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화. 중국 최고의 권력자 (2)
장쩌민이 은밀하게 조직한 삼합회는 광저우, 톈진, 그리고 베이징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것으로 조사됐다.
1만 명 정도의 조직원들이 속해 있는데, 결코 급조된 곳은 아니었다.
마치 이러기를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것처럼 차근차근 준비를 한 게 티가 났다. 하지만 이미 중국에서 활동 중인 골든 연합의 조직원 숫자는 10만 명이 훨씬 넘는다. 또한 골든 연합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들 숫자는 수십만 명.
고작 1만 명으로 상대할 만한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장쩌민도 시간이 걸릴 거라 생각해 지금은 조심스럽게 삼합회를 운용하는 중이지만, 우리 레이더망에 걸려든 이상 빠져나갈 구멍은 없다. 그리고 내가 신호를 내리면 즉각 청소할 수 있도록 이미 조직원들이 파견되어 있다.
“이렇게 뵙기는 처음이군요.”
“안녕하십니까, 주석님.”
북경의 중난하이.
자금성보다 넓은 공간을 자랑하는 이곳은 중국 정치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
한국에는 청와대, 미국에는 백악관이 있는 것과는 차이가 있는데, 중국 정치인들과 공안 관계자들의 사택부터 각 집무실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옛날 조선시대 왕이 머물던 경복궁과 근정전 같은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나는 난생 처음으로 중난하이 안에 들어와 중국 최고의 권력자라 불리는 장쩌민 주석과 손을 맞잡았다.
악력에서부터 나를 무척이나 경계하고 있다는 게 느껴질 정도다.
“뭘 좋아하실지 몰라 깔아드릴 수 있는 건 전부 깔아보았습니다.”
어마어마한 진수성찬이다.
이 정도면 상다리가 부러져도 할 말이 없겠다.
“저 같은 사람한테 이런 환대를 해주시다니. 감사합니다.”
“하하, 세상 누구보다도 귀하게 대접을 받아야 할 분이 아닙니까? 미국 대통령도 벌벌 떨게 만드시는 분이니까요.”
말에 뼈가 있다.
“과찬이십니다. 그 정도로 잘난 인간은 아닙니다.”
“듣던 대로 겸손하시군요. 자, 앉으시지요.”
한 나라의 대통령을 맞이하는 것처럼, 장쩌민은 나를 대함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유학파라서 그런지 알려진 대로 아주 유창한 영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음식이 아주 훌륭합니다.”
“한국분이시니, 그에 맞춰 요리를 했습니다. 입에 맞으시다니 다행입니다.”
우리는 서로 가벼운 신변잡기를 하며 식사 시간을 보냈다.
천하의 진미가 한곳에 모인 듯한 저녁 식사였으나, 그리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자리는 아니지 않은가.
나는 냅킨으로 입을 닦은 다음, 장쩌민에게 먼저 수를 던졌다.
“요즘 듣기로 작은 사업을 하신다 들었습니다. 그 어디더라… 베이징과 톈진이었던가요?”
북경 오리고기를 뜯고 있던 장쩌민의 손이 제자리에서 멈췄다.
그는 잠시 얼음처럼 굳어 있다 이내 자연스레 내 말을 받았다.
“허허, 그저 노후를 위해 벌여놓은 일입니다. 공과 사는 철저히 구분하며 친인척들에게 맡기고 있지요.”
애써 당황하지 않으려는 기색을 보인다.
하지만 나한테 모든 걸 들켰다는 걸 장쩌민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군요.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한다라……. 쉽지 않으시겠습니다. 요즘 같은 시대는 경쟁 시대라고 하지 않습니까? 경쟁에서 밀리면 흔적조차 남지 않고 사라진다는군요. 저도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이라 그런 쪽에는 아주 민감합니다. 그래서 제가 사라지지 않으려다 보니 경쟁자가 생기면 바로 싹부터 잘라 버리는 습관이 생겼을 정도입니다.”
장쩌민은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잔을 벌컥 들이켰다.
그래, 네가 속이 안 타면 이상한 거겠지.
그는 잠시 뜸을 들이다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래서, 김 회장님께서는 경쟁자가 생기면 바로 행동에 들어가십니까?”
“하하, 일말의 방심도 용납해서는 안 되는 세계가 아닙니까. 그런 것들은 마치 잡초처럼 잠깐 손을 놓고 있으면 금방 제 턱밑까지 자라서 말이죠.”
“그렇군요. 그게 성공의 비결이신가 봅니다.”
“예, 제가 상대보다 작을 때는 은밀하게 뿌리를 내리고, 상대보다 제가 더 클 때는 누구보다도 빠르게 잡초를 뽑아냅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사람들에게 미스터 블랙이라고 불리더군요.”
미스터 블랙이란 이름에 장쩌민이 한 번 더 멈칫거렸다.
이제부터는 서로 시원하게 속내를 드러내자는 내 신호를 알아차린 것이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던 거요?”
슬슬 말을 낮추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나의 대답에 장쩌민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지금까지 지켜만 봐왔다는 것은 배려를 해주기 위함인가? 아니면 갖고 놀았다고 봐야 하나.”
목소리 톤도 올라갔다.
“판단은 주석님께 맡기지요. 그런데 누가 감히 천하의 중국 주석을 갖고 놀 수 있을까요?”
“그럼, 배려를 해주었다는 것이군.”
“음… 뭐랄까요. 얼마나 발버둥을 치시는지 구경을 했다고 해야 하나…….”
“뭐야?!”
장쩌민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눈을 부라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난 피식 웃으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흥분하지 말고 앉으십시오.”
“감히 누구 앞에서 그런 여유를 보이는 것이냐. 네가 아무리 잘났다고 콧대를 높이 세워도 나는 이 나라의 주석이다. 한낱 깡패 새끼들 대장에 불과한 네놈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거야.”
“잘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좀 앉으시라니까요? 목 아픕니다.”
“이놈이 끝까지!”
장쩌민은 중국어로 뭐라 소리치며 주변에 있던 경호원들을 불렀다.
그들은 모두 내게 총구를 겨누었다.
“내 말 한마디면 여기서 네놈 머리통은 날아간다.”
“제 머리통을 날리시려면 각오를 단단히 하셔야 할 겁니다. 안 그러면 주석님의 머리가 먼저 날아갈 수도 있거든요.”
“입 닥쳐! 너 같은 새끼는 진작 죽였어야 했어!”
잔뜩 흥분한 장쩌민을 바라보며 나는 짧게 혀를 찼다.
“쯧쯧, 중국 주석이나 되신 분이 이렇게 감정에 휘둘러서야 되겠습니까? 감정에 휘둘리면 일을 그르친다는 것을 모르시다니.”
“너 같은 놈 한 명 죽어봤자 달라지는 건 없어.”
“그래요? 그럼 어디 한번 해보시죠.”
“뭐야?”
“자신 있으면 제 머리통을 한번 날려보라는 겁니다. 과연 이 중국에 무슨 일이 벌어지나 지켜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은데요?”
결국 한계가 온 것인지, 장쩌민은 숨이 넘어갈 듯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 새끼 당장 죽여 버려!!”
경호원들이 총을 장전하며 내 머리에 총구를 들이밀었다.
그들의 손가락이 방아쇠에 닿았고 장쩌민은 벌써부터 승자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뭐 해! 얼른 쏴버리라니까!”
“…….”
누구 하나 감히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고 있었다.
“이 새끼들이! 당장 쏴버리라고!!”
“…….”
재차 말을 해봐도 누구 하나 반응조차 하지 않았다.
그제야 장쩌민도 사태를 파악한 모양인지, 뒤로 주춤거렸다.
나는 그런 장쩌민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
“총구를 잘못 겨눈 거 같은데. 정말 이쪽 방향이 맞습니까?”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경호원들의 총구가 장쩌민에게 향했다.
“무, 무슨 짓이야!”
“무슨 짓이긴요. 이들은 주인의 말을 착실하게 따르고 있을 뿐입니다.”
“뭐, 뭐야?”
“설마 모르셨던 겁니까? 이미 예전부터 당신의 관저를 지키던 경호원들은 전부 저희 쪽에서 뽑은 사람들입니다. 생각을 해보십시오. 중국은 예전부터 정권 유착이 심했던 곳입니다. 그런 이 나라에 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골든 연합이 들어왔고 수많은 정치인들을 그 발아래 놓았습니다. 중하이난에서 골든 연합에 소속되어 있지 않는 사람을 찾기란 매우 힘들 겁니다.”
골든 연합이 들어오기 전부터 이미 중국은 삼합회와 정권 유착이 심했던 곳이다.
그 자리를 메데인 카르텔이 비집고 들어간 것이고, 우리는 이 나라의 최고라 불리던 삼합회들을 전부 흡수해 버렸다.
당연히 부정부패가 판을 치는 중국 정부에서 삼합회의 영향력은 강대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골든 연합이 정복 작전을 시작하기 전이면 모를까.
이미 중국의 심장부인 중난하이까지 점령한 이상, 제아무리 국가 주석이라고 해도 돌이킬 방법은 없다.
나는 넋이 나가 있는 장쩌민을 바라보며 조용히 잔을 들어 목을 축였다.
“언제까지 그렇게 계실 겁니까? 앉으시려면 앉으십시오. 아니면 정말 총이라도 쏴드릴까요?”
장쩌민은 분노에 몸을 부르르 떨며 자리에 다시 앉았다.
“안타깝지만 어쩌겠습니까. 이것이 중국의 현실인 걸. 그러게 진작 부정부패를 척결하려고 노력을 하셨어야죠. 그 타이밍을 놓쳐 버리시는 바람에 저 같은 깡패 새끼 대장이 국가 주석을 이렇게 농락하는 것이 아닙니까?”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양인지, 장쩌민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하기야. 믿었던 자신의 관저까지 골든 연합이 침투해 있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을 터.
그만큼 라우팽의 수완이 좋은 것도 있겠고 중국 관료들이 썩을 만큼 썩었다는 것도 큰 이유겠다.
“그래도… 설마 이 정도일 줄은…….”
어렵게 입을 열은 장쩌민의 모습이 참담해 보였다. 물론, 나는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고 있었다.
“방금 전의 무례는 잊어드리겠습니다. 솔직히 제가 먼저 주석님의 성질을 긁은 것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독단적으로 삼합회를 조직해 그 세력을 차차 넓혀가는 것은 가만히 지켜볼 수가 없군요.”
“자, 잠깐만. 그 말씀은 그 조직을 전부…….”
“당연한 거 아닙니까? 잡초를 뿌리째 뽑아야 저도 안심이 되겠지요. 무려 주석님이 물을 주고 있는 잡초니까요. 한 놈도 남김없이 말살해 버릴 겁니다.”
“아, 안 됩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그곳에는 제 친인척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들까지 목숨을 잃게 해서는 안 됩니다!”
장쩌민은 애절한 목소리로 내게 애원했다. 아까는 말도 놓고 욕도 차지게 하던 양반이 말이다. 하지만 그런 걸 들어줄 자비나 아량이 내게는 좁쌀만큼도 없었다.
“사람이 가장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충격 요법이라고 하더군요. 친인척이 전부 몰살을 당하면 아마 주석님은 평생 그 일을 잊지 못하게 될 겁니다. 그것보다 더 좋은 교육과 교훈이 있을까요? 제 그릇을 알고, 제 그릇대로 사는 인생의 교훈 말입니다.”
“기, 김 회장님!”
내가 차갑게 몸을 돌리자 장쩌민이 급하게 나를 붙잡았다.
“한 번만 선처를 해주십시오.”
“선처라고요? 방금 제게 잘도 총구를 들이대신 분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다고 보십니까? 그리고 제가 모르고 있었다면 언제든지 절 죽일 기회만 노렸을 분이 어디서 선처를 바라십니까?”
“무엇을 원하는 겁니까? 무릎을 꿇으라면 무릎이라도 꿇겠습니다.”
밑바닥까지 보여주는 장쩌민에게 난 더 큰 수모를 안겼다.
난 그의 이마를 툭툭 치며 말했다.
“이봐, 당신은 내가 죽으라고 하면 죽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위치야. 그게 너랑 나의 격차라고. 그런데 그깟 무릎 한번 꿇는다고 내가 감동할 줄 알았나? 너랑 네 자식새끼 안 건드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줄 알아. 알겠어?”
아마 이런 수모는 평생 겪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몸을 부르르 떨며 어떤 대답도 하지 못했다.
“예정대로 리오차오가 차기 주석이 될 거야. 그래도 예의가 있으니까 1년에서 2년 정도는 그 자리를 지킬 수 있게 해주지. 그런데 그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이상한 움직임을 보인다면 각오하는 게 좋아. 중난하이에서 대테러가 일어났다고 세계 곳곳에 속보가 뜰 테니까. 그리고 사망자 명단 제일 위에 당신 이름이 올라갈 거고.”
나를 붙잡던 장쩌민의 손을 뿌리친 다음, 흐트러진 옷을 단정하게 했다.
“후진타오 그 사람을 허수아비로 세워서 영원한 권력을 꿈꿨던 모양인데, 미안하지만 내가 중국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그건 엎어진 거야. 당신은 진작 나를 막았어야 했어.”
장쩌민은 온갖 수치심과 공포심이 섞인 얼굴로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난 밖을 나서기 전 그에게 마지막을 말을 남겼다.
“그럼, 또 뵙겠습니다. 주석님.”
이것으로 이제 누가 이 나라의 진정한 권력자인지 장쩌민은 깨달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