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154화 (154/325)
  • 154화. 덫에 빠진 호랑이 (1)

    호랑이를 잡기 위해서는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무작정 호랑이 굴로 들어가기 보다는, 호랑이를 밖으로 끌어낼 수 있는 미끼를 덫 위에 놔두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마치 쥐를 잡기 위해 치즈를 덫에 올려놓는 것처럼 말이다.

    “김 대표님, 통화 가능하신가요?”

    “예, 사장님.”

    여전히 차가운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다. 하지만 이젠 저 목소리가 오히려 내게 안도감을 주고 있다.

    리턴 컴퍼니가 정식으로 출범하면서 김아름은 리턴 컴퍼니의 대표가 되었다. 엄청난 초고속 승진이긴 하지만, 그녀의 능력을 보자면 결코 아깝지 않은 자리다. 그리고 나는 리턴 컴퍼니의 지분을 100% 가지고 있는 대주주다.

    “지금 당장 리턴 컴퍼니에서 운용할 수 있는 자금이 얼마 정도 되나요?”

    “합법적으로요?”

    “예, 빳빳하게 세탁돼서 나온 돈이 얼마나 됩니까?”

    “바로 움직일 수 있는 금액은 12억 5천만 달러 정도 됩니다.”

    곧바로 답이 나왔다. 그만큼 리턴 컴퍼니의 내부를 줄줄이 꿰고 있다는 것이리라.

    12억 5천만.

    굉장한 금액이 아닌가?

    한화로 바꾸면 1조 3천억 원에 달하는 돈이다.

    메데인 카르텔의 전 카포인 파블로 에스코바르와의 거래로 인해 30억 달러를 챙기긴 했지만, 그중에서 몇 억 달러는 리턴 컴퍼니를 세우면서 건물과 몇 개 회사의 지분을 사들였다. 또한 미국 정치계에도 많은 돈을 뿌렸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대양 그룹과 화진 그룹을 합병하는 과정에서 돈을 좀 쓰긴 했다.

    “아직 세탁 안 된 돈은 얼마나 됩니까?”

    “10억 달러 정도 됩니다.”

    메데인 카르텔, 골든 마피아, 야마구치 구미, 그리고 화진파.

    이 네 개의 대조직이 하나로 힘을 합치면서 발생하는 시너지는 굉장하다.

    아시아권과 아메리카 지역 마약 판매를 거의 독점하고 있어 그야말로 돈을 쓸어 담고 있는 실정이다. 이래서 세상에서 가장 잘되는 장사가 술장사와 약장사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일단 준비할 수 있는 대로 돈을 준비해 주세요. 곧 크게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당장이요? 개인적으로 쓰시는 겁니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융통을 해주시는 건가요?”

    “당연히 융통입니다. 크게 빌려주고 다 빼앗아올 상대가 있어서요.”

    김아름은 오랫동안 나를 겪어본 사람이다.

    내가 무얼 하든 아무런 의구심을 품지 않고 말 그대로 복종하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준비시켜 놓겠습니다.”

    “예, 그쪽은 별일 없죠?”

    “요즘 전쟁 때문에 정부에서도 다른 곳에는 신경을 쓰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다행히 저희 쪽에는 아무런 일도 없습니다.”

    혹시라도 정부에서 세무 조사가 들어오면 일이 아주 골치 아파진다. 내가 가지고 있는 핫라인으로 무마시킬 순 있겠지만, 그 귀찮은 일을 감당하기 위해 또 미국으로 넘어가야 하지 않은가.

    하지만 지금 미국은 우리 회사를 신경 쓸 만큼 여유롭지가 않다.

    1991년 1월 17일 날 걸프전을 알리는 발표가 백악관으로부터 나왔다.

    1990년에 시작해서 1991년에 끝나는 이라크와 다국적군 사이의 전쟁이 바로 걸프전이다. 이 당시만 하더라도 중동을 모두 점령하고자 하는 후세인의 야망이 쿠웨이트를 침공하면서 본격화되었다.

    그러나 강대국들이 이라크의 하찮은 발버둥을 가만히 지켜볼 리가 없다.

    이라크가 정말로 중동 국가들을 지배하게 되면 그들이 독식하게 될 오일 머니가 아까운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차라리 이 기회에 중동 국가에 발을 디밀어 그곳에 있는 석유를 전부 강탈할 계획을 세우게 된다.

    그것이 바로 미국이 걸프전에 참가한 가장 큰 이유였다.

    “어차피 전쟁은 조만간 끝날 겁니다. 한 달도 안 갈 테니까, 그 안에 돈세탁도 끝냈으면 좋겠어요.”

    “예, 사장님.”

    미 정부의 시선이 다른 곳에 쏠려 있는 때에 나는 얼른 돈부터 세탁해 놓아야 했다.

    호랑이를 덫에 끌어들이려면 그만한 미끼가 필요한 법이니까.

    어쩌면 이제부터가 제일 중요한 순간이 아니겠는가?

    내가 원초적으로 원하는 것은 대한민국이란 나라를 그림자 뒤에서 지배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그것이 필요하다.

    훗날 이 나라의 경제와 정치권을 지배하게 되는 천성 그룹. 얼마나 그 힘이 대단한지 천성 공화국이라는 말까지 나오게 된다.

    대한민국은 망해도 절대 망하지 않는 기업이 바로 천성이지 않은가?

    그리고 이 나라를 발밑에 두기 위해서는 천성 그룹의 힘이 필요하다. 나는 그것을 갖기 위해 지금 물밑 작업에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 작업에 성공하면 나는 천성 그룹을 손아귀에 넣게 되는 것이고, 동시에 대한민국을 컨트롤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지게 된다.

    물론, 이 작업을 완성시키기 위해 섬세한 장치들이 필요하다.

    “응? 워커?”

    김아름과 통화를 끝낸 뒤에는 로이 루스테에게 전화를 걸었다.

    난 말을 돌리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로이, 혹시 기업 하나 물 먹이는 데 얼마나 필요합니까?”

    “무슨 소리야? 물을 먹이다니?”

    “이번에 한국에 있는 기업 하나가 미국으로 진출할 거예요. 그 기업을 제대로 물 먹이고 싶은데, 얼마나 들어가냐는 겁니다.”

    로이는 잠시 침음을 흘리더니 내게 되물었다.

    “분야가 어딘데?”

    “주력이 전자입니다.”

    “그래? 알겠어. 내가 다니엘 그 친구한테 말 한번 꺼내보지 뭐.”

    예전에는 다니엘 로페즈와 서로 날을 세우고 있더니, 지금은 꽤 잘 지내는 것 같다.

    “골든 마피아가 나서주면 훨씬 더 좋죠.”

    “섭섭한데? 우리 메데인 무시하는 거 아니지?”

    “그건 아니지만, 미국 기업들을 주무르고 있는 건 골든 마피아가 맞긴 하잖아요.”

    “뭐, 그렇긴 하지만 거기도 요즘 우리 덕 많이 보고 있어.”

    골든 마피아는 카지노 산업을 주력으로 삼아 관광객들과 자국민들의 돈을 쓸어 담고 있다. 또한 카지노를 운영하면서 호텔도 같이 운영하는데, 조직 특성상 피를 묻혀야 하는 일도 많기 때문에 그쪽 일을 담당해 줄 곳이 필요하다.

    그리고 은밀히 약을 판매하는 것도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겠는가?

    그런 쪽에서는 메데인 카르텔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것이리라.

    결국 서로 윈윈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 회사 이름이 뭔데?”

    “천성입니다.”

    “아, 저번에 말했던 그 회사?”

    “예, 가능하겠죠?”

    “어차피 한국 땅에서만 잘나가는 기업이잖아. 여기서는 이방인이니까, 아예 박살을 내 줄게.”

    완전히 박살을 내는 건 내가 좀 곤란하다.

    내가 천성 컨트롤 타워를 점령했을 때도 해외에 손을 뻗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지 않은가.

    “박살을 낼 정도는 아니고……. 그냥 자금 사정이 달리게만 압박을 해주세요. 제가 나중에 운영해야 하는 곳이라서요.”

    “아, 그런 거였어? 알겠어. 신호만 줘.”

    “감사합니다, 로이.”

    “잘 알겠으면 자주 오기나 해.”

    로이에게도 말을 해두었으니, 이제 천성이 미국에 진출하기만 하면 된다.

    결국 등을 떠밀어줄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인가.

    난 곧바로 차에 올라 이강혁이 있는 천성 그룹 본사로 이동했다.

    * * *

    “아이고, 김 사장. 여기까지 다 찾아오고.”

    이강혁은 이제 천성 그룹의 회장이나 다름없었다.

    이철호가 건강 악화로 병원에서 나오지 못하자, 천성 그룹을 이강혁 혼자 휘두르고 있는 것이다. 이번 해외 진출 건도 이강혁 머리에서 나온 거 같은데, 솔직히 저 멍청한 머리로 해외 진출을 본격화시키겠다는 생각을 한 건 기특한 일이다.

    “아, 여기는 내 비서실장. 누군지 알아? 정재원 실장이라고. 인사나 해.”

    부회장의 비서실장이라면 회사 내에서는 막강한 파워를 자랑한다.

    왕실로 따지자면 왕의 곁을 항상 지키는 내시 정도라는 건데, 비서실장이란 직책은 강력한 권력을 자랑하지만 반대로 왕이 물러나면 솥에 넣어지는 사냥개 신세가 된다.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정재원 실장은 내게 정중히 인사를 올린 다음, 부회장실 밖으로 나갔다.

    정재원이라.

    부회장 옆을 졸졸 따라다니는 놈이라면 앞으로 쓸모가 많을 것이다.

    “미국 진출 건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착착 진행되고 있어. 문제는 이거 아니겠어?”

    이강혁은 손가락을 동그랗게 말며 말했다.

    결국 돈이 문제라는 것이다. 나한테는 아주 반가운 소식이다.

    “얼마 정도 추산될지는 알아놓으셨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그것 때문에 김 사장을 한번 만나보려고 했지. 이거 한번 봐.”

    나는 이강혁이 건네준 서류를 면밀히 살펴보았다. 예상했던 대로 주력 사업은 전자 쪽인데, 역시 문제는 자금이다.

    미국 진출을 하기 위해서는 공장부터 본사 건물, 그 외에도 부수적인 게 상당히 많이 들어간다. 또한 천성 그룹은 공격적인 마켓팅으로 유명하지 않은가?

    마켓팅을 하기 위해 들어가는 돈도 아마 상당할 것이다.

    “7억 달러…….”

    생각보다 그리 많은 액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천성은 미국 진출을 노리기 위해 총력전을 벌이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것도 달러로 7억을 쓸 정도면 엄청난 금액이다.

    그리고 문제는 이 7억 달러가 빌려야 하는 돈이라는 것이다.

    이미 천성은 6억 달러를 준비해 두었고, 7억 달러를 빌려 총 13억 달러를 퍼부으려 한다.

    대단한 모험이랄까.

    이게 천성의 강점이기도 하지만 치명적인 약점으로도 작용된다.

    “가능하겠나?”

    “7억 달러면… 어렵게 가능할 것 같네요.”

    내 대답을 들은 이강혁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정말? 이야, 우리 김 사장 진짜 발이 넓구먼.”

    “제가 미국 쪽에 있는 사람들과 컨택을 해 보겠습니다. 합리적인 금리로 빌리실 수 있도록 조율도 해보고요.”

    “허허, 이거 고마워서 어쩌나. 이번 일이 잘 성사되면 내가 김 사장 몫도 챙겨 줄게.”

    내가 당신보다 몇 배나 더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데 무슨.

    쥐새끼가 고양이 걱정하는 꼴이다.

    나는 여유로운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주시면 저는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강혁은 자신이 어떤 함정에 빠지고 있는지도 모른 채 껄껄 웃음만 터뜨리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몇 년 안 남았다.

    1997년에 터지는 IMF 사태는 어마어마한 경제 대공황을 가져온다.

    수천 개가 넘는 회사들이 문을 닫게 되며 천성도 그 파도에 휘말려 한때 주가가 1만 원 아래로 내려가게 된다.

    믿겨지는가?

    천성 전자의 주가가 1만 원 아래로 떨어진다는 것이.

    하지만 그땐 그게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 된다. 그러나 끝끝내 천성 그룹은 망하지 않고 버텨내 마침내 대한민국을 통째로 삼키는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한다.

    치킨 게임에서 살아남는 승자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 역사가 지금 이 순간 바뀌려 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한창 호황을 맞고 있는 시기. 이때 많은 기업들이 해외 진출을 노리게 되는데, 천성도 그중 하나다. 그러나 천성만큼 이 정도로 무모하게 투자를 시도하진 않는다.

    이강혁이 경제 호황만 믿고 무리수를 두는 것이다.

    “다음에 또 찾아뵙겠습니다.”

    “그래. 조심해서 들어가, 김 사장.”

    나는 부회장실 밖을 나오면서 음흉하게 올라가는 입꼬리를 자제할 수 없었다. 이번 건만 잘 성사시키면 천성은 IMF 외환 위기라는 카운터펀치를 맞고 그로기 상태가 된다. 그때 나는 도적처럼 천성 그룹을 강탈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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