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289화 (289/325)
  • 289화. 첫 업무

    “역대 최고 득표율로 당선이 된 김태산 당선인. 화진 그룹 회장의 자리로 올라서기까지 참 많은 일이 있었죠. 특히 IMF 때 솔선수범한 모습으로 국민들의 감동을 얻고 그 외 외교적인 문제를 원만하게 풀어나가 차기 대통령감이라는 여론이 많았습니다.”

    “예, 말씀하신대로 김태산 당선인이 지금처럼 많은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건 솔선수범과 청렴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김태산 당선인에게 올바른 기업인상을 줄 만큼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 청렴함의 상징이 되었죠.”

    “앞으로도 김태산 당선인이 솔선수범과 청령함으로 이 나라에 깊이 박혀 있는 부정부패를 모두 척결해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내가 당선이 되고 나서부터 언론인들은 가지각색으로 날 칭찬하기 바빴다.

    현재 대한민국 언론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바로 골든 연합. 이들이 원하는 입맛대로 기사를 내지 않으면 기자들도 자신의 인생이 끝장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날 칭찬하는 것이다. 물론, 저들도 내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제일 밑바닥에 있는 기자들이 무슨 수로 내 위치를 알고, 또 무슨 수로 골든 연합이라는 걸 알겠는가? 이들은 골든 연합이라는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고 이 실체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 또한 이창석이 벌인 국정농단 또한 조작되었다는 것도 전혀 알지 못한다.

    이들은 그저 위에서 내려오는 지침에 따라 앵무새처럼 떠들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뉴스를 보고 있는 국민들은 성군이 나왔다고 박수를 치며 좋아한다.

    참으로 우매한 인류가 아닌가.

    언론을 장악하는 것이 곧 권력을 장악한다는 말이 틀리지 않다.

    국민들은 거짓 선동과 뉴스에 넘어가 나를 최고로 청렴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실상은 나보다 더러운 짓을 많이 한 놈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저들은 모른다.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여왔고,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이 죽일지.

    이들에게는 진실의 눈이 없기 때문이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취임식에 서게 된 나는 스스로를 낮추며 포부를 밝혔다.

    “저의 목표는 깨끗한 대한민국입니다. 청렴함을 최우선 목표로 삼아왔고 단 한 번도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운 짓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자리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그 의지는 더욱 강해졌습니다. 왜냐하면 나를 바라보는 사람이 많을수록, 제 작은 행동에도 큰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5,000만 국민의 주목을 받고 있는 지금, 전 항상 그랬듯 정의롭고 깨끗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맹세합니다. 국민 여러분께서 언제나 매의 눈으로 제 모든 행동을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나의 취임식은 한국에서만 방영되는 것이 아닌, 세계 곳곳에서 방송되고 있다.

    취임식이 끝나고 나서부터는 정식으로 대통령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예상은 했지만 너무 많은 일이 쏟아져 나와 정신이 없었다.

    이창석이 하야를 하면서부터 일이 밀려 그렇게 된 것도 있고, 대통령이라는 직책 자체가 대만민국에서 가장 많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축하드립니다, 대통령님. 이제 숨어서 만날 필요가 없겠군요.”

    “하하, 언제 우리가 숨어서 만났다고 그러십니까. 조만간 러시아를 한번 방문하겠습니다. 환대를 해주셨으면 좋겠군요.”

    “물론입니다. 언제든 와주십시오.”

    지금쯤 푸틴은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을 것이다.

    내가 잠시 실종되었을 때, 한국, 중국, 미국, 그리고 일본 등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은 각자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지도자들이 열을 내지 않았던가. 하지만 러시아는 그냥 상황을 방관하기만 할 뿐, 골든 연합에 어떤 제재도 가하지 않았다.

    자국 경제를 살려주고 있는 골든 연합을 쫓아내 봤자, 러시아의 손해라는 걸 푸틴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아직 러시아 정권에 손을 댈 필요성을 못 느껴 그곳에서 회사만 운영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푸틴은 날 배신하지 않은 것이다.

    서로 윈윈하는 전략을 지금까지 잘 쓰고 있으니까.

    그에 반해 다른 나라들은 고개를 숙이기 바빴다. 특히 일본이 가장 심했다.

    “대통령님의 취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고이즈미 총리가 직접 전화를 걸어 내 취임을 축하해 주었다. 최근 사건으로 인해 일본과 나의 관계는 상당히 악화된 상태. 솔직히 말하면, 난 이런 관계를 원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현재 골든 연합의 압박으로 점점 궁지에 몰리고 있는 상황.

    나를 배신한 지도자들 모두 어떤 꼴을 당했는지 그는 알고 있지 않은가?

    일본에서도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진심으로 축하해 주시는 게 맞습니까?”

    나의 반문에 고이즈미는 살짝 당황한 어투로 대꾸했다.

    “다, 당연한 말씀을 하십니다.”

    “하하, 정말 그렇다면 참 뻔뻔하시군요.”

    “예?”

    “일본이 제게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아니, 고이즈미 총리님이 그동안의 제 성의를 어떤 식으로 되갚았는지 잊으신 겁니까?”

    “…….”

    “저는 아마 영원히 잊지 못할 겁니다. 그래서 말인데, 조만간 한국으로 한번 넘어오시죠. 한일 정상회담을 가장 먼저 갖고 싶군요.”

    “저, 저기…….”

    “총리님, 우리나라와 중국, 그리고 미국에서 일어난 일들. 이게 전부 우연이라고 보십니까?”

    고이즈미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여러 지도자들이 사퇴하거나 강제로 밀려나는 초유의 사태가 여러 강대국에서 일어나지 않았던가. 이것을 결코 우연이라고 볼 수 없으리라.

    “시간을 잡으세요. 그리고 직접 얼굴을 보면서 얘기합시다.”

    “…예, 알겠습니다.”

    지금쯤 고이즈미는 똥줄이 탈 거다.

    최정식을 필두로 현재 골든 연합은 일본 경제를 마구 흔드는 중이다. 그로 인해 국민들의 원망은 저절로 고이즈미에게 향하고 있는 상태. 그의 총리직이 위험하다는 언론이 나올 정도니, 그의 상황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나는 고이즈미와의 통화를 끊고 이제 대통령 비서실장이 된 류정한에게 시선을 돌렸다.

    “내가 예전에 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들이 많을 거야. 잘할 수 있지?”

    내 물음에 류정한 비서실장은 문제없다는 듯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대통령님.”

    대통령 비서실장이란 자리는 큰 파워를 자랑한다.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와 항상 붙어 있는 것이 비서실장이지 않은가?

    그래서 비서실장은 정치적인 머리가 있어야 하며 여러 의원들과도 두루 친분을 쌓아야 하는 어려운 직업이다. 이를 대비해서 성일환이 그런 것들도 교육을 시키긴 했다는데, 그건 두고 봐야 하는 일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에서 각각 이번 장관 선출에 대한 후보 리스트를 보내왔습니다.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무소속 당선이라는 쾌거를 이뤄내면서 국회에는 여당도, 야당도 있지가 않다. 하지만 내가 절대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 국민들은 내가 무소속임에도 의원들을 잘 휘두르기만 한다는 걸 뉴스를 통해 보게 될 것이다. 그럼, 나를 향한 그들의 지지는 더욱 높아질 터.

    이번 장관 선출부터가 국민들의 눈을 속일 아주 좋은 미끼가 될 것이다.

    “내가 분명히 각 당의 의원들한테 말했을 텐데? 자기들과 상관없는 사람들을 장관 후보로 내세우라고. 그런데 이 양반들이 정치권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고 확실할 수 있나? 여기 몇몇은 눈에 익는데?”

    “대통령님이 하시는 일에 힘이 될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정치권과 아예 관련이 없는 사람들 중에서 능력을 검증하는 건 아무래도 힘든 일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못 하겠다고 이렇게 휙 리스트를 던져 버리면 다야?”

    나는 류정한에게 목록이 적힌 서류를 던졌다.

    “이 새끼들이 지금 누굴 엿 먹이려고. 내가 이런 일을 한두 번 해보는 줄 아나. 이거 엎으라고 해. 이틀 안에 새로 만들어서 가져오라고 하고. 그리고 각 당 대표들 전부 청와대로 불러.”

    “예, 대통령님.”

    대통령 임기 시작 첫날부터 핀트가 어긋나면 안 된다.

    의원들과의 기 싸움에서 지면 앞으로도 평생 끌려다녀야 하는 것이 정치판이다.

    이럴 땐 세게 나가는 수밖에 없다.

    “대통령님, 김정은 위원장으로부터의 전화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전화가 늦으셨네요, 위원장님.”

    “하하, 죄송합니다. 이래저래 일이 많아서요.”

    “일의 중요도가 그 귀한 자리보다 더 중요한가 보죠?”

    “…예?”

    말귀를 못 알아먹는 김정은에게 나는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내가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었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몰라서 그래? 앞으로 너와 내가 맞춰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다는 거야. 그런데 시작부터 그 자세로 나오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네놈을 갈아치우고 새로운 사람한테 그 자리를 맡겨야 하나?”

    김정은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그가 마른침을 삼키고 있다는 걸 난 느낄 수 있었다.

    “널 대신해 북한을 맡아줄 사람은 아주 많아. 그리고 내가 잠깐 실종됐을 때, 네가 군 간부들을 모아 구린 짓을 하려 했다는 것도 익히 들어 알고 있어. 그런데도 내가 널 살려두는 이유는 간단해. 군 간부들 중 아무도 널 따를 생각이 없기 때문이야. 뭐랄까……. 애잔하다고 해야 하나?”

    내가 로스차일드의 공격을 받고 실종되었다는 소식이 퍼지기 무섭게, 북한의 김정은은 군 간부들을 소집해 절대 왕조를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우스운 건, 누구도 김정은의 명령을 따르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자기들끼리 서로 치고받고 싸우며 김정은을 몰아내 새로운 수장이 되려 했다.

    그런 나라 꼬라지를 보고 김정은은 자포자기하며 술과 여자에 빠져 산다고 한다.

    김일성 때부터 시작된 김씨 일가가 완전히 몰락한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다시 돌아오면서 김정은은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그나마 그런 생활을 쭉 이어가고 싶다면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해. 쥐도 새도 모르게 뒤지고 싶지 않으면. 알겠어?”

    “…….”

    “왜 대답이 없어? 알겠냐고!”

    “예. 아, 알겠습니다.”

    나는 흥분했던 목소리를 풀고 다시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그래서, 위원장님. 제가 곧 외교 제스처를 취하게 될 겁니다. 그땐 좋은 말씀으로 화답해 주십시오. 남북이 평화를 유지하고 서로 힘을 합친다면 누가 우릴 넘보겠습니까? 그리고 회담 장소는 판문점이 어떻겠습니까? 상징적으로도 굉장히 좋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하하, 흔쾌히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성명서를 만들어서 국민들에게 이 좋은 소식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남북한이 하나 되어 뜻을 모은다면 온 세계가 우리의 업적을 널리 밝히게 될 것입니다.”

    김정은과의 전화를 끊고 나는 편안한 소파에 몸을 기댔다.

    줄곧 내 통화 내용을 듣고 있던 류정한은 어느 때와 다름없이 두려움과 경외 담긴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한아.”

    “아, 예. 대통령님.”

    “만약 돈과 권력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한다면 반드시 권력을 선택해. 권력이 있으면 돈도 따라오게 마련이니까.”

    “예,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앞으로 류정한은 대통령이 된 김태산이란 남자의 막강한 권력을 옆에서 지켜보게 될 것이다. 가증스럽고 역겨운 인간의 본성을 보게 되겠지만, 그것이 권력을 잡은 자의 참모습이라는 걸 부정하지 못할 터.

    “마음 같아서는 우리 집에서 업무를 보고 싶은데 말이야.”

    솔직히 오래된 청와대보다 차라리 내 집이 더 넓고 더 화려하다.

    진짜 마음 같아서는 여기 보다 훨씬 좋은 집에서 업무를 보고 싶지만, 국가의 원수가 된 이상, 희생해야 할 부분이 있지 않겠는가.

    그래도 조금만 있으면 청와대도 금방 적응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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