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화. 정복, 그 이후 (2)
바이러스와 인류의 파멸로 인해 제정신이 박힌 사람들도 의지할 신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인류는 세상을 구원할 신으로 나를 선택했다. 그렇게 시작된 세뇌 교육은 살아남은 인류에게 희망을 주었고 버팀목이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그래서 내가 큰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선동에 말이다.
“우리는 진실을 따르는 자들이다. 당신들은 모두 속고 있다. 김태산 대통령은 골든 연합이란 것을 만들어 바이러스를 퍼뜨렸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베리칩을 박아 당신들을 모두 노예화시키기 위해서!”
인터넷을 통해 대자보를 뿌리던 반군들은 이제 아예 동영상까지 촬영해 이 거대한 음모를 속속히 밝혔다.
“김태산 대통령은 오래전부터 골든 연합을 만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골든 연합을 통해 빠르게 세계 정치권을 장악해 나갔고, 마침내 지금에까지 온 것입니다. 당신들은 속고 있어요. 이제 그만 정신 차리고 일어나십시오. 우리의 손으로 자유를 되찾을 때입니다!”
음성 변조와 가면을 쓰고 있어 동영상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들은 아이피를 추적해도 단서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철두철미하다. 그러나 그런 철저함과는 달리 성과는 달랐다. 시민들이 저들의 말을 듣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음모론이야 옛날부터 나온 거 아닙니까? 김태산 대통령님께서는 우리 인류를 위해 살신성인의 자세로 노력하셨습니다. 그런 위대하신 분을 항상 음해하려는 세력들이 왜 없겠습니까?”
“김태산 대통령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리더이십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우린 인류 종말이라는 위협에 놓여 있었잖아요. 그걸 발 벗고 나서서 해결하신 분이 김태산 대통령님이고요. 특히 대통령님의 과거 이력을 보면 도대체 무슨 근거로 음모론을 주장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과거에도 선행이란 선행은 전부 베풀고 다니시며 희생정신으로 무장을 하셨으니, 국민들이 어떻게 안 좋아할 수 있을까요? 국민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저 정치인이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 왜냐하면 우리도 사람이기 때문에 상대방의 진심을 느낄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김태산 대통령님은 매순간 진지하게 우리를 위해 희생하고 계십니다. 전 느낄 수 있습니다.”
열렬한 나의 지지층들을 무너뜨리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저들을 보라.
얼마나 많은 이들이 내 이름을 칭송하고 있는가. 지금쯤 선동질을 하고 있는 반군 놈들도 김이 다 샜을 것이다.
“놈들이 브리핑을 하는 영상을 보니, 우리 골든 연합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 같더군요. 우리 골든 연합의 일원이 아닌 이상,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입니다.”
“내부의 소행이라고 보십니까?”
“내부의 소행이었다면 진작 밝혀졌겠죠. 모두 베리칩을 심어놓았으니까요. 하지만 내부의 소행이라는 단서가 없어요. 그렇다는 건 우리가 예전에 제거한 사람들 중 하나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뜻이 되겠지요.”
내 말을 들은 총리들의 안색이 살짝 굳어졌다.
골든 연합 내부에서도 제거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물론,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어 놔두고 있는 거지만, 예전에는 솎아낼 필요가 있어 크게 엎은 적이 있지 않던가.
“다시 한번 조사를 해야겠습니다. 누가 망자인 척을 하고 있는지.”
“예, 대통령님.”
꽤 재밌는 추격전이 될 것 같다.
과연 어떤 놈이 망자를 자처하고 있는 것일까?
* * *
“내가 말했지? 쉽지 않을 거라고.”
“정말 그렇더군요. 다시 한번 김태산 대통령의 무서움을 몸소 느꼈습니다. 지지층이 이렇게 두터울 줄이야.”
“당연하지. 그 사람이 철저하게 세뇌를 시켜 버렸으니까. 아마 백날 떠들어도 누구 하나 우리 얘기를 들어주지 않을 거야.”
처음에는 당당하게 자신을 스카우트 했던 김아현이지만, 지금은 조금 주눅이 들어 보였다.
인터넷에 영상을 올리고 길거리에도 대자보를 붙이면 사람들이 조금은 선동될 줄 알았는데, 막상 까보니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이었다.
“사람이란 게 원래 그래. 환경에 갇혀 버리면 그 환경을 쳐부술 만한 큰 충격이 없는 이상 절대 거기서 빠져나올 수가 없어.”
“뭔가 뼈 있는 조언이군요.”
“우리가 그랬으니까. 전 국민에게 베리칩을 이식하겠다는 미친 생각을 가능하게 만든 게 바로 골든 연합이야. 우리가 그냥 무작정 베리칩을 박아버린 줄 알아? 폭탄 테러라는 큰 충격으로 전 세계의 환경을 부셔 버렸어. 엄청난 충격을 국민들에게 준 거지.”
뭔가를 주입시키려면 먼저 그 환경을 부셔야 한다라…….
다니엘이 아주 좋은 조언을 해주었다.
“그 환경을 부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사람아. 반군의 지도자라면서 그거 하나 몰라? 당연히 윗대가리를 잘라야지. 김태산이 죽는다고 생각해 봐. 순간 세상은 혼돈에 빠지게 되어 있어. 왜냐하면 김태산 그 작자는 절대 후계자를 남기지 않고 있거든. 아마 지금쯤이면 완성이 됐을 거야.”
“완성이 됐다고요? 어떤 게 말입니까?”
“불멸의 인생을 살 수 있는 기술.”
김아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대꾸했다.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자네, 우리에 대한 정보를 다 갖고 있는 게 아니었구먼. 하긴. 골든 연합 내부에서도 이 일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으니까.”
“그게 무슨…….”
“잘 들어. 김태산은 아주 오래전부터 불멸자가 되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했어. 그리고 마침내 방법을 찾았지. 이번 바이러스 사태로 살아남은 생존자들 중 건강한 신체를 가려내 인체 실험을 자행한 거야. 그것도 엘리트 집단을 모아서 말이지. 그리고 마침내 결과를 얻었지. 이미 임상 실험도 거쳤고. 이제 김태산은 죽을 일이 없어.”
김아현은 눈을 부릅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짓말이죠? 그런 공상 과학 같은 게 가능할 리가…….”
“가능해. 윤리적인 문제로 각 정부에서 막았던 거지. 하지만 지금은 가능해. 김태산은 수천, 수만 명의 실험용 인체를 계속해서 연구소에 지원하고 있으니까. 일본이 옛날에 화학 기술로 엄청난 발견을 많이 했잖아. 그게 어떻게 가능했는지 알아? 2차 세계대전 때 생체 실험을 자행했기 때문이야. 지금도 똑같은 경우지.”
숫자를 생각하지 않고 있는 대로 인체 실험을 감행한다면 당연히 과학 기술은 엄청난 발전을 이룩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윤리적인 문제로 인해 생체 실험을 하지 못했지만, 수십 억 명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죽인 김태산이 그런 윤리를 따지겠는가?
“내가 마지막으로 정보를 받은 건 거기까지야. 그게 몇 년 전이니까 이제 다 완성됐겠지. 김태산은 절대 늙어서 죽지 않아. 당신이 죽여야지. 잘 생각해 봐. 김태산이 죽으면 후계자가 없기 때문에 골든 연합 멤버들은 너도 나도 제2의 김태산이 되려고 발버둥을 치겠지. 그땐 아마 전쟁도 일어나고 세상이 많이 시끄럽겠지만, 환경이 파괴된 국민들에게 새로운 사상을 주입시키는 아주 좋은 시기이기도 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김태산을 죽여야겠군요.”
“그래. 바로 그거야.”
“하지만… 김태산을 죽이는 게 과연 쉽겠습니까?”
“뭐, 쉽진 않겠지. 그래서 동료가 많이 필요한 법. 내가 연락하라는 곳에는 전부 연락했지?”
“예. 예전에 당신을 따르던 추종자들에게는 연락을 다 넣었습니다. 모두 당신의 뜻에 따르겠다고 했고요.”
다니엘은 안심이 됐다.
이제 다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자신의 사람들은 여전히 골든 연합에 남아 있었다.
“다음으로는 이 사람을 포섭해 봐.”
김아현은 다니엘이 건네 준 이름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이 사람은…….”
“김태산 대통령에게는 아주 쌓인 게 많은 친구야. 우리 계획에 분명 동참할 테고.”
지금까지 만나본 사람들 중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다. 만약 이 사람을 반군에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김태산을 죽이는 게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 * *
“절 만나자고 하셨다고요?”
김아현은 대한민국을 관리하고 있는 장연욱 총리 앞에 앉았다.
“예, 만나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다니엘 로페즈의 추천서와 더불어 그 유명한 반군의 지도자라……. 이건 안 만날 수가 없죠.”
장연욱은 김아현 앞에 잔을 내려놓았다.
“한잔하시겠습니까?”
“감사합니다.”
서로 잔을 부딪히면서 장연욱이 말했다.
“좀 의외이긴 하군요. 반군의 지도자가 한국인이었다니.”
“세계 대통령이 한국인인데, 반군의 지도자도 한국인이어야 맞지 않겠습니까?”
“하하. 그런가요?”
김아현은 슬쩍 주변을 살펴보았다.
혹시라도 갑자기 요원들이 들이닥쳐 자신을 체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걱정을 장연욱이 날려주었다.
“괜찮습니다. 누구도 당신을 체포하려 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이거 보이십니까? 이건 우리나라에서 비밀리에 제작한 건데, 이게 있으면 내 몸에 있는 베리칩이 도청을 할 수가 없죠.”
작은 스피커처럼 생긴 장비가 베리칩에 있는 기능을 방해하는 것 같았다.
“그 말씀은, 저희 반군과 손을 잡으시겠다는 겁니까?”
“뭐, 일단 얘기는 들어봐야겠죠? 무작정 손을 잡는 건 이상하지 않습니까. 난 당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반군의 규모도 모르니까요. 하지만 이거 하나는 같습니다. 나도 당신처럼 김태산을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싶다는 것.”
“그렇다면 저도 편하게 말씀을 드리죠. 현재 반군을 따르는 사람들은 총 3,500명입니다.”
3,500명이라.
장연욱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세계 대통령을 끌어내리기 위한 인원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다니엘 로페즈의 추종자들, 그리고 장연욱 총리님의 측근들이 힘을 합친다면 김태산 대통령을 암살할 기회를 충분히 노릴 수 있을 거라 판단했습니다.”
“김태산을 암살?”
“예, 그를 암살하게 되면 후계자가 없는 관계로 골든 연합은 분명히 분열에 휩싸일 겁니다. 그동안 우리는 국민들에게 새로운 정보를 주입하면 되고요. 신이라고 떠받들던 김태산은 사실 신이 아니었고 거짓말쟁이였다는 것을 말입니다.”
나쁘지 않은 계획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어떻게 김태산을 암살하느냐가 관건이었다.
그가 죽지 않는 이상, 모든 건 다 허상에 불과하다.
“후계자가 없다는 건 잘 알고 있군요.”
“예. 이미 불멸을 손에 넣었다는 걸 들었습니다.”
“거기까지 정보가 있었습니까? 생각보다 정보망이 넓은데요? 하지만 문제는 역시 김태산을 암살하는 것이죠. 그 후의 일은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그것만 집중을 합시다.”
“예.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장연욱은 잠시 고민하는 얼굴을 짓고 있다 입을 열었다.
“그렇지 않아도 김태산 대통령이 순방 목적으로 각국을 돌게 될 겁니다. 그 첫 행선지는 바로 여기, 대한민국 서울이 되겠죠. 그땐 나와 같이 있을 테니, 내가 기회를 만들어보겠습니다.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2주일 뒤. 가능하겠습니까?”
“예, 김태산을 죽일 수 있는 적절한 타이밍만 만들어진다면 가능합니다. 우리에게도 실력 좋은 스나이퍼가 있거든요.”
“좋습니다. 그럼, 이걸로 우리 연락을 나누도록 합시다.”
장연욱이 준 장비는 굉장히 구식적인 통신기였다.
“옛날 군부대에서 사용하던 무전기 같은 겁니다. 추적이 불가능한 것이니, 이걸로 우리가 신호를 주고받으면 됩니다.”
장연욱의 미소에 김아현도 비슷한 미소를 지었다.
이 둘은 지금 같은 목표를 바라보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총리님.”
“아니요. 오히려 내가 당신한테 감사하군요. 이번 기회를 절대 놓치지 맙시다.”
“예. 그럼…….”
김아현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유유히 총리실 밖으로 나가 버렸다.
장연욱은 다시 자리에 앉아 길게 숨을 내쉬며 술잔을 들이켰다. 오늘따라 술이 참 쓰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