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246화 (246/325)
  • 246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2)

    “너…….”

    연욱이의 눈동자가 잘게 흔들리고 있었다.

    내가 붙잡혔다는 연락을 받고 여기까지 왔을 텐데, 생각지 못한 얼굴이 나타났으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꼭 죽다 살아난 사람을 보는 얼굴인 거 같은데. 내가 진짜 잡혔다고 생각한 거야?”

    “청와대에서는 그렇게 말을 하던데?”

    “하하, 우리 연욱이 출세했네. 청와대랑 연락도 하고.”

    나는 잠시 말없이 술잔을 기울이다 날카로운 목소리로 연욱이에게 물었다.

    “이 방법밖에 없었냐? 꼭 이래야만 했어?”

    묵묵히 나를 응시하고 있던 연욱이는 앞에 놓인 잔을 한 번에 비운 다음 입을 열었다.

    “그래, 이 방법밖에는 없었어.”

    “날 죽이는 게? 네 절친을?”

    “살벌한 소리하지 마라. 내가 널 왜 죽여? 죽일 생각은 없었어. 그냥 붙잡아둘 생각이었지.”

    “순진한 거야, 아니면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거야? 그놈들이 날 붙잡으면 영원히 어디 감옥에다 처넣을 줄 알았어? 바로 제거를 했겠지. 국정원 국장이란 놈이 날 그 자리에서 때려죽이려 했어. 이래도 붙잡아둘 생각이었다고 발뺌하는 거야?”

    연욱이는 당황한 얼굴빛을 띠었다.

    나도 안다.

    이놈이 날 죽일 생각이 없었다는 걸.

    “설사 네가 날 죽이려고 하지 않았다고 해도 이미 이런 행동을 했다는 것 자체가 날 죽이는 거랑 똑같은 거야. 내가 세상에서 제일 믿고 있던 친구에게 배신당하고 그동안 공들여 쌓아놓은 사회적 지위를 전부 박살 내려 했잖아.”

    난 연욱이가 들고 온 서류를 펼쳐보았다.

    그동안 내가 화진 그룹을 키우기 위해 벌였던 수많은 로비와 비리에 대해 고발하는 내용들. 그러나 워낙 철두철미하게 진행했던 일들이라 증거를 잡기가 쉽지 않았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욱이는 먼지 같은 증거들을 차곡차곡 모아 나름 구색을 갖추었다.

    이 정도면 며칠 모은 것이 아니다.

    적어도 몇 년은 시간을 쏟아부었을 것이다.

    “언제부터였냐? 이만큼 자료를 준비하고 있던 게.”

    연욱이는 자포자기한 낯빛으로 대답했다.

    “5년 가까이 됐지.”

    “5년? 그동안 내 얼굴 보면서 찔리는 건 없었고?”

    “그닥. 내 성격 알잖아. 나 검사야. 누가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 파고드는 게 그리 힘들었을까?”

    난 서류를 덮고 진지하게 물어 보았다.

    “이유가 뭐야? 왜 날 쥐 잡듯이 털었어?”

    “이유? 간단하지.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그것도 심각하게 죄를 짓고 있는 사람이 내 눈앞에 있잖아. 그래서 조사한 거야.”

    이놈 성격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내 뒤를 캐고 있을 줄은 몰랐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검사로서의 소명을 다하겠다는 건가.

    “5년 동안 참 많이 고생했을 텐데, 쓸모가 없어져서 어떡하냐.”

    난 서류를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연욱이는 그걸 가만히 바라보며 말했다.

    “괜찮아, 다시 하면 되니까.”

    “다시? 너한테 다시라는 기회가 있을 거 같아?”

    “…여기서 죽일 거냐?”

    나는 입술을 꾹 깨물며 연욱이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이 멍청한 새끼! 그래도 내가 너만은 믿었는데. 어떻게 네가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참았던 분노가 한꺼번에 터지는 것 같다. 하지만 연욱이의 표정은 담담했다.

    “그건 내가 돌려주고 싶은 말이야. 너야말로 어떻게 이렇게 변할 수가 있어? 화진파를 화진 그룹으로 만든 것에서 멈췄다면 나도 눈 감고 넘어갔을 거야. 우리의 복수는 거기서 끝이라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넌 선을 넘었어. 그것도 한참 전에. 내가 널 배신한 게 아니야. 네가 날 배신한 거지. 모든 내 기대로부터.”

    나는 멱살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결국 모든 건 내가 시작했다는 걸 말하고 싶은 건가.

    “난 충분히 너에게 설명을 했다고 생각했어.”

    “그래, 하지만 난 반대했지. 그걸 들은 체 만 체한 건 너고.”

    “그렇게 이해하기가 힘들었어? 이제 깨끗하게 사는 것도 그만할 때도 됐잖아. 도대체 왜 그렇게 사는 거야? 우리가 평생 그렇게 살다가 어떤 꼴을 당했는데. 또 그런 일을 당하고 싶은 거야?”

    “…더는 할 말이 없다. 그러니까 이제 그만 죽이든 살리든 알아서 해라.”

    연욱이는 소파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았다.

    난 길게 한숨을 쉬며 녀석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상대가 뭘 받아주질 않으니 속 시원하게 팰 수도 없었다.

    “내가 널 왜 죽여. 그럴 생각 처음부터 없었어. 내 가장 친한 친구를 죽이는 놈이 될 순 없지. 하지만 그렇다고 네가 계속 그 자리를 지키게 놔둘 순 없어. 네가 내게 하려던 거. 똑같이 갚아줄게.”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연욱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난 그대로 몸을 돌려 총장실 밖을 나서다 마지막으로 연욱이에게 기회를 주었다.

    “이건 모두 네가 자초한 일이야. 하지만 지금이라도 내게 용서를 빌고 내 말대로 하겠다는 약속을 한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어.”

    하지만 내 예상대로 연욱이는 짧은 대답으로 뜻을 명확히 밝혔다.

    “됐다. 그만 가라.”

    이것으로 끝났다.

    나와 장연욱이란 사람의 관계가.

    * * *

    총장실을 나와 내가 다음으로 향한 곳은 황규혁이 머물고 있는 청담동 빌딩이었다.

    20층으로 만들어진 이 빌딩은 황규혁이 한국에 머물 때 쓰기 위해 지어놓은 곳으로 웬만한 시설들이 전부 다 들어 있었다.

    나는 최정식과 함께 차에서 내려 단둘이 빌딩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자 정식이가 잠시 나를 만류하며 말했다.

    “괜찮겠어? 여긴 황규혁 형님 사람들로 쫙 깔린 곳이야. 그 형님이 마음만 먹으면 너랑 나를 쥐도 새도 모르게 여기서 죽일 수도 있다는 거지.”

    “나도 알아. 그렇다고 우리 애들 다 끌고 올 순 없잖아? 여기 청담동 한복판이야. 빌딩 안에서라면 모를까, 밖에서부터 칼질하는 걸 보여줘선 곤란해.”

    “그래도…….”

    “괜찮아. 다 잘될 거야.”

    정식이는 할 말이 참 많아 보였지만 그냥 삼켜 버렸다.

    생각해 보면 내 또래 중에서 나를 믿고 따라주는 건 이놈밖에 없다.

    절친이라 생각한 연욱이가 날 배신하고 친형처럼 따랐던 황규혁마저 날 버렸다. 그런데 그냥 쓰기 좋은 도구라고만 생각했던 정식이는 유일하게 나를 믿어주고 있다.

    뭔가 씁쓸하면서도 고마운 마음이 든다.

    “들어가자. 여차하면 우리 정식이가 날 지켜주겠지.”

    “젠장, 나이 들어서도 보디가드 노릇을 해야 하다니. 그래. 가자 가. 내가 다 쓸어줄 테니까.”

    우리는 빌딩 안으로 발을 들였다. 예상했던 대로 황규혁의 조직원들이 1층에서부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당장에라도 우릴 죽일 수 있게 포위한 채로 황규혁이 있는 맨 꼭대기 층까지 안내했다.

    “어서 와라.”

    이 양반은 일본 물을 먹더니 취향도 일본처럼 바뀐 모양이다.

    룸 내부가 다다미식으로 되어 있어 일본 전통식을 떠올리게 한다.

    “앉아라.”

    정식이는 뒤에 조직원들과 서 있었고 나는 황규혁 앞에 앉았다.

    “여기 와보는 건 처음이네요.”

    내가 운을 떼자 황규혁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네가 하도 바쁘다 보니까. 여길 내가 얼마나 자랑하고 싶었는지 아냐?”

    “그러게요. 충분히 자랑할 만한 곳입니다. 정말 잘 지었네요. 그래서, 이거 한 번 안 봐줬다고 시위하신 겁니까?”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니 황규혁은 순간 입을 다물었다.

    그는 다시 여유 있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하, 얘기가 또 그렇게 되나.”

    “제가 붙잡힌 줄 아셨을 텐데. 그렇지 않아서 실망이 크셨겠습니다.”

    노골적인 내 물음에 황규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이래야 김태산답지. 그렇게 쉽게 잡힐 거라 생각은 하지도 않았어. 그러니까 항상 플랜 B를 만들어놓는 거지.”

    “그 플랜 B가 뭡니까?”

    “우리 조직원들 풀어서 널 잡는 거? 근데 그것도 도루묵 됐다. 네가 제 발로 여기에 찾아올 줄은 몰랐거든.”

    “제가 항상 남을 놀래는 재주가 있지 않았습니까.”

    “하하, 그랬지. 그런데 이번 수는 아무래도 잘못 둔 게 아닐까?”

    황규혁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뒤에 있던 조직원들이 전부 칼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그의 양옆에 서 있던 두 조직원도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 들며 나를 눈빛으로 위협했다.

    “형님의 귀여운 동생을 이렇게 죽이실 겁니까?”

    “죽이다니. 절대 그렇지 않아. 잠깐만 잡혀 있어라. 대충 일이 마무리 되면 그때 다시 밖으로 보내줄게.”

    “제가 밖으로 나가 있을 때면 저는 검찰 손에 붙잡히겠네요. 그럼, 감옥에서 한 몇 년을 썩어야 하죠? 적어도 무기징역은 나올 거 같은데.”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야지. 개죽음당하는 건 너도 싫잖아.”

    모든 걸 잃고 감옥에서 썩느니, 차라리 여기서 황규혁 손에 개죽음을 당하는 게 낫다.

    하지만 그것이 오늘은 아니다. 그리고 황규혁은 날 붙잡아둘 수도, 죽일 수도 없다.

    “싫습니다. 전 이대로 그냥 살렵니다.”

    “태산아,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건지는 몰라도 이미 여기까지 들어온 이상 체크메이트야. 네 조직원들이 쳐들어온다고 해서 내가 눈 하나 깜짝할 거 같니?”

    “뭘 잘 모르시네요. 제 조직원들이 왜 쳐들어온단 말입니까?”

    “그게 무슨… 쿠욱-!”

    황규혁은 자신의 옆구리에 박힌 칼을 붙잡으며 신음을 터뜨렸다.

    황규혁의 옆을 지키고 있다는 건, 그가 가장 신뢰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믿었던 조직원의 칼에 옆구리를 찔렸으니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너, 너 이 새끼…….”

    자신을 찌른 조직원에게 살기 어린 눈빛을 띠고 있었지만, 상대는 무미건조한 얼굴이었다.

    “아프십니까?”

    내 물음에 황규혁은 이번에 나를 노려보았다.

    “저도 믿었던 형님과 친구에게 배신당했을 때 딱 그 기분이었습니다. 그게 얼마나 엿같은지 이제 좀 아시겠죠?”

    내 눈짓에 칼이 뽑혔다. 그러기 무섭게 황규혁이 일어나 상대를 죽이려 들었다.

    “이 개새끼!!! 크악-!”

    하지만 이번에는 오른쪽에 있던 조직원이 황규혁의 몸을 꽉 붙잡았다.

    “소용없습니다. 저 사람들. 그리고 여기 뒤에 있는 이 사람들까지. 전부 다 저를 따르고 있습니다.”

    황규혁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일본을 정복하며 생사를 같이한 조직원들이 사실은 전부 내 사람들이라는 걸 알면 얼마나 배신감이 크겠는가?

    “형님.”

    나는 바닥에 쓰러진 채 짙은 신음을 뱉고 있는 황규혁 앞에 술잔을 놓았다.

    “단순히 형님 능력이 좋아서 일본을 정복한 거라고 보십니까? 아닙니다. 저의 적극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형님께서는 진작 사라졌을 거예요. 항상 제가 뒤에 있었으니까 그 자리를 지키고 계신 겁니다.”

    “어, 어떻게…….”

    “아, 조직원들이요? 처음부터 제 사람이었던 사람도 있고 나중에 제가 끌어들인 사람들도 있습니다. 뭐, 형님께 충성을 다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지금쯤이면 정리가 되고 있겠네요. 이 아름다운 빌딩 안에서 말입니다.”

    “처, 처음부터 날 속인 거냐?”

    난 섭섭하다는 어투로 대꾸했다.

    “속이다니요. 그저 형님을 지켜드리고자 했던 아우의 마음입니다. 만약 형님께서 그대로 일본에 만족하셨다면 저도 묵묵히 형님의 뒤를 책임져 드렸을 겁니다. 하지만 형님께서는 일본으로 만족하지 못하시고 저를 쳐낼 생각만 하셨잖아요.”

    “그런 게 아니라는 걸 너도 알잖아!”

    “그래요? 저한테는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는데요?”

    나는 황규혁 뒤에 있던 조직원들에게 말했다.

    “잡아.”

    “예.”

    두 조직원들 손에 황규혁이 십자가 모양으로 붙잡혔다.

    난 바닥에 떨어져 있는 칼 하나를 잡고 성큼성큼 그 앞으로 다가갔다.

    “형님, 모든 건 다 제 손바닥 안에 있습니다. 형님께서 청와대에 가서 무슨 얘기를 나눴고, 또 무슨 일을 꾸미고 있었는지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단 말입니다.”

    “…….”

    “그래도 형님을 믿었습니다. 마지막 순간에는 뜻을 바꿀 것임을요. 하지만 결국 제 기대를 이렇게 짓밟아 버리시는군요.”

    난 그 말을 끝으로 황규혁의 복부에 칼을 꽂아 넣었다.

    “크읍-!”

    진득한 피가 내 왼쪽 어깨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황규혁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피다.

    난 한 번 더 그의 배에 칼을 꽂았다.

    경련이 일어나던 몸이 차츰 힘을 잃어간다.

    “마지막 가는 순간은 지켜 드리겠습니다.”

    결국 온몸에 힘을 잃은 채 고개를 숙인 황규혁을 두고 나는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부디 편히 가십시오, 형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