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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215화 (215/325)
  • 215화. 떠나기 전 단단하게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장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회장님.”

    “초대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중국 고위급 간부들이 한 명씩 내게 인사를 올렸다.

    나는 이들과 악수를 나누며 서로를 반겼다.

    누가 보면 오랜만에 모인 동창회인 줄로만 알 것이다.

    “여기까지 모두 모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중국의 번영과 우리의 밝은 미래를 위해 앞으로도 힘써주시기 바랍니다.”

    수십 명이 모인 중국 고위 간부들은 내 말에 따라 잔을 들며 건배를 외쳤다.

    이들 중에는 군부 쪽 간부들도 있었고, 장쩌민 일파로 알려진 간부들도 상당수 자리를 차지했다.

    사실 이번 만남은 그리 영양가가 있는 게 아니었는데, 그냥 서로 마주 보며 술이나 마시는 자리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자리를 주선한 이유가 있다.

    “곧 떠나십니까?”

    “예, 러시아로 돌아갑니다.”

    “러시아라… 중국에 이어 러시아까지 골든 연합의 영향력으로 가득 찬다면 아주 재밌겠군요.”

    “세계 전역을 관장하고자 하는 것이 골든 연합의 목표가 아닙니까. 아직은 열심히 두 발로 뛰어야죠.”

    “하하, 골든 연합의 최고점에 서신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니, 조직의 미래가 벌써부터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라우팽은 상대방의 기분을 맞춰줄 방법을 아는 사람이다.

    “떠나기 전에 고위급 간부들을 만나 확실하게 마무리를 지으려고 이 자리를 만든 겁니다. 누가 이 나라의 권력자인지, 또 누구에게 충성을 해야 하는지. 그것을 알려주는 것이 의무 아니겠습니까.”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장쩌민 주석이 불미스러운 일을 벌이려 하지 않았습니까?”

    “아, 그런데 장쩌민이 운영하던 조직들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다 쓸어버렸습니다. 그중에는 장쩌민의 친인척들도 있었는데, 남김없이 목을 잘라놓았으니 별 탈 없을 겁니다.”

    라우팽의 확실한 일처리 덕분에, 장쩌민은 하루하루 피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다행입니다. 그런데 저기 의외의 손님이 오고 있네요.”

    “의외의 손님이요?”

    내 손가락을 따라 라우팽이 시선을 돌렸다. 이윽고 그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의외의 손님이 여기까지 찾아오시다니.”

    나와 라우팽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방금 막 도착한 손님에게 다가갔다.

    “이게 누구십니까. 후진타오 위원님 아니십니까?”

    중국 최고의 수뇌부에서 한자리를 꿰차고 있는 후진타오.

    장쩌민이 열렬히 밀고 있는 사람이며, 원래대로라면 차기 주석이 되었어야 할 인물이다.

    그러나 리오차오가 득세를 하면서부터 후계 구도에서 밀려나 지금은 완전히 찬밥 신세가 되었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그는 내게 정중히 인사를 올렸다.

    나는 슬쩍 다른 간부들의 살펴봤다.

    그들은 모두 불편한 기색을 보이며 후진타오를 바라보고 있었다.

    연료가 다한 기차이니, 저들 눈에는 쓸모가 없는 빈 깡통으로 보일 것이다.

    후진타오도 그것을 알고 있는지, 그의 얼굴에는 자괴감이 엿보인다.

    “일단 들어오시죠.”

    “저기… 괜찮습니다. 그보다 저는 회장님과 조용히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자리를 마련해 달라는 건가.

    나는 빙긋 웃으며 자리 하나를 가리켰다.

    “들어와서 앉으십시오. 연회가 끝난 다음에 같이 자리를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아, 예. 감사합니다.”

    후진타오는 엉거주춤 안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얼굴을 보니 가시방석이라도 앉은 모양이다.

    간부들도 그를 힐끔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 흔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성대한 연회를 계속 이어갔다. 그리고 일부러 시간을 더 끌기도 했다. 똥줄이 타고 있을 후진타오의 얼굴을 감상하면서.

    과연 저놈이 나한테 무슨 말을 하려고 여기까지 온 것일까?

    * * *

    “연회는 마음에 드셨습니까?”

    “…….”

    연회가 끝이 나고, 나는 후진타오와 단둘이 자리를 하게 되었다.

    그는 내 물음에도 답하지 않다, 자리에서 일어나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회장님.”

    “아니,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회장님,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할 생각이 없습니다. 부디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할 생각이 없다? 거기다가 목숨을 살려달라?”

    “예, 회장님.”

    난 씨익 웃으며 잔을 들어 목을 축였다.

    “누가 보면 제가 목숨이라도 위협하는 줄 알겠습니다.”

    “회장님, 며칠 전부터 이상한 사람들이 저를 미행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제 가족들도 그걸 느끼더군요. 그들이 아주 노골적으로 미행하고 있던데, 정말 모르십니까?”

    “하하, 감히 누가 천하의 후진타오 위원님을 미행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도 차기 주석으로 손꼽히는 분을 말입니다. 정 걱정이 되신다면 경호원들을 시켜 처리하면 되지 않습니까?”

    내 말에 후진타오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들은 처음부터 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그들을 시켜 미행하는 자들을 쫓아내라고 해도 전혀 달라진 점이 없더군요. 매번 경호원들을 바꿔도 똑같습니다. 그들은 제 말에 따르지 않아요.”

    “어허, 이런… 누구보다도 후진타오 위원님을 지켜야 할 경호원들이 그래서야 쓰겠습니까. 차라리 사설 경호원을 써보시는 건 어떤지?”

    “저도 참다못해 예전의 사설 경호원들을 써봤습니다. 하지만 이틀 뒤에 저를 경호하던 요원들이 전부 실종됐고, 그 사설 경호 업체도 흔적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거 참 이상하군요. 어떻게 그런 일이.”

    내가 계속 능청스럽게 말을 받자 후진타오는 머리를 바닥에 조아렸다.

    “그 때문에 누구도 저를 경호하려 하지 않습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회장님 손에 죽어나갈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후진타오를 지키던 사설 경호 업체들을 전부 짓밟아 버린 건 모두 나와 라우팽의 작품이다. 그것 때문에 후진타오는 언제든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경호를 받게 되었다.

    난 잔을 내려놓고 흐느끼며 내게 목숨을 구걸하고 있는 후진타오를 내려다보았다.

    “허튼짓하지 않겠다는 말. 믿어도 되나?”

    내 말에 후진타오는 얼른 고개를 들어 연신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회장님. 믿어주십시오.”

    “믿는다고? 내가 왜 당신을 믿어야 하지? 뒤에서 장쩌민과 개수작을 부릴 땐 언제고?”

    “저, 저는 결단코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잘 아시지 않습니까. 장쩌민 주석이 저를 미는 건 중국을 계속해서 통치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라는 걸요.”

    참 불쌍한 놈이다.

    장쩌민에게 휘둘리며 여기까지 온 것도 모자라, 지금은 내게 무릎을 꿇고 싹싹 빌고 있다.

    “그래서 너와는 상관이 없다?”

    “예, 회장님. 어찌 제가 감히 회장님께 반기를 들 수 있겠습니까. 저는 회장님과 척을 질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부디 헤아려 주십시오.”

    난 고개를 끄덕이며 잔 하나를 후진타오에게 건넸다.

    “일어나서 받아.”

    “예, 회장님.”

    그는 벌떡 일어나 내가 건네는 잔을 받았다.

    난 병 하나를 뜯어 그의 잔에 술을 채워주면서 말했다.

    “이 한 잔으로 다 끝내는 거야. 더 이상의 공포도 위협도 없을 거고.”

    “회장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 이 잔을 깨끗이 비우면서 서로 있었던 옛일은 잊자고.”

    “예… 회장님.”

    후진타오는 감격 어린 목소리로 손을 잘게 떨며 잔을 들었다.

    난 그와 가볍게 잔을 부딪친 다음 말했다.

    “한 번에 털어 넣어. 그리고 서로 깨끗하게 잊는 거야.”

    “예, 회장님.”

    그는 내 말에 따라 깨끗하게 잔을 비웠다.

    맛이 좀 이상했는지, 인상을 살짝 찌푸리긴 했으나 이내 내가 건네는 손을 붙잡았다.

    “이제 서로 간의 오해는 다 푼 거겠지?”

    “예, 회장님.”

    “그래, 나도 이걸로 악한 감정은 다 풀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설마 네 가족까지 건드리려 하겠어?”

    “…예?”

    “너 하나 죽는 걸로 끝을 보자고. 장쩌민 그 사람도 네가 죽는 걸로 일을 끝내자는 데에 합의를 봤으니까.”

    “그, 그게 무슨…….”

    당황한 후진타오가 말을 얼버무리다 이윽고 목을 부여잡으며 신음을 터뜨렸다.

    “크억-!”

    그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약발이 대단하지? 오장육부가 비틀리는 고통을 느끼며 서서히 죽어가는 독이라던데.”

    “도, 독?! 도대체 왜……!”

    “왜긴, 아까도 말했잖아. 장쩌민 그놈이랑 합의를 했다고. 네놈 대신 자기 목숨은 살려달라고 사정사정을 하기에 내가 그렇게 해준다고 했어.”

    “쿠욱-!”

    이제 말할 정신도 없는지 후진타오는 검은 피를 쏟아내며 비명을 질렀다.

    “오늘 장쩌민한테 연락받고 온 거 아니었나? 내가 개최하는 연회에 무작정 들어가서 참석하라고 말이야.”

    계속 신음을 터뜨리는 통에 대답을 들은 순 없었지만, 아마 장쩌민의 전화를 받고 온 게 틀림없을 것이다. 그냥 가서 싹싹 빌라는 말만 들었겠지.

    “쯧쯧, 그러게 누가 장쩌민 같은 욕심 많은 놈의 줄을 잡으라고 했어. 차라리 내 줄을 잡았다면 그깟 독으로 죽는 일도 없을 텐데.”

    “으읍… 제, 제발… 가, 가족들만은.”

    눈물 나는 가족애다.

    제 목숨이 끊겨지고 있는 마당에 가족 걱정부터 한다.

    “가족들?”

    “예… 그, 그들만은 살려주십시오.”

    고통 때문에 제대로 말도 할 수 없을 텐데 이것만큼은 또박또박 말을 잘한다.

    난 피를 흘리며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그의 앞에 쭈그려 앉았다. 그리고 그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래, 죽는 놈 소원 하나 들어주는 게 뭐가 어렵겠어. 그러니까 편안하게 가. 너 하나로 끝내줄 테니까.”

    “가, 감사… 합…….”

    후진타오는 감사하다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한때 혁명 운동에 선봉으로 서며 열혈남아로 불리던 후진타오.

    그의 최후는 참 쓸쓸하기 그지없었다.

    나라는 사람이 새로운 바람을 불게 만들면서부터 후진타오의 운명이 바뀐 것이었다.

    만일 내가 중국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면 후진타오는 장쩌민 다음으로 주석이 되어 중국을 이끌었을 터.

    물론, 장쩌민이 뒤에서 조종을 하며 평생을 허수아비 노릇을 했겠지만 이런 비참한 죽음보다는 백배 천배 나을 것이다.

    “끝났습니까?”

    이윽고 집무실 문이 열리면서 라우팽이 먼저 안으로 들어왔다. 뒤에 이어 연회에 참석했던 간부들도 우르르 따라 들어왔다.

    그들은 피를 흘린 채 죽어 있는 후진타오를 무미건조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난 저들의 얼굴을 보며 잔을 높이 들었다.

    “안타깝게도 중국의 영웅 중 하나가 반역죄를 저질러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반역자에게는 일말의 자비도 주어서는 안 되지만, 그래도 한때 중국의 혁명을 위해 두 발로 뛰던 사람이 아니었습니까? 그때의 정을 생각해서라도 짧게 건배라도 해줍시다.”

    내 말을 다르게 풀이하면 후진타오가 반역죄를 저질러 사형당했다고 언론에 알리라는 것이었다. 저들은 아마 내 말을 잘 알아들었을 것이다.

    “항상 국가를 위해 봉사해 주시는 여러분도 결코 다른 길로 빠지지 않게 조심해 주십시오. 권력이 늘어나다 보면 타락하게 마련입니다. 부디 반역자 후진타오처럼 여러분이 똑같은 일을 겪지 않았으면 합니다.”

    후진타오처럼 줄을 잘못 잡거나, 내게 조금이라도 반항하는 기색을 보인다면 가차 없이 죽인다는 걸 알려준 것이었다.

    “그런데… 후진타오의 가족들은 어떻게 할 생각이십니까?”

    라우팽의 물음에 나는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는 후진타오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라우팽에게 대답했다.

    “다 죽이세요. 아니면 평생 나올 수 없는 감옥에 보내시던가요.”

    “음, 인민을 위해 탄광이라도 캐라고 보내는 게 좋을 것 같군요.”

    “반역자의 집안입니다. 그 정도는 약과죠. 그렇게 하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이런 일이 있을수록 후일의 불씨가 될 만한 건 전부 없애야 한다.

    그래도 어쨌든 결과적으로 후진타오와의 약속은 지켰다.

    난 그의 가족들을 죽이진 않았다. 대신,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피폐한 삶을 선물해 주었다.

    큰일을 앞두고 떠나기 전, 주변을 단단히 하는 것이 성공한 사람의 기본 소양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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