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265화 (265/325)
  • 265화. 카드사 진출

    “이철준 회장이 오늘 검찰에 출석해 자신은 불법 대북송금사건에 대해 아는 바가 없음을 밝혔습니다. 이번 일은 전적으로 대마 그룹 전 회장 이영학과 여러 임원들의 짓이었고 김일중 정부가 시키는 대로 따랐을 뿐이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이철준은 내 말대로 가족을 팔아넘겼다.

    이영학을 비롯해 그를 따르던 임원들을 고발한 것이다.

    “회장님, 방금 대마 그룹과 인수 계약이 끝났습니다.”

    걸려온 전화에서는 대마 그룹이 내게 완전히 항복했다는 걸 알렸다.

    “지분은?”

    “10%를 얹는 것으로 합의를 끝냈습니다.”

    이철준은 자신의 목숨을 살리는 대신, 10%라는 지분을 내놓았다.

    목숨값치고는 싸게 먹힌 것이다. 그리고 부가적으로 가족의 목숨을 대시 내놓았다.

    살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인간이란 그런 존재가 아니던가.

    기꺼이 희생을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핏줄이라도 서슴없이 팔아넘기는 놈도 있다.

    나는 전화를 끊고 내 앞에 앉아 있는 상대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바쁘신 분을 오라 가라 해서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회장님. 회장님이 부르시면 언제든지 와야지요.”

    정권이 바뀌면서 검찰총장도 새로 선출이 되었다. 그는 점잖게 내 잔을 받아 마셨다.

    “요즘 참 시끄러운 일들이 많아요. 불법 대북송금사건으로 골치가 아프시다고 들었습니다.”

    “하하, 어쩌겠습니까. 정의로운 나라를 세우는 것이 검찰의 할 일이지 않습니까? 쉬지 않고 일할 뿐입니다.”

    잘도 그러겠다.

    “역시, 총장님을 뵈니 마음이 놓입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시국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불손한 세력들이 자꾸만 선량한 기업을 음해하려 든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검찰총장은 들고 있던 잔을 내리며 진지한 얼굴빛을 띠었다.

    “허허, 벌써 들으신 겁니까? 그렇지 않아도 천천히 말씀드리려 했는데…….”

    “제가 귀가 워낙 밝아서 말이죠. 아무리 작은 소리라고 해도 금방 듣곤 합니다.”

    “예, 하지만 크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부장 검사 차원에서 잘 마무리 지으라고 말해 놓았습니다. 카드사 인수는 문제없이 진행하실 수 있을 겁니다. 아참, 거의 다 마무리가 되었죠?”

    중소기업과 야당 측 의원들이 대대적인 카드사 인수에 대한 수사를 요청한 것인데, 검찰총장이 이미 중간에서 선을 잘라 먹었다. 어차피 여기까지는 대충 예상한 바다. 누가 감히 나를 조사할 수 있단 말인가. 이 대한민국에서?

    하지만 누가 괘씸하게 그런 시도를 했는지는 알아야겠다.

    “그 나쁜 사람들이 다시는 여의도 근처에 얼씬거리지 않게 단속을 잘해야겠지요. 그래서 말인데, 누가 찌른 건지 알 수 있겠습니까?”

    총장은 이 말이 나올 거라고 예상했는지 명단이 적힌 용지 하나를 내게 건넸다.

    “총 35명입니다. 야당 의원들도 있고 소상공인들부터 시작해 중소기업 사장들도 섞여 있습니다.”

    생각보다 숫자가 좀 된다. 하지만 고작 이런 힘으로 나를 건드리려 하다니.

    “야당에서 제가 카드사 인수 중이라는 걸 모르는 겁니까?”

    “글쎄요. 야당 대표가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지방에서 얻어 걸린 사람이 꼴에 의원이랍시고 허세 한번 부린 게 아니겠습니까?”

    대충 상상이 간다.

    의원이 되면 온 세상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믿는 놈들이 있다. 그리고 뭘 모르는 중소기업 사장들은 그런 쓸모없는 의원에게 돈을 가져다 바치기까지 한다.

    이번 카드사 인수와 더불어 강력한 회수 작업이 시작되니, 빚에 시달리고 있는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해외 기업의 인수를 막고 싶을 것이다. 그들은 그저 이대로 정부가 세금을 뿌려 빚에서 자신들을 구출하길 원한다. 하지만 내가 눈을 똑바로 뜨고 있는 한 절대 그럴 일은 없다.

    “총장님께서 이 나라를 위해 아주 큰일을 하고 계십니다. 많은 압박이 있을 텐데 꿋꿋하게 맡은 바 소명을 다 하시기 바랍니다.”

    “회장님께서 든든하게 뒤에서 받쳐만 주신다면야 뭐가 무섭겠습니까?”

    총장 옷을 벗게 되더라도 뒷일을 잘 부탁한다는 소리다.

    나는 항상 제 값을 치르는 사람이지 않던가?

    “물론입니다, 총장님.”

    총장은 흡족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앞으로 그의 노후는 내가 보장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저 양반은 카드사 인수 사건을 들춰낸 야당 의원들에게 감사하고 있을 것이다. 이걸로 조금이나마 총장이 내게 생색을 낼 수 있을 테니까.

    나는 수화기를 들고 성일환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님, 방금 총장에게서 명단 받았습니다. 숫자가 꽤 되더라고요. 중소기업부터 야당 의원들까지요.”

    “그래? 뭔 파리 새끼들이 그렇게 꼬였어? 명단 팩스로 보내. 내가 애들 보내서 해결하게.”

    “예, 시끄러워지지 않게 잘 처리해 주셨으면 합니다.”

    “흐흐, 나 모르냐? 이 손으로 몇 명을 묻었는데. 아직까지 그런 걸로 발목 잡혀본 일이 없다.”

    살인이라는 건은 굉장히 큰 죄다. 그리고 이 나라에서 살인을 하고 법망을 빠져나가기란 매우 까다롭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힘없는 서민에게 해당되는 일. 우리같이 사람 목숨을 파리처럼 다루는 종자들에게는 사람 몇 명 죽였다고 수습하는 게 어렵지 않다.

    * * *

    카드사 인수가 모두 끝났으니, 더욱더 빚 독촉에 박차를 가하라는 명령을 하달한지 한 달째. 대부업체가 무더기로 오픈하면서 내 예상대로 고작 한 달 만에 대출금이 3,000억 원에 달했다. 빚의 연쇄가 시작된 것이다.

    이 속도로 간다면 이번 년도 안에 3조 원은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화진 그룹 전문가들의 판단이었다.

    무서운 일이지 않은가?

    돈이 돈을 낳는다고, 빚은 또 다른 빚을 낳는다.

    간혹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빚을 다 갚긴 하지만, 대부분이 빚의 함정에 빠져 자살을 하거나 어디론가 도망을 쳐버린다. 그러나 지금은 조선시대가 아니다.

    컴퓨터 몇 번 두드리면 상대가 어디에 숨어 있는지 금방 찾아낼 수 있는 시대가 찾아왔다. 그로 인해 각 조직에서 도망친 사람들을 붙잡아 여러 가지 방식으로 돈을 갚게 만들었다.

    돈벌이가 된다고 여겨지는 여자는 유흥업소로, 힘 좀 쓰게 생긴 남자들은 외로운 사모님들의 노리개로. 그 외에도 외진 섬에 보내 노예로 부리는 등 갖은 방법을 동원해 어떻게든 돈을 만들어왔다. 이마저도 안 되면 장기를 털어서라도 가져오는 건데, 내가 예전에 조선족부터 장기를 털어가는 놈들을 전부 쫓아내고 장기 밀수를 금지하는 바람에 그런 쪽으로까지 일이 번지진 않았다.

    대신, 이것도 저것도 방법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정부의 지원을 받게 했다. 카드사를 점령한 리턴 쉐어즈에서 허락한 사람들을 한해서만 정부가 세금을 떼어 우리에게 주는 방식이다. 이자까지 톡톡히 쳐서 받는 것이니, 절대 밑지는 장사는 아니다. 하지만 유흥업소나, 섬의 노예로 파는 게 훨씬 이득이 많이 돼서 웬만하면 정부의 손을 빌리지 않고 있었다.

    “생각보다 일처리가 아주 순조롭습니다. 마치 이번 일만 기다렸다는 듯이 각 조직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입니다. 예상 금액을 벌써 2배나 뛰어넘었으니까요.”

    상대가 빌려간 돈보다 2배나 가까이 되는 돈을 돌려받았다는 것이다. 결코 정상적인 방법으로 받은 건 아니지만.

    “이 수치로 쭉 진행이 된다면 리턴 쉐어즈의 한국 지부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성장하게 될 겁니다.”

    리턴 쉐어즈에서 파견한 데이비드 스키너 지사장은 보면 볼수록 웃음이 절로 나오는 지표에 아주 들떠 보였다. 사업가라면 당연히 좋아할 만한 수치가 아닌가?

    빌려준 돈을 두 배로 돌려받고 있으니 말이다.

    이제까지 카드사에서 얼마나 많은 돈을 뿌렸는지…….

    그것들을 전부 두 배로 받는다면 누구라도 함박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다.

    “상황을 잘 주시하도록 하세요. 그리고 한계선을 반드시 정해놓아야 합니다. 리턴 쉐어즈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한계선을 정해놓으세요. 그리고 그 한계선을 넘지 않는 곳까지 대출을 진행하는 겁니다.”

    리턴 쉐어즈는 세계의 드래곤 같은 존재다. 누구도 건드릴 수가 없는 천하무적과도 같은 존재. 본격적으로 자금을 투입하면 아시아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는 막강한 자금력이 있다. 그러나 물이 한번 새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새는 곳이 바로 이쪽 세상이다.

    무분별한 대출은 또 다른 경제위기를 불러일으키며 그 책임은 고스란히 리턴 쉐어즈가 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카드 대출 사업을 독점하고 있는 곳은 우리 리턴 쉐어즈밖에 없으니까.

    “그런데 회장님, 미국에 있는 김아름 대표로부터 의견이 나온 것이 있는데, 혹시 들은 게 있으십니까?”

    김아름이 의견을?

    그녀의 아이디어는 항상 참신했다. 이번에도 분명 회사에 도움이 되는 의견을 내놓았을 것이다.

    “아뇨,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그렇습니까? 아직 구체적인 사안이 나오지 않아 보고를 드리지 않은 것 같군요. 이번에 한국 카드사를 리턴 쉐어즈가 독점하는 것을 보고 김아름 대표는 이 사업을 아시아 전역으로 펼쳐 나가는 게 어떠냐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호. 기특한 생각이다.

    내가 대한민국의 카드사를 독점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돈도 돈이지만, 내가 지금 당장 돈이 필요하겠는가?

    이미 만리장성을 몇 번 쌓고도 남을 돈이 내게 있다. 그럼에도 카드사에 집착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

    베리칩 때문이다.

    베리칩을 상용화시키기 위해서는 신용카드를 없애고 베리칩으로 대체를 해야 한다. 그 작업을 수월하게 만들기 위해 카드사를 점령했다는 것.

    김아름의 생각이 곧 나의 생각과 같다. 만약 리턴 쉐어즈가 앞장서서 카드사 점령 작업을 시작한다면 나중에 베리칩을 상용화시키는 건 어렵지 않을 터.

    쓰던 신용카드를 버리고 사람들은 자연스레 베리칩을 손목에 박게 될 것이다.

    “어디부터 시작하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까?”

    “음, 일본이 어떻습니까? 아시다시피 일본은 신용카드가 아직 상용화되지 않고 있습니다. 모두 현금만 받고, 현금만 씁니다. 그로 인해 일본 정부도 세금 문제로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차라리 우리가 막대한 자금을 들고 가서 대출 사업을 늘리고 동시에 카드를 뿌린다면?”

    “정부에 로비를 넣어 전 매장 신용카드 기기 설치 의무화를 실행해야겠군요.”

    “예, 바로 그겁니다. 리턴 쉐어즈의 자금력이라면 일본 국민들을 충분히 흔들어놓고도 남습니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다.

    스키너의 말대로 일본은 현금 국가다.

    한때 일본 정부가 카드 산업을 추진하려 하긴 했지만, 프리터족이 너무 많이 생겨나는 것을 우려해 중지시켰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나라만큼 카드 산업이 잘 발달된 곳이 없다. 김일중 정부 때 엄청난 자금을 들여 팍팍 밀어준 대가인 것이다. 물론, 그 덕분에 정부는 세금을 수월하게 걷어갈 수가 있어 좋긴 하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게는 카드가 그리 친숙하지가 않다.

    그러나 대출이라는 좋은 미끼로 진출해 카드를 뿌리고, 로비를 넣어 카드기기 설치를 의무화시킨다면 결국 우리나라와 같이 그 나라도 카드를 마구잡이로 쓰게 되는 날이 오게 될 터. 그때 우리가 카드 산업을 장악해 베리칩 유통에 장애가 없도록 해야 한다.

    그 시작은 한국, 일본이 될 것이며 나아가 전 세계가 될 것이다.

    “일본 쪽은 최정식 사장이 맡고 있습니다. 김아름 대표에게 따로 말을 전하세요. 저도 이 의견에 적극 찬성한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최정식 사장과 잘 조율을 한다면 일본 정부도 압박할 수 있을 겁니다.”

    “예, 회장님. 김아름 대표에게 말을 전달해 놓겠습니다.”

    카드사 진출이라.

    베리칩 프로젝트를 위해서라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한계선은 반드시 정해놓아야 한다.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돈이 대출로 빠져나가면 모든 게 도로아미타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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