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288화 (288/325)
  • 288화. 새로운 대한민국 (2)

    “변화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내일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해 주십시오. 여러분의 힘이, 곧 이 나라를 바꿀 힘입니다.”

    나는 기자들 앞에 나서서 내일 선거에 꼭 참가해 달라고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이창석 대통령의 국정 농단 사건으로, 거리에 뛰쳐나온 사람들은 대부분이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은 반드시 내일 선거를 하겠다며 의지를 다졌고, 여론조사를 돌려보니 내일은 역대 최고 투표율을 기록할 것 같았다.

    하지만 보수를 지지하는 단체의 움직임도 만만치 않았다. 이들은 이창석 대통령을 누군가가 음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를 다시 대통령 자리에 올려야 한다며 시위를 벌였지만, 항상 그랬듯 누구 하나 관심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꼰대들이 정신 나간 짓을 한다며 손가락질할 뿐.

    저들이 시끄럽게 떠들어대고 이창석의 무죄를 소리쳐도 나의 집권이 쭉 이어지는 한, 영원히 이창석의 억울함을 알 수 없으리라.

    그리고 고대하던 선거 날.

    나는 득표율을 확인하지 않고 다른 곳에 신경이 쏠려 있었다.

    “부시 대통령은 그간 전쟁이란 빌미로 대통령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그 무능한 능력으로 말이죠. 더군다나 그가 저지른 수많은 비리들은 결코 용납할 수 없어요.”

    상원의원 알렉스 맥켄지가 CNN 뉴스에 출연하여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있었다.

    “의원님은 공화당이시지 않습니까? 대통령의 여당 소속인데도 그런 말씀을 하신다는 건, 공화당도 같은 의견이라고 봐야 하는 건가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공화당 의원들도 참을 만큼 참았습니다. 부시 대통령의 무능함에 말이죠. 그리고 그의 참모진들도 전부 답답하기 그지없어요. 머리가 굳어 있는 멍청이들이니까요. 또한 우리는 부시 대통령이 부정선거를 통해 당선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미끼를 던지니, 아나운서는 신이 나서 그걸 물었다.

    “부정선거요?”

    “예, 부시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당시, 플로리다에서 상당수의 무효표가 쏟아졌습니다. 그것이 결정적인 한 방이 되어 간소한 차이로 당선이 되었죠. 그리고 그 당시 플로리다 주지사는 바로 부시 대통령의 동생, 젭 부시였어요. 이게 단순히 우연일까요?”

    “예전에 잠깐 거론되었던 문제를 다시 끄집어내시는 건가요?”

    “그동안 공화당 의원들은 여당이라는 이유로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목소리를 낼 때가 됐어요. 부시 대통령은 재앙입니다. 이 나라를 망치려고 작정한 사람이라고요.”

    알렉스 맥켄지는 공화당에서도 비중이 있는 인물이다. 그런 사람이 부시 대통령의 리더십에 의구심을 던지는 발언을 했다. 거기다가 서비스로 부정선거 문제까지 끄집어내면서 여론을 시끄럽게 만들 구실을 던져주었다.

    “알렉스 맥켄지 상원의원이 부시 대통령의 리더십과 부정선거에 대한 의문을 드러내면서 논란이 많이 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논란이 커지자 기자들은 미국 서열 2위인 부대통령에게 달려갔다.

    존 윌리엄 부통령은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부정선거라는 논란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에 대해서는 전 잘 모릅니다.”

    “잘 모른다는 대답은 굉장히 모호하네요. 아니라고 말씀을 하지 않으시는 건, 충분히 부정선거일 수도 있다는 건가요?”

    “죄송합니다. 전 이에 대해 아는 바가 없습니다.”

    나는 TV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원하는 무대가 마련되었다.

    상원의원에서 시작된 부정선거 의혹. 그리고 찜찜한 부대통령의 해명.

    이 두 가지 재료가 섞이니, 미국 시민들을 자극할 조미료가 탄생했다.

    인터넷상으로 부시의 탄핵을 외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으며, 예전부터 부시의 리더십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던 민주당은 물 만난 고기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전 플로리다 주지사입니다. 즉,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한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부정선거에 대해서는 당치도 않은 음모론이라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에게는 법정 싸움이라도 불사할 겁니다.”

    젭 부시도 뉴스에 나와 부정선거는 말도 안 되는 음모론이라고 못을 박았다. 하지만 부시의 형제가 하는 말을 누가 믿겠는가? 당장 부대통령이라는 사람이 모르겠다는 말을 하면서 의혹이 증폭된 상황이다.

    백악관도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의혹의 불씨 때문에 이 상황을 반전시킬 만한 카드를 찾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카드는 없다. 내가 그들을 원천 봉쇄시켰으니까.

    “부시가 제발 살려달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어요.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탄핵이 될 거 같으니까요.”

    “공화당 내부 사정은 어떻습니까?”

    “미스터 김의 말을 충실히 잘 따르고 있습니다. 부통령이 그날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을 보고 다들 눈치챈 것이죠. 이게 미스터 김의 영향 아래 일어나는 일이라는 걸.”

    존 윌리엄은 부시의 최측근이었다. 그렇기에 그가 부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존 윌리엄이 그러한 발언을 하면서 의원들도 줄타기를 시작한 것이다.

    “검찰이 수사를 시작하게 되면 부시도 똥줄이 탈 겁니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부정선거가 맞지 않나요?”

    “그렇죠. 하지만 미스터 김이 부정선거 의혹을 완전히 언론에서 사라지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예, 이런 상황을 대비해 증거를 보관하긴 했었죠.”

    내 말을 들은 다니엘 로페즈가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체크메이트네요. 증거까지 있으면 부시가 어쩔 수 없겠어요.”

    그의 말대로 외통수다. 부시가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는 것이다. 솔직히 이 카드를 이런 식으로 써먹을 줄은 몰랐다. 부시 그놈이 내 뒤통수를 친 것도 예상 밖이었지만, 로스차일드 가문에 의해 화진 그룹 본사가 불에 타버릴 줄도 몰랐으니까.

    “부시에게는 뭐라고 전달할까요?”

    “제가 직접 연락을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내년에 있을 상원의원 선거에 오바마가 차질 없이 당선될 수 있도록 조력, 부탁드립니다.”

    “예, 그렇지 않아도 이 친구가 말주변이 좋아요. 군중을 움직이는 말을 잘한다는 겁니다. 거기다가 흑인이라는 특별함도 있고. 굳이 도와주지 않아도 알아서 될 거 같더군요.”

    버락 오바마는 뛰어난 언변으로 대중을 사로잡아 기어코 대통령까지 당선되는 인물이다. 지금은 내가 적극 지원을 해주고 있지만, 내 도움이 아니더라도 알아서 대통령까지 올라가게 될 사람이라는 것이다.

    “부시가 내려오고 나면 미국 대선이 그만큼 빨라질 겁니다. 오바마가 그때까지 자리를 잘 만들어주길 바랄 수밖에요.”

    “예, 옆에서 잘 지켜보겠습니다.”

    나는 다니엘 로페즈와의 전화를 끊고 술 한 잔을 들이켰다. 그런 다음 백악관과 전화를 연결했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는 힘이 다 빠진 패배자의 그것이었다.

    “대통령님, 요즘 이런저런 일이 참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심심한 위로라도 해드리고자 이렇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내 말에 부시는 잠시 말이 없었다. 이윽고 그는 구차하게 빌기 시작했다.

    “회장님,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하하, 미국 대통령이시라는 분이 잘못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회장님, 그만 멈춰주십시오.”

    “이거 참……. 제가 뭘 어떻게 멈추라는 건지 모르겠군요. 성난 민중의 목소리를 저 같은 사람이 어떻게 막는단 말입니까?”

    “회장님!”

    부시는 마침내 목청을 높였다. 하지만 그럴수록 내 목소리는 더욱 낮아지고 차가워졌다.

    “더 험한 꼴 보기 전에, 알아서 내려와.”

    내 말에 부시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려왔다.

    “저더러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라는 겁니까?”

    “그래. 네가 자초한 일이야. 난 분명히 네게 재선까지 약속했었어. 그런데 넌 그 대가로 뭘 했지? 내 뒤통수를 친 놈을 계속 그 자리에 앉혀두어야 할 이유라도 있나?”

    “…….”

    “난 분명히 말했어. 내 명령에만 따르라고. 절대 허튼짓하지 말라고. 그런데 그걸 무시한 건 바로 너야. 그리고 어른이라면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책임을 져야겠지? 그러니까 입 닥치고 알아서 내려올 준비나 해. 그렇지 않으면 내가 강제로라도 널 그 자리에서 끌어내 버릴 테니까.”

    “…….”

    부시는 이번에도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나는 수화기에 입을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왜 대답이 없지? 정말 강제로 내려오고 싶은 건가?”

    “…알겠습니다. 조만간 대통령 자리를 내려놓겠다는 발표를 하겠습니다.”

    “아니야. 그 시기는 내가 정해. 그러니까 그때까지 그 생활을 즐기도록 해.”

    난 부시와의 통화를 마무리 지었다.

    이놈이 혹시 미친 짓을 할까 싶어 그를 감시하는 인원을 더욱 늘려놓았다.

    그렇게 여러 군데에 지시를 내리다 보니, 어느덧 아침이 되었다. 그리고 이번 대선을 책임지던 선거 전략가들이 내게 달려와 환호성을 질렀다.

    “후보자님! 축하드립니다! 후보님께서 압도적인 표 차이로 승리하셨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역대 최고 기록인 80%의 투표율을 넘어섰어요. 투표율이 무려 85%에 후보님께 몰린 표가 무려 90%입니다. 이건 대한민국 역사상 두 번 다시 없을 일이에요!”

    당선이 확정되자 사방에서 전화가 쏟아지고 있었다.

    “회장님, 아니, 이제 대통령님이라고 불러 드려야겠군요. 정말 축하드립니다.”

    이강찬 회장을 시작으로 각 재벌 회장들이 빗발치는 전화를 걸었고, 여야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의원들이 내 사무실을 찾아왔다. 누가 이 나라의 정점에 서 있는지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순간이었다.

    “축하드립니다, 회장님.”

    “축하드려요!”

    나는 사람들의 축하를 한 몸에 받으며 카메라 앞에 섰다.

    이미 대선에 참여한 후보들에게서 패배 선언을 들은 직후였다.

    “국민 여러분의 소중한 한 표가 모이고 모여 제가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강대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총력을 다할 것이며, 현재 북한과의 갈등을 원만히 해결하고 부정부패를 완전히 척결하는 등, 새로운 대한민국을 이뤄 나갈 것을 맹세합니다.”

    이미 내가 머무르고 있는 건물 주변으로 잔뜩 모여든 지지자들이 태극기를 휘날리며 내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김태산! 대통령! 김태산! 대통령!”

    고역스럽긴 했지만, 나는 지지자들과 악수를 나누며 기쁨을 만끽했다.

    솔직히 말해, 이미 예측하고 있던 결과라 그리 마음이 들뜨진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문득 하늘을 바라보게 되었다.

    2017년에 죽어 다시 태어난 내가, 마침내 대한민국 최정상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이것은 과연 누구의 뜻인가.

    나의 뜻인가, 아니면 내게 또 한 번의 기회를 준 하늘의 뜻인가.

    만약 이게 하늘의 뜻이라면 그는 나의 행동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후회하고 있을까, 아니면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고 기뻐하고 있을까.

    그의 생각이 어떻게 되었든, 나는 이제 명확히 내 길을 갈 것이다.

    국민들에게 말했던 것처럼, 나는 강대한 대한민국을 꿈꾼다.

    그 어떤 나라도 감히 넘볼 수 없는 대한민국.

    세계 평화를 지키는 건 더 이상 미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온 나라에 각인시켜 줄 것이며 나는 그 위대한 대통령으로 거듭나 마침내 세계를 다스리게 될 것이다.

    새로운 대한민국이 바로 내 눈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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