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244화 (244/325)
  • 244화. 폭군 폐위 (3)

    “강성우 부장.”

    강성우 부장은 자신의 집까지 찾아온 김용한 국장을 보고 적잖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이내 표정을 바꾸며 차갑게 대꾸했다.

    “더 이상 부장이 아닙니다. 사표 수리, 안 하셨습니까?”

    “어허, 자네 같은 인재가 떠나 버리면 나는 어떡하라고?”

    “국정원에는 인재가 많습니다. 저같이 세상 물정 모르는 놈은 있으면 안 되는 곳 아닙니까?”

    “이 사람, 그러지 말고 자리나 옮길까? 자네한테 긴히 할 얘기가 있는데.”

    국장이 여기까지 왔다는 건 심상찮은 일을 논의하기 위함이다.

    강성우도 그 정도의 눈치는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좋은 곳은 못 데려다 드려요. 아시다시피 제가 사표를 내서.”

    “이 사람아, 사표 수리는 안 했다니까? 절대 그만둘 생각은 하지 말게. 오늘은 그냥 연차 낸 걸로 내가 처리해 놨어.”

    두 사람은 한적한 막걸리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갑자기 왜 이러시는 겁니까? 저랑 국장님이 겸상할 정도로 가깝다고 생각하진 않는데요?”

    “사람 참 각박하기는. 내가 예전부터 자네를 얼마나 아꼈는데.”

    지나가다 인사를 해도 받아주지 않던 양반이 갑자기 이러는 이유를 모르겠다.

    강성우 부장은 국장이 주는 막걸리를 조심스레 받았다.

    “저번 회식 때 있잖나. 그때 기분이 많이 상했던 모양이지?”

    예상했던 질문이 나오자 강성우는 단호하게 나갔다.

    “저 그 말, 물릴 생각 없습니다. 국정원이 언제부터 그런 새끼의 하수인이 되었단 말입니까? 전 국가를 위해 일을 했던 것인지, 절대 개인의 이익을 위해 일하고자 온 게 아닙니다.”

    아주 마음에 쏙 드는 대답이었다.

    국장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말이 맞아. 이 얼마나 통탄할 일이야? 언제부터 우리가 그런 놈의 시다바리 역할을 하게 된 것인지… 나도 이 참담한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어.”

    이건 의외였는지 강성우가 김용한 국장을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보나? 나도 국가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지, 절대 개인을 위해 충성하는 사람이 아니야. 그런데 지금 국정원 꼴을 봐. 다들 돈에 미쳐가지고 그 새끼 명령만 듣고 있잖아. 내 곁에는 다 배신자들밖에 없어. 딱 한 사람. 자네 빼고 말이지.”

    “국장님, 그 말씀은…….”

    김용한 국장은 막걸리 잔을 쭉 들이켠 다음, 허심탄회하게 말문을 열었다.

    “자네 같은 인재라면 내가 믿을 만하겠지. 조만간 이 나라에 큰 변화가 찾아올 걸세. 그 선봉에 우리가 서야 하고.”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큰 변화라니요?”

    “언제까지 이 나라가 김태산 그 작자한테 끌려다녀야 하는 건가? 이미 대통령의 재가도 떨어졌어. 아무리 죽은 정권이라고 해도 하루 권력이 무섭지 않나. 대통령은 대통령이니까 말이야.”

    강용한 국장이 뭘 말하는 것인지 강성우는 금방 이해했다.

    “그, 그 말씀은 김태산을 붙잡는다는 겁니까?”

    “말귀가 빨라서 좋네. 자네 말대로야. 김태산을 붙잡고 그놈을 추종하는 세력들을 한꺼번에 쓸어버릴 작정이야.”

    강성우는 순간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다.

    그의 미소를 보고 김용한도 똑같이 음흉한 입꼬리를 올렸다.

    “차기 대선은 이창석이 가져간다고 이미 김태산이 정했어. 그런데 청와대에서는 이번에 김태산을 몰아내고 이제까지 그놈이 벌인 짓을 전부 세상에 까발려 심판을 받게 할 생각인 거야. 그리고 이창석도 그에 공모한 죄로 덮어씌우는 거지. 그럼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되겠어?”

    “어… 노현우?”

    “그렇지. 그 양반이 정권을 잡는 거야. 아주 클린하게.”

    김용한의 말에 강성우는 고개를 끄덕이다 짐짓 의심의 눈초리를 띠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을 저한테 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왜 했겠어? 자네 말고 믿을 사람이 없으니까 그렇지.”

    김용한은 강성우의 잔에 막걸리를 채워주며 말을 이었다.

    “자네도 밑의 애들 중에 이놈은 괜찮겠다 싶은 놈이 있을 거 아니야. 그런 놈들만 추려와. 그리고 국정원에서 운영하는 특공대도 네가 맡아.”

    “그 말씀은 김태산을 체포하는 일에 국정원도 참여한다는 겁니까?”

    “그래, 우리가 주축이지. 경찰이나 검찰은 못 믿을 놈들뿐이잖아. 대통령도 그걸 걱정하는 거니까 우릴 쓰는 거지. 그리고 김태산 지키는 새끼들이 보통이겠어?”

    경찰과 검찰에는 김태산의 수족이 너무 많다. 국정원이라고 다를 바 없겠지만, 차라리 경찰에 의존하기보다는 국정원을 쓰겠다는 것이 정부의 뜻이었다. 강성우는 왠지 모르게 짜릿함까지 느껴졌다.

    “좋습니다. 제가 목숨 걸고 해보겠습니다. 이게 다 나라를 위한 일이 아닙니까?”

    “이야, 역시 강 부장이야. 내가 전적으로 자네한테 맡길게. 어디 한번 마음대로 해봐.”

    “김태산 그 새끼도 마음대로 해도 됩니까?”

    “흐흐, 생포하라고 했지만 부득이한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사살할 수도 있는 거 아니겠어?”

    김용한의 미소에 강성우도 입가를 비틀었다.

    왕을 폐위시키는 일을 국정원이 맡는다라…….

    강성우는 벌써부터 두 팔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 * *

    “규혁아, 온다면 온다고 말을 했어야지.”

    “죄송합니다, 형님. 너무 늦었습니다.”

    “알면 됐다, 인마.”

    성일환은 갑자기 찾아온 황규혁을 반갑게 맞이하며 양주잔을 들고 물었다.

    “한잔 줘?”

    “아뇨, 괜찮습니다. 오늘 스케줄이 좀 빡빡해서요.”

    “이놈이 출세했다고 바쁜 척을 하네.”

    “하하. 그런 거 아닙니다, 형님.”

    황규혁이 정중히 사양하자 성일환은 아쉬운 대로 자신의 잔에 술을 따랐다.

    “이렇게 찾아왔다는 건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찾아온 거겠지?”

    “아닙니다. 그냥 안부 인사차 온 겁니다.”

    “진짜? 그럼 저녁이라도 같이하자고 미리 말을 하지 그랬냐.”

    “그러기에는 시간이 촉박해서요. 오늘 중요한 일도 있고 해서요.”

    뭔가 할 이야기가 있는 것 같긴 한데, 선뜻 꺼내진 않는다.

    성일환은 재촉하지 않고 술잔을 기울이며 황규혁과 가볍게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쯤.

    황규혁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형님, 요즘 태산이가 너무 폭주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음? 태산이가?”

    “예, 최근에 들어 그런 느낌이 들어서요. 형님도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태산이가 이번에 베리칩이라고…….”

    “알아, 그게 뭔지.”

    성일환도 알고 있다는 건가.

    그렇다는 건 예상했던 대로 화진 그룹을 주축으로 베리칩을 대한민국에 뿌리는 것이 김태산의 계획이라는 것이다.

    “알고 계셨습니까?”

    “그럼, 알고 있었지. 그게 왜?”

    아무렇지도 않게 되묻는 성일환을 보며 황규혁은 어이가 없었다.

    “형님, 베리칩의 용도를 정말 모르시는 겁니까?”

    “알지, 국민들 몸에 그걸 박아보겠다는 거잖아.”

    “애완견처럼 대한민국 국민을 키우겠다는 겁니다.”

    “그래, 그런 의도지.”

    “형님!”

    태연하게 대답하는 성일환을 보고 황규혁은 자신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그에 반해 성일환의 목소리는 더욱 낮아졌다.

    “정신 차려, 이 새끼야.”

    “혀, 형님.”

    “큰형님이 뭘 원하셨는지 몰라? 끝없이 화진파의 영역을 넓히시는 거였어. 그 유지를 받들어 태산이가 하고 있는 거고.”

    “형님, 이건 큰 형님이 의도하신 것과 전혀 다릅니다.”

    “그래? 난 아주 큰형님답다고 생각하는데. 그리고 태산이가 뭘 하든 따르겠다고 했던 놈은 너 아니었냐? 왜 갑자기 딴소리야. 네가 지금까지 이뤄온 모든 게 다 네 힘으로 된 거 같아? 태산이 아니었으면 넌 일본에 발도 못 붙였어.”

    자존심을 건드리는 언사였지만, 틀린 말도 아니었다.

    “허튼 생각 하지 말고 태산이가 하자는 대로 해. 그놈이 이제까지 해서 안 좋게 끝난 거라도 있었어? 다 우리 좋자고 하는 일이야. 그놈이랑 정면으로 싸우려 들지 마. 동생이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도와주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알겠냐?”

    “…예, 형님.”

    “아무래도 오늘은 날이 아닌 거 같다. 다음에 시간 되면 저녁이나 먹으러 와라. 그땐 술도 마시자고.”

    “알겠습니다, 형님. 그럼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문을 닫고 사무실 밖을 나온 황규혁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래도 저 사람만은 건드리고 싶지 않았건만.

    아무래도 제거를 해야 할 사람이 하나 더 늘은 것 같았다.

    * * *

    김용한 국장은 오늘따라 콧노래가 절로 흘러나왔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지 않은가.

    이 손으로 직접 폭군을 끌어내리는 날이다.

    황규혁은 자신의 조직원들을 이끌고 이미 작전에 돌입했다.

    국정원에서 운용하는 특공대와 황규혁의 조직원들이 합세할 것이고, 김태산을 따르는 수족들을 동시에 제거할 계획이다.

    이미 작전은 완벽하게 짜여 있으며, 이제 시작만 하면 된다.

    김용한 국장은 최대한 근엄한 목소리로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시작해.”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큰 스크린 안에 수십 명이 송출하는 영상이 켜졌다.

    총 35명을 동원한 국정원 요원들.

    이들 모두 국장과 강성우 부장이 철저히 걸러낸 자들이다.

    이들의 실력은 물론, 신뢰도도 의심할 게 없다.

    그런 그들이 김태산의 본거지를 치는 것이다.

    타타탕-!

    두두두-!

    시작부터 큰 총성이 울려 퍼졌다.

    마치 유럽 귀족이 살 것만 같은 대궁전 저택에 살고 있는 김태산.

    그 입구부터 경호원들이 깔려 있어 험준한 경계를 자랑한다. 하지만 무작정 쏘는 총알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미 그 주변으로 통신망도 끊어버려 저 안에서 경찰에 신고할 방법도 없다. 그리고 총성을 듣고 달려올 경찰도 오늘은 없다.

    즉, 김태산은 이제 김용한의 먹이라는 것이다.

    “모두 빠르게 들어간다!”

    “예!”

    하지만 마구잡이로 총알을 퍼붓진 않았다. 효율적인 사격으로 순식간에 입구에 있는 경호원들을 정리한 요원들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뒤를 황규혁의 조직원들이 따랐다.

    이들도 마냥 깡패들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듯, 요원들보다 훨씬 더 잘 무장을 하고 있었다.

    “민간인이라고 해서 살려둘 필요 없다. 알겠나? 목격자가 있어서는 안 돼. 전부 죽여라.”

    강성우 부장의 간결한 명령에 요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목격자는 없다.

    오직 김태산 하나만 있으면 된다.

    어차피 여기는 시골에 마련되어 있는 김태산의 성이다.

    소란을 피워도 누구 하나 관심을 가지지 않을 곳이라는 것이다.

    “진입!”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작전이었다.

    황규혁의 조직원들도 이에 못지않은 실력을 보여주며 각자의 루트를 따라 대저택을 공략했다.

    끊임없이 나오는 김태산의 경호원들을 부드럽게 제거하고 드디어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정원사부터 잡일을 하는 직원들도 있었지만, 이들은 거리낌이 없었다.

    일단 눈에 들어온 상대를 죽이고 본다는 것이 오늘 이들에게 떨어진 명령이었다.

    타타탕-!

    삽시간에 저택 안이 아수라장으로 변하고 비명 소리로 가득해졌지만, 이들은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이 저택의 마지막 층에 있는 김태산을 찾아 문을 거칠게 열었다.

    역시, 마지막 관문답게 그 안을 지키는 놈들의 실력이 꽤 상당했다.

    지금까지 한 명도 나오지 않은 아군의 사망자가 벌써 7명이 나왔다. 하지만 결과는 그리 쉽게 바뀌지 않았다.

    “타깃을 포위했습니다.”

    숨을 죽인 채 여러 화면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던 김용한 국장은 드디어 헤드셋을 벗고 진한 한숨과 함께 주먹을 꽉 쥐었다.

    저 얼굴이다.

    저 얼굴을 가진 사람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지 않은가.

    모두가 내 발아래 있다는 듯한 저 오만한 눈동자.

    맘 같아서는 지금이라도 저 대가리에 총알을 박고 싶다. 하지만 그의 최후를 원하는 건 단순히 자기뿐만이 아니지 않던가.

    “그놈은 살려서 데려와. 그리고 나머지는 전부 죽여.”

    “예, 국장님.”

    물론, 수송 과정에서 김태산이 저항을 하는 바람에 죽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국장은 멈췄던 콧노래를 다시 부르며 수화기를 들었다.

    “대통령님, 방금 전 김태산을 붙잡았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어떤 이들의 환호성이 들려온다.

    아마 이 소식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일 것이다.

    목소리만 들어도 대충 누군지 예상이 갔다.

    “수고하셨습니다, 국장님.”

    “하하, 아닙니다. 이 길로 바로 김태산을 대통령님 앞에 대령해 놓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국장은 수화기를 내려놓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오늘 드디어 이 나라의 어둠이 걷어지고 찬란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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