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290화 (290/325)

290화. 사죄 (1)

“김태산 대통령은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미국이 아닌, 일본과 가장 먼저 정상회담을 가지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그동안 한국과 일본이 겪은 외교적 갈등을 풀어낼 예정이며, 위안부 문제와 독도 영유권에 대한 문제를 확실히 매듭짓겠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한일 정상회담이 가장 먼저 개최된다는 소식에 국민들은 반색을 표했다.

항상 관례처럼 대통령들은 미국과 먼저 회담을 갖지 않았던가. 하지만 나는 미국이 아니라 한일 정상회담을 최우선시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동안 일본을 향한 케케묵은 우리나라의 한을 한꺼번에 풀어버리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국민들은 이번에도 그냥 보여주기 식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제까지 모든 대통령들이 독도 문제와 위안부 문제를 거론했지만, 누구도 해결하지 못했으니까. 이번에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지 반응이 미지근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저들의 반응은 폭발적으로 바뀔 것이다.

“먼 길 오느라 고생이 많으셨겠습니다, 총리님.”

“환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이즈미 총리는 긴장감이 역력한 얼굴로 나와 악수를 나눴다. 카메라들이 우리를 집중 조명하고 있는 가운데 그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나와 만담을 나누는 척했다. 그리고 청와대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기자들의 출입을 막고 고이즈미와 단둘이 집무실에 앉았다.

난 시가부터 꺼내 입에 물어 그에게 라이터를 던져 주었다.

“불 좀 붙여주지?”

“예? 아, 예.”

그는 땅바닥에 떨어진 라이터를 주워 내 시가에 조심스레 불을 붙였다.

“청와대에서 입장 밝힌 거 들었지? 위안부 문제, 그리고 독도 문제. 이 두 가지부터 해결해야 서로간의 오해가 안 생기겠지?”

“저기… 위안부 문제는 진실 여부를 먼저 따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국제적으로도 지금 소송을 진행 중이고요.”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고이즈미를 노려보았다.

감히 내 말에 토를 달아?

“총리직을 좀 하더니, 이제 슬슬 그 자리가 지겨운가?”

“예?”

“내 명령을 그따위로 무시하려고 여기까지 날아온 거면 당장 돌아가!”

“회, 회장… 아니, 대통령님.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내가 지금 뭐 큰돈을 내놓으라고 했어? 그냥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제대로 사과를 하라고 말하는 거잖아. 그런데 감히 너 따위가 내 말을 무시해?”

“대, 대통령님.”

“시끄러워! 난 분명히 말했어. 내가 만족할 정도의 사과. 그거면 되는 거야. 만약 이번에도 내 말을 무시한다면 그땐 나도 가만있지 않아. 너만 부숴 버리는 게 아니야. 일본 전체를 다 박살 내버릴 거야. 명심해. 난 한다면 하는 인간이니까.”

고이즈미는 살짝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내가 몰아붙이기만 하니, 저놈도 정신이 없을 것이다.

“총리.”

“예, 대통령님.”

“내가 흥분해서 목소리를 높이긴 했지만, 난 한번 내뱉은 말은 반드시 지켜. 일본이 불바다가 되는 걸 보고 싶지 않다면 내 말 듣는 게 좋아.”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코웃음을 쳤겠지만, 내 입 밖에서 나온 말은 그 무게가 다르다.

나는 전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가졌다.

유럽을 장악하고 있던 로스차일드가 어떻게 붕괴되었는지 고이즈미는 직접 목격하지 않았던가? 내가 부수겠다고 선언하면 정말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걸 이놈은 알고 있다. 그래서 내 말을 무시하지 못 하는 것이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이제야 내가 원하는 물음을 하고 있다.

“말했지? 내가 만족할 때까지라고. 그쪽 진영으로 돌아가서 당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 뭔지 잘 생각해 와. 내 마음에 들면 그대로 진행을 하는 거고,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짜오는 거야. 알겠지?”

“그렇게 하겠습니다.”

“좋아, 다음 안건은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 논의하도록 하지. 일단은 밖으로 나가서 식사도 하고 포토도 몇 개 찍자고. 국민들이 원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우리 같은 사람들의 의무가 아니겠어?”

“예, 대통령님.”

나는 고이즈미와 함께 집무실 밖으로 나서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같이 식사를 하는 장면도 보여주면서, 그야말로 보여주기식의 외교를 펼쳤다. 하지만 식사를 하는 내내 고이즈미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앞으로 생각해야 할 게 많을 테니, 지금도 머리가 터질 지경일 터. 나는 그저 조용히 기다렸다. 저놈이 확실하게 엎드릴 때까지.

* * *

“김태산 대통령은 일본 정부에 위안부 사과를 강력하게 촉구하였음을 밝혔습니다. 고이즈미 총리는 심사숙고해서 결과를 알려주겠다고 대답했으며, 이번 회담으로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다고 청와대는 예측했습니다.”

뉴스에는 온통 위안부 문제로 시끄럽다.

고이즈미 총리는 한숨을 푹 내쉬며 자신과 함께 따라온 수뇌부에게 물었다.

“김태산 대통령이 내게 최종 답을 요구했습니다.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라고요.”

“그건 국제 소송이 걸려 있는 일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국제 소송이 걸려 있는 일을 왜 우리가 파기시키고 보상을 해줘야 한단 말입니까? 만일 여기서 보상을 하게 되면 저들은 또 다른 걸 요구할 게 뻔합니다. 강하게 나가셔야 합니다, 총리님.”

수뇌부들의 대답에 고이즈미는 어이가 없었다. 지금 상대가 정말 작은 나라의 대통령 따위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지금 다들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거 같은데, 나한테 요구를 한 사람은 그냥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아니에요. 무려 미국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진 인물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그 말을 그냥 거부하자? 소송을 핑계로?”

“총리님, 김태산 대통령은 결국 한 나라의 대통령입니다. 아무리 골든 연합이 크다고 해서 이미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묶여 있는 작자가 무슨 짓을 꾸밀 수 있겠습니까? 만일 일본에 해가 되는 짓을 하게 되면 우린 군사력으로 응징하면 됩니다.”

고이즈미는 머리가 아팠다. 지금 이놈들은 아직도 사태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다니.

“미국 대통령이 멍청해서 김태산에게 쩔쩔 매는 줄 압니까? 펜타곤이 있는데도 미국 대통령이 김태산 말에 어쩔 줄을 몰라 하냐, 이 말입니다.”

“총리님, 그건…….”

“시끄럽고 사태를 명확하게 바라보세요! 이미 예전에 우리나라 군부가 김태산 손에 들어갔어요. 군부 간부들 중 누가 김태산의 수족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군사적 응징을 하자? 이게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만약 군사적 응징을 나섰다고 해서 미국이 그걸 지켜만 보고요?”

“…….”

고이즈미는 손을 휘저으며 얼른 방안을 내놓으라고 촉구했다.

“위안부 사건을 어떻게 해결할지, 그것부터 생각하세요. 김태산이 내게 분명히 말했습니다. 이번 사태를 해결하지 못하면 일본을 부숴 버리겠다고요.”

“그 사람이 협박까지 했다는 겁니까?”

“예, 충분히 그럴 만한 힘이 있으니까, 그런 건방진 소리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정말로 그가 작정하고 움직인다면 일본 경제는 물론, 안보까지 뚫릴 수 있어요. 이미 김태산이 우리를 경제적으로 압박하고 있지 않습니까?”

고이즈미의 말처럼 일본은 지금 경제적으로 압박을 받고 있는 상태다.

김태산이 골든 연합을 움직여 일본 경제를 차근차근 밟아버리고 있는 것인데, 워낙 규모가 큰 자금이 흐르고 있는 터라, 일본 정부도 어찌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김태산 대통령이 원하는 것이 위안부 문제 해결이라면, 돈으로 처리를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보상금과 사과의 말을 전달하면 될 겁니다.”

“그걸로 만족하지 않으면?”

“보상금을 늘리면 됩니다.”

“음…….”

어차피 이건 돈으로 해결을 보는 수밖에 없다.

고이즈미도 이것이 가장 합당한 방법이라 여겨 고개를 끄덕였다.

“돈으로 해결을 본 다음, 총리님께서도 요구를 하시는 겁니다. 일본에 가해지고 있는 모든 경제적 압박을 풀어달라고 말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고이즈미는 그걸 요구하기 위해 대한민국 땅을 밟은 것이었다.

김태산의 입김에 여러 나라들이 현재 일본 제품에 대해서만 관세 폭탄을 때리고 있다. 완전히 해외 자금줄을 말라 버리게 하겠다는 건데, 그것만 풀면 일본 경제는 한숨을 돌리게 될 것이다.

“김태산 대통령도 국민들의 지지를 받기 위해 위안부 문제를 들쑤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자가 원하는 대로 보상금을 전달하면 우리도 경제 압박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니, 어찌 보면 우리가 더 이득입니다.”

의견이 모아지자 고이즈미는 지체하지 않았다.

“이 의견을 바로 김태산에게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예, 분명히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총리님.”

고이즈미는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김태산이 있는 집무실로 향했다.

* * *

이 원숭이같이 생긴 놈이 지금 무슨 말을 지껄이고 있는 거지?

“우리 일본 정부는 위안부 피해 여성들에게 보상금을 전달할 생각입니다. 더 확실한 피해를 조사하기 위해 직접 우리 정부에서 조사를 한 다음, 보상금을 내놓을 수도 있고요. 아니면 한국 정부에서 산출한 보상금대로 금액을 지불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게 끝입니까?”

“예? 뭐가 더 있어야 하나요?”

이놈이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건가?

“총리님.”

“예, 대통령님.”

“아무래도 그런 뭐 같은 생각은 당신이 오늘 데려온 수뇌부들 머리에서 나온 거 같은데, 그 새끼들을 전부 이곳으로 집합해 주시겠습니까?”

“예? 대, 대통령님.”

험악해진 내 목소리에 고이즈미는 잘게 떨었다.

“뭐 하고 있어! 그 새끼들 전부 내 앞으로 데려오라고!”

“아, 예. 그, 그리하겠습니다.”

저놈은 아직도 내가 왜 화내는지 모르는 얼굴이다.

난 분노에 찬 열기를 밖으로 내보내며 위스키를 한 잔을 쭉 들이켰다. 이윽고 참 종족대로 생겨먹은 놈들이 하나둘 내 집무실을 채웠다.

“내가 왜 당신들을 여기까지 불렀는지 알아?”

“…….”

이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으로 날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보상은 당연히 해줘야 하는 거야. 그런데 뭐? 정부에서 따로 조사를 해? 네들이 조사해서 뭘 어쩌려고. 그리고 독일을 봐, 이 멍청한 새끼들아. 그것들은 유치원 때부터 히틀러의 잘못된 사상을 가르치고 있어. 지금도 유대인들에게 사죄를 하고 있다고. 그런데 너희들은 뭐야? 그깟 푼돈 처먹고 나가떨어지라는 거야?”

“대, 대통령님. 오해를 하신 것 같습니다. 저희는 절대 그럴 의도가…….”

“입 닥쳐! 네들은 기본이 안 되어 있어. 그게 진짜 잘못한 사람들의 태도야? 네 조상들이 싼 똥을 치우려면 제대로 치워야 할 거 아니야! 위안부 피해 여성들에게 보상만 하면 다인 줄 알아? 대한민국 온 국민에게 사죄하고 또 사죄해. 그리고 네들 애들부터 철저히 교육시켜. 일본이 침략으로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는지. 그게 진실로 사죄하는 사람의 태도야. 알겠어?”

내가 원하는 건 단순히 돈이 아니었다.

위안부 피해 여성들에게 사죄를 하는 것과 동시에 일본 아이들을 교육시켜 일본 제국주의와 침략 전쟁을 비판하며 평생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게 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일본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놈들은 아직도 자신들이 뭘 잘못했는지 모른다. 난 그걸 깨우치게 해주기 위해 일부러 모두를 불러 모은 것이었다.

“돌아가. 내가 원하는 걸 수용할 생각 없으면 네들 나라로 꺼져. 그리고 일본이 어떻게 지옥으로 변하나 어디 한번 잘 지켜봐. 내가 다 짓밟아 버릴 테니까.”

나는 반강제로 고이즈미와 그의 수뇌부를 밖으로 내쫓았다.

마침 집무실에 있던 각 당의 대표들은 마른침을 삼키며 나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난 잔에 다시 위스키를 채우며 자리에 앉아 있는 대표들에게 물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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