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오랑캐는 오랑캐로 (2)
“오셨습니까, 사장님.”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다.
김아름과 강철중.
언제 봐도 차갑고 늠름하다.
특히 김아름은 점점 나이를 거꾸로 먹는 것 같다.
“오랜만입니다. 다들, 일단 앉죠.”
“예, 사장님.”
뉴욕 한복판에 있는 리턴 컴퍼니 소유의 빌딩은 그리 높은 층수를 자랑하진 않지만, 그래도 꽤 고급스럽게 만들어진 곳이다.
김아름이 대표로서 항상 관리에 힘쓴다고 하던데, 맡은 일을 잘해내고 있는 것 같다. 거기다가 리턴 컴퍼니 운영 또한 굉장히 잘하고 있어서 솔직히 내가 지적해야 할 거나 도와줄 건 없는 듯 보였다.
이미 미국 상류층에서도 김아름은 유명 인사이기 때문에 미국 내에서의 영향력은 꽤 된다. 그럼에도 항상 변하지 않는 자세로 있는 것을 보면 역시, 보통 사람이 아니다.
그에 반해 강철중은 시간이 흐르면서 계속 늙어가는 게 훤히 보인다. 사무실 안에 처박혀 있기보다는 언제나 필드에서 뛰는 중역이지 않던가.
그래서 그런지 얼굴도 많이 탔고, 주름살도 늘어나 보였다.
“두 분 다 대충 이야기는 들으셨을 겁니다. 제가 바쁜 걸 다 제쳐두고 왜 여기까지 왔는지.”
오랜만에 만나긴 했지만, 우린 고상하게 앉아서 티타임이나 즐길 사람들이 아니다.
“정말 중국으로 갈 생각이십니까?”
“예, 강철중 씨도 저번에 알아본 것처럼 이대로 천지회를 가만히 놔둬서는 안 될 거 같아요. 메데인 카르텔과 골든 연합을 위해서라도 쉬쉬할 문제가 아닙니다.”
한번 기선 제압을 당하게 되면 다음에는 더욱 큰 공격을 받게 된다.
지금 상대가 우리를 찔러봤을 때 단단히 대가를 치르게 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방에서 공격을 받아 허우적댈 수도 있다.
“꽤 큰 싸움이 되겠군요. 중국 삼합회는 머릿수도 많고 골고루 퍼져 있으니까요.”
“그렇겠죠. 하지만 단순히 머릿수 싸움이 되진 않을 겁니다. 그래서 말인데, 김아름 씨.”
“예, 사장님.”
“우리 회사가 중국으로 진출할 수 있게 미리 준비하도록 하세요. 그렇지 않아도 요즘 중국에서 경제 개발이다 뭐다 해서 지속적인 투자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흐름을 잘 이용해야 할 겁니다. 리턴 컴퍼니, 천성 그룹, 화진 그룹까지 모두 진출할 수 있는 최적의 루트를 만들어주세요.”
김아름은 눈매를 꿈틀거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중국 사업 진출입니까?”
“예, 메데인과 골든 연합이 제대로 자리를 잡기만 하면 우리 회사에는 중국에서 크게 성장할 겁니다. 중국이 인구수도 많지 않습니까? 당연히 이용할 가치가 많죠.”
시간이 흐르면 중국 자본의 힘이 온 세계에 침투하게 된다.
그들이 미국을 뛰어넘는 경제 개발을 보여주진 못하지만, 많은 인구수와 더불어 들고 있는 돈으로 세계 곳곳에 뻗어나간다.
그들은 주로 땅 투기를 하며 자본을 침투시키는데, 그 일로 영국 집값은 수십 배로 뛰게 되고 유럽의 사정도 그와 비슷해진다. 또한 앞으로 나올 할리우드 영화는 전부 중국에게 투자를 받아 중국의 도시나 혹은 중국 사람이 출연하지 않을 경우 투자를 받지 못해 개봉되지 않는 불상사가 일어난다.
중국의 목표는 오직 하나.
전 세계의 중심이 되며 모든 곳을 통치하는 것.
그들은 그 계획의 기초를 자본으로 시작한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어떤 방향이 좋을지 기획팀과 검토한 뒤 말씀드리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그리고 강철중 씨.”
“예, 사장님.”
“가능한 많은 인원들을 미리 중국 쪽에 투입시켜 주세요. 우리가 직접 피 튀기며 싸울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필요는 할 겁니다. 그리고 만에 하나라는 상황이 있으니까요.”
“잘 알겠습니다, 사장님.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김아름과 강철중에게도 준비를 하도록 했다.
미국, 일본과는 전혀 다른 사상을 가지고 있는 나라다. 그리고 더욱 험한 곳이며 미지의 땅이기도 하다. 그런 곳을 나는 정복하려는 것이다.
쉬운 길이 되진 않겠지만, 나는 어떤 대가라도 치를 각오가 되어 있다.
* * *
“음,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바글바글하네.”
나는 로이와 함께 상하이에 있는 푸둥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1999년에 개항한 신공항으로 시설은 꽤 봐줄 만했으나 문제는 머릿수였다. 그리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문화도 없고 정리 정돈이라는 게 당최 없어서 그런지 모든 게 어지럽고 복잡했다.
“여기, 진짜 토할 것 같다.”
로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괜히 따라왔다는 표정을 지었다.
“태혁이와 즐거운 식사를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셔야죠.”
“끄응, 또 한 번 슈퍼스타와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다면야… 어쩔 수 없지.”
로이의 태혁 사랑은 참 대단한 것 같다.
저 정도면 극성팬이 아닐까.
“어서 오십시오, 사장님.”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던 골든 연합 조직원들이 우리에게 다가와 인사를 올렸다.
절반은 한국인, 절반은 멕시코와 미국계 혼혈들이었다. 중국인은 한 명도 없다.
아무래도 중국인을 들이기에는 꺼림칙한 게 있어 강철중이 조치를 한 것 같았다. 하지만 앞으로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려면 중국인들도 조직원으로 받아들이긴 해야 한다.
“워낙 어지러운 곳이라 서둘러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얼른 좀 가자.”
로이는 이제 질렸다는 듯 조직원들의 등을 붙잡고 공항 밖을 빠져나갔다.
나도 인정은 해야겠다. 정말 사람이 질리도록 많다.
우리는 지옥 같은 답답함에서 벗어나 간신히 차에 올랐다. 그제야 로이는 한숨 돌리며 말했다.
“근데 생각보다 꽤 발전한 곳이네, 여기.”
1999년의 상하이는 한창 폭풍 성장을 이뤄내고 있는 때다.
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상하이는 어업 중심으로 발달이 된 곳으로, 지금처럼 으리으리한 건물들이 들어서지 않았었다. 그러나 중국 정부에서 상하이를 개발 집중 구역으로 지정한 다음 외국 자본을 받아들여 지속적인 발전을 이어나갔다.
또한 카지노와 유흥 시설을 다양하게 만들어 외국 관광객을 끌어모았고, 그로 인해 상하이는 베이징을 제치고 중국 최고의 도시가 되었다.
그와 더불어 오른 땅값과 물가는 세계 최고 수준이 되었다는 건 덤이다.
“여기입니다.”
“오호, 생각보다 좋은데?”
로이는 고급스러운 호텔 방을 둘러보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나도 예상보다 좋은 호텔에 만족을 하고 있는 참이었다.
“바로 식사를 하러 가시겠습니까?”
“아니, 그 전에 사람 좀 불러줘. 먼저 현황부터 파악해야 하니까.”
“예. 알겠습니다, 사장님.”
우리를 인도해 주었던 수행원이 나가고 조금 있다 정장 차림을 한 사람 몇 명이 방으로 들어왔다. 스페셜 스위트룸이기도 하고 워낙 큰 방이라서 충분히 회의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진대섭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진대섭 씨. 혹시 하시는 일이…….”
“아! 저는 강철중 실장과 예전부터 친분이 있던 사람입니다. 중국에서 뒤쪽의 일을 하고 있지요. 큰 영향력은 없어도 이쪽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강철중이 적절하게 사람을 뽑은 것 같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가 뽑아놓은 사람이니, 믿을 만할 것이다.
“좋습니다. 그럼 일단 얘기를 좀 들어볼까요?”
“예, 사장님. 그런데 영어로 말씀드려야 합니까?”
“그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소개해 드리죠. 여기 계신 분은 메데인 카르텔의 카포, 로이 루스테입니다.”
메데인 카르텔의 카포라는 말에 진대섭은 몸을 들썩였다.
“반갑습니다. 진대섭이라고 합니다.”
“아, 그래요. 반가워요.”
진대섭은 로이와 대충 인사를 나눈 다음 본론으로 들어갔다.
“요청하신 천지회라는 삼합회에 대해 조사를 해보았습니다. 워낙 중국에서도 유명한 삼합회라 그리 어렵진 않았지요. 일단 이 서류부터…….”
나와 로이는 진대섭이 건넨 서류를 받아 찬찬히 읽어보았다.
“중국에서는 서열 3위에 해당하는 곳입니다. 조직원 수가 무려 5만 명이 넘지요. 그리고 산하에 있는 조직들의 수까지 합하면 10만 명은 족히 넘을 겁니다.”
과연 일본과는 스케일부터가 다르다.
서열 3위에 달하는 삼합회의 조직원 수가 10만 명이다.
이 정도로 많은 인원들을 소탕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리고 현재 천지회를 통치하고 있는 사람은 쑨앙으로 중국 당원들과 유착이 되어 있는 인물입니다.”
공산당원 절반이 삼합회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중국 정부와 삼합회의 관계는 거미줄처럼 엮여 있다. 이러한 현상은 장쩌민에 이어 후진타오까지 이어지는데, 시진핑에 이르러서야 삼합회가 정부의 손에 박살 나기 시작한다.
“천지회의 성격은 어떻습니까?”
“거칠죠. 중국 삼합회 모두가 거칠다고 보시면 됩니다. 워낙 공안과도 유착이 심한 터라 사람 죽이는 일에 거리낌이 없습니다. 그래서 구역을 놓고 싸우는 횟수도 많고 그에 휩쓸려 억울하게 죽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저번에 있던 천안문 사건 아시죠? 그때 탱크로 밀어버렸다고는 하는데, 사실 삼합회 손에 죽은 사람들이 더 많아요.”
성난 군중을 해산시키기 위해 군인뿐만이 아니라 조폭까지 동원하는 건 어느 나라나 똑같은 것 같다.
“천지회 말고… 화자두는 어떻습니까?”
“화자두요?”
진대섭은 자세를 고쳐 잡으며 내게 물었다.
“중국 삼합회에 대해 잘 아시나 봅니다.”
“조금 알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나누는 말에 로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화자두가 뭐야?”
그의 물음에 진대섭이 대답했다.
“화자두는 중국 서열 1위 삼합회입니다. 규모면에서도 천지회보다 훨씬 더 많죠. 총 세 개의 조직으로 나눠진 연합인데, 중국 최고의 삼합회답게 정권 유착도 심하고 영향력도 굉장합니다. 천지회는 몰라도 솔직히 화자두와 싸움을 걸어서 이득을 볼 건 없습니다.”
화자두는 한국에서도 가끔씩 회자가 될 만큼 중국 최고의 삼합회다. 조직의 규모도 상당하고 발 닿는 곳도 많아 감히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곳인데, 아이러니 하게도 천지회 손에 무너지고 만다.
서열 3위인 천지회는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상하이에서 완전하게 세력을 넓히고자 화자두를 기습 공격하고, 그로 인해 화자두에 있는 두목이 살해당하고 만다. 이 일로 피해자 수만 몇 천에 달하게 되고 우리나라 뉴스에 나올 정도로 화제가 된다.
물론, 항상 그랬듯이 중국 정부에서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일을 덮어버려 더 이상의 소식은 알려지지 않는다.
한 가지 확실한 건, 화자두를 천지회가 몰아내면서 중국 최고의 조직이 된다는 것이다. 그것도 잠깐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중국 공안 쪽 사람과 연이 닿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사람들은 자국민과 외국인을 가리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맞습니다, 가리지 않죠. 충분한 돈만 안겨 주면.”
돈이라면 썩어날 정도로 많다.
“그럼, 진대섭 씨가 수고를 좀 해주세요. 공안 쪽 사람과 만나 보고 싶습니다.”
“최대한 높은 사람과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돈이 꽤 많이 들 겁니다.”
“돈 걱정은 하지 마세요. 다 쏟아부어도 아깝지 않을 만큼의 자금이 있으니까요.”
그 말에 진대섭이 눈을 반짝였다.
“역시, 듣던 대로군요. 화진 그룹에 이어 천성 그룹까지 흡수하신 분이니, 대한민국 최고의 재력가이시지 않습니까. 그럼, 잘 알겠습니다. 바로 알아보도록 하죠.”
“좋습니다. 그리고… 수고비는 넉넉히 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요.”
“감사합니다, 부회장님.”
진대섭은 싱글벙글한 얼굴로 밖을 나섰다.
이제 알아서 사냥감을 잘 물어다 줄 것이다.
“워커.”
“예?”
“괜찮겠어? 이런 위험 부담까지 안으면서 일을 진행할 필요는 없어. 중국은 알아서 굴러가라고 포기해도 돼.”
로이는 아무래도 중국에서 활동을 하는 게 걸리는 모양이다. 하지만 괜찮다.
이런 노다지를 버리고 갈 순 없지 않은가.
이 땅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마약의 노예로 만들고 그들을 통해 만들어낼 어마어마한 이익은 가히 비교할 데가 없을 터.
차근차근, 천천히 일을 진행하면 이 중국이라는 노다지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 전에, 오랑캐들끼리 싸움을 붙여 어부지리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