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264화 (264/325)

264화. 인수

“루머로만 돌았던 대북송금사건이 실존했음을 검찰 조사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이에 대해 여당은 김일중 전 대통령을 비롯한 관련자들을 전부 구속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으며 야당은 표적 수사라고 비판하며 정부가 전 정권 죽이기에 나섰다고 비난했습니다. 이에 따라 검찰은…….”

불법 대북송금사건이 터지면서 김일중을 비롯해 주요 관련자들이 검찰 수사를 받게 되었다. 그래도 한때 민주화운동의 얼굴이라고, 김일중은 막다른 골목까지 밀리진 않았으나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줄줄이 잡혀 나갔다.

이창석 대통령은 강렬한 인상을 대중에게 심어주기 위해 특검 수사를 곧 바로 허가했고, 그로 인해 사건이 밝혀진 것이었다.

대통령의 힘을 받은 검찰은 미친 듯이 사건을 파헤쳐 금방 결론에 다다랐다.

김일중 정권이 무려 4억5천만 달러를 북한에 퍼줬던 것이 들통난 것.

남북 정상회담이 평화적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사실은 막대한 국민의 세금으로 이루어졌음을 알게 된 국민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지금이라도 당장 김일중을 구속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날로 높아지고 있을 정도.

북한이 핵을 만들 수 있었던 건 결국 그 돈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나서 진보 정당은 매일같이 두드려 맞아야 했다.

“회장님, 오늘도 야당 대표를 비롯해 주요 의원들이…….”

“무시해.”

구속수사가 줄줄이 이뤄지고 있는 때라 야당 대표는 제발 살려달라며 쫓아왔다. 하지만 난 그를 만나주지 않았다. 그들도 따끔하게 맛을 봐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뒤끝이 아주 긴 사람이다.

한번 잘못하면 열 배로 갚아줘야 직성이 풀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불법 대북송금사건을 일부러 터뜨린 데에는 다른 이유가 또 있었다.

“리턴 쉐어즈가 위기에 빠진 카드사들을 대대적으로 인수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현재 각 기업과 가격을 협상 중에 있으며 정부도 힘들어진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 리턴 쉐어즈의 결정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말했습니다.”

워낙 불법 대북송금사건의 무게가 커서인지, 사람들은 카드사가 대량 외국 기업으로 넘어간다는 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들은 그저 썩은 정치인들을 전부 감옥에 보내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내가 딱 원하는 그림이 나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회장님.”

나는 우리나라 대기업 회장들을 한자리에 모아 조찬을 나눴다. 이들이 대북송금에 관심이라도 있겠는가? 오히려 대마 그룹이 이 일로 완전히 무너지고 있는 걸 깔깔거리며 지켜보고 있는 양반들이다.

나는 천성 그룹 회장 이강찬과 악수를 나눴다.

이 사람과 만나는 건 꽤 오랜만이다.

“천성 그룹도 카드사를 넘기기로 했습니까?”

“하하, 넘기지 않는다고 하면 가만 놔두실 겁니까?”

“천성 그룹의 선택이죠. 전 말릴 생각이 없습니다.”

이강찬은 나를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내 말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함이리라.

그는 금방 내 진심을 파악했다.

“회장님께서 큰일을 준비하는 중이시라고 들었습니다. 그 일에 방해가 돼서는 안 되겠지요. 천성 그룹의 대주주이신 분을 노하게 해드릴 일을 제가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천성 그룹은 이미 예전에 내 주머니 안으로 들어왔다.

이강찬이 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모두 내 덕분이라는 것이다.

내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이강찬을 밖으로 밀어낼 수 있다.

여기 있는 모든 회장들이 이강찬과 똑같은 입장이다.

IMF 이후, 이들의 생사권은 모두 내 손에 달렸다.

“카드사 인수는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앞으로의 일을 위해서 말이죠.”

카드사를 통합해야 나중에 신용카드를 대신해 베리칩을 내놓을 때 한꺼번에 바꿔 버릴 수 있다. 이강찬도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여기 모인 사람들도 회장님의 뜻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리턴 쉐어즈에서 합당한 가격에 카드사를 인수하겠다고 했으니, 저들로서는 반가운 일이죠. 그렇지 않아도 골머리를 썩고 있는 게 카드사니까요.”

카드사는 좀만 놔두면 금덩이가 된다. 하지만 지금은 창고에 구멍을 내는 쥐새끼 같은 신세다. 대기업 입장에서는 카드사를 하루 빨리 팔아버리고 싶어 한다. 하지만 나는 이들에게 한 가지 조건을 걸었다.

“인수 조건은 보셨죠?”

“예, 카드사를 넘기고 나면 다시는 카드사를 만들지 않는다가 계약 조건이지 않습니까?”

카드사에 있는 지배지분들을 가져가지 않는 대신, 앞으로 어떤 기업이든 내게 카드사를 넘긴 이상 절대 새로운 카드 계열사를 만들 수가 없다. 이 계약을 깰 경우, 내가 어떤 보복을 할지는 저들의 상상에 맡겼다.

“그런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저 많은 카드사를 인수하려면 돈이 꽤 많이 들 텐데요.”

적어도 수십조 원은 들어갈 걸 각오하고 벌인 일이다. 하지만 이 카드사로 창출해 낼 이익을 생각하면 수십조 원은 그리 아까운 투자가 아니다.

“제가 돈 많다는 건 알고 계시잖아요.”

“그건 알고 있지만, 아시다시피 돈 없는 대학생들이 무슨 수로 그 돈을 갚겠습니까?”

“그것도 이미 대비를 해두었습니다. 화진 그룹의 시작이 어딘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깡패들을 동원해서라도 돈은 다 받을 생각입니다. 그리고 한계에 다다르면 정부가 나설 겁니다.”

이강찬은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이다. 내 계획을 전부 파악했다는 듯 감탄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당분간 대한민국에 있는 돈은 전부 회장님이 휩쓸어 가시겠군요. 저도 총알이 많았으면 한번 도전해 보는 건데, 아쉽습니다 그려.”

아쉽다는 듯이 말하고 있긴 하지만, 사실 이강찬은 카드 사업에 크게 관심이 있지 않다. 그는 천성 전자를 크게 키우고 싶다는 생각만 머리에 가득하다.

“베리칩 프로젝트를 한국에서도 실행하실 땐, 천성 전자가 선두에 있었으면 합니다. 다른 곳에 맡기시는 것보다 저희 쪽에 일거리를 주시는 게 훨씬 더 편하지 않겠습니까?”

이강찬은 슬쩍 로비까지 하고 있다.

베리칩 프로젝트를 천성 전자에 맡긴다라.

곧 있으면 반도체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게 되는 곳이다.

천성 전자는 그만큼 잠재력이 크다. 하지만 베리칩 개발은 이미 다른 곳에서 이루어졌다. 천성 전자가 가져갈 것은 생산권이지, 결코 베리칩을 개발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래도 도움이 된다면 충분히 프로젝트에 끼워 넣을 순 있다.

“개발 연구소에 연락을 해서 천성 전자와 협력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회장님.”

이강찬은 나와 샴페인 잔을 부딪쳤다. 그러다 손님 하나가 내게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회장님.”

대마 그룹 회장, 이철준이었다.

왕자의 난으로 최종 승리자가 된 셋째 아들. 하지만 막상 왕이 되고 나니 대마 그룹은 강풍 앞에 촛불 신세가 되어버렸다. 회장이었던 이영학은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되어 버린 것.

그는 공손하게 몸을 숙이고 있었고, 그런 그를 나는 짜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대마 그룹은 초대를 받지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

“회장님, 무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그래요? 예의를 모르는 분이시구먼. 초대받지 않은 곳에 불쑥 찾아오는 건 어디서 배운 버르장머리입니까?”

내가 나이는 한참 어리지만, 가진 것은 한참 위에 있다.

재벌들 사이에 나이가 중요하겠는가.

누가 가장 큰 권력을 가졌느냐가 순위를 결정짓는다.

“회장님, 제발 부탁드리겠습니다. 검찰이 대마 그룹을 난도질하려 들고 있어요. 부디 막아주십시오.”

이철준도 억울할 것이다.

전대 회장이 싸지른 똥을 자신이 치우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대마 그룹은 이미 한번 내게 반기를 들었다. 그 대가를 이렇게 치르고 있는 것이다.

검찰이 칼을 뽑았고, 국민이 그 뒤를 봐주고 있다.

대기업이라고 해서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눈물을 흘릴 것처럼 보이는 이철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이 회장.”

“예, 회장님.”

“이 회장은 이 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예?”

“내 말 못 알아들어? 이 회장은 불법 대북송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거라고. 대신, 이 회장의 형들은 알고 있던 거지. 전대 회장부터 시작해 그 회장을 따르던 임원들과 가족들. 그 사람들은 이 일에 대해 전부 알고 있던 거야.”

이철준은 눈을 껌뻑이며 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는 답답함에 호통을 쳐버렸다.

“뭘 그렇게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어!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나? 이 회장은 아무것도 모르는 게 맞잖아!”

그제야 내 의도를 알아차린 이철준이 얼른 대답했다.

“마, 맞습니다. 전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래, 이 회장은 나쁜 사람이 아니야. 회사를 이 지경으로 만들고 가버린 전대 회장이 문제지. 그러니까 이 회장이 해야 할 것은 간단해. 이 일과 관련된 사람들을 전부 검찰에게 던져줘. 할 수 있겠지?”

내가 요구하는 건 이철준이 자신의 가족들을 전부 검찰에 팔아넘기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이철준은 살 수가 있다.

“검찰이 칼을 뽑았는데 뭐라도 잘라야 하지 않겠어? 그리고 이번에 빼어든 칼은 무 하나 자른다고 끝나는 강도가 아니야. 아예 어디 하나 작살을 내야 끝이 난다는 거지.”

“예, 회장님.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그래, 가족들을 팔아넘기면 정 회장은 무사할 거야. 그리고 자동차는 계속 만들어야 하지 않겠어? 대신, 꽁짜로 해주기는 뭐하니까 카드사 넘길 때 지분도 섞어.”

“…예?”

이철준은 또 한 번 멍청한 표정을 짓는다.

“귀가 먹었어? 카드사 넘길 때 지분 섞으라고. 내가 대마 그룹 지분을 가지고 있긴 한데, 지배가 가능한 수준의 지분은 아니야. 그러니까 한 10%정도 카드사에 얹어서 주도록 해.”

10%라는 말에 이철준은 아찔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지분에서 10%만 더한다면 대마 그룹을 지배하는 건 이제 내가 되기 때문이다. 즉, 이철준이 지배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하지만 굳이 이철준의 10%가 아니더라도 대마 그룹의 지분을 갖고 있는 기관이 내 편에 서버리면 대마 그룹 지배는 언제든지 가능하다. 그저 이번 10%의 지분을 바치는 건 이철준이 내게 충성을 다하겠다는 서약과 마찬가지다.

“회장님의 뜻대로 하겠습니다.”

이철준은 한숨을 크게 내쉰 다음 내 말에 따르겠다고 약속했다.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해결해야 하지 않겠는가?

검찰 손에 잘려 나가기보다는 지분 10%를 바치고 자신은 발을 뺄 수 있다는 게 차라리 좋은 조건일 것이다.

“그래. 그럼, 계약 때 서명 잘 하도록 하고.”

“예, 회장님.”

이철준은 내게 정중히 인사를 올린 다음 연회장 밖으로 빠져나갔다. 나는 주변으로 몰려드는 기업 회장들과 하나씩 이야기를 나누며 카드사 인수 조건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들도 내가 농담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지, 진지하게 내 이야기를 받아들였다.

이제 남은 건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것이다.

* * *

[김일중 전 대통령 구속?]

[험악한 여론은 김일중 전 대통령의 구속을 원한다.]

김일중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날로 거세지고 있다. 나는 언론사에게 연락을 돌려 더욱 자극적인 기사를 쓰도록 했다. 그리고 리턴 쉐어즈가 대대적으로 카드사를 인수 중이라는 내용은 쏙 빼버렸다.

기사가 나가도 아주 작게 나가는 것으로 마무리를 했다. 그 덕분에 국민들은 카드사가 전부 외국 기업에 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까마득하게 모르고 있었다. 왜냐하면 리턴 쉐어즈가 카드사를 인수해도 이름을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천성 카드면 천성 카드라는 이름을 계속 유지했기 때문에 국민들은 거부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모든 카드사들이 리턴 쉐어즈와의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순간, 나는 음지에서 웅크리고 있던 조직원들을 대거 움직였다.

각 카드사의 요청을 받은 조폭들은 80년대처럼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며 집 문을 두드렸고 돈을 갚으라는 협박과 함께 빨간 딱지로 집안 구석구석에 붙여놓았다.

전국에 있는 수많은 신용불량자들이 비명을 질렀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맡은 일을 해냈다.

당분간 이러한 비명 소리는 이 땅에서 그치지 않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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