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243화 (243/325)
  • 243화. 폭군 폐위 (2)

    “와, 왕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김용한이 모른 척하며 말하자 황규혁은 실소를 지었다.

    “김 국장님, 정말 모르시는 겁니까, 아니면 순진한 척을 하시는 겁니까?”

    “…….”

    “이 나라의 왕이라면 누구겠습니까? 딱 한 명밖에 없잖아요.”

    김용한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그리고 고해성사를 하듯 말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 사람을 건드린다는 건 어렵습니다.”

    “생각보다 간이 작으시네요.”

    “본 게 있으니까. 내 전임 국장이었던 양반이 호기심에 그 양반의 뒤를 캤다가 바로 옷 벗었습니다. 그뿐입니까? 그 조사에 관련되어 있던 국정원 직원들이 전부 실종됐어요. 전부! 전임 국장이란 사람도 가족들과 같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고! 근데 나더러 그 일을 반복하라? 차라리 옷 벗겠습니다.”

    전임 국장이 어떤 꼴을 당했는지, 또 그와 함께했던 사람들도 무슨 꼴을 당했는지 똑똑히 봤다. 그 참극이 자신한테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그래서 김용한 국장이 거부하는 것이다. 하지만 황규혁은 설득을 멈추지 않았다.

    “저도 그 마음 잘 압니다. 태산이가 그런 일에는 아주 철저하죠. 그러나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제가 반드시 국장님을 지켜 드리겠습니다. 히트맨들이 어떤 경로로 움직이는지는 제가 아주 잘 알고 있어요. 그들이 국장님을 건드리지 않게 해드리죠.”

    “고작 그런 구두 약속을 믿으라는 겁니까? 어림도 없습니다.”

    “김 국장님.”

    국장이 비웃으며 대꾸하자 김일중 대통령이 말문을 열었다.

    착 가라앉은 그의 목소리에 내심 긴장하던 김용한이었다.

    “저는 이 나라의 대통령입니다. 비록 그 사람의 영향력이 너무나도 커서 지금은 정부가 식물 정권으로 전락했지만, 그래도 대통령은 대통령이지 않습니까? 대한민국 안에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움직일 수가 있어요.”

    황규혁이 김일중의 말을 거들었다.

    “저 말씀이 맞아요. 제가 대통령님과 함께 행동에 나설 겁니다. 우리와 뜻을 함께할 사람들을 모아 속전속결로 김태산을 붙잡는 거예요. 결코 어불성설이 아닙니다.”

    김일중의 표정을 보니, 대통령이 작정하고 독기를 품었다는 것을 김용한은 알 수 있었다.

    정말일까?

    정말 그게 가능할까?

    국정원만 그 사람의 그림자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주요 기관들이 전부 김태산이란 이름 앞에 놓여 있다.

    그런 사람을 끌어내리겠다고?

    “검찰에서 먼저 시작을 할 겁니다. 천성 그룹 회장부터 시작해 재계 순위를 달리고 있는 회장들이 줄줄이 잡혀 들어가게 될 거예요. 그럼, 김태산을 따르는 세력들이 요동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그들이 흔들리게 된다면?”

    “김태산이 다른 곳에 신경을 쓰느라 우리 쪽을 바라보지도 못하겠군요.”

    “예, 그 빈틈을 노린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한꺼번에 다 들이쳐 버리는 거죠. 날치기하듯이 김태산을 붙잡아 버리는 겁니다. 그럼, 그의 지배를 받고 있던 세력들은 우왕좌왕거리며 선택을 하겠죠.”

    “선택이요?”

    “예, 정부에게 붙을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김태산과 운명을 같이할 것인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되겠죠.”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 바로 김태산이다. 그야말로 그는 이 나라의 왕이다. 그런데 왕이 붙잡히게 된다면 그 옆에 있는 나이트와 폰들은 통제력을 잃는다는 것이다. 조금만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해결이 될 일이지만, 황규혁의 말처럼 속전속결로 밀어붙인다면 그들을 붕괴시킬 수 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황규혁의 제안은 아주 달콤해 보였다.

    이번 정권이 끝나면 차기 정권에서는 자신을 제물로 삼아 불에 태워 버릴 것이다. 그런 꼴을 당하느니 차라리 반기를 들어보는 게 낫지 않겠는가?

    궁지에 몰리면 쥐도 고양이를 무는 법이다.

    “함께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국정원 내부에서 김태산의 끄나풀들이 없겠습니까? 아마 득실댈 겁니다. 그놈들의 눈을 피해 요원들을 움직이는 건…….”

    “누가 김태산의 편이고, 누가 국가의 편인지 모르겠다는 거죠?”

    “예.”

    “그들을 분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겠습니까?”

    황규혁의 말에 국장은 잠깐 고민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방법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건 제가 알아서 해보지요.”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저리 대답하는 것을 보면 뭔가 수가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검찰이 움직이는 건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쪽도 김태산의 수족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장연욱 검사 아시죠?”

    “아, 예. 김태산의 친한 친구라고 알고 있습니다. 국민들한테도 인기가 많던데요? 김태산이 열심히 밀어준 덕분에요. 여당 쪽에서 장연욱 검사를 대권 후보로 만든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소문이 아닙니다. 이번 대선은 이창석이 가져가고 그다음 대선 때 장연욱 검사가 대통령이 될 겁니다. 이미 각본이 다 짜여 있어요. 거기다가 단임제를 연임제로 바꿔서 독재가 가능하도록 만들 거예요.”

    무서운 일이다.

    벌써 거기까지 계획이 잡혀 있다니.

    장연욱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그건 이 나라가 완전히 김태산 손에 넘어간다는 것과 진배없다. 즉, 이렇게 작당 모의조차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불행 중 다행으로 장연욱 검사가 김태산의 일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가장 친한 친구이지 않습니까?”

    “그렇긴 한데, 둘의 생각하는 바가 다른 거죠. 그래서 장연욱 검사는 이미 우리와 뜻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김태산을 속여 천성 그룹과 그 외의 재벌들을 수사할 수 있는 권한을 얻었죠.”

    정말이지 불행 중 다행이다. 만약 장연욱이 김태산의 최측근에 있었다면 꼼짝없이 그가 대통령이 되는 걸 봤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엄청난 권력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기회를 이렇게 차버리다니.

    “그 사람, 믿을 수 있습니까?”

    “그건 제가 보증합니다. 지금으로서는 누구보다도 믿음이 가는 사람입니다.”

    가장 측근에 있는 사람이 의외로 제일 믿음이 가는 사람이라…….

    그러나 황규혁과 김일중 대통령이 저렇게 신뢰를 드러내는 것을 보면 믿을 만한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도 행동에 들어가도록 하죠. 제 주변에 누가 국가를 위해 충성하는지 잘 찾아보겠습니다.”

    “그렇게 해주십시오, 국장님.”

    “그럼 이만…….”

    김용한 국장이 정중하게 인사를 올린 다음 자리를 떴다.

    김일중은 단둘이 남게 된 황규혁에게 물었다.

    “황 사장님이 저와 같이 있다는 걸 김태산이 알고 있을 텐데요. 괜찮겠습니까?”

    “이미 그건 알리바이를 만들어두었습니다. 브로드밴드 사업을 제대로 펼치기 위해 왔다는 걸로요.”

    “하지만 그걸로는 변명거리가 너무 약한데요?”

    “그래서 제가 소프트뱅크 회장까지 데려오지 않았습니까? 그 외에도 여러 기업인들이 자리를 함께할 테고요. 브로드밴드 사업망 오픈을 위한 투자는 절대 거짓말이 아닙니다. 진짜 그렇게 하려고 여기까지 온 겁니다.”

    나름 열심히 연막을 쳤다는 것인가.

    지금 현 정부가 관심을 드러내고 있는 곳이 바로 IT 산업이다. 그중에서 인터넷 사업은 반드시 이뤄져야 할 사업이다. 그 때문에 소프트뱅크 창업자 손정의가 김일중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그에 대한 투자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황 사장님이 잘 이끌어주셔서 IT 산업에 꽃을 피워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예, 그 일에 대해서는 차후 논의를 하도록 하죠. 일단은 눈앞에 있는 일부터 해치워야겠습니다.”

    황규혁도 자리에서 일어나 짧게 인사를 한 다음 밖으로 나갔다.

    홀로 남게 된 김일중은 무거운 침음을 흘렸다.

    왕을 끌어내린다라…….

    드디어 폭군을 폐위시키는 건가?

    * * *

    “연락도 없이 갑자기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하하, 그렇게 됐다. 일본에서 이번에 한국 인터넷 사업에 집중투자를 하게 돼서. 그것 때문에 일본 기업인들을 데리고 오느라고. 방금 전에는 김일중 대통령도 만나고 왔어.”

    황규혁이 일본 기업 대표들을 이끌고 한국으로 온다는 소식은 일본에 있는 연락책들을 통해 전해 들었다.

    “그러셨어요? 미리 말씀이라도 해주시지. 시간이 조금만 어긋났으면 못 만날 뻔했습니다.”

    “짜식, 형님이 만나자고 하면 언제든지 퍼뜩 달려와야지! 자자, 이러지 말고 여기 있는 분들이랑 인사 나눠.”

    갑자기 일본에서 한국으로 날아와 김일중 대통령을 만났다. 그것도 기업인들을 대동해서 말이다. 조금 이상한 일이지 않은가. 일본 최대 야쿠자의 수장이 김일중 대통령과 만남을 갖다니.

    “이번에 내가 이 사람들을 설득해서 한국 IT 산업에 투자를 좀 하기로 했어. 그런데 내가 이 사람들을 불러 모아놓고 투자를 시작한 거라 나도 덩달아 같이 오게 됐다.”

    황규혁이 일본에서 베팅금을 모아놓았다는 건 대충 들어 알고 있었다. 그 돈들을 전부 한국에 쏟아부을 생각이었나?

    그렇다면 생각을 잘한 것이다.

    조만간 한국 IT 산업이 발전을 거듭하지 않던가?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일본 기업인들이 각자 내게 고개를 숙였다.

    이들도 황규혁이 누군지, 또 내가 누군지 알고 있을 터.

    이들의 정중한 인사를 받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김일중 대통령과는 얘기를 잘하셨습니까?”

    “뭐, 그 양반은 이제 끝이잖아. 그 양반 말고 다른 줄을 대야지. 너 만나고 나서 이창석 의원을 만날 생각이야. 다음 대통령은 그 사람이잖아.”

    “앞으로 협력을 위해서라면 만나보는 게 좋겠군요. 그렇게 하십시오.”

    “그래, 그 양반 만나고 나서 다시 올게. 그때 술이나 한잔하자.”

    황규혁은 기업인들과 나의 만남을 빠르게 마무리시키고 이창석을 만나기 위해 갔다.

    뭔가 자꾸 수상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기분 탓일까.

    난 겉으로 표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황규혁을 보냈다. 그리고 조용히 수화기를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 * *

    “다들 요즘 빡빡하지. 오늘은 기분 전환도 할 겸 열심히 먹고 마시자고.”

    김용한 국장은 웬일인지 룸까지 잡고 간부들을 불러 술을 깔았다.

    좀처럼 볼 수 없는 일인데, 간부들은 저마다 눈치를 보고 있었다.

    “표정들이 왜 그래. 뭐 이상한 짓이라고 꾸밀까 봐 그래? 이거 아주 깨끗한 돈이야. 공식적으로는.”

    이상한 어감 때문에 간부들은 들고 있던 잔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그러기 무섭게 국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니, 왜들 그래? 깨끗한 돈이라니까. 화진 그룹 부회장님이 우리 고생한다고 주신 카드다. 됐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분이 주시는 카드 받고 탈 날 리가 있겠어?”

    국정원 짬밥이면 이 나라의 권세가가 누구인지는 금방 알 수 있다.

    화진 그룹 부회장이면 누구겠는가.

    대통령조차도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준 카드는 탈이 나기는커녕 대놓고 써도 문제가 없다.

    경찰, 검찰, 언론을 가리지 않고 김태산이란 이름이 나오면 서류를 덮어놓고 보는 게 관례이지 않던가?

    국정원도 그와 다르지 않다.

    김용한 국장은 한 술 더 떠서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 김태산 부회장님이 말이야. 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려고 매일같이 뛰어다니고 계셔. 우리는 그 보조만 잘 맞춰주면 되는 거야. 다들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고 싶잖아. 안 그래? 그리고 이 나라는 어차피 예전부터 썩었어. 차라리 그런 분이 나서서 대한민국을 잘 이끌어주시면 좋지 않겠어?”

    간부들은 국장의 말에 맞장구를 쳐댔다.

    “그렇죠.”

    “옳은 말씀이십니다.”

    “하하, 좋아. 그러니까 오늘은 미친 듯이 달려보는 거다. 다들 눈치 보지 말고 마음껏 마셔. 여자들도 죄다 불러줄 테니까. 알겠지?”

    “정말 탈 없는 거죠?”

    “이 새끼들이 속고만 살았나. 이런 거 한두 번 해봐?”

    그제야 간부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김용한 국장은 괜한 걸 기대했나 싶어 짧게 혀를 찼다.

    이것이 국정원의 현실인가.

    “시발, 도저히 못 들어주겠네.”

    그때 번쩍 튀는 사람이 하나 나왔다.

    “강 부장, 국장님 앞에서 지금 이게 무슨 짓이야!”

    “니미, 나라꼴이 아주 더럽게 돌아가는데, 지금 술맛이 나게 생겼습니까? 난 이만 옷 벗고 그만두렵니다. 역겨워서 정말.”

    강성우 부장이 술잔을 던지고 밖으로 나가자 국장은 드디어 볼 수 있었다.

    누가 김태산의 개노릇을 하고 있고, 누가 국정원의 사명을 다하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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