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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245화 (245/325)
  • 245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1)

    거칠게 나를 잡아 이끄는 이들의 손길에 난 반항하지 않고 순응했다.

    내가 만들어놓은 이 거대한 성을 더럽힌 놈들이다.

    이들의 무자비한 총탄으로 죄 없는 사람들이 죽었으며 나는 그 시체들을 밟으면서 성 밖을 나왔다.

    이윽고 외부의 공격에도 끄떡없는 방탄 트럭이 내 앞에 섰다.

    “얼른 타!”

    난 이번에도 저항하지 않고 차량에 올랐다.

    날 포위한 일곱 명의 대원들.

    몇몇은 날 신기하게 바라보았고 다른 몇몇은 날 가증스럽게 바라보았다.

    이런 눈빛은 이제 익숙하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럴 수 있는 겁니까? 사람들을 학살하고 죄 없는 사람을 이렇게 잡아가다니.”

    “입 닥쳐. 그 뒤통수에 총구멍 나기 싫으면.”

    살벌한 목소리다.

    아까부터 나를 보며 이를 갈고 있던 놈이었다.

    그의 말에 따라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기다렸다. 이 차가 달려가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모두 하차.”

    20분 정도 달렸던가.

    이놈들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기지를 설치한 것이 틀림없다.

    이들은 내 눈을 가린 채 차량 밖으로 나를 꺼냈다. 그런 다음 어디론가 나를 끌고 가더니, 차가운 의자에 나를 앉혔다. 물론, 양팔과 양발을 꽁꽁 묶어둔 채로 말이다.

    누가 보면 칼로 사람을 난도질하고 다니는 흉악범인 줄 알겠다.

    “이야, 천하의 김태산 부회장님을 이런 식으로 보게 되다니.”

    목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안대가 벗겨지자 역겨운 얼굴이 내 앞에 나타났다.

    “김용한 국장님?”

    “예. 접니다, 부회장님.”

    나는 주변을 스윽 둘러본 다음 말을 이었다.

    “저 사람들 실력이 범상치 않다고 여겼더니, 역시 국정원이었습니까?”

    “바로 맞췄습니다.”

    난 입술을 잘게 깨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국정원이 겁대가리를 상실한 겁니까, 아니면 김용한 국장 당신이 단독으로 저지른 짓입니까?”

    “하하, 뭘 모르시네.”

    김용한은 내 뺨을 세게 후려치며 욕지거리를 뱉었다.

    “상황 파악이 안 돼? 이제 넌 끝났어, 이 새끼야. 네가 아직도 이 나라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이 있을 거 같냐? 지금쯤이면 너뿐만이 아니라 너와 공모하고 있는 놈들도 전부 붙잡혔을 거야. 그런데 겁대가리를 상실했다고?”

    김용한 국장은 한 번 더 내 뺨을 때렸다.

    “왕 노릇 하다가 갑자기 떨어지니까 앞뒤 분간이 안 되나 보지? 정신 차려, 인마. 이상한 소리 지껄이다가는 여기서 맞아 죽을 수도 있으니까. 내 성깔 알지?”

    그동안 한 번도 내 앞에서 고개도 못 들고 있던 놈이 지금은 버럭 소리까지 지르며 눈을 부라린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본성이지 않던가.

    강자에게는 수그리고 약자에게는 고개를 빳빳이 세운다. 하지만 이놈은 지금 자신이 강자가 된 줄로 착각하고 있다. 세상이 뒤집어져도 절대 그럴 리 없다는 걸 여기서 가르쳐 줄 것이다.

    “나를 잡으면 다 끝날 거라고 생각하는 그 방식부터가 잘못된 거야. 내가 화진파라는 작은 조직을 지금의 골든 연합으로 어떻게 만들었는데. 나 하나 잡힌다고 모든 게 다 무너질 거라는 환상은 버려. 그 정도로 약하게 만든 곳이 아니야.”

    “뭐, 뭐야?”

    “그리고 설사 날 죽였다고 치자. 너랑 네 식구들. 그리고 이번 일에 가담한 놈들이 전부 무사할 거 같나? 아니야. 날 따르는 사람들은 내가 죽으면 핵탄두라도 떨어뜨릴 각오가 되어 있어. 만약 그런 사태가 벌어지면 정부에서는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까? 이건 모두 김용한 국장 당신의 독단적인 행동이었다고 몰아가겠지. 그렇게 너만 똥 밟는 신세가 되는 거야.”

    “지, 지금 무, 무슨 소리를!”

    김용한 국장은 매우 당황한 얼굴로 몸을 떨었다.

    난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내가 너 같은 멍청한 새끼한테 가만히 붙잡혀 있을 거 같아? 처음부터 네놈들이 무슨 계획을 꾸미고 있는지 다 알고 있었어.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내 앞에 머리를 박고 잘못했다고 빌어. 그럼, 네 가족만큼은 살려준다.”

    “이, 이 미친놈이 끝까지!”

    김용한 국장이 이번에는 주먹을 내게 날리려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남자가 그의 손을 붙잡았다.

    “강 부장! 이게 무슨 짓이야. 당장 이 손 놔! 오늘 이 새끼는 내 손으로 죽인다.”

    강성우 부장은 소름 끼치는 미소를 보이며 대꾸했다.

    “그렇게는 안 되겠습니다. 당신 같은 벌레가 우리 회장님에게 감히 손찌검하는 걸 내가 가만히 지켜만 볼 수 없지 않습니까?”

    “뭐, 뭣? 가, 강 부장. 그게 무슨 소리야?”

    당황해하는 김용한에게 내가 한술 더 뜨며 말했다.

    “이 아저씨 눈치가 없네. 강성우 부장이 정말 당신의 말을 올곧이 따랐다고 생각하는 거야?”

    “뭐야? 서, 설마 강 부장 자, 자네!”

    “죄송합니다, 국장님. 저도 먹고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강성우는 그대로 발을 걸어 김용한 국장을 넘어뜨렸다.

    국장은 울분에 찬 얼굴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 미친 새끼! 너도 같이 죽여주마! 다들 밖에서 뭐 하고 있어! 얼른 안으로 들어와!”

    바보인가?

    밖에 있는 요원들을 부른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 게 없지 않은가.

    이들은 절대 내게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

    김용한은 자신에게 겨누어진 총구들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았다.

    “너, 너희들 다 나라를 팔아먹은 거야?! 이 매국노 새끼들!”

    “멍청하긴. 당신도 한때 내 밑에서 발발거리며 살지 않았나? 어디서 혼자 깨끗한 척이야? 나를 몰아내는 게 정말 나라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해? 그렇지 않아. 나를 뒤에서 지원해 주는 게 이 나라의 미래를 밝게 해주는 거라고. 이 한심한 양반아.”

    “이, 이 새끼! 크악-!”

    강성우 부장의 발길질에 김용한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만 입 닥치고 있어. 회장님 말씀하시잖아.”

    “이 배신자 새끼! 널 믿었는데!”

    “미친놈, 난 처음부터 회장님 사람이었다. 내 유인에 걸린 건 네놈이고. 회식 때 뛰쳐나가고 사표 던진 건 전부 다 널 끌어들이기 위한 작전이었어.”

    국정원에 심어놓은 건 단순히 일반 직원들뿐만이 아니다.

    겉으로 보면 불의에 굴하지 않고 항상 청렴함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이야말로 제일 조심해야 할 놈들이다.

    내가 일부러 강성우 부장을 국정원에 심어놓은 건 언젠가 내게 반기를 드는 놈들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비책이었다. 그리고 김용한 국장이 제대로 걸린 것이었다.

    “솔직히 이렇게 잘 걸려들 줄은 몰랐습니다. 김용한 국장님이 아니었으면 꼼짝없이 당할 뻔했어요. 하하.”

    나는 넋이 나가 있는 김용한 앞에 쭈그려 앉아 말했다.

    “그리고 여기서 살아 나갈 생각은 하지 마세요. 내 뺨을 두 대나 때린 대가가 뭔지 똑똑히 보여줄 테니까.”

    그리고 뒤에 있는 요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김용한 국장의 가족들. 전부 여기로 데려오세요. 그들이 어떤 꼴을 당하는지 똑똑히 보여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 회장님.”

    김용한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사, 살려주십시오, 회장님. 제가 잠깐 미쳤었나 봅니다.”

    “늦었어. 미쳤으면 지금도 쭉 미치지 그래. 당신이 옥이야 금이야 키운 자식들이 고통스럽게 죽는 꼴을 제정신으로 볼 순 없을 테니까.”

    역모를 저지른 자에게는 삼대를 멸족시키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닌가.

    난 그에 합당한 벌을 내리는 것이다.

    “회, 회장님! 회장님!!”

    나는 김용한 국장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밖으로 나왔다.

    이미 밖에는 요원들이 정렬해 서 있었다.

    진심으로 김용한의 뜻에 따랐던 요원들은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되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쓸데없는 정의감에 사로잡혀 목숨을 잃은 한심한 영혼들이다.

    “모두들 고생했어. 마지막까지 뒤처리는 잘해야겠지? 내 집이 당신들 덕분에 엉망이 되었으니까 거기부터 잘 정리하도록 해.”

    “예, 회장님!”

    “강 부장은 나랑 같이 가지. 목적지가 어딘지는 알고 있겠지?”

    “예.”

    나는 강성우 부장과 함께 차에 올랐다.

    역모를 저지른 역적들을 한 명씩 만날 차례가 온 것 같다.

    * * *

    김태산이 붙잡혔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장연욱 검사는 서류 뭉치를 만지작거리며 자리에 앉아 있었다. 때때로 저런 모습을 보일 때면 말도 걸지 않는 게 좋아서 동료 검사들은 일부러 자리를 피해 주었다.

    천성 그룹을 비롯해 여러 재벌계 회장들을 향한 칼이 뽑아졌다.

    이미 수사권은 전부 가져온 상태.

    각 재벌 회장들에게 소환장을 보내놓았으며 언론에 발표하는 일만 남았다. 하지만 이 사건보다 훨씬 더 큰 사건을 발표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 핵심적인 증거들이 모두 이 서류에 들어있다.

    이걸 들고 가서 총장의 재가만 받으면 장연욱은 그동안 이 나라를 은밀하게 군림해 왔던 왕을 끝장낼 수가 있게 된다.

    모든 언론이 동시에 김태산이 그동안 저지른 비리, 협박, 살인 등을 폭로할 것이며 영웅시되어 왔던 그의 이미지는 사실 모두 거짓말이었다는 걸 모두가 알게 해줄 것이다.

    이 나라를 구하고 깨끗한 기업인으로만 알고 있던 김태산이 사실은 모두를 속였다는 걸 국민들이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

    수백만이 들고 일어나 김태산 하나를 죽이기 위해 폭동을 일으킬 수도 있다.

    결국 이 손으로 가장 친한 친구를 죽이는 것이다.

    이미 김태산과 장연욱은 한번 죽음을 건너왔다. 그리고 새로운 세계를 열자고 결심했건만 고작 결과가 이거란 말인가?

    차라리 이럴 거였으면 애초에 돌아오지 않았을 텐데.

    연욱은 마지막에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이 나라가 통째로 김태산 손에 넘어가 노예화되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이 손으로 모든 걸 여기서 끝내는 게 낫다고 여겼다.

    그는 서류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총장실로 향했다.

    “총장님, 김태산 부회장의 수사권에 대한 걸 논의드리기 위해 왔습니다.”

    총장은 어느 때와 다름없이 줄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연욱은 총장 앞에 서류를 내놓고 자리에 앉았다.

    “장 검사.”

    “예, 총장님.”

    “지금 이런 걸 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예?”

    “이강찬을 비롯해 총 12명에게 보냈던 소환장. 다시 다 돌아왔어. 그리고 기자회견도 전부 취소되었고. 또 재벌들을 향한 수사도 여기서 끝이야.”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인가?

    모든 수사가 멈췄다니.

    “초, 총장님. 이미 진행 중인 수사를 갑자기 끝내다니요. 거기다가 소환장까지…….”

    “뭔 뜻인지 몰라? 자네나, 대통령이나, 국정원. 그리고 그 외 이번 일에 가담했던 새끼들까지 전부 끝이라고.”

    순간 연욱은 머리를 망치로 세게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총장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한 것이었다.

    “정부에서 태산이를 잡았다고 들었습니다. 근데 그게 아니었습니까?”

    “정부가 잡아서 뭐 해? 이미 정부 자체가 다 그 사람 수족이거늘.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나도 예전에 라인을 갈아탔어. 돈도 안 되고 하는 거라고는 말밖에 없는 정부를 내가 왜 따라야 하지?”

    총장이 김태산의 사람이라는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일부러 계획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는데, 그는 모든 걸 알고 있다. 즉, 처음부터 이 계획이 밖으로 유출되었다는 것이다.

    “언제부터 알고 계셨습니까. 정부가 태산이를 노리고 있다는 걸.”

    “나도 어제 알았다. 어제 다 연락 돌았어. 재벌들한테 걸려 있는 수사 다 중단시키라고. 이미 어제부터 게임은 끝이었다는 거지.”

    모든 게 김태산 손바닥 위에서 놀아난 일이었다니.

    연욱은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떨어뜨렸다.

    “아무튼, 나랑 할 이야기는 여기까지인 거 같네. 이제 둘이서 잘 말해보도록 해. 최대한 살려달라고 빌어봐. 그래도 친구인데 한 번은 봐주겠지.”

    갑자기 그게 또 무슨 소리지?

    연욱은 고개를 들고 문 밖을 나서는 총장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들어오는 사람은 연욱이 세상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술이나 한잔할까?”

    상대는 여유 있게 술까지 챙겨왔다.

    연욱은 멍한 얼굴로 김태산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는 태연하게 잔에 술을 채우며 말했다.

    “연욱아, 내가 설마 그따위 장난질에 붙잡힐 거라 생각했던 거야?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라는 걸 잘 알잖아.”

    미소를 지으며 앉아 있는 김태산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도 소름 끼치고 무섭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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