 있는 것일까…….
구태여 묻지는 않고, 웃으며 솜 같은 설탕의 대가를 지불했다.
그리고 돌아서며 생각했다.
그와 내가 꽤 닮은 것 같다고.
상담이라는 것은 솜사탕과 유사하다.
그 자체로는 몇 스푼의 설탕처럼 크게 대단할 게 없지만, 가열하고 실처럼 감는 과정을 통해서 가치가 생겨난다.
마음속 응어리를 해소하게 돕는 과정 역시, 입속에서 녹아내리는 솜사탕에 빗대면 잘 어울린다.
그러니 나는 솜사탕을 만드는 사람이다.
시청자들의 마음에 그것을 건네, 어린이날을 맞은 아이처럼 행복한 가운데 잘못된 인지를 수정하도록 이끌 것이다.
그 첫걸음이 <웃기고 앉아있네> 출연이었다.
오늘 상암에 나온 이유가 그 메인작가와의 미팅.
그녀는 학교까지 직접 찾아오겠다고 했는데, 그렇게까지 한다면 CP와의 연줄로 갑질을 하는 꼴일 터였다.
그 대신 한효준에게 양해를 구해 학교를 하루 쉬기로 했다.
그렇게 솜사탕을 들고 카페에 들어서게 됐던 것이다.
“아, 여기예요! 오시느라 힘드…… 어…… 솜사탕이네요?”
작가 심영화는 30대 중반쯤으로 보였다.
내 손에 들린 솜사탕을 아주 복잡한 눈으로 바라보더라.
“예. 오는 길에 하나 샀습니다. 미팅에 실례가 안 된다면 좀 들고 있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아유, 당연히 괜찮죠. 그냥 좀 신기해서요. 여기, 앉으세요. 보내주신 대본 저희가 면밀히 검토를 해봤고요, 이제 몇 가지 포인트에서 직접 뵙고 듣고 싶은 게 있어서 이렇게 먼 걸음 부탁드리게 됐어요. 일단 음료부터 시킬게요. 뭐 드실래요?”
“에스프레소로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어…… 단 거 좋아하시는 줄 알았는데.”
“솜사탕은 먹고 싶어서 산 게 아니에요.”
“아, 그렇구나. 어…… 네, 제가 금방 주문하고 올게요.”
그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으로 괴상한 첫인상을 안겨줬지만, 그녀는 미팅 내내 날 향해 엄지를 세워 보였다.
그것만큼은 신태훈 CP와 무관한 일.
내 대본에 꽤나 큰 감명을 받은 듯했다.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고, 내내 시선을 떼지 못할 것 같아요. 오늘 회의해서 무대 순서 조정하기로 했어요. 선생님께서 대미를 장식해주시면, 최고의 첫방이 될 것 같아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은 염려하실 줄 알았는데.”
“염려요? 에이. 전혀요. 이건 먹힐 거예요. 분명해요. 상상도 못 한 전개니까 반향도 클 거고요. 실검도 오르고, 인터넷 유머 사이트에서 오랫동안 회자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까지 잘될지 솔직히 확신은 서지 않는다.
내 ‘화술’은 아직 83.
레벨업을 여러 번 할 만한 exp가 모였지만, 그걸 당장 사용할지는 좀 더 고민해볼 문제였다.
이번 방송으로 에픽퀘스트를 달성했을 때 또 할인권이 나올지도 모르니.
첫 번째 퀘스트 보상으로 구매한 100exp짜리 [내담자 평가]는, 모든 상담사들이 꿈꿀 만한 비기였다.
26exp를 갖고 있을 때 그 기술의 할인권이 나온 것이다.
만약 내가 50exp를 보유한 채 퀘스트를 해결한다면 어떨까.
어쩌면 200exp 기술의 할인권이 나올지도 모른다.
100exp 이상의 기술이 존재는 하는지, 있다면 대체 어떤 것일지, 지금으로선 무엇 하나 상상도 안 되지만.
그래서 녹화까지 4일밖에 안 남은 지금까지도 레벨업 시기를 결정하지 못했다.
당장 ‘화술’을 100까지 올린다면, 좀 더 정교한 대본을 만들고 그것을 더욱 유려하게 전달할 수 있을 텐데도.
안정적인 성공이냐, 최선의 보상이냐.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고민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다시 솜사탕을 바라봤다.
그 노인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당장 최고의 솜사탕을 만들기 위해 돈을 썼을까.
아니면 최고의 솜사탕 기계를 구하기 위해 저축을 했을까.
“저…… 선생님? 그 솜사탕, 드실 거예요?”
“이제 먹으려고 합니다. 혹시 좋아하시면 좀 드릴까요?”
“앗, 아뇨, 저는 괜찮아요. 그냥 그림이 너무 예뻐서요. 솜사탕 들고 계신 게 되게 약간…… 순수하고 따뜻한…… 이미지가 되게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저 취미로 사진도 찍거든요. 지금 카메라는 없지만, 혹시 폰으로 한 장만 찍어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SNS에도 올려주세요. 유명해지고 싶거든요.”
“하핫, 진짜요? 벌써 유명하신데요 뭘.”
“더 유명해지고 싶습니다. 방방곡곡 남녀노소가 모두 상담사 꼰마를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상담이란 게 무슨 소용이 있냐고 생각하던 사람들까지 절 찾아줄 테니까요.”
“아, 그래서……. 죄송해요. 방금 저기, 좀 귀여우신 데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례되는 생각이었네요.”
“제가 좀 쓸데없이 진지한 면이 있습니다. 중2병 같지요?”
“아뇨, 아뇨! 저는 그래요. 중2병이란 건 사실, 정의병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진지함을 우습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건 사회가 정의롭지 못해서 그런 거죠. 외눈박이 마을에서 혼자 튀는 정상인처럼요. 앗. 이러면 장애인 비하가 되나…….”
작가는 작가구나 싶었다.
이후 그녀와 헤어져 전철에서 내 이름을 검색해봤을 때에도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movie.sim 요즘 너무너무 좋아하게 된 스타 상담사 #꼰마 오라버니! 방송 때문에 미팅하면서 #공과사 구분 못하고 사진 찍어도 되냐고 여쭤봤는데 흔쾌히 허락해주셨어요! 말씀하시는 거 완전 #쏘스윗 그런데 사진은 또 #분위기천재 ㅠㅠㅠ #구름 옆에 계신 것처럼 찍어봤는데 이거 보고 또 엄청 칭찬해주셨어요. 이런 말 하면 안 되지만 마음이 아프고 싶은 날이네요. #꼰마님보유국 국민이라서 행복해요 #솜사탕가이 #스윗슈가맨 #47세?? #인체의신비! #외쳐꼰마업!」
이렇게까지 좋게 써줄 일인가 싶더라.
학교 인근이 아니면 아직 팬들에게 시달릴 정도까지는 아니어서, 나 역시 순수하게 기뻐하며 찍은 사진이었다.
실제로 사진이 좋아서 칭찬해준 거고.
연예인들 많이 만날 작가가 들뜰 만한 일은 전혀 없었는데.
그 사진과 문구가 스크린샷이 되어 기사까지 올라왔다.
방송 작가라서 인터넷 기자들도 꽤 팔로우를 했던 모양.
그걸 또 내 팬들이 여기저기 퍼다 나르고 있다.
47세 아저씨가 솜사탕 들고 있는 게 이렇게 스윗할 일이냐며, 당장 솜사탕 사러 간다며…….
대수롭지도 않은 사진인데 참 별일이지.
그걸로 끝도 아니었다.
집에서 저녁을 먹고 원룸에 들어섰을 때, 진대수가 뭘 시끄럽게 윙윙거리는 모습을 보게 됐다.
“대수야? 그게 뭐야?”
“엥? 아 형님, 벌써 오셨슴까! 이거 솜사탕 기계요.”
“……어, 그런 것 같네. 이걸 왜 산 거야?”
“산 건 아니고 집에 있는 거 가져온 건데, 암튼 오늘은 리액션을 좀 해보시면 좋을 것 같슴다. 오늘 솜사탕가이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셨잖아요?”
“뜨겁게 달군 정도까진 아닌데…… 리액션?”
“예압. 후원금 좋은 일에 쓰겠습니다 멘트 하시면서 솜사탕 하나 만들어주는 거죠.”
“솜사탕을 만드는 게 리액션이 될까? 내가 남캠도 아닌데.”
“돼요. 이건 돼요. 일단 형님 솔직히 남캠들보다 더 멋진 게 1번이죠. 그냥 잘생긴 게 아니라 약간 의지하고 싶게 만드는? 그런 느낌이시니까. 거기에 갭모에라는 게 있습니다. 커피를 에스프레소만 마신다는 씁쓸남이 달콤한 솜사탕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그 이미지가, 대단히 진하게 와닿게 되는 거죠. 애들이 댓글에 하트 막 다는 게 이유가 있는 검다.”
편집하느라 바빴을 텐데 댓글까지 분석한 모양이다.
참 대단히도 성실한 녀석.
그 대수에게 짐짓 눈살을 찌푸려 보였다.
“글쎄. 잘 모르겠다. 어제 네 사촌형을 좀 만났거든.”
“……엥.”
“왜 얘기 안 했어? 감춰야 하는 사정이 있었던 거야?”
“아…… 그런 건 아니죠, 네.”
“그래. 사실 공통의 지인이 있든 없든 그게 우리 사이에 중요한 문제는 아니긴 하지만, 서운하더라. 그래도 갑수 형보다는 너하고 더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으아…… 죄송함다. 그냥 좀…… 그랬어요. 진짜 죄송해요.”
시선을 피하며 어색하게 하는 말.
그렇지만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다시 그런 일 없게 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는 건, 그게 소신의 발로인 까닭이리라.
진대수는 시청자들을 속이는 대본을 싫어한다.
다만, 그럼에도 선의의 거짓말을 즐겨 사용했다.
말하자면 행동보다는 의도를 중시하는 스타일.
그런 대수라서 의도가 나빴으리라는 생각은 안 든다.
그렇지만 작은 서운함 정도는 느껴지는 것이다.
늘 헤헤 웃으면서 마음속 응어리를 숨겨왔던 디렉터.
그렇게 벽을 친 상태로는, 매일같이 얼굴을 보고 있는 사이인데도 정말 친하다고 말하기가 어려울 터였다.
“대수야. 난 어떤 경우든 널 믿지만, 역으로 네가 날 믿지 못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좀 그렇다. 이유를 듣고 싶어.”
“어…… 헤헤. 이유야 뭐, 좀 안 맞아서요. 그 형 얘기를 형님하고 같이 나누고 싶지는 않았던 그런…… 옙.”
“어떤 부분이 안 맞는데? 그것만 알려주면 안 될까?”
“아 그야, 당연히 알려드려야 맞는 거긴 한데…… 좀 복잡해요. 이게 잘 정리가 안 돼서…… 솜사탕 만들면서 들으쉴?”
그렇게 솜사탕을 감으며 대수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
하얀 실타래 위로 상처받은 청년의 목소리가 얹힌다.
“솔직히 막 엄청 싫고 그런 건 아닌데…… 그냥 모르는 사이였으면 좋았겠다 싶고 그렇슴다. 사실 저 어렸을 때 용돈도 많이 주셨고, 또 우리 부모님 어려우실 때 도와주신 적도 많거든요. 근데 그게 참…… 그 은진이 사건 때요. 그때 제가 당연히 제일 먼저 찾아갔던 사람이 갑수 형이었거든요. 말하자면 일종의 산재니까 대표님이 좀 도와주셔야 맞지 않겠나 저는 그렇게 생각을 했던 거죠. 그랬는데, 그때 콧방귀 뀌면서 그러데요. 로맨스 스캠(성적인 매력을 어필해 로맨스를 가장하여 금전적 정신적 이득을 얻는 신용 사기의 일종)이란 게 돈맛 본 여자들이 안 할 수가 없는 일인데 그런 애를 뭘 믿고 케어를 해주겠냐, 너한테도 거짓말하는 건지 어떻게 아냐, 이러시는 겁니다. 아니 그야 그럴 수도 있긴 하겠죠. 근데 그래도…… 그래도 사촌이 믿고 아끼는 애가 그런 상황이 됐으면…… 그것도 자기 회사랑 계약한 BJ면, 그래도 노력해보는 시늉이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요. 난 진짜 그게…… 너무 화가 났어요. 그때 은진이한테 이미 호언장담을 했었거든요. 나만 믿으라고. 대표랑 사촌이니까 다 잘 해결할 수 있다고. 그랬는데 막상 좋은 얘기는 하나도 못 듣게 되니까, 나만 믿고 있을 걔한테 미안해서 죽을 것 같고…….”
……퍼즐 조각이 하나 더 맞춰졌다.
송은진에 대한 대수의 복잡한 감정의 발원지가.
사회적 위기에 처했을 때 아무것도 못 해준 남자라는 자격지심이, 사랑하는 여인의 고백조차 차게 만들었던 게 아닐까.
그야말로 진대수 특유의 하얀 거짓말로…….
“그래서 좀 그랬는데…… 흐흐. 그때 형님이 나타나셨던 거죠. 대표도 나몰라라 해버린 까다로운 문제를, 창립공신 부장님이 욕먹어가면서 케어해줬던 거야. 제 마음이 어땠게요?”
“많이 고마웠겠구나.”
“전요, 진짜 형님한테 그때 막…… 사랑에 빠질 것 같았슴다. 그리고 그때부터 갑스 그 인간 이름도 듣기가 싫어졌죠. 일개 부장도 할 수 있는 일인데 그걸 안 해준 거니까. 그냥 그래서…… 특히 형님한테는 말씀드리기가 힘들었슴다. 갑스 피해자 중 한 분이시니까 죄송하기도 했고요. 감정들이 참 복잡했어요. 근데…… 헤헤. 털어놓으니까 후련하긴 하네요.”
사실 진갑수 입장에서는 당연한 말을 한 것이다.
파트너BJ들 방송도 썩 자주 보지 않던 사람이니까.
그래서 송은진이 어떤 아이인지 전혀 몰랐을 거고, 사촌이 여우같은 여자에게 푹 빠져 있다고 생각해, 경각심을 주려는 의도로 일부러 더 매몰차게 말했으리라.
가족은 잘 챙기는 인물인 만큼, 면전에선 그렇게 말했지만 결국은 은진이를 돕는 방향으로 움직였을 것 같다.
그때 뜬금없이 내가 개입했다.
회사에 트러블이 되든 말든, 오직 송은진이 겪을 고통에만 집중한 야매 부장이.
그렇게 내 멋대로 그녀의 구원자가 되었다.
결국 진대수는, 나 때문에 진갑수와도 송은진과도 멀어지게 된 셈이었다.
가만히 솜사탕을 바라봤다.
첫 시도라서 모양이 좀 그렇긴 해도, 티 없이 맑고 깨끗하게 보이는 하얀 실타래.
하지만 지나치게 달면 먹기 버거운 법이다.
뭐든 내 힘으로 다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사람 옆에서는, 영웅이 될 수 있는 사람들조차 악인으로 남고 만다.
“대수야. 갑수 형은,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이다. 너도 알잖아? 결국은 널 도와주려고 했을 거야. 다만 그 전에 내가 나섰을 뿐이고. 거기서 날 빼놓고 생각해라. 넌 은진이를 위해서 갑수 형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어. 약속을 지켰던 거야.”
“헤헤…… 그렇게 생각하면 더 편할 것 같긴 한데, 그냥 아직은 좀 어렵슴다. 미워하는 게 차라리 쉽네요.”
“마음에는 안 좋잖아. 차라리 미움받는 쪽이 더 편해. 용서는 날 위해서, 내 마음 편하자고, 그렇게도 해야 돼.”
“아이고…… 하여튼 박가모니. 아저씨, 솜사탕 얼마예요?”
“공짜란다. 옛다.”
“아싸! 잘 먹겠습니다!”
히죽 웃으며 설탕덩어리를 삼킨다.
그 흰 실타래처럼 대수의 마음도 사르르 녹길 기원했다.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한 일이었다고.
때때로 과유불급을 실감하게 될 때가 있다.
내 빛이 지나쳐서 주변에 그림자가 드리워질 때면, 미안하고 부끄러워지기까지 한다.
은진이 사건 역시 적당한 선을 지켰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사람을 지키는 일이라면 과유불급이란 건 필요치 않다.
나는 세상을 바꿔야 하니까.
불의의 피해자를 낳을지라도, 중2병처럼 오글거리는 마음일지라도, 오직 끝없는 애정만으로 사막을 전진해야 한다.
직접 솜사탕을 만들어보니 알겠다.
아무리 좋은 기계를 갖춘다 한들, 내가 열과 성을 다해 만들지 않는다면 보기 좋은 모양을 갖추지 못한다.
나중 일은 나중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마땅하다.
그러니, 에픽퀘스트의 보상 따위는 잊어버리자.
오랜만에 시야 끝의 메시지를 바라봤다.
72에서 그쳐야 하는 ‘외모’를 제외하면 내 가장 낮은 능력치는 83의 ‘화술’.
두 번의 레벨업을 통해, 그것을 100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의 생방송에 임했다.
두 번째로 100을 달성한 능력치의 효과는……
간단히 말하자면, 솜사탕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