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화. 참사를 막고 돈을 얻는다
“그런데 카드 대란은 어떻게 안 거야? 네가 몇 년 전부터 카드 사업은 아예 중지시켰잖아. 미리 알고 그런 건가?”
“제가 저번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사람들은 망각이 빨라요. IMF로 그 고생을 했으면서 고작 몇 년 지났다고 사태를 망각해 버리지 않습니까? 김일중 정권이 국민들의 망각을 부추긴 거나 다름이 없죠. 경제를 살리겠다고 카드 산업을 무분별하게 퍼뜨려 놓았으니까요.”
카드 산업의 발전은 겉으로나마 대한민국 경제를 부흥시킨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라.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빚에 허덕이고 있다. 돈 한 푼 벌어본 적 없는 대학생들에게 마구잡이로 카드를 긁게 만든 것은 어디까지나 정부의 큰 실수였다.
덕분에 나는 카드사들을 손아귀에 넣을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정권이 그거 수습하려면 애 좀 먹겠구먼. 하긴, 사람들이 너무 쉽게 망각을 하긴 했어. IMF 사태가 아직 완전하게 끝난 것도 아닌데.”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겁니다. 이제 영원한 직장이라는 개념이 없어지고 비정규직과 정규직으로 나눠지지 않았습니까? 막상 정규직이 된다고 해도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어야하죠. 세상이 많이 바뀌었어요.”
“흐흐,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는 아주 좋은 소식이지. 원하면 경제를 핑계로 다 잘라 버릴 수 있으니까.”
“경제위기는 대기업들에게 큰 기회라고 하지 않습니까?”
성일환의 말대로 흔들림이 없는 대기업일수록 경제위기를 기회로 여긴다.
그동안 자신들의 뒤를 따라오던 경쟁사가 경제위기로 전부 쓰러져 버리면 더욱더 독점 체제를 유지할 수 있으니까.
지금 내가 카드사를 모두 인수해 독점을 하려는 것도 그와 같은 이치다.
“아프가니스탄에 갔던 건 잘됐어? 군기 좀 잡고 온다면서.”
“예, 미국이 이번 5월에서 6월에는 철수를 하게 될 겁니다. 그때 다 같이 이라크로 들어가서 거기부터 장악하라고 말해두었습니다. 아! 그리고 제 앞에서 알라 이름을 들먹이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못 박고 왔습니다.”
“하하, 잘했다. 그 새끼들이야 어차피 우리가 하라는 대로 해야지. 그런데 우리도 조심은 해야 할 거야. 그놈들 세력이 점차 불어나서 군대가 10만 명 이상으로 넘어가면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어.”
나도 그걸 방지하기 위해 내 조직원들을 각 테러 조직에 뿌려둔 것이다.
그들이 허튼짓을 하는 게 눈에 보이면 곧바로 제거할 수 있도록 말이다.
“저도 그걸 염려해서 여러 가지 방비를 해두었습니다. 거기는 당분간 그대로 놔두고, 일단은 여기 일부터 처리해야죠.”
성일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기다렸다는 듯 서류 하나를 내게 보여주었다.
“네가 말한 계획표야. 제3금융권을 만들어서 대대적인 고리대금 작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스타트는 네가 끊어야 돼. 지금 여당이랑 야당에서 면책 정책을 하겠다고 얘기가 나오고 있잖아. 그거부터 다 막아버려. 그리고 카드사들이 전부 우리 쪽으로 인수되면 그때 행동에 들어가는 거야. 돈 갚으라고 난리치면 사람들이 결국 사채에 손을 대지 않겠냐?”
제3금융권이라고 하면 대부업체를 뜻한다.
사채업자가 합법적으로 금융권을 개설하는 것을 뜻하는데, 연 이자율이 24%를 넘나드는, 그야말로 날강도 같은 곳이다. 하지만 카드 대란으로 인해 정부가 대출을 완전히 틀어막은 상태.
신용도가 좋지 않으면 대출은 받을 수가 없다.
즉, 신용도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대부업체 말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빚의 무한 고리가 바로 우리 같은 사람들 때문에 시작된다.
당장 카드빚도 못 갚는 사람들이 대부업체의 돈을 어떻게 갚는단 말인가?
이런 약점으로 사업을 시작하는 우리도 잔인한 놈들이긴 하지만, 세상이 원래 그렇고 그렇지 않던가?
가진 자는 더욱 가지게 되며 없는 자는 있는 것마저 빼앗기게 된다. 이게 역사와 경험에서 증명된 부인할 수 없는 세상의 진리이다.
“선빵은 제가 이미 날려놓았습니다. 다른 소리 나오지 않게 단속 잘하라고 이대용 의원에게 일러두었으니, 정부 차원에서 잘 해결할 겁니다.”
이대용 의원은 내가 시킨 대로 움직일 것이며, 현 정부도 내가 명령한 대로 따를 것이다. 그들은 대한민국에 있는 대부분의 카드사가 외국 기업에 넘어가는 것을 방관할 터. 그리고 빚에 허덕이고 있는 시민들을 구할 유일한 키라고 볼 수 있는 면책 정책도 덮어둘 것이다.
그럼, 나는 계획했던 대로 조직원들을 움직여 밀린 돈을 받게 하고 그와 동시에 여러 개의 대부업체들을 오픈해 빚이 밀려 있는 사람들을 더욱 깊은 빚의 수렁으로 빠뜨릴 예정이다.
만약 도저히 갚지 못하겠다는 사람이 나오면 몸을 팔게 해서라도 갚게 하면 된다. 물론, 그것도 어디까지나 한계가 존재한다.
너무 많은 국민들이 빚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댈 때, 바로 그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다.
피땀 흘려 모은 세금들로 국민의 빚을 대신 갚는 것.
그 돈들은 전부 내가 운영 중인 기업에 들어갈 것이며 나는 이자까지 쳐서 톡톡히 값을 받아낼 작정이다.
즉, 대한민국에 있는 돈이란 돈은 전부 내가 갖게 된다는 뜻이다.
“넌 돈도 많은 녀석이 욕심의 끝이 없구나. 피눈물 흘리는 국민의 돈을 그렇게까지 뜯어가고 싶냐?”
말은 저렇게 해도 얼굴에는 음흉한 미소가 만연하고 있는 성일환이었다.
“가졌을 때일수록 더욱 경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게 돈 아닙니까? 앞으로 쓸 일도 많은데, 모을 수 있는 만큼 모아둬야죠.”
돈은 바닷물 같은 물질이다.
마시면 마실수록 더 마시고 싶은 것처럼, 가지면 가질수록 더 많이 가지고 싶다.
대한민국 세금이 합법적으로 내 주머니에 들어오는 걸 모두가 지켜보게 될 것이다.
* * *
2002년이 대한민국의 황금기였다면, 2003년은 그다지 큰 이슈 없이 흘러가는 해였다.
워낙 2002년에 일어난 일들이 많아 그런지, 이번 해는 휴식기를 가지는 듯 보였다. 하지만 2003년 2월에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사고들 중 하나로 불리게 될 사건이 터진다.
대구 지하철 참사.
이 일로 인해 수백 명이 목숨을 잃거나 실종되는 등, 한동안 대한민국은 아수라장이 되어 버린다.
“형님, 잡아왔습니다.”
하지만 내가 눈을 부릅뜨고 있는 한, 그 사건이 벌어지는 걸 가만두고 보겠는가?
9.11 테러와는 사안이 다른 문제이지 않던가.
9.11 테러로 인해 나는 중동 국가에 있는 테러 조직들을 손에 넣게 되었다. 하지만 대구 지하철 참사는 아무런 이득도 없는 인재에 불과하다. 그리고 지금 같은 상황에서 저런 사건이 터지는 건 반갑지가 않다.
조만간 카드사가 전부 내게 인수될 텐데, 제대로 빚 독촉을 하기 시작하려는 마당에 지하철 참사가 터져 버리면 원망의 목소리가 너무 커지게 된다. 그래서 내가 택한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대구 지하철 참사를 일으키는 주동자를 잡아오는 것이었다.
“이놈이야?”
“예, 회장님.”
잔뜩 겁을 먹은 것처럼 보이는 중년의 남성.
저 두 손으로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갈 줄 누가 알았겠는가?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정신장애 2급으로 판결받은 김광한은 휘발유 통을 들고 지하철 안으로 들어가 방화를 벌인다.
그게 바로 오늘이다.
2월 18일.
휘발유를 들고 지하철역으로 향하던 그를 조직원들이 붙잡아 데려온 것이었다.
이놈의 방화로 인해 190명이 넘는 사람이 죽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세계에서 2번째 가는 대량 학살로 기록된다. 아니, 기록될 예정이었다.
“어떻게 할까요?”
“조용히 묻어. 그쪽 가족들도 알아서 처리하고.”
나는 이 사람과 나눌 말도 없었다.
방화의 이유를 묻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자가 방화를 일으킨 건 자살을 하고 싶긴 한데, 혼자 죽긴 싫어서였다.
그런 자와 나눌 말이 뭐가 있단 말인가?
나는 조직원들 손에 김광한의 운명을 맡겼다.
내 말에 따라 저들이 알아서 탈이 없게 처리할 것이다. 그리고 2월 18일은 어느 때와 다름없이 평범한 하루로 지나가게 될 터.
“애들은 다 모였나?”
“예, 회장님.”
“그래, 여기는 알아서 하고, 이제 그쪽으로 가지.”
대한민국 대형 참사를 하나 막은 것치고는 일이 싱겁게 끝났다. 이창석 정부도 내 덕분에 한숨 돌린 것이나 마찬가지. 이제 막 임기를 시작할 참인데, 대형 참사가 일어나면 초기 정권부터 흔들리지 않겠는가?
나는 조직원들의 인솔에 따라 넓은 연회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각 지역을 맡고 있는 조직의 수장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들어온다는 얘기를 미리 들었는지, 미리 일어서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모두 앉지.”
“예, 회장님!”
조직폭력배답게 큰 목소리로 합창하며 모두 착석했다.
조직은 여러 개로 나눠져 있지만, 실상은 하나다.
모두 골든 연합이라는 이름 앞에 모여 있는 것이며, 이들의 운영 자금은 전부 화진 그룹에서 나온다.
“요즘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예전처럼 거리를 활보하는 활동은 하지 못해서 많이들 답답했을 거야. 그런데 좀만 참아. 조만간 큰 건수가 터질 거니까. 그땐 너희들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좋아.”
나는 눈을 반짝이고 있는 수장들을 쭉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카드사들이랑 손잡고 돈 받는 일부터 하게 될 거야. 그다음 단계는 대부업체 오픈이고. 그때도 돈 받으러 다니는 건 똑같으니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받을 돈은 다 받아.”
내가 구태여 세세하게 말하진 않았지만, 깡패들의 방법은 아주 악랄하다.
조금 세월이 지나면 여성들을 위한 대부업체가 활발하게 활동을 시작한다. 그것도 20세 이상의 젊은 여성들을 위해서만 돈을 빌려주는 것이다.
그 이유가 뭐겠는가?
만일 돈을 갚지 못하면 그 여성을 유흥업소 등에 보내 몸을 팔아서 돈을 갚게 하려는 의도인 것이다. 왜 대한민국의 유흥업소에 여자가 끊이지 않는 줄 아는가?
바로 고리대금의 늪에 젊은 여성들이 빠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번 몸을 팔아 돈을 번 여성은 절대 정상적인 직장을 가질 수가 없다. 만약 그랬다가는 조폭들이 협박을 해서라도 강제로 돌아오게 만들기 때문이다.
조폭들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회의 암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
이들은 카드빚을 받기 위해 상대방의 장기를 터는 짓도 서슴지 않고 행할 것이다.
그리고 당분간 나는 그러한 행동들을 묵인할 생각이다.
새로운 세계,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앞으로 이 나라는 많은 아픔을 겪어야 한다. 내가 뼛속 깊은 데까지 파고들어 솎아내 버릴 작정이기 때문이다.
경제, 정치, 종교, 사회 등등.
이 나라와 더불어 전 세계를 관장하기 위해서는 많은 작업이 필요하다.
없앨 것은 없애고 더해야 할 것은 더해야 하지 않겠는가.
또한 이 나라는 세계 최강국으로 거듭날 곳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완전해져야 한다. 그리고 그 완전해지는 방법은 모든 것이 내 통치 아래 있어야 한다는 것.
내가 곧 이들을 완전하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대부업체까지 오픈하게 되면 일이 정말 많아질 거야. 그러니까 지금은 푹 쉬면서 놀고들 있어. 일 많아지면 바쁠 테니까. 그리고 절대 인정을 둬서는 안 돼. 아까도 말했지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돈은 받아와.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이 대신 내야 되니까. 알겠지?”
“예, 회장님!”
내가 이렇게 말하지 않아도 빌린 돈은 지옥 끝까지라도 쫓아가서 기어코 받아낼 놈들이다.
카드사가 모두 인수되고 대부업체까지 활동을 시작하면 이 나라는 당분간 곡소리 때문에 난리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그들을 빚더미로 몰지 않았다.
선택은 그들의 몫이었고, 나는 그 대가를 치르게 하려는 것일 뿐.
결코 내가 나쁜 사람은 아니다. 난 그저 빌려준 돈을 받으려는, 아주 정상적인 일을 하려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