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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155화 (155/325)

155화. 덫에 빠진 호랑이 (2)

“비웃으려고 온 거라면 그만 돌아가십시오.”

이강찬은 나를 차갑게 대하며 집 안으로 들이지도 않았다. 그래도 수행원을 시켜서 쫓아내지 않는 것을 보아 협상의 여지는 있다.

“물 한 잔도 주지 않고 쫓아내시려고요? 그래도 그동안의 정이 있지 않습니까.”

“하하. 글쎄요. 전 있었는데 아무래도 태산 씨는 없었나 봅니다. 그러니까 저도 저절로 없어진 거겠지요. 그럼, 더는 할 말 없으신 것 같은데 그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나는 끼익 닫히는 문을 붙잡고 살짝 미소를 띠며 말했다.

“이대로 절 보내면 후회하실 겁니다.”

“제가 더 후회할 게 있나요? 태산 씨를 처음부터 막지 못한 저를 탓해야죠.”

좀 찔리는 말이긴 했지만, 난 꿋꿋하게 할 말을 했다.

“이강찬 씨의 미래가 달린 일입니다. 천성의 주인, 되고 싶지 않습니까?”

내 말을 들은 이강찬의 동공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들어오시죠. 하지만 저번처럼 그냥 속아 넘어가 주진 않을 겁니다.”

“글쎄요. 전 한 번도 이강찬 씨를 속인 적이 없는데요?”

내가 들어도 뻔뻔한 말이긴 했다. 그래서일까, 이강찬은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꽤 큰 집에 사시네요.”

“이거 하나라도 받아야 하지 않습니까? 어차피 떨어질 콩고물도 없는데요, 뭐.”

뭔가 가시가 돋친 말이다. 그만큼 내게 쌓인 불만이 많다는 것일 터. 오히려 저런 모습이 내게는 더 좋다.

갈구하고 또 갈구할수록 사람은 가진 자의 앞에서 비참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가진 자의 손이 뻗어질 때, 갈구하는 자는 경건하게 그것을 받들 수밖에 없다.

그나저나 이 집은 한량 같은 남자가 혼자 지내기에는 지나치게 크긴 하다.

탁-

나는 정말 물 한 잔만 주는 이강찬의 인심에 실소를 감출 수가 없었다.

“소심하게 복수하시는 겁니까?”

“그거 쭉 한잔하시고, 용건만 간단히 말씀하세요. 바쁘신 분인데.”

이강찬의 볼멘 목소리에 나는 물컵을 들고 단번에 들이켰다. 그리고 거두절미하며 말을 이었다.

“아시다시피 제가 이번에 화진을 완전히 먹었습니다. 하지만 이정도로 만족하기에는 화진이라는 회사가 너무 작네요.”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이강찬 씨, 당신은 천성 그룹의 회장 자리를 원하시는 거죠?”

“당연한 말씀을 하시네요. 우리 아버지 자식들 중 그걸 원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거 같아요?”

내가 너무 당연한 것을 물어 기분이 상했는지, 점점 목소리 톤이 높아지는 이강찬이었다.

“오래 전에 저희가 했던 약속, 기억하십니까?”

“예, 저 혼자만 망상을 품었던 그 약속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하하. 제가 너무 안일했나 봅니다. 끝까지 절 믿고 따라와 주실 거라 생각했는데.”

이강찬은 한계에 도달했는지 격양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봐요, 김태산 씨. 이제는 당신이 너무 커져 버려서 내가 그쪽을 건드릴 순 없지만, 그래도 내가 천성 그룹의 일원이라는 걸 잊지 마세요. 아무리 지금의 나라도 당신이 꽤 아플 수 있을 만큼의 타격은 줄 수 있으니까.”

“하하하-!”

난 이번 해에 들어 정말 크게 웃었다.

한참 박장대소를 한 뒤, 나는 짜게 식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 이강찬에게 말했다.

“할 수 있으면 해보세요.”

“뭐라고요?”

“저 건드릴 수 있으면 얼마든지 건드려 보라는 겁니다. 대신, 각오는 하셔야 할 거예요. 전 저 건드리는 놈이 염라대왕이라고 해도 가만두지 않습니다. 둘 중 하나는 죽기 전까지 달릴 테니까, 어디 한번 해보시라는 겁니다.”

이강찬은 입술을 꽉 깨문 채 나를 노려봤다.

그도 알고 있는 것이다. 지금 자신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에 불과한지.

천성이라는 이름 하나로 지금도 간신히 버티고 있는 수준이 아닌가?

어디서 되지도 않는 협박은.

이미 나와 이강찬의 격차는 좁힐 수 없을 만큼 차이가 났다.

지금 이강찬이 가지고 있는 힘으로는 나를 털끝만큼도 건드릴 수 없다는 뜻이다.

솔직히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지금쯤 이강찬은 왕자의 난에서 승리해 천성의 주인이 되었어야 한다. 하지만 내가 이강혁과 손을 잡고 지속적으로 그를 방해하지 않았던가?

그로 인해 천하의 이강찬이 지금은 집에서 빈둥거리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한량으로 전락했다. 그리고 내가 그를 이렇게 도발할 수 있는 것이고.

“이강찬 씨는 이제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그냥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천성 가문의 일원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평생 그냥 아무것도 해보지 못한 채 죽을 수도 있다는 거죠.”

“또 제 속을 긁으시려는 거라면…….”

“하지만 기회는 있어요. 이 비루한 인생을, 이 거지 같은 상황을 한 번에 역전시키고 싶지 않습니까? 당신을 억압하고 있는 큰형을 무릎 꿇리고, 이 나라를 지배하게 될 천성 그룹의 주인이 되고 싶지 않느냐, 이 말입니다.”

내 제안에 이강찬은 놀라는 얼굴을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경계의 눈빛을 띠며 내게 물었다.

“나한테 이런 말을 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예?”

“갑자기 이렇게 찾아와서 저를 흔드는 이유가 뭐냐, 이겁니다. 저번처럼 또 사람 물 먹일 생각이라면…….”

“하하. 제가 예전에도 말씀드렸잖아요. 지금은 바싹 엎드리고 있으라고. 때가 올 때까지 엎드리고 있으면 된다고 말입니다.”

말을 해도 이강찬의 의심 어린 눈초리는 꺼지질 않는다.

“구체적인 것을 말해주기 전까지는 전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않을 겁니다. 또한 김태산 씨 당신을 믿지 않을 것이고요.”

까칠하다. 그럴 만도 한 게, 내가 그동안 한 짓이 있어서 욕할 수도 없겠다.

그렇다면 어디 제대로 판 깔고 얘기나 나눠볼까.

“좋습니다. 얘기가 좀 길어질 겁니다. 그리고 이강찬 씨는 아마 제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미 나락에 떨어져 있는 인생입니다. 더 안 좋을 게 어디 있다고요.”

원래 사람이 이렇게 부정적이었나. 아니면 내가 이토록 망가뜨려 놓은 것일까.

뭐가 어찌 되었든, 이강찬이 절망에 빠져 있으면 있을수록 내게는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그럴수록 내가 떨어뜨리는 물방울에 환호하며 더욱 갈증을 느낄 테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전 지금 천성을 노리고 있는 중입니다.”

이강찬의 안색이 바뀌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놀라기에는 이르다.

“계획도 아주 구체적으로 세우고 있어요. 이강찬 씨의 큰 형님을 완전히 날려 버릴 계획부터 천성 그룹을 제 수중에 넣는 것 까지요.”

나는 이강찬의 표정을 찬찬히 살피며 말을 이었다.

“이미 작업은 시작되었습니다. 앞으로 몇 년만 있으면 저는 수확을 하게 될 테고, 천성 그룹의 회장실은 비게 될 겁니다. 제 말,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이강찬은 놀랍도록 차분한 얼굴로 내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다. 그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일부러 놀란 마음을 숨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긴 침묵 이후에 이강찬의 말문이 열렸다.

“천성 그룹을 완전히 손에 넣으실 작정입니까? 그리고 천성이란 이름도 지우실 거고요?”

“완전히까지는… 아마 불가능하겠죠. 출혈이 꽤 크지 않겠어요? 몇 개 좀 떨어져 나갈 수도 있고요. 하지만 천성이란 이름을 지우진 않을 겁니다. 예전에도 말씀드렸죠? 천성 전자는 소니를 뛰어넘게 될 거라고.”

생활은 한량의 그것과 같지만, 천성 그룹을 초일류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열망은 여전히 저 안에 있는 모양이다.

줄곧 생기가 없어 보이던 이강찬의 눈이 반짝였다.

“그 말, 진심이십니까?”

“전 장난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언제 제가 그런 적이 있던가요? 전 하면 반드시 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목이 타는지 이강찬은 생수 한 병을 따고 벌컥 들이켰다.

정부에서 생수의 판매를 합법적으로 승인한 것을 아시고 있죠? 아직 국민들이 그걸 다 사 먹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외국인들은 생수를 사서 먹고 있죠. 우리나라에서 밖으로 나가기만 해도, 유럽인들은 전부 사서 마시는 게 바로 생수입니다.”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저는 천성 그룹의 핵심인 전자를 말씀드리는 겁니다. 이미 천성 전자는 금양 전자를 뛰어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세계로 진출할 준비를 하고 있죠. 저는 반드시 천성 전자를 마치 저 생수처럼 세계인들이 자연스럽게 하나씩 들고 다니는 그런 세상을 만들 겁니다.”

이강찬은 그제야 놀란 얼굴을 띠며 눈을 몇 번 껌뻑였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이강혁 부회장으로는 안 됩니다. 아시다시피 그 사람은 비전도 없고 생각하는 것도 너무 짧아요. 그러니까 저 같은 놈이 나타나서 천성 그룹을 통째로 삼키려는 거죠. 이게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그래서 형님보다는 제가 더 써먹기 유용하다는 겁니까?”

“하하. 어감이 좀 이상하네요. 써먹기 유용하다라……. 글쎄요. 허수아비를 원했다면 이강찬 씨에게 오지 않았겠죠. 그러니까 우리 깨끗하게 거래 한번 합시다.”

“거래요?”

지금까지는 서론에 불과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 때가 아닌가.

나는 진지하게 목소리를 낮추고 이강찬에게 말했다.

“저는 천성 그룹이 세계적으로 뻗어나가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런 회사의 대주주가 되기를 원하고요. 엄밀히 말하자면 소유하기를 원하는 것이죠. 하지만 지금의 부회장이 회장으로 선출되면 문제는 심각해져요.”

천성 그룹은 아직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했다.

이철호가 기반을 다졌다면 이강찬은 그 기반으로 대한민국을 정복하고 세계까지 진출한 케이스라고 보면 된다.

마치 진나라의 진시황이랄까?

선조들이 쌓아놓은 기반으로 중국을 통일한 최초의 황제가 되었으니까. 그건 이강찬도 마찬가지다.

기반이 마련되어 있다고 모두가 잘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이 넘어지고 있는 기반마저 무너뜨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강찬은 그 기반을 이용해 천성 그룹을 정부조차도 건드릴 수 없는 기업으로 성장시킨다.

그뿐인가?

꿈이라고만 여기던, 헛된 망상이라고 손가락질한 목표를 이룬다.

세계 전자 시장에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소니를 뛰어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차근차근 세계 시장을 점령하게 된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물을 들고 다니는 것처럼, 천성 전자 제품을 들고 다니게 하겠다는 나의 포부는 사실 미래의 이강찬이 어떤 연설회에서 하게 될 말이다.

그냥 나는 슬쩍 카피를 한 것뿐.

이강찬의 생활이 천성 그룹 회장과는 다르지만, 그는 여전히 뜨거운 열망을 가슴속에 품고 있다. 그렇기에 나의 말에 감화가 되는 것이리라.

“하지만 이강혁 회장이 아니라, 이강찬 회장이라면 분명 천성 그룹은 세계적으로 뻗어 나갈 수 있을 겁니다.”

“그럼, 김태산 씨가 제게 원하는 건…….”

“잘 생각해 보세요. 지금 이강찬 씨는 이강혁 부회장을 이길 힘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와 손을 잡는다면? 약속드리죠. 앞으로 5년 안에 천성 그룹 회장이란 자리를 잘 포장해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내 제안을 들은 이강찬은 어안이 벙벙해 보였다.

하긴. 이제 아무런 희망도 없다고 여기면서 절망 속에 하루하루를 지내지 않았던가. 자신의 뜨거운 열망을 어디에 풀지도 못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 어둠 속에 한 줄기 빛처럼 내가 손을 뻗었다.

내 손을 잡는다면 당신의 열망을 풀 수 있다는 악마의 속삭임.

과연 누가 넘어가지 않을 수 있을까?

“그, 그럼 김태산 씨가 제게 원하는 건 뭡니까?”

이강찬이 원하는 건 오직 천성 그룹의 선장이 되어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건?

“앞서 말씀드렸듯, 전 천성 그 자체를 원합니다.”

난 그 선장과 선함을 갖고 싶다.

대한민국이란 땅을 헤젓고 다니며 세계를 누비는 그 거대한 함선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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