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321화 (외전) (321/325)
  • 외전 1화. 정복, 그 이후 (1)

    “세계 최고의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김태산. 이미 여러 종교 단체에서 김태산 대통령을 메시아로 인정했으며, 그의 업적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대단합니다. 바이러스, 테러, 그리고 전쟁의 위협에 시달리던 인류는 이제 더 이상 그런 공포에 시달리지 않아도 됩니다. 또한 직업 평준화로 모두가 공정하게 일을 하고 공정하게 돈을 받으며 사는 시대가 왔습니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업적은 모두 김태산 대통령이 만들고 있다는 것이 공통된 판단입니다.”

    오늘도 TV에서는 김태산에 대한 이야기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저런 뉴스를 오히려 좋아하고 있다. 김태산이 TV에 나올 때마다 환호성을 지르는 열렬한 팬도 다수 있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를 못마땅하게 여기며 불만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게 마련.

    “아주 지랄들을 하네.”

    다니엘 로페즈는 병째로 술을 들이켜며 TV에 나오는 김태산을 향해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그러자 앞에 앉아 있던 로이 루스테가 인상을 찌푸렸다.

    “왜 또 그래? 그리고 내가 좀 씻고 다니라고 했잖아. 사람이 그렇게 더러워 보여서 되겠어?”

    “입 닥쳐. 내가 내 마음대로 살겠다는데, 왜 네가 지랄이야?”

    그날 이후 완전히 폐인이 되어버린 다니엘이다. 로이는 그런 그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말했다.

    “다니엘. 이제 그만 미련을 버릴 때도 됐잖아. 벌써 5년이나 흘렀어. 솔직히 나는 쉬지 않고 일만 해야 하는 그 자리에서 벗어나 이렇게 편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몰라.”

    “병신 새끼.”

    다니엘은 코웃음을 쳤다.

    이런 자리에 만족한다고?

    다니엘 로페즈와 로이 루스테는 그야말로 세상 모든 걸 가진 남자들이었다.

    미국 장관들도 다니엘의 콜이면 바로 달려왔고, 미국 모든 기관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가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게 한순간에 무너져 버렸다. 자신의 손으로 만든 신에 의해!

    “난 도저히 용납할 수 없어.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달려왔는데. 그걸 한 번에 빼앗아 가?”

    “진정하고 한잔 더 마셔, 친구.”

    “이거 놔! 한잔이 아니라 몇 병이라도 더 마셔줄 테니까!”

    다니엘은 씩씩 입김을 뿜어내며 쉴 새 없이 술을 들이켰다. 그리고 또다시 꼴도 보기 싫은 김태산의 얼굴이 TV에 나오자 아예 술병을 던져 버렸다.

    “도대체 왜 자꾸 저 개새끼의 얼굴만 나오는 거야!”

    그러자 같은 술집에 있던 손님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야?!”

    “감히 대통령님께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저렇게 대단하신 분께 개새끼라니!”

    김태산 대통령의 전 세계적 지지율은 가히 압도적이다. 이 또한 다니엘과 로이가 언론을 움직여 만들어낸 성과다. 하지만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날아올 줄이야. 다니엘은 헛웃음을 터뜨리면서도 할 말은 꼭 했다.

    “저놈이 개새끼면 누가 개새끼야? 너희들 다 속고 있는 거야. 김태산이란 놈한테. 그놈은 너희들을 인간으로 보지도 않아. 너희들은 그냥 그놈의 노예라고. 몸에 베리칩 박혀 있는 놈들은 전부!!”

    “이 자식이!”

    “저 새끼 끌어내!”

    “아주 박살을 내버려!”

    성난 사람들이 다니엘에게 달려들자 그를 지키는 경호원들이 나섰다.

    “뭐, 뭐야 당신들?”

    “저리 안 비켜!”

    “감히 대통령님을 욕하는 새끼는 죽여야 돼!”

    다니엘은 낄낄 웃으며 술병을 들었다.

    로이는 고개를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죄송합니다. 저 친구가 술에 많이 취해서요. 모두 화 푸시고 TV는 따로 변상하겠습니다.”

    경호원들을 시켜 로이는 다니엘을 밖으로 끌어냈다. 그런 와중에도 다니엘은 몸부림을 치며 욕설을 멈추지 않았다.

    “이거 놔, 이 새끼들아! 내가 또 끌려 나갈 거 같냐?! 이거 놓으라고!!”

    그제야 사람들도 노기를 풀며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로이는 경호원들에게 끌려 나가 강제로 차에 탄 다니엘에게 말했다.

    “이제 그만 순응해. 시대가 변했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잖아. 그리고 마침내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 새로운 신까지 만들었지. 난 그것만으로 만족해.”

    “멍청한 새끼. 그러니까 네가 그 모양 그 꼴인 거야.”

    “아무렴 어때? 나만 편안하고 행복하면 좋은 거지. 우리가 그동안 죽인 사람이 몇 명인지 알기나 해? 그 죗값 안 받는 것만 해도 다행인 거야.”

    “…난 인정 못 해.”

    다니엘은 끝까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저러다가 일을 치는 건 아닌지 로이는 괜히 걱정스러웠지만, 지금의 다니엘로서는 어떤 것도 할 수가 없는 게 현실이다.

    김태산은 이미 저 꼭대기까지 올라가 도저히 손이 닿지 않고, 다니엘은 완전히 밑바닥으로 추락했으니까. 결국 시간이 모든 걸 치료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 * *

    “여기까지 어떻게 들어온 거요?”

    “뭐, 쉽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에는 방법이 있게 마련이죠.”

    술이 깨고 나서 다음 날 오후쯤이 돼서야 간신히 일어난 다니엘은 자신 앞에 앉아 있는 남성을 보고 눈을 껌뻑였다. 여기는 외부인이 들어올 수 없는 곳이다. 바깥에 있는 경호원들이 철통같이 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남자는 아무런 제재 없이 여기까지 걸어 들어왔다.

    “저는 골든 연합과 김태산의 정체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잘 안다고? 아마 절반도 모를 걸.”

    하지만 금방 남성에 대한 흥미가 떨어진 다니엘은 버릇처럼 술병을 땄다.

    이 술마저도 없었으면 진작 죽어버렸을지도 모른다.

    “내가 신고는 하지 않을 테니, 지금이라도 나가쇼.”

    다니엘의 선처에도 남성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거기 신고벨을 누르려면 누르세요. 저놈들한테 잡히진 않습니다. 그리고 당신도 영원히 제가 주는 기회를 받을 수 없겠죠.”

    근거 없는 자신감에 다니엘은 조금 흥미가 당겼다.

    “기회?”

    “예, 다시 한번 그 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 말입니다. 아까 말씀하셨죠? 제가 골든 연합과 김태산에 대해 절반도 모를 거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거의 모든 걸 알고 있죠. 김태산이 수십 억 명의 인구를 바이러스로 죽인 것과, 베리칩으로 인구 노예화를 시켰다는 걸. 그뿐입니까? 그를 신으로 추앙하게 만든 다니엘 로페즈 당신과 로이 루스테를 밑바닥으로 떨어뜨린 것까지.”

    생각 이상으로 이 남자는 골든 연합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겁도 없이 말하는 걸 보니… 설마 당신 칩을 안 맞았나?”

    “예, 만약 칩을 맞은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금방 잡혀가겠죠. 세계 정부에는 24시간 우리의 대화 내용을 전부 도청하고 있으니까요.”

    베리칩을 맞지도 않았고, 베리칩이 가진 숨겨진 기능도 알고 있다.

    “예전에 골든 연합에서 일했나?”

    “예, 김아름 대표님의 측근이었습니다.”

    “김아름? 그 여자의 측근이었다고? 그런데 어떻게 살아 있지?”

    “표면상으로는 죽은 걸로 되어 있습니다. 제가 해킹에는 소질이 있어서 말이죠.”

    해킹에는 소질이 있다라.

    김아름이 굴리는 사람들이 워낙 많다 보니, 다니엘 로페즈는 누가 누군지도 모른다. 하지만 철두철미한 그 김아름이라면 분명히 세계 최고들만 데려다가 썼을 터.

    “자네 말고 다른 사람들은?”

    “잘못된 이 세상을 바로 잡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도 모두 베리칩을 맞지 않았고요. 백신도 몰래 빼와서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합니다. 사실상 반군이라고 보면 되겠죠.”

    “미리 말해두는데, 자네들이 상대하려는 상대는 결코 만만치가 않아.”

    “그런 가요?”

    “인정하긴 싫지만, 사실이야.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업적을 올린 게 바로 김태산이야. 세계를 정복하겠다고 난리를 치던 지도자들이 한둘인 줄 알아? 하지만 김태산은 아주 은밀하게, 그것도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세계를 꿀꺽 삼켜 버렸어. 다른 사람이었다면 꿈도 못 꿀 일이지.”

    남성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다니엘 로페즈의 말대로 김태산이란 인물은 인류 역사상 가장 악랄한 업적을 세운 건 맞기 때문이다.

    “당신도 함께해 주시렵니까? 우리 측 정보에 의하면 당신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베리칩을 맞지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

    “맞아. 그런데 괜찮겠어? 이 집에 깔려 있는 CCTV와 도청기가 우릴 주시하고 있는데.”

    “괜찮습니다. 그건 미리 해킹하고 온 거니까요.”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드는 남자다.

    “아. 물론, 10분 후에 모든 게 다시 작동하게 될 겁니다. 우리 둘의 만남이 들키면 안 되니까요. 그래서, 여길 빠져나가기 전에 당신의 대답을 들어야겠습니다.”

    “나 같은 게 도움이 될까? 김태산 그놈이 날 완전히 박살 내버렸어. 더 이상 내게 남은 힘은 없다고.”

    “아니요. 아직 당신의 이름이 골든 연합에 끼치는 영향을 잘 알고 있습니다. 골든 연합 내부에서 당신의 말을 따를 사람이 있겠죠. 대충 생각나는 이름들이 있지 않으십니까?”

    역시, 이 남자는 철저히 조사를 하고 온 게 분명하다.

    다니엘은 몇몇 이름이 떠오르긴 했다. 과연 그들이 자신의 말을 들어줄지는 의문이지만, 시도해 볼 만한 가치는 있다. 어차피 이런 인생을 살다 죽느니, 크게 일 한번 터뜨리는 게 훨씬 낫지 않은가?

    “나도 손을 잡겠네.”

    “훌륭한 결정이십니다.”

    남성이 떠나려 하자 다니엘은 그를 붙잡고 물었다.

    “자네 이름이 어떻게 되나?”

    그러자 남성은 웃으며 대답했다.

    “김아현이라고 합니다. 김아름 대표의 친동생이고요.”

    “……?!”

    그리고 김아현은 유유히 철통같은 보안을 뚫고 밖으로 나갔다.

    마치 귀신을 본 듯했지만, 한편으로는 알 수 없는 두근거림이 느껴졌다. 이런 기분은 정말 오랜만이지 않은가.

    다니엘은 술로 가던 손을 멈췄다. 당분간 알코올이 없어도 될 것만 같다.

    * * *

    [우리는 자유를 원한다!]

    [김태산은 우리 모두를 속이고 있다!]

    [우린 그의 노예가 되었다. 이제 자유를 되찾자!]

    나관중이 그런 말을 했다.

    천하는 여러 개로 나뉘어 있으면 언젠가 하나로 모이고, 하나로 모여 있으면 언젠가 다시 여러 개로 나뉜다고. 그 안에는 항상 반군의 존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자유를 되찾고 억압에서 벗어난다는 명분하에 사람들은 항상 반란을 꾀한다. 하지만 결국 그들도 같은 맥락이 아닌가?

    그들이 원하는 건 자유가 아니다. 그들이 원하는 건 바로 나처럼 누군가를 통치하고 싶은 것이다. 물론 그들은 그것을 부정하겠지만, 사람 속내는 다 똑같다. 누군가 위에 서고 싶다는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으니까.

    아마 이러한 움직임도 그런 욕망에서 시작된 것이리라.

    “이번에 인터넷상에 뿌려진 내용들. 그리고 거리에 부착된 것까지……. 우리 정부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반군들인 거 같은데. 조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죄송한 말씀이지만, 현재 그들이 누구인지 또 행동반경이 어떻게 되는지도 알아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베리칩을 맞지 않은 사람들인 것으로 판단됩니다.”

    아직도 베리칩을 맞지 않은 놈들이 멀쩡히 살아 있다는 것에 놀랐다. 하지만 이번 기회로 그들에 대한 존재를 알았으니, 오히려 내게는 다행인 건가?

    “인터넷 통제를 확실하게 하세요. 그리고 반군의 존재를 알았으니, 반드시 잡아야 합니다. 사회를 문란하게 만들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우주 개척 사업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을 때다. 이런 때에 불순물이 나오면 안 된다.

    “예, 대통령님.”

    그래도 이들의 움직임이 참 기특하다.

    그동안 누구도 내게 반항을 하지 않아 심심하던 차였는데, 이번 기회에 누군가를 적으로 상대한다는 희열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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