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267화 (267/325)
  • 267화. 방해꾼

    “회장님, 방금 모든 조사가 끝났습니다.”

    감시 카메라에 잡힌 것은 연구진 쪽 사람이 아니라 신원을 알 수 없는 금발의 외국 여자였다. 그로 인해 지금 북한이 왈칵 뒤집혀 버렸다.

    태양궁 근처에 만들어놓은 연구소에 어떤 여자가 침입을 했다는 것은, 김정은이 머물고 있는 곳까지 침입이 가능하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로 인해 북한 측에서는 모든 인력을 동원해서라도 그 여자의 정체를 밝히고자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이 문제는 싱겁게 결론이 났다.

    “…파티?”

    “예, 연구진들이 외국에서 여자들을 데러와 파티를 벌였다고 합니다. 그것도 연구소 옆에 있는 숙소에서요.”

    “그걸 북한은 수용했고? 외부인들이 대거로 들어오는 일을?”

    “그… 예…….”

    “도대체 어떻게 그걸 수용할 수가 있죠? 차수님은 그게 가능한 일이라고 보십니까? 신원도 제대로 확인이 되지 않는 여자들이 들어와 광란의 파티를 벌였다는 게!”

    나는 상을 주먹으로 강하게 내려치며 소리쳤다.

    리영호 차수는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회장님, 연구진의 일을 제대로 할 만한 사람은 이 북한에 없습니다. 다들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게 맞겠군요. 잘못 걸렸다가는 보복을 당할 수도 있으니까요.”

    “보복?”

    “예, 회장님으로부터 당할 수도 있고, 나중에 베리칩이 상용화되면 저들이 우리의 목숨 줄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닙니까? 그 때문에 두려워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간부들이 열을 내며 베리칩 프로젝트를 중단시키려 했던 건가.

    차라리 이렇게 말이 나온 김에 확실하게 정리를 해야겠다.

    “그럼, 정리를 해봅시다. 광란의 섹스 파티를 열기 위해 저 병신들이 외국 여성들을 북한에 데려왔고, 그중 하나가 바이러스를 심었어요. 저만한 퀄리티의 바이러스를 심을 수 있는 여성이라면 정보국 측 사람이라는 건데, 공포에 떨고 있는 몇몇 간부들이 몰래 통제실 길을 열어준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군요.”

    어떤 나라에서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 정도의 바이러스를 심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정보국에서 파견된 스파이다. 그리고 그 스파이가 멀쩡히 나돌아 다닐 수 있었던 건 내부에서 누군가가 도와준 게 틀림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리영호 차수도 내 말뜻을 알아챘는지 애써 변호를 하고 있었다.

    “회장님, 우리 쪽에 배신자가 있을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 그리 확신할 수 있는 겁니까?”

    “문제라면 연구진들이 아니겠습니까? 그들이 개인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해 여자를 데려왔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들 속에 스파이가 숨어 있었던 거지요. 어떻게 이걸 간부들의 문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틀린 말은 아니다.

    애초에 여자들을 들여온 건 연구진들이니까. 하지만 난 내 직감을 믿는다.

    지금 내 직감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건 북한 내부에서 벌인 은밀한 소행이라고.

    “일단 잘 알겠습니다. 연구진들을 조사해 본 다음, 다시 차수님과 얘기를 나눠보죠.”

    내가 그들과 신사적인 방법으로 얘기를 나눌 리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리영호 차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필요한 게 있으시면 연락 주십시오.”

    리영호 차수가 나가고 나서 나는 경호원들과 함께 연구진들을 모아놓은 곳으로 갔다.

    이곳은 북한에서 범죄자들을 심문할 때 쓰는 취조실이다. 사실 말이 취조실이지, 실상은 고문실이나 다름이 없다. 그리고 규모도 꽤 커서 50명의 연구원들을 한꺼번에 몰아넣기 딱 좋았다.

    나는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앉아 있는 연구원들을 스윽 둘러보았다. 그러다 정무문 박사에게 물었다.

    “섹스 파티는 어떠셨습니까? 마음에 드셨습니까, 박사님?”

    정무문 박사는 눈을 질끈 감았다 뜬 뒤, 말을 이었다.

    “변명처럼 들리시겠지만, 일이 이런 식으로 번질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하하, 죄송하다라……. 그걸로 끝입니까?”

    “회, 회장님.”

    탕-!

    나는 권총을 들어 그대로 정무문 박사의 허벅지에 쏴버렸다.

    그는 비명을 지르며 피가 철철 흐르고 있는 제 다리를 붙잡았다.

    “북한에는 여자가 없나? 너희들이 원한다면 김씨 일가를 책임지던 기쁨조들이라도 기꺼이 내어줬을 거야. 그런데 먹을 게 없어서 다른 나라에서 데려와? 이게 말이 된다고 보나?”

    나는 얼굴이 백지장처럼 질려 버린 연구원들에게 총구를 돌리며 물었다.

    “너희들이 말해봐. 내가 볼 땐 누가 작정하고 일부러 일을 이렇게 벌인 거 같은데. 어떤 새끼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야? 응?”

    연구원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내가 총을 허공에 대고 한 번 더 쏘니, 그제야 말문이 터지기 시작했다.

    “애, 애초에 저희가 계획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마, 맞습니다. 저희는 그저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호의에 넘어가서…….”

    예상치 못한 이름이 튀어나왔다.

    난 총을 내려놓고 아직도 비명을 지르며 아등바등하고 있는 정무문 박사를 내 앞에서 치우게 해버렸다.

    “누구의 호의라고?”

    “기, 김정은입니다!”

    “예, 그 사람이 갑자기 조찬을 열어서 우리 연구진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원하는 게 있으면 한번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그때 저희가 장난으로 서양 여자들을 불러 질펀하게 놀고 싶다는 얘기를 했을 뿐인데…….”

    “김정은이 그 말대로 해줬고?”

    “예,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고 말하더니 얼마 안 있다가 정말 그렇게 해줬습니다.”

    전혀 이상한 방향으로 일이 흘러가고 있었다.

    사실 이 모든 일의 주동자는 김정은이었나?

    단연하기에는 이르다. 김정은이 정말 이들의 소원대로 해준 것뿐인데, 방해꾼이 중간에 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의심쩍은 일이지 않은가.

    김정은이 다른 국가의 정보국과 손을 잡은 것이라면?

    나는 핸드폰을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이윽고 익숙한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로 들려왔다.

    “회장님, 어쩐 일이십니까?”

    천성 그룹 이강찬 회장이었다.

    “회장님, 저번에 말씀하셨던 거, 아직 유효합니까?”

    “어떤 걸… 아! 혹시, 베리칩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 바로 그겁니다.”

    저번 연회장에서 이강찬은 베리칩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미 연구진 숫자가 많아 보류 중이었는데, 이번 기회에 천성이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물론입니다. 전 항상 준비되어 있습니다.”

    항상 준비되어 있다고? 그 말이 부디 사실이기를 바란다.

    “그럼, 지금 당장 연구진을 데리고 북한으로 넘어와 주실 수 있겠습니까?”

    “예? 지, 지금이요?”

    이강찬의 당황한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왔다. 하지만 항상 준비되어 있다고 한 건 바로 이강찬이지 않았던가?

    “안 되나요?”

    “하하, 이거 참. 제가 괜한 패기를 부린 모양이군요. 하지만 전 제가 뱉은 말은 반드시 지킵니다. 북한 항공 문제만 해결해 주신다면 오늘 안에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은 허세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솔직히 단번에 오케이를 할 줄은 몰랐다.

    “그건 전화 한 통화면 끝이 납니다. 제 전용기를 보낼 테니, 그걸 타고 오시면 될 겁니다.”

    “예,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럼, 북한에서 뵙도록 하죠.”

    나는 전화를 끊고 떨리는 눈동자로 날 바라보고 있는 연구원들에게 말했다.

    “곧 천성에서 연구진들이 올 거야. 그럼, 당신들이 알고 있는 지식들을 전부 천성에게 알려주도록 해. 만약 이를 거부하는 놈이 있다면 가만두지 않겠어. 그리고 인수인계가 끝나는 대로 네놈들은 전부 해고야. 불만이 있는 사람은 얼마든지 나와서 지껄여 봐.”

    “…….”

    누구도 입을 벙긋하지 않고 있었다.

    난 할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흐트러진 옷을 정리하며 옆에 있는 북한 간부들에게 말했다.

    “이 새끼들 한 발자국도 여기서 나가지 못하게 해. 천성 그룹에서 사람이 오면 그때 풀어주고.”

    “예, 회장님.”

    “인수인계가 끝나면 그때 다시 날 불러.”

    “예, 알겠습니다.”

    나는 연구소를 나와 바로 태양궁으로 향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아주 태평하게도 김정은은 여자들이 춤을 추는 것을 보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내가 슬쩍 눈짓을 하니, 모두 간부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가고 김정은과 나, 단둘이 남게 되었다. 그는 언짢은 표정 하나 없이 내게 정중히 손짓하며 앉으라고 권했다.

    “한창 재미 보고 있을 때 나타나서 기분이 상했나?”

    “아뇨, 언제든지 저런 걸 볼 수 있는 게 이 자리의 특권이지 않습니까?”

    “그래, 이런 척박한 땅에서 유일하게 너만 그걸 즐길 수 있는 특권이 있지. 그런데 그 특권 하나로 모자랐던 건가? 요즘 다른 짓거리를 하고 다니는 걸 보면.”

    “…다른 짓거리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오리발을 내밀어보겠다는 건가.

    하긴, 이놈은 여자들을 외국에서 데려오기만 했지, 그중에 스파이를 심어놓았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 이처럼 이놈이 오리발을 내밀면 내게는 명분이 없어진다.

    “몰라서 묻는 거야, 아니면 알면서도 내빼는 거야?”

    “저는 정말 몰라서 묻는 겁니다. 뭐 때문에 그러시는 겁니까?”

    내 따가운 눈총에 오히려 김정은은 담담한 미소로 내게 되물었다.

    나는 헛웃음을 터뜨리며 대답했다.

    “네가 연구진들한테 던져 준 서양 여자들 중에서 스파이가 있었어. 그것도 우리가 계획한 베리칩 프로젝트를 전부 엎어버리려고 한.”

    “어떻게 그런 일이… 전 정말 몰랐습니다. 저는 그저 연구원들이 고향을 너무 그리워하는 것 같아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기 위해 선의를 베푼 것인데…….”

    “선의를 베풀었다고? 네가, 저 덜떨어진 놈들한테?”

    속이 빤히 보이는 거짓말이다.

    김정은이 왜 연구원들을 위해 선행을 한단 말인가?

    몰래 죽이지만 않으면 다행인 것을.

    이놈이 범인이라는 의심이 점점 확신으로 바뀌고 있었다. 하지만 이놈을 구석에 몰 만한 증거가 없다. 그건 앞으로 내가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난 김정은이 익살스럽게 웃으며 건네는 잔을 바닥에 던져 버렸다.

    “나한테 제대로 한 방 먹이고 싶은 모양인데, 안 그러는 게 좋아.”

    “회장님의 오해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믿어주십시오. 저는 이번 일과 절대 관련이 없습니다.”

    “그렇다는 건 만약 조금이라도 관련점이 나오면 책임을 지겠다는 건가?”

    “예.”

    “어떤 거라도?”

    “물론입니다.”

    자신감이 아주 넘치는 대답이다.

    “회장님께서 잘 생각해 보십시오. 제가 왜 그런 짓을 한단 말입니까? 이렇게 뻔히 잡힐 줄 알면서 말입니다.”

    “아니, 넌 연구소에 그렇게 삼엄한 경계가 되어 있는 줄 몰랐잖아. 당장 연구원들도 거기에 감시 카메라가 숨겨져 있었다는 걸 몰랐으니까. 그래서 이렇게 쉽게 걸릴 줄 몰랐던 거지.”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씀이십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서양 여자들을 데려왔겠습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제가 직접 미국이나 러시아로 넘어가서 거기 있는 여자들을 데려왔겠냐는 말입니다. 누군가에게 시켜서 그리했겠지요. 그렇다는 건 제가 누구에게 시킨 건지부터 찾는 게 먼저가 아닐까요?”

    김정은은 아무래도 이런 식으로 빠져나갈 모양인 것 같다.

    난 시키기만 했지, 과정은 모른다.

    이것이 김정은의 방법이다.

    즉, 자신이 명령을 내린 상대에게 전부 뒤집어씌우겠다는 작전인 거 같은데…….

    “말하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었어. 낱낱이 파고들면 네 억울함도 저절로 풀리겠지.”

    “예. 제발 제 억울함을 풀어주십시오, 회장님.”

    김정은은 두 손까지 모으며 부탁했다. 난 그런 능청스러운 김정은의 모습에 실소를 터뜨렸다. 나는 저놈이 이번 일과 연관이 있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저건 역겨운 연기가 틀림없다.

    저놈이 무슨 배짱으로 이와 같은 일을 벌였는지, 반드시 찾아낼 것이다. 그리고 사건의 전말이 모두 드러났을 때, 이놈이 어떻게 내게 잘못을 비는지도 똑똑히 지켜봐 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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