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진없는 상담사-69화 (69/200)

# 69

25장 - 미디어를 믿어 (3)

“아으…… 아까워. 오늘 3만 찍을 각이었는데.”

대수가 미련을 못 버린 듯 주먹을 움켜쥔다.

최고시청자가 일주일에 1만씩 성장하길 바랐던 모양.

그야 현재까지는 거의 그 수준으로 성장하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점차 둔화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욕심 부리지 말자, 대수야. 2만 9천 명만 해도 대단한 거잖아.”

“그렇긴 한데…… 그래도 아쉽잖어요. VR상담이 진짜 무지하게 이슈 되고 있단 말이죠. 그게 몇 시간만 더 빨랐어도 오늘 안에, 3만이 뭐야, 4만까지도 노릴 수 있었는데.”

그 역시 그렇게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몇 가지의 운이 결합된 전개였지만.

공황장애라는 것은, 오랜 치료기간을 통해서도 호전되기 어려운 정신질환으로 대중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 점이 첫 번째 행운이었다.

라이브 세션 중에, 말 몇 마디로 공황장애가 치료되었으니.

물론 진실은 그와 달랐다.

내게서 위안을 얻었다 한들 주민성은 여전히 환자.

어디까지나 일시적으로 발작이 멎었을 뿐이다.

그렇지만 그 본인이 워낙 인상적인 반응을 보여줬고, 그것을 두 명의 전문가가 확인해줬기에, 보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마치 기적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착각할 법도 했다.

그리고 내담자가 주민성이었다.

대세 보이그룹을 꼽을 때 결코 빠지지 않는 TOX의 사랑받는 센터.

자연히 그 팬들이 몰려들어, 시청자가 당초 예상했던 5만보다 훨씬 많은 13만까지 치솟으며 일시적으로 서버가 마비되기도 했다.

그 두 행운이 결합하며 시너지가 발생했다.

사랑하는 아이돌의 병을 치료해준 나를, 팬들이 광신도처럼 칭송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팬 커뮤니티에 내 이름이 도배되는 식.

하지만 밤부터는 그날 상담 내용과 움짤을 정리한 게시물이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가기 시작했고, 오늘 생방송 진행 중에 VR상담 클립의 시청자 수가 50만을 돌파했다.

그렇게 꼰마는 다시금 화제가 되고 있다.

일시적으로 폭발력을 낸 이슈는 아니기에 실검 최상위권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물밑에서 끊임없이 알려지는 중이다.

그게 몇 시간만 더 빨랐다면 정말 4만까지도 노려볼 수 있었겠지.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고 해서 아쉬워할 일은 아니었다.

“천천히 해나가면 돼. 그런 것보다 유튜브에서-”

그 대화 중에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자가 의외였다.

진갑수.

이 사람으로부터 사적인 전화를 받은 게 얼마만이지…….

“대수야. 나 통화를 좀 해야 할 것 같은데.”

“아, 옙. 그럼 정리는 내일로? 크루 건으로 말씀드릴 게 있긴 한데, 급하진 않어요.”

“그래, 그렇게 하자.”

대수는 내 핸드폰을 잠깐 흘끔거린 뒤에 짐을 챙겼다.

그 와중에 전화를 수신했다.

낮은 목소리의 대표가 내 이름을 부른다.

[대민아.]

“예. 무슨 일이십니까?”

[그냥……. 술이나 한 잔 할래? 전에 그, 한우집.]

밤늦게 불러내는 전 직장상사라.

원래대로라면 무시해야 할 일이겠으나……

한우집이라는 말에는 조금 마음이 복잡해졌다.

내 결혼 전에 아내까지 동석해 대접받았던 자리이기에.

“일단 제가 집에는 들러야 하는데요.”

[어, 그래. 제수씨한테 얘기해야지. 가서 괜찮다고 하면 전화 줘라. 볼일 있어서 근처에 와 있는 거니까.]

거짓말이다.

동고동락까지는 아니어도 20년 동안 한 건물에서 어울린 사이라, 어설프게 숨긴 진실 정도는 바로 알 수 있었다.

볼일도 없는데 근처에 차 몰고 와 있었겠지.

그 속내에 대해 고민하며 집으로 들어갔다.

아내가 굉장히 못마땅한 듯 눈살을 찌푸렸다.

“대표가? 그 인간이 무슨 염치로? 참나, 어이없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긴 한데…….”

“뭐야? 당신은 만나보고 싶은 거야?”

“음. 솔직히 그래. 무슨 소릴 할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런 게 아니라 용서하고 싶은 거 아냐? 당신이 키워놓은 직장에서 강제로 몰아낸 사람까지 이해해주려는 거 아냐?”

“내가 그렇게까지 호인은 아냐, 주희야. 다만…… 그 사람한테도 사정은 있었을 거라고 봐. 그게 뭐였을지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고. 그래서 잠깐만 만나보고 싶어.”

“당신은 진짜 사람이 참…….”

입술을 삐죽거리던 아내는, 잠시 후에 푸념하듯 말했다.

“난 그 사람 처음부터 싫었어.”

“어, 그랬어?”

“그래. 그날도 그랬어. 우리 결혼 축하한다고 불러놓고, 당신이랑 둘이서 사업 얘기만 잔뜩 떠들었잖아. 예의가 없어, 예의가. 첫인상 꽝이었어. 눈치 없는 당신도 미웠고.”

“……그랬구나. 미안해, 주희야. 그때가 한창 사업 확장 건으로 정신없던 때라…… 내가 좀 생각이 짧았던 거야.”

“그래. 그래서 싫었는데, 그래도 나쁜 사람이라고는 생각 안 했어. 당신 자르지만 않았으면 욕은 안 했을 거야. 그러니까, 가서 사과 받고 와. 그러면 이해해줄게.”

그렇게 서브퀘스트 하나를 받았던 것이다.

워커홀릭인 나를 십여 년 간 뒷바라지해줬던 아내에게는 무척 중요한 결론일 터인.

그렇기에 나 역시 진지한 마음으로 차를 몰았다.

그리고 룸을 잡고 술잔을 기울이던 대표와 마주했다.

“어…… 왔어? 어서 와라. 거기 앉아.”

진갑수는, 꽤 보기 드문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마에 내 천 자를 만들고 입으로만 웃는.

내게 사직을 권유하던 때에도 저런 얼굴을 했었지.

말하기 어려운 뭔가를 품었을 때 나오는 표정이다.

그렇지만 곧바로 진지한 이야기를 입에 담지는 않았다.

그는 말없이 소주를 한 잔 따랐고, 홀로 그것을 마셨다.

그 뒤에야 어색한 말투로 물었다.

“대수는, 같이 안 왔어?”

“예? 진대수 말씀이십니까?”

“그래. 왜 그런 눈이야?”

“대표님께서 대수를 어떻게…… BJ도 아니고, 편집자 선까지 알고 계실 줄은 몰랐는데요.”

“……그게 무슨 소리야? 대수가 너한테 말 안 했어?”

“뭘 말씀이십니까?”

“허, 참. 걔가 나랑은 사촌지간이야.”

상상도 못했던 정체.

절로 눈이 커지고 말았다.

“대수가…… 대표님 사람이었다고요?”

“아니, 그런 뜻은 아니고. 친한 사이는 아냐. 어렸을 때야 귀여워도 해주고 그랬는데, 언제부턴가 자기가 선을 긋더라. 그래도 너한테 언급 정도는 했을 줄 알았는데…… 아예 말을 안 했을 줄이야. 그 녀석 참. 내가 그렇게 용돈을 줬는데.”

“……그랬군요.”

“그래. 처음엔 애가 신방과 나와서 놀고 있길래 회사 일 시켜볼까 생각도 했었는데, 됐다고 하는 거야. 그래놓고 BJ 편집자가 된 게 참 황당했지. 그 끝에 대민이 네 편집을 맡게 될 거라곤…… 정말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송은진의 편집자로서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지금처럼 불가분의 사이가 될 거라곤 상상도 해보지 못했다.

그와 진갑수 사이에 혈연이 있으리란 사실 역시.

하지만 듣고 보니 많은 것들이 명확해지는 느낌이었다.

대수는 나이차가 한참 나는 나를 형님이라 부르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그리고 프리월드 대표 BJ들의 편집을 맡아왔으면서도, 정작 그 프리월드에는 어떤 호감도 보인 적이 없다.

오히려 쓰레기 같은 회사라고까지 불렀다.

그 안에는 분명 논리 이상의 어떤 감정이 있을 터였다.

아마도 양가감정.

사촌형인 진갑수에 대해 일언반구도 않았던 걸 보면 악감정 쪽이 클 것이다.

하지만 다른 플랫폼으로 넘어가지도 않고 오직 프리TV만을 전전했던 걸 생각해보면, 어떤 미련 정도는 있어 보였다.

아마 그건……

뭔가를 보여주고 싶은 인정욕구가 아니었을까.

“어쩌면 그래서 숨긴 걸지도 모르겠어. 내 사촌이라고 하면 네게 미움을 살 거라고 생각했겠지. 걱정했을 법도 하네.”

“제 반응을 걱정해서는 아니었을 겁니다.”

“그래? 그러면, 왜 그랬을까. 난 모르겠는데.”

“대표님께서 미움을 사셨던 거겠죠.”

“내가? 그 녀석한테? 설마. 그런 식으로 보지 마라. 코흘리개 사촌한테 미움 살 정도로 우스운 인간은 아니니까.”

“그 코흘리개도 서른입니다. 세간에서 ‘스티브 갑스’가 어떤 욕을 먹는지 모를 나이가 아니에요.”

“……그래서 뭐. 내가 그놈한테 쪽팔린 사촌이란 거야?”

“그 부분은 스스로 돌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공격할 생각까진 없지만, 직면을 시도했다.

우리 사이의 라포가 그 정도는 될 거라고 생각하며.

진갑수는 과연 예상대로 반응했다.

“그야…… 흥. 그래. 알아. 젊은 것들이 인터넷에 내 욕을 잔뜩 하고들 있다는 거. 놀랄 일도 아니지. 심지어 내 회사 안에서도 그런데. 박 부장은 무슨 신처럼 떠받들면서, 진 대표는 아주 발에 붙은 껌처럼 말하는 놈들이 많았잖아.”

“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아니긴 뭐가 아냐? 너랑은 아무 상관도 없는 팀 애들까지 그렇게 떠들었어. 회사에 호재가 오면 다 부장님이 유관부서 컨트롤을 잘해주신 덕분이고, 악재가 닥치면 대표가 멍청하게 독불장군처럼 굴어서 일이 어그러진 거라고들 했다고. 그것도 몰랐을 줄 알았어? 사람을 뭘로 보고…….”

진갑수는 이런 사람이다.

무시당하는 것을 그 무엇보다 싫어해서, 국내 굴지의 대기업마저 때려치우고 인터넷의 망망대해로 나섰던 개척자.

그렇기에 볼 수 있는 지점들이 꽤 있었으리라.

동시에, 그렇기에 보지 못한 것들도 있었을 것이고.

나는 그런 진갑수가 솔직히 밉지 않았다.

회사에서 잘렸을 때도 일이 그렇게 될 때까지 몰랐던 나 자신이 우스웠지, 대표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은 안 들었다.

그게 박대민이 살아온 인생관.

나 역시 그렇기에 보지 못한 것들이 많았다.

“사람을 뭘로 보는 게 아니라, 저는 몰랐습니다.”

“……정작 장본인은 몰랐다? 거 대단하네. 고기나 들어. 이거, 이쪽이 익은 거다. 그 술은 장식용으로 받은 거야? 어린애들처럼 짠을 해야 잔을 들 건가? 마시라고.”

“정말 몰랐습니다. 중간관리직과 실무진 사이에 견해의 차이야 생기는 게 당연하지만, 오히려 제가 바라보는 것보다는 직원들 쪽의 이미지가 나을 거라고 생각했지요. 대표님이 그 정도 수준은 되는 사람이라고 봤으니까요.”

“뭔 소리가 하고 싶은 거야? 내가 수준이 낮았다 이거야?”

“예. 저랑 수준이 비슷하신 것 같습니다.”

“……욕을 하는 건지 칭찬을 하는 건지 모르겠네.”

둘 모두 아니다.

나는 그저 인간 진갑수를 직시하고 있다.

남들에겐 아주 작은 무시조차 당하지 않으려 기를 쓰면서, 내게는 직접 고기를 구워 대접할 정도로 살가웠던 사내.

청첩장을 줬더니 한우집으로 불러내서 가장 비싼 메뉴를 시켜줬던, 그래놓고 견디지 못해 나를 쫓아내야 했던 대표.

그 사이의 갭이 이제야 명확히 눈에 들어온다.

「 내담자 명 : 진갑수

평가 결과 : 영리하고 신중하고 폭급하다. ‘대민이’에게 애증을 품고 있다. 」

애증이란, 세상에서 가장 흔한 양가감정.

그리고 무엇보다 강력한 심리 역동이다.

폭급한 진갑수가, 자기 회사 내에서 자신을 한심한 대표로 전락시킨 부하직원을 20년 동안이나 버리지 못했을 정도로.

“인터넷방송이라는 대한민국 미디어의 한 축을 만든 사람이, 그래서야 됩니까. 자기가 주변에 어떻게 비치는지 정도는 아셨어야죠. 무시당하기 싫었다면 노력하셨으면 될 일입니다.”

“나라고 노력을 안 한 게 아니라-”

“안 했어요. 대표님은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넌 그게 문제야. 그렇게 답을 정해놓고 말을 해버리면, 나는 뭐가 되냐? 넌 늘 그런 식이었어. 너만 정답이고, 나는 늘 오답이었지. 어떻게 한번을 의견을 굽힐 줄을 몰라? 왜 나만 나쁜 놈을 만들어? 끝까지, 회사 나갈 때까지도.”

모르긴 몰라도, 사직서 내고 나간 부장을 위해 직원들이 무언의 시위를 벌이는 것이 일반적인 일은 아닐 것이다.

심지어 그 안에 차장까지 섞여 있었다고 한다면.

나는 그 정도로 사랑받고 있었다.

스스로 자각하지 못했을 뿐.

이제는 알고 있다.

진갑수가 노력하지 못하게 만들었던 게 나라는 것을.

중간관리직이 지나칠 정도로 직원들을 휘어잡고 있으니, 뭘 어떻게 나서보려 해도 그게 안 됐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제 그에게는 양가감정조차도 버렸다.

그저 미안하고 안쓰러울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격적인 말들을 하는 것은, 스토리텔링.

진갑수가 스스로를 받아들이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대표님. 할 말은 그게 다입니까?”

“뭐? 너…… 또 박차고 나가겠다 이 말이야?”

“그게 아니라 묻고 있잖습니까. 그게 다냐고요.”

“다는, 아니야. 내가 무슨 할 짓이 없어서, 이렇게 밤늦게 마포까지 나온 줄 알아? 나라고 가정이 없는 줄 알아?”

“그렇군요. 그럼 말씀하세요.”

“너는 뭘 또 그렇게 대놓고……”

“대놓고 좀 말씀하세요. 툭하면 욕하고 으르렁대면서, 왜 마음속 얘기는 터놓고 하질 못합니까? 그거밖에 안 되는 사람입니까? 진갑수는, 정말 내가 경멸해야 되는 인물입니까?”

사실 이 정도까지 가면 직면이 아닌 공격이다.

적어도 몇 순배 정도는 돌고 나서 말할 셈이었을 테니.

그 기회를 박탈하고 발언을 강제하는 건, 나쁜 짓이지.

하지만 나는 그에게 좀 나빠져도 괜찮다.

악인이기에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생각해보면 우리 사이가 늘 그랬다.

진갑수는 내가 나빠져도 괜찮은 세상이었다.

“……아냐. 말할게. 하면 되잖아. 미안하다. 엮이지 말자고 약속해놓고 이렇게 불러내서 미안하고, 그때 너한테…… 못할 짓 해서 미안하다. 이럼 됐냐? 속이 시원해?”

“사과는 그런 식으로 하는 게 아닌데요.”

“좀, 봐주라 좀. 정말 미안하니까. 좀…… 이해해주라.”

이해하고 있다.

그 마음이 진심임을 100의 ‘진단’으로 알아봤으니.

아내의 퀘스트를 이미 달성된 셈.

이제는 좀 봐줘도 되겠지.

“고생하셨습니다. 살면서 몇 번째로 말해본 사과입니까?”

“……사과 정도는 하고 살아. 내가 뭐 인간말종인 줄 알아?”

“저한테는 처음이신 것 같은데요.”

“……정말로? 내가 접때…… 재떨이 던진 거, 사과 안 했나?”

“예. 지금 하시죠.”

“……미안하다. 울컥해서, 좀…….”

제대로 말을 못 맺는 진갑수를 가만히 내려다본다.

나보다 키가 한참 작은 위인이다.

그렇지만 작은 거인.

대학 동아리에서도 그랬고, 이후 인터넷 미디어를 꽉 잡은 프리월드의 대표로서도 그랬고, 그는 작지만 큰 존재였다.

그런 이가 자기 회사 직원들에게까지 욕을 먹었다.

나라는 존재가 작용한 결과지만, 그 이유만은 아닐 터.

진갑수는 그렇게 당해도 싸다.

스스로 일궈놓은 세상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대표님. 갑수 형. 우리 처음에 이 회사 만들 때 했던 말 기억합니까? 왜, 녹두 풍년집에서 일장연설을 했잖습니까.”

“내가…… 그랬던 것 같네. 뭐라고 했었지?”

“이제 단방향 미디어의 시대는 끝났다. 인터넷을 위시한 양방향 통신이야말로 세상을 움직일 동력이다. 4차 산업혁명이 다가온다. 그 시대의 벌판에 우리가 길을 내자. 모두가 생산자가 되어 마음을 열고 소통하는 세상을 만들자. 거기서 미디어의 혁명을 완수하자. 무슨 당원대회인가 했습니다.”

“……술이 좀 많이 됐었나.”

“갑수 형. 미디어도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답을 정해놓고 대한다고 푸념하셨죠? 맞습니다. 그 점을 많이 반성하고 있어요. 다만, 형도 똑같았습니다. 자기가 내려놓은 결론 외의 어떤 것도 받아들일 줄 몰랐죠. 그래선 소통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자기 안의 어떤 부분을 비우지 않으면 대화가 되지 않아요. 그걸 생각해주십쇼. 직원들한테 욕먹을 정도로 한심한 분 아니잖습니까? 옛날로 돌아와요. 이젠 나도 없으니까.”

진갑수는 볼을 우물거렸다.

한참 전에 입에 넣은 고기가 질겨서는 아닐 것이다.

10초쯤을 그렇게 서로 마주봤다.

그 뒤에야, 미간을 좁힌 대표가 토로했다.

“너는 참…… 멍청한 놈이야.”

“불쾌합니다.”

“정말 멍청한 놈이야. 동아리 때부터 그랬지. 프로젝트 건으로 토론을 할 때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다가도, 그게 끝나면 언제 다퉜냐는 양 씩 웃으면서 형 형…… 뭐 이런 새끼가 다 있나 싶었다. 그리고, 부러웠어. 난 그게 안 됐으니까. 공과 사를 구분 못하고 여기저기 들이받는 문제아였지. 그러니 대리 달고서도 회사 박차고 나왔던 거겠고. 그래서…… 그래서 널 스카웃했던 것 같다. 이런 놈하고 같이 일하면 그래도 자주 웃지 않을까 싶어서. 공사구분 철저한 그놈이 회사에서 얼마나 무서운 적이 될지는, 상상도 못했던 거지.”

“그 점은 나도 미안합니다.”

“흥……. 사과는 됐어. 그 방송 봤으니까.”

“방송이요?”

“접때, 내 얘기 했었잖아.”

아…… 그 방송을 봤나.

호박씨를 열심히 깐 뒤에 그래도 고마웠다고 말했었는데.

그게 그에게는 사과로 기능했던 건가.

“고맙다, 알아줘서. 그리고 미안하다. 사과가 늦어서.”

“아신다니 다행이네요.”

“너는, 끝까지. 나쁜 새끼 같으니.”

“회사 이미지 견인하는 홍보모델을 두고 나쁜 새끼라니요.”

“……혹시나 싶어서 말하는 건데, 그 건 때문에 부른 거 아니다. 원래부터 사과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압니다. 고기나 드세요.”

진갑수가 영 못미덥다는 듯 꾸물거린다.

그런 그를 위해 가볍게 웃어줬다.

흠칫 놀라서는 시선을 돌리더라.

영리하고 신중하고 폭급한 인물답지 않게.

사람의 소통이란 게 이렇다.

문을 열고 진심을 드러내면, 오해는 눈 녹듯이 사라진다.

미디어 역시도 그러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원대회 같은 진갑수의 연설에, 사실 난 꽤 감동했었다.

양방향으로 소통하고 그를 통해 성장해나가는 세상.

그곳에는 김 이병 같은 슬픔이 없지 않을까 생각했다.

실상은 악플과 몰이해로 비극의 온상이 돼버렸지만, 과도기를 극복하고 진짜 소통의 시대로 이끌 수 있다면.

우리는 좀 더 상냥한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은 분명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

과거가 쉬이 미화되기에 오인하는 이들이 많지만, 생각해보면 미디어가 미약하던 시절의 해악은 지금보다 더했다.

악플은 없었지만 독재와 학살이 고발되지 못했다.

입양은 많았지만 사회적 차별은 그 몇 배에 달했다.

우리는 적어도 인류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했다.

그것이 미디어의 순기능.

그 세상을 물들이는 몰이해가 무시무시한 역기능처럼 여겨지지만……

NBSC라면 그것을 극복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기에, 나는 미디어를 믿는다.

내가 새 세상을 만드는 마중물일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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