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
26장 - 솜사탕 같은 상담사 (2)
“왕이될상인가님의 사연입니다. 안녕하세요, 고2 학생이에요. 학종으로 수시 준비중인데 입시 스트레스 때문에 너무 힘들어요. 공부하는 기계도 아닌데 만나는 사람마다 공부 잘 되냐고 성적 잘 나왔냐고 그런 것만 물어봐요. 맨날 학원 갔다가 밤에 들어와서 또 과외 해야 돼요. 근데 애들은 혼자 공부하냐고 유난 떤다고 그러고요, 선생님은 시험문제 잘못 내놓고 저보고 복습 안했다고 화냈어요. 진짜 돌아버리겠어요. 그런데도 엄마아빠는, 내 맘은 하나도 모르면서, 맨날 공부공부성적성적…… 한국 망했으면. 이런 말씀을 해주셨는데, 일단 하나 여쭤보고 싶네요. 중간고사 성적 잘 나왔어요?”
「ㅋㅋㅋㅋㅋㅋㅋ훅들어오네」
「왕이될상인가 : 아나빴다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잘 안 나온 모양이네. 하지만 걱정할 것 없습니다. 일타강사 꼰마 방송을 보면 내신은 오를 수밖에 없어요. 왜 그런지 알아요?”
「일타꼰머 ㅋㅋㅋ」
“다른 재밌는 방송 보면 그거 때문에 공부에 지장 생기거든. 그렇지만 지루하게 말만 하는 내 방송 보다보면 아 차라리 공부나 해야겠다 이런 의욕이 생길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잘하고 있는 거야. 시험기간에 특히 열심히 보도록 해요.”
「왕이될상인가 : ㅋㅋㅋㅋㅋ셤기간엔안돼여 혼나여」
NBSC의 ‘화술’은 소통 능력의 일부에 불과하다.
그걸 높인다고 해서 모르던 어휘가 머릿속으로 들어오진 않고, 경험해보지 못한 화법이 내 것이 될 수도 없으며,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천 냥 빚을 갚아주지도 않는다.
어디까지나 기본기.
노력과 관심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렇지만, 그 가치는 거대했다.
100의 ‘화술’은 내게 신세계를 열어줬다.
언어만이 갖고 있는 초능력을 통해서.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때만 해도 내신은 사실 별다른 의미가 없었거든요. 수능만 잘 보면 장땡이었지. 그래서 고2 때까지도 핑핑 놀다가 1년 바짝 공부해서 원하는 대학교 붙은 친구들도 있었어요. 내 입장에선 부러웠지요. 아저씨는 국민학교…… 초등학교 때부터 전교1등 놓쳐본 적이 없었거든. 그래서 운빨로 잘된 애들 보며 혀를 찼어요.”
「왕이될상인가 : ㅋㅋㅋ국딩이다」
「왕이될상인가 : 요즘도 정시역전 가끔있어여」
“그래도 비중이 30%도 안 되잖아. 다시 정시를 늘리겠다고는 하지만, 예전 수준으로 올리진 못할 거예요. 아무튼 그렇게 안타까운 한편으로 부럽기도 해요. 전폭적으로 지원해주시는 부모님이 계신 거니까. 그래서 왕이님이 부럽네요.”
「왕이될상인가 : 머가부러워여ㅠㅠ」
“나 같은 경우엔 공부를 정말 하고 싶었는데도 그게 안 됐거든요. 과외는 무슨, 학원도 못 다녔어요. 그런 친구들이 지금도 많아요. 공부만이 이 헬조선을 안정적으로 살게 해주는 치트키라는 걸 알고 있는데도, 환경이 안 돼서 못 하는.”
「왕이될상인가 : ㅠㅠㅠ」
「왕이될상인가 : 배부른고민인건 아는데요..」
“뭐래? 그런 말이 아니거든요?”
말이란 본디 아 다르고 어 다른 법.
그런 특성 때문에 한효준은 자기 업에 학을 떼곤 했다.
하지만 말만 그럴 뿐 사실은 그 역시 화법의 대가이리라.
같은 말을 다르게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상담사의 가장 근본적인 덕목 중 하나이기에.
그게 [특성]과 [능력]을 구분하는 포인트 아닐까 싶다.
‘관계’와 ‘진단’과 ‘화술’과 ‘외모’는 결코 특성화된 선택지가 아니니까.
상담사라면, 내담자와 바른 관계를 형성하고, 내적인 문제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생각한 바를 적절하게 표현하고, 그 과정에서 부정적인 인상을 주지 않아야 한다.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면 좋은 상담을 자부하기 어렵다.
그리고 나는……
그중 셋을, 100이라는 한계치까지 끌어올렸다.
“왕이님이 행복한 편이다, 그런 얘길 하고 싶은 게 아니에요. 그건 착각이지. 내가 원해서 하는 게 아니면 어떤 긍정적인 지원도 불행에 불과해요. 반대로 생각해도 똑같거든요. 예를 들면, 나는 정말 공부를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시험 잘 봤냐고 물어보지조차 않던 농사꾼 부모님이 스트레스였어요. 환경과 마음이 맞지 않았던 거지. 그게 핵심이에요. 왕이님도 다르지 않아요. 사실은 공부 하기 싫지요? 그런데도 주변에서 강요하니까 억지로 하고 있는 거잖아. 그러니 스트레스 받고 노이로제를 겪지.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거랑 똑같아요.”
「오 말되네 ㅋㅋㅋㅋㅋ」
「왕이될상인가 : 으아 공부싫진않은데요.. 해야되는데..」
“‘해야 되는데’라는 말은 ‘하고 싶은데’하고 달라요. 이성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은 세상의 강요예요. 그런 걸로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왕이될상인가 : 헐.. 그럼 저 공부하지마여??ㅋㅋ」
“그건 또 다른 얘기고. 다만 알려주고 싶었던 거예요. 왕이님한테 세 가지 선택지가 있다는 걸.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당장 힘들어도 참든지, 현재의 즐거움을 위해서 미래에 겪을 위험을 감수하든지. 마지막 한 가지 방법이 더 있는데……”
「왕이될상인가 : 오 뭐에여??」
“모르죠. 세상은 시험이 아니라서 정답이 없으니까.”
「왕이될상인가 : 으아아아ㅠㅠㅠㅠ」
「ㅋㅋㅋㅋㅋㅋㅋㅋㄹㅇ꼰머네」
꼰머가 아니라, 상담 화술의 기본인 잠정적 표현이다.
이게 정답이라며 가르치려 드는 해결책은 듣기 거북하다.
스스로 떠올리고 확신해야 변화가 생긴다.
그것이 아 다른 말을 어 다르게 만드는 비법이었다.
사실 세 번째 선택지는 우스울 정도로 심플하다.
CBT(인지행동치료)로 고난의 이미지를 바꿔주면 된다.
자신의 고통을 고차원적으로 인정하면, 그때는 주변에서 아무리 괴롭힌들 스트레스가 아닌 강인한 의지만이 자라난다.
씁쓸한 현실조차 달게 바꿔주는 내적 에너지가.
하지만 그건 누군가가 주입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스스로 확신해야 한다.
아무리 명확한 해답이라 한들, 그게 강요가 되면 그저 꼰대짓으로 여겨질 뿐.
상담사의 솜사탕은 강제로 투여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내 경우엔 그랬어요. 잘나가고 싶었지요. 당시로선 방법이 많지 않았어요. 나를 줄 세우는 세상이 싫었지만, 열심히 줄을 서지 않고선 작은 꿈조차 꿀 수가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이를 악물고 공부했어요. 결국 본고사까지 치러서 서울대에 입학했지요. 그 뒤에 처음으로 안 거예요. 사실은 내 부모님도 아무 관심이 없는 건 아니었다는 걸. 다만 무엇 하나 뒷받침을 해줄 수 없어서, 그저 무관심한 척했었다는 걸.”
부모는 늘 죄인이다.
좋다는 것들을 다 강요하는 부모도, 무엇도 해줄 수 없기에 포기한 부모도, 그 마음과는 무관하게 원망을 받는다.
양쪽 모두 변명할 길 없는 죄.
그렇지만 원망만으로는 그들을 바꿀 수 없다.
“그걸 알고 나니까…… 그제야 행복해졌어요. 내 노력이 실은 나만이 아니라 내 주변까지 행복해지게 만들 수 있다는 걸 그때 안 거예요. 그때부터는 공부가 좋아졌어요. 빌어먹을 한국사회에 태어나서 당하는 고통이 아니라, 어느 나라 어느 위치에 있든 행복을 얻기 위해 지불해야만 하는 비용이란 걸 깨달았으니까. 내 마음에 안 드는 환경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리고 환경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회의하면서 행복해지는 사람은 없어요. 고통 받는 게 아니라 노력하는 거예요. 그 사실에 자부심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왕이될상인가 : 와..」
「왕이될상인가 : 그러면 안 힘들어요?」
“덜 힘들 거예요. 엄마아빠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일이 아니라, 두 분이 감격해서 막 울어버리게 만들기 위해서 하는 공부라면. 행동은 같아도 마음이 달라요. 물론 그렇게 노력을 해도 부모님이 인정해주지 않으실 수도 있는데, 그때는 아저씨한테 데려와요. 아주 혼쭐을 내드릴 테니까.”
「왕이될상인가 : ㅋㅋㅋ안대여 울아빠 완전쎄여」
“아닌데? 내가 더 센데? 아저씨 알통 보여줄까요?”
100이 된 ‘화술’은 그런 느낌이었다.
입이 저절로 움직여서 내담자를 단숨에 설득해내거나, 그런 형태의 초능력은 아니다.
다만 보다 명확한 대화가 가능해졌다.
소극적 경청과 적극적 경청을 어느 순간에 사용해야 좋을지 좀 더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게 됐고, 반영의 재진술과 명료화 과정이 깔끔해졌으며, 직면 역시 훨씬 더 부드러워졌다.
내담자의 기분에 적합한 농담은 덤이었다.
그리고 꼰대와 마스터의 구분이 무의미해졌다.
발화의 방식을 결정하는 건 나 자신이니 꼰대짓도 명언도 얼마든지 가져다 쓸 수는 있지만, 이제는 그런 것들에 의존할 필요가 없음을 아는 까닭이다.
마음의 색깔을 변화시킬 무수한 말들이 머릿속을 떠돈다.
그 진심을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제 좋은 상담사일 수 있었다.
심지어 그 변화는 무색무취하지 않았다.
‘외모’만큼 명확한 변모는 아니지만, 방송이 끝나갈 무렵에는 시청자들이 그 차이를 느꼈음을 알 수 있었다.
[마구니님 별사탕 1000개. 오늘 방송 좋았어요 크크. 재밌게 보고 가여 꼰마님.]
“마구니 후원자님, 감사합니다. 좋은 일에 쓰겠습니다. 솜사탕 리액션을…… 어…… 이건 좀 그만해야 될 것 같네요. 모니터까지 날아와서 붙어버리네. 죄송해요.”
[꼰마야놀자님 별사탕 500개. 안해줘도 돼여. 꼰마님 살찌겠당. 진짜 재밌었어여 시간 순삭이에여.]
“야놀자 후원자님, 감사합니다. 오늘 후원 너무 많이 하신 거 아닌가요? 제가 기억하는 것만 일곱 번인데.”
[케니H님 별사탕 2000개. 솜사탕 묻고 별사탕 더블로 가. 근데 오늘 별 진짜 많이 터졌네요 몇 개나 됐어요?]
“케니H 후원자님, 감사합니다. 그게…… 어…… 오늘 10만 개 넘겼네요. 게스트도 없이 너무 많이 받았는데요. 이러면 오늘은 케니G LP를 틀어드려야 되나.”
지난주 월요일에 이호정과의 합방으로 10만별을 달성한 뒤, 일간 후원은 4만에서 6만 사이를 맴돌았다.
월초에 많은 돈을 쓴 열혈팬들의 지출이 줄어든 까닭.
월급 나오면 추가로 충전하겠다는 후원자들에게 무리할 것 없다고 답한 게 여러 번이었는데, 그러던 와중에 게스트 하나도 없이 10만별을 달성하고 말았다.
“오늘 방송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 크루원들 방송도 진행 중이니까, 잠이 오지 않는 분들은 가서 봐주셔도 좋을 것 같네요. 편안한 밤 되세요. 그리고…… LP. 신뢰할 수 있는 이름. 지금 유튜브에서 화보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숙제 멘트까지 넣고 방송을 종료한 직후.
진대수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손뼉을 쳤다.
“와우……! 형님, 완전 물 오르셨는데요? 솜사탕 파워?”
“그건 아니고. 반응이 꽤 괜찮았지?”
“예압! 이 정도면 크루 괜히 했다는 생각까지 듬다. 아니 이게, 형님 말씀 잘하시는 건 알았어도 이렇게 막, 시청자들 쥐었다 폈다 하면서 따라오게 만드시는 건 처음 보는 거 같어요. 오늘 월요일이라 3만은 못 찍었는데, 중간에 나가는 애들이 거의 없었어요. 점점 느시는 것 같어. 마성이야, 마성.”
이벤트 하나 없이 2만 7천 시청자를 붙잡아뒀다.
어지간한 최상위 BJ들도 받기 힘든 10만별을 달성하며.
VR상담의 홍보나 전액 기부 선언 등이 호재가 됐다곤 하지만, 이건 정말 결코 있을 수 없는 수준의 성과였다.
그 충격적인 성장세가 되먹임 작용으로써 다시금 시청자들을 끌어들이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마성이라면 NBSC 쪽일 것이다.
내가 한 일이라고 해봐야 따뜻한 시선을 견지한 것뿐.
그것만으로도 무수한 상담의 기술들이 입속을 가득 채웠으니, NBSC의 위대함은 두말하면 입 아픈 것이었다.
그야말로 세상을 바꿀 무기였다.
“오늘도 고생했다, 대수야. 엘피 쪽은 어때?”
“흐름 최곱니다. 오늘 시청자들도 쪼르르 가서 다 시청해줄 것 같고, 바로 이슈 동영상으로 올라갈 거예요. 그래서 화제 끌고 매출 올라가고 그러면 다른 PPL도 쏟아질 각이죠. 이번에는 숙제 없이도 3천짜리 받을 수 있을지도.”
“그…… 영상이 평이 괜찮아?”
“엥? 아니 형님, 절 못 믿으십니까? 저 찐데스거든요? 애들 다 미쳤다고 이건 TV에도 띄워야 된다고 난리거든요?”
대수가 지휘한 엘피 홍보 영상은, 솔직 후기인 척하며 가식적인 찬사를 섞는 보통의 PPL과는 많이 달랐다.
편집자인 대수가 대본에 학을 떼는 성격인 까닭.
그렇다고 아예 직설적인 말들만을 할 수는 없었기에, 일종의 B급 정서가 기반을 이루게 됐다.
말하자면 쓸데없이 저퀄인 CF라고나 할까.
나는 그저 엘피 옷을 입고 벚꽃 아래를 걸었다.
그 영상 위에 약간은 낯부끄러운 멘트가 덧붙었다.
이를테면 ‘벚꽃 아래, 엘피와. 예쁜 바람이 분다.’ 같은 것들.
그게 반응이 좋은 건 대체 어째서인지 모르겠다.
‘화술’이 관장하는 게 상담의 기술만인 까닭이겠지.
마케팅 쪽으로는 대수에게 맡겨두는 게 상책일 듯했다.
그렇게 뒷정리까지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는, 딸애가 잔뜩 들뜬 표정으로 내 가방을 받아들었다.
“아빠 아빠!”
“어, 그래. 아빠한테 할 말 있어서 기다렸어?”
“어. 아빠, 나도 공부하기 싫어.”
“어…… 그래?”
“어.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야 되는 거라며? 그니까 나 유튜버 하면 안 돼? 과외 학원 안 하고 방송 하면 안 돼?”
“……일단 아빠가 하고 싶었던 말은 그게 아닌데. 우리 지수가 약간 듣고 싶은 대로 해석해버린 것 같은데?”
“아 왜? 공부 싫으면 하지 말라는 거 아니었어?”
“전혀 아니야. 지수야. 유튜버라곤 해도 기초적인 지식은 있어야 돼. 그래야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방송을 만들지.”
“아 왜…….”
“지수야. 과외 받기 싫어서 그래? 혹시 무슨 문제 있어?”
“아니거든? 아 됐어.”
이해할 수 없는 말만 하곤 방으로 들어가더라.
늘 그랬듯, 그 문제에 답을 내준 건 아내였다.
“당신 VR상담 보고부터 저러잖아.”
“응? 주민성 씨 상담한 거?”
“그래. 빨리 유명해져서 당신처럼 TOX랑 방송도 하고 그러고 싶은가봐. 속이 빤해 아주. 걱정하지 마, 내가 혼낼게.”
“이런. 공부 잘하면 방송국 데려가준다고 말해볼까?”
“어휴. 자기 딸 일에만 그렇게 오냐오냐 하시게요? 이제 애기 아니잖아. 공부가 수단이 돼선 안 돼. 진짜 꿈을 생각하면서 인생 플랜을 그리게 해야지. 당신 먼저 자.”
아내가 딸의 방에 들어간 뒤, 그 문을 보며 생각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란 게 참 다양한 것 같다고.
어떤 집에선 당장 성적을 못 내서 안달이고, 어떤 집에선 공부 못 해도 좋으니 스스로 생각하는 게 우선이라 하고.
둘 중 어느 쪽이 옳은 것일지는 알 수 없지만……
“아 알았다니까? 내일 한다니까?”
“내일 하지 말고 오늘. 우리 지수, 계획도 없이 무작정 내뱉는 그런 애였어? 생각도 없이 아빠한테 막 떼 쓴 거였어?”
“아니, 진짜 다 계획이 있거든?”
“그러면 그걸 계획표로 만들어서 제출을 해. 엄마랑 아빠가 그걸 보고 지수 계획을 이해할 수 있게. 알겠어?”
“아 알았다니까? 근데 지금은 잘 거라고. 진짜야. 계획이 다 있는데, 지금은 졸린 거야.”
“그래? 그런데 모니터만 꺼져 있고 컴퓨터는 켜져 있네? 엄마가 대신 끌-”
“아! 아앙, 아 진짜아…… 민쭈 직캠 좀만 보다 잘게…….”
“직캠 보고 수학숙제 끝내고 자. 둘 다 하든가, 둘 다 하지 말든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면 그게 짐승이지, 인간이니?”
“아 알았다니까…… 그냥 잘게.”
일단 내 딸은, 충분히 행복해 보인다.
투덜거리면서도 내심 엄마 뜻에 동의하고 있으니.
내 아내도 꽤 괜찮은 상담사인 모양이지.
아이들은 보통 그렇게 세 역동의 틈바구니에서 자라난다.
본능적인 욕망, 사회의 억제, 부모의 기대.
보통 사회가 가장 멀고, 사소한 모든 일상에서 본능의 충동을 부모가 케어해 사회 속으로 나아갈 길을 예비해준다.
그 와중에 갈등도 많이 발생하겠지.
하지만 대부분은 저렇듯 사랑과 진심으로 해소되는 것이다.
부모가 있는 아이들에 한해서는.
부모가 없는 아이들의 세상은 다르다.
불가분의 관계인 정서적 지지자가 곁을 지켜주지 않기에, 본능의 충동은 완고하고 강압적인 사회에 먼저 부딪친다.
사랑이 아닌 규율과 제도가 그들을 통제한다.
결과적으로 사회성을 함양하는 것은 동일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한 모든 문제들이 치유 없이 응어리로 남을 터였다.
특히 사회 전반의 편견이란 건 정말 무서운 벽.
가족이 있는 사람도 그 무게는 견디기 어렵다.
하물며 버림받은 기억이 뇌리에 박힌 경우라면…… 몰이해의 벽은 그들에게 더욱 잔인할 수밖에 없다.
작은 솜사탕 하나를 사줄 부모가 없기에.
그 아이들을 위해, 내가 솜사탕을 만들어야지.
비록 내 딸이 가장 소중해서 입양은 선택하지 못하지만, 적어도 세상의 벽을 두드리는 주먹질 정도는 해줘야지.
지금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 테니까.
「 성명 : 박대민 / 성별 : 남 / 연령 : 47
직업 : 상담사 Lv.11 (7/10)
관계 : 95 / 진단 : 100 / 화술 : 100 / 외모 : 72
“비소유적 온정” (관계 +10) 」
‘외모’를 제외한 모든 능력치가 100에 이르렀다.
방송인의 능력은 아니라도, 울림을 만들 수 있으리라.
세상의 벽을 흔드는 울림을.
이후 평일이 빠르게 흘러갔다.
그리고 <웃기고 앉아있네>의 녹화일인 금요일이 되었다.
“아, 오셨어요? 드디어 실물로 뵙네. 신태훈입니다.”
마침내 결전의 때가 도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