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178화 (178/325)
  • 178화. 오랑캐는 오랑캐로 (3)

    “안녕하십니까. 금융 리턴 컴퍼니의 사장 김태산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리오차오라고 합니다.”

    중앙위원회의 위원 중 하나인 리오차오.

    통역을 위해 동행한 진대섭이 꽤 높은 사람을 데리고 왔다.

    중앙위원회란 전국대표대회에서 약 370명 정도를 뽑아 위원회를 구성한다. 사실상 중국 최고 권력 기관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에 올라가는 법안들은 먼저 중앙위원회를 거치게 된다.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는 총 7명의 사람으로 구성된 곳으로, 최고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중앙위원회에서 투표를 통해 선출이 되어야 한다.

    “제가 전달해 드린 선물은 잘 받으셨습니까?”

    “하하. 그렇지 않아도 감사하게 받았습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 그렇게 많은 돈을 주시다니. 역시, 리턴 컴퍼니란 명성이 거짓된 게 아니었군요.”

    리오차오는 대놓고 돈을 받았다는 걸 시인했다. 그만큼 부끄러움이 한 점도 없다는 것이다.

    중국 공안은 다른 나라에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썩어 있다. 이렇게 돈을 받아먹는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니 이젠 숨길 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리턴 컴퍼니를 조금 아시나 봅니다.”

    “하하, 물론이죠. 미국에서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고 한국에서는 가장 큰 대기업 두 개를 이미 꿀꺽 삼켰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오해가 있으신 것 같군요. 그렇게 뛰어난 회사는 아닙니다. 그리고 외환 위기에 빠진 한국을 구하면서 다른 기업들을 흡수하게 된 것이고요. 경영에는 일절 참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리턴 컴퍼니가 나라 곳곳을 돌아다니며 공격적인 M&A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면 안 된다. 하지만 기우였던 것일까.

    상대는 전혀 그런 것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아무렴 어떻습니까? 어떤 회사가 들어온다고 해도 중앙위원회에서는 딱히 상관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회사가 국가에 도움이 되는지, 되지 않는지를 판단할 뿐이죠. 그렇지 않아도 한국과 일본처럼 지금 중국도 휘청거리고 있는 상태입니다. 덕분에 쓰러져 가는 기업들도 많고 경제 개발을 주도하던 당원들은 골머리를 앓고 있죠.”

    내가 이 시점에 중국 땅을 밟은 건 다 이유가 있다.

    아시아 전역을 덮친 외환 위기다.

    한국과 일본처럼 중국도 당연히 그 풍파에 벗어나지 못한다. 물론, 한국만큼 나라 전체가 흔들릴 정도로 중국이 위험하진 않지만, 그래도 그 타격을 무시하지 못할 수준은 된다.

    “제가 도울 일이 있으면 좋겠군요. 아시다시피 저희는 미국에서도 왕성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 기업이라, 들고 있는 달러는 많습니다.”

    은근한 내 물음에 리오차오가 눈을 반짝였다.

    “저희가 요청하면 외화를 주실 수 있다는 겁니까? 과연 그게 얼마만큼 될까요?”

    한국처럼 중국도 외화에 목말라 있다.

    경제 개발을 주도하던 중국 공산당원들은 이미 외화를 물 쓰듯이 쓰지 않았던가. 그 효과가 부메랑처럼 날아왔으니 전전긍긍하고 있을 터. 이런 때에 내가 외화를 던져 준다고 말하면 당연히 반길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누군가에게는 위기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기회의 순간이라고 하지 않던가.

    “중국을 위해서 투자할 수 있는 돈은 총 15억 달러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외화와 현재 메데인 카르텔과 골든 연합이 운영하는 자금을 조금씩 빼서 합친다면 15억 달러가 나오게 된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30억 달러라도 내놓고 싶은 심정이다. 골든 연합에서 나오는 자금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으니까.

    하지만 15억 달러도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한화로 따지자면 1조 5천억에 달하는 돈이지 않은가.

    물론, 중국은 땅덩어리가 워낙 커서 돈 들어갈 곳이 많다.

    15억 달러는 금방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장 모든 돈을 내놓게 되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끝날 수 있다. 천천히 돈을 푸는 것이 이번 작전의 핵심이다.

    “15억 달러라……. 굉장하군요. 꽤 큰돈이긴 하지만 중국 입장에서는 그리 큰돈이 아니기도 합니다.”

    “그 정도는 이미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15억 달러는 단지 시작이라는 거.”

    리오차오의 눈빛이 다시 한번 반짝였다.

    “역시, 리턴 컴퍼니의 자금력이 상당하다고 들었는데. 그 말이 사실인가 봅니다.”

    “돈은 쌓아둘 정도로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단 급한 대로 15억 달러를 투자한 다음, 성과가 좋으면 계속해서 돈을 풀어나갈 생각입니다.”

    재수 없게 보인다고 해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최대한 할 수 있는 만큼 돈 자랑을 하는 게 좋다. 그래야 상대가 더욱 내게 기댈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말인데, 이번에 리턴 컴퍼니가 자리를 잘 잡을 수 있게 도움을 조금 주셨으면 합니다.”

    “물론이지요. 나라를 위해 봉사를 하시겠다는 분을 어떻게 저희가 박대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걸 도와드릴까요.”

    “아무래도 발전의 핵심이 되고 있는 상하이에 번듯하게 자리를 잡고 싶군요. 그래서 이리저리 부지를 찾고 있는 중입니다만, 문제는 삼합회들이 활개를 치면서 저희를 방해한다는 겁니다.”

    “삼합회요?”

    민감한 얘기를 꺼냈는지 리오차오는 조심스러워하는 눈치였다.

    삼합회가 정권과 많은 관련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니 보이는 반응일 것이다.

    실제로 삼합회에게 대항했다가 죽임을 당한 위원들이 몇몇 있다.

    “천지회라는 곳인데, 혹시 아십니까?”

    긴장하고 있던 리오차오가 한결 가벼워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 알고 있습니다. 꽤 골치 아픈 곳이죠.”

    아무래도 리오차오와 관련이 되어 있는 삼합회는 천지회가 아닌 다른 곳인 것 같다.

    “저도 정보를 받아보니, 천지회가 최근 들어 상하이에서 세력을 넓히는 중이라고 하더군요. 솔직히 삼합회 같은 곳은 저희 같은 사람들과는 거리가 먼 부류이긴 하지만, 이렇게 방해를 받는다면 계속 참을 수만은 없을 것 같습니다.”

    “무슨 도움이라도 필요하십니까?”

    “소 잡는 칼로 닭을 잡을 순 없는 노릇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다른 영향력 높은 삼합회에게 도움을 요청해 그들을 몰아낼 생각입니다. 혹시 잘 아는 곳이 있으십니까? 도움을 주신다면 사례는 충분히 하겠습니다.”

    “이미 많은 걸 받았는데, 또 무슨 사례를… 허허.”

    많이 주긴 많이 줬다. 그래도 맡은 일을 잘하면 보너스를 주는 게 인지상정.

    돈이라는 건 그렇게 쓰는 것이다.

    보답을 약속하면 상대는 더욱 뛰게 되어 있다.

    “제가 알고 있는 곳이 하나 있긴 합니다. 그곳 두목들도 몇 명 알고 있지요. 그중 꽤 힘 있는 친구 하나를 소개시켜 드리겠습니다. 그것으로 괜찮을까요?”

    “천지회 정도는 문제없이 해결할 수 있는 곳인가 봅니다.”

    “좀 시끄러운 잡음이 생기긴 하겠지만, 그들의 힘이라면 충분합니다. 물론, 그들에게 들어가는 비용이 많다는 건 염두해 두셔야 할 겁니다.”

    “물론입니다. 감사합니다, 위원님.”

    “하하. 도움이 되는 것 같아 기쁘군요. 자자, 일단 한잔 쭉 하실까요?”

    나는 리오차오와 술잔을 나누며 화기애애하게 저녁 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그는 조만간 자리를 마련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떠나갔다.

    내가 주는 돈을 받기 위해서라도 저놈은 분명히 약속을 지킬 것이다.

    * * *

    수십 명의 조직원을 대동하고 나타난 사람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다.

    등장부터가 화려했던 이 여인의 이름은 샤오쯔이. 화자두를 다스리고 있는 7명의 두목들 중 하나였다.

    “이런 곳은 처음이신가 보죠?”

    당연히 처음이다. 이런 데는 영화에서만 봤지, 직접 내가 오게 될 줄은 몰랐다.

    마약부터 매춘까지 실시간으로 가능한 이곳은 화자두가 운영하는 유흥업소로 중국 고대 풍속을 따라 만든 곳이다.

    여자들은 전부 현대적인 옷보다는 중국 황실에서 입을 법한 옷을 반쯤 걸치고 있었고, 남자들은 거기에 미쳐서 돈을 뿌리며 별의별 짓을 다 하고 있다.

    “우리 화자두에서 운영 중인 화방입니다. 중국 전 지역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죠.”

    “외환 위기 때문에 나라가 휘청거리고 있다고들 하던데, 여기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호호, 잘 모르시네요. 나라가 어려울수록 이런 곳이 더 잘되는 법이에요. 다들 우울한 미래를 잊기 위해 마약을 찾기 시작하고 여자의 몸을 더욱 탐하려고 하니까요.”

    실제로 경제 위기가 발생하면 유흥업소의 매출이 눈에 뛸 정도로 뛰게 된다.

    회사가 망하게 생겼고 당장 거리에 나앉게 생겼는데도, 그런 곳에 쓸 돈은 있다는 게 참 신기하지 않은가.

    “따로 연락은 미리 받았습니다. 천지회 때문에 곤란하시다면서요?”

    나는 진대섭의 통역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이번에 중국 공안과 연대하여 위기에 빠진 국가의 경제를 살리려고 하는데, 천지회가 자꾸 방해를 해서 말이죠.”

    “구체적으로 어떤……?”

    “샹하이에 좋은 지부를 골라 자리를 잡고 싶은데, 천지회가 땅 투기를 위해 방해를 일삼고 있습니다. 보호비라는 명목으로 돈을 뜯어가려고도 하고요. 아무튼, 하는 짓이 악질입니다.”

    “천지회 그놈들이 요즘 문제가 되고 있긴 해요. 갑자기 상하이에 진출해서는 우리 화자두의 구역을 마음대로 침범하고 있으니까요.”

    샤오쯔이도 천지회의 성장을 경계하고 있는 눈치였다.

    “그래서 이렇게 부탁을 드리는 겁니다. 제가 알기로는 화자두가 중국에서 제일가는 삼합회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저희를 괴롭히는 천지회를 치워주실 수 있을까요?”

    그녀는 요염한 눈동자로 나를 훑어보며 힐끗 미소를 지었다.

    “위기에 빠진 사람치고는 꽤 여유로워 보이시네요.”

    눈썰미가 좋은 여자다. 나도 슬쩍 미소를 얼굴에 띠었다.

    “여유라는 건 결국 돈에서 나오지 않습니까. 차라리 천지회에 가서 돈을 뿌려주는 게 훨씬 편한 방법일 수도 있죠. 하지만 이미 그들은 선을 넘었어요. 철저하게 응징을 해주지 않으면 속이 풀리지 않습니다.”

    “호호, 대담한 분이시네요. 천지회도 중국에서는 세 번째로 큰 곳인데, 겁을 먹지 않으시다니.”

    “세 번째니까요. 첫 번째였다면 겁을 먹었겠지만, 세 번째라면 그 위에 있는 두 번째와 첫 번째에게 부탁을 하면 되지 않습니까.”

    샤오쯔이는 들고 있던 칵테일 잔을 내려놓은 다음 내게 몸을 돌렸다.

    “돈이 좀 많이 들 수도 있어요.”

    “많이 뜯어간다고 해도 불만은 없습니다. 얼마나 필요하십니까?”

    “1억 달러.”

    생도둑이나 다름없는 제안이다.

    1억 달러라니.

    하지만 1억 달러는 내게 큰돈이 아니었다.

    “좋습니다.”

    샤오쯔이는 내가 받아들일 줄 몰랐는지 살짝 놀란 눈치였다.

    “바로 받으실 줄은 몰랐네요. 1억 달러면 꽤 큰돈인데.”

    “저희 회사 입장에서는 그다지 큰돈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건 약속을 해주십시오. 천지회가 상하이에서 다시는 얼씬거리지 못하게 해주셔야 합니다.”

    “돈만 주신다면야 뭐가 어렵겠어요? 사실 우리도 전쟁을 하려면 돈 들어갈 곳이 많아요. 공안 입도 다물게 해야 하고, 조직원 수도 보충을 해야 하고. 거기다가 무기도 손을 봐야죠. 1억 달러도 어찌 보면 싸게 먹히는 걸 수도 있어요.”

    “더 필요하면 말씀을 하세요. 더 퍼다 드릴 수 있으니까요.”

    내 말에 샤오쯔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명함 하나를 건넸다.

    금색으로 치장된 명함으로 뭔가 특별해 보였다.

    “이걸 잘 갖고 계세요. 화자두가 운영하는 업소들부터 구역 내부까지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VIP카드예요. 우리 쪽도 먼저 상의를 한 다음, 연락을 드리죠.”

    VIP카드라.

    꽤 유용하게 쓰일 것 같다.

    “그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는 샤오쯔이게 건넨 손등에 살짝 입을 맞췄다. 그녀는 흡족한 표정으로 내게서 몸을 돌려 어디론가 가버렸다.

    기껏 해봐야 서른 안팎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화자두의 두목이 될 수 있었던 걸까. 궁금증이 일긴 했지만, 나는 빠르게 마음을 접으며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갑시다. 천지회가 있는 소굴로.”

    내 다음 만남 상대는 천지회의 두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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