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148화 (148/325)
  • 148화. 히트맨 (1)

    “자네의 뜻에 따르겠네.”

    와타나베의 승인이 떨어졌다. 그는 연합체의 일원이자 내가 세우는 제국의 신하다.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애써 참으며 나는 태연하게 물었다.

    “나카노 카이에 있는 핵심 간부들. 그리고 나카노 카이와 접선하고 있는 야마구치 구미의 간부들의 명단이 필요합니다. 또한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도요.”

    “진짜 해볼 생각이군.”

    “설마 제가 거짓말을 하는 거라고 생각하셨던 겁니까?”

    “반신반의한 건 맞지. 그리고 명단을 넘겨준다고 해도 그들이 다 제거된다는 확신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와타나베 말대로 그들 모두를 암살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내 뒤로 메데인 카르텔과 골든 마피아가 있다. 또한 내가 데리고 있는 조직원들 중에서 최고의 암살자들을 모은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명단 위에 올라와 있는 주인공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세계 최고의 조직들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메데인 카르텔과 골든 마피아 쪽에서 사람을 보낼 겁니다. 최고의 히트맨들을 선별해 보낼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니까…….”

    “루트를 열어달라?”

    “예, 구멍을 좀 파주십시오. 그쪽으로 들어오면 일이 훨씬 더 수월해지고 빨라지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최강의 군단을 가지고 있다 해도 땅을 밟지 못하면 아무짝 쓸모가 없다. 나는 지금 와타나베에게 일본 땅을 밟을 수 있는 길을 열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었다.

    “야마구치 구미가 이용하는 길이 따로 있지 않습니까? 가장 쉬운 편은 배를 이용하는 것이겠지만, 그보다는 하늘이 빠르고 좋을 것 같은데…….”

    와타나베는 허탈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늘? 배도 아니고 비행기로 밀항을 하겠다고? 그게 쉬운 일인 줄 아나?”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일본 최고의 조직, 야마구치 구미의 쿠미쵸라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나의 말을 들은 와타나베는 껄껄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자네는 진짜 너무 얄미워. 그런데 오히려 그게 더 안심이 되기도 하지. 분명 다른 사람들한테도 똑같이 하고 있을 테니까. 그만큼 일처리가 확실하다는 거 아니겠어?”

    “그걸 그렇게 해석해 주시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는 잔을 쭉 들이켠 다음, 말을 이었다.

    “좋아. 내가 힘 한번 써보도록 하지. 야마구치 구미의 명운이 달린 일이니까. 하지만 일은 확실하게 처리할 수 있는 거겠지?”

    “예, 그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나 쿠미쵸께서도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연합에 들어온 이상, 탈퇴하는 방법은 없을 겁니다.”

    “자네 말대로 세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연합이라면 내가 왜 탈퇴를 하겠어?”

    틀린 말이 아니다.

    솔직히 이 연합은 나도 좋고 와타나베도 좋은, 상부상조하는 일이다.

    연합의 일원이 되면서 야마구치 구미는 더 이상 혼자만의 힘으로 버티지 않아도 된다. 더욱더 일본에서의 영향력을 키울 수 있다는 뜻이며 세계적으로 손을 뻗을 기회를 잡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타나베의 지배력도 훨씬 더 강해질 터.

    어찌 이게 나쁜 조건일 수 있겠는가?

    “길만 잘 닦아주십시오. 나머지는 저희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그래, 부탁 좀 하지. 그나저나 언제까지 안 마시고 있을 참이야? 오랜만에 만났는데 오늘은 거하게 마셔야지.”

    “죄송합니다. 제가 오늘은 많이 마시면 안 되는 날이라서…….”

    와타나베는 야릇한 눈으로 날 쳐다보더니,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얘기는 들었어. 애인이랑 같이 왔다고 하던데, 진지한 사이인가?”

    “예, 제 첫 여자고, 마지막 여자가 될 사람입니다.”

    “허허. 그건 좀 센데? 첫 여자에 마지막 여자라니. 그만큼 많이 좋아하나 봐?”

    글쎄. 그만큼 내가 좋아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권윤아만 한 여자가 없다고 생각해서 이러는 것일까.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가 편한 것은 맞다.

    “그래,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그래도 다음에는 꼭 제대로 한잔하는 거야?”

    “예,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 *

    나는 차분하게 와타나베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늘의 길을 열어준다면 나의 사람들이 그곳을 통해 일본 땅을 밟게 될 것이다.

    이제 이틀 정도 지났지만, 아직 좀 더 기다려야겠지?

    “안 먹어?”

    “응? 아, 응. 먹어야지.”

    “이 예쁜 내 얼굴을 앞에 두고 너무 딴생각만 하는 거 같은데?”

    “그럴 리가.”

    나는 권윤아와 함께 멀리 나가지 않고 호텔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는 중이었다.

    내가 너무 딴생각만 하고 있었나.

    뾰로통해진 얼굴을 보니, 아무래도 내가 너무 내 일만 생각한 것 같았다.

    “오늘 우리 다른 곳에 관광이라도 가볼까?”

    “괜찮… 겠어?”

    “물론이지. 정말 괜찮아.”

    권윤아는 권용일 뺨치도록 눈치가 빠르다. 내가 단순히 관광 목적으로 오지 않았다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지 않았던가. 그래서 그녀는 어디로 나가자고 조르지도 않았다.

    그 마음을 알기에, 나도 오늘은 한 번쯤 그녀를 위해 희생하는 게 좋지 않겠는가?

    “가고 싶은 곳 있으면 다 말해. 데려가 줄게.”

    “그렇지 않아도 가고 싶은 곳이 많았어. 도쿄 시내도 그렇고 교토도 가보고 싶었고 또…….”

    “김태산 사장님.”

    한창 떠들고 있던 권윤아의 입을 다물게 한 것은 다름 아니라 호텔 지배인이었다.

    “식사 중에 죄송합니다만, 사장님께 전화 한 통이 와 있습니다.”

    난 발신인이 누군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분명 와타나베에게서 온 전화이리라.

    “윤아야, 잠깐만 기다려 줘. 금방 올게.”

    “아, 응.”

    권윤아는 오늘도 내가 일 때문에 나가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지 풀이 죽은 표정이었다.

    “걱정 마, 오늘은 정말 아무 일도 없으니까. 밥 먹고 같이 나가자. 도쿄부터 구경 쭉 하고 내일은 교토도 가자.”

    “정말?”

    “응. 그러니까 잠깐만 기다려 줘.”

    활짝 미소를 짓는 권윤아를 뒤로하고, 지배인이 가리키는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예, 전화 받았습니다.”

    “어, 나일세.”

    “예, 쿠미쵸. 제가 부탁드렸던 건 해결이 된 겁니까?”

    “그래, 언제쯤 들여올 수 있겠나? 그리고 그쪽 명단을 건네줘야 나도 길을 열어줄 수가 있어서 말이야.”

    “물론이죠. 명단은 곧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삼일 정도만 시간을 주시면 저희 쪽 사람들이 넘어올 겁니다.”

    내 말을 들은 와타나베는 비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겠네. 자네 말대로 준비하지. 자네도 만반의 준비를 해주게.”

    “예, 그럼 또 뵙겠습니다.”

    간단한 통화였다.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은 다음, 지배인에게 물었다.

    “미국에 전화를 걸 수 있겠습니까?”

    “예, 가능합니다. 사장님.”

    “보안은 확실하겠죠?”

    “물론입니다.”

    “그럼 한 번만 더 전화를 쓰겠습니다.”

    나는 지배인의 도움을 받아 미국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는 익숙한 것이었다.

    “이 번호로 전화할 사람은 한 명밖에 없는데, 우리 보스인가?”

    로이와 나만 알고 있는 유선 번호로 전화를 걸었더니, 단번에 받았다.

    “로이, 오늘도 한가롭게 집에서 탱자탱자 놀고 있는 겁니까?”

    “응? 넌 꼭 전화 받자마자 그렇게 사람을 몰아가야겠어?”

    뭐,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아무튼 이런 잡담이나 하자고 전화를 한 게 아니다.

    “로이, 저번에 말했던 거, 기억하십니까?”

    “음, 뭘 말하는 거지? 하도 우리가 은밀히 나눈 이야기가 많아서 말이지.”

    은근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을 보니, 가끔 보면 이놈이 여자가 아니라 남자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 의심된다. 솔직히 그건 취향 존중이라 뭐라고 말할 순 없는 노릇이지만.

    “장난치지 말고요. 일본 쪽에서 길이 열렸습니다. 준비된 조직원들을 전부 보내주세요. 명단도 말씀해 주시고요.”

    “쳇, 장난 한번 쳐본 거 가지고. 알겠어, 길이 열렸다면야 다 출동시켜야지. 이번에 새로 영입한 애들로 싹 보내줄 테니까, 기대해.”

    일본에 대한 계획을 말해줬을 때, 로이는 최고의 암살자들을 미리 영입해 놓겠다고 장난스럽게 말했었다. 그런데 그게 진짜였나?

    “정말입니까? 진짜 새로 다 영입한 거예요?”

    “농담인 줄 알았어? 우리가 남아도는 게 돈이잖아. 그리고 이번에 골든 마피아도 들어왔기에, 그쪽 보스한테 돈 좀 내라고 했지. 흐흐.”

    설마, 그새를 못 참고 벌써 삥이라도 뜯은 건가. 그것도 골든 마피아를 상대로?

    양아치도 이런 양아치가 없다.

    하지만 깊게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지 않은가?

    이것도 모두 조직을 위한 일인데.

    “왜? 별로야?”

    “아니요, 생각해 보니까 잘한 거 같네요. 앞으로도 그렇게 수금해 주세요.”

    “흐흐. 역시, 네가 나보다 더 나쁜 놈인 줄 알고 있었어.”

    유쾌한 웃음소리에 나도 실없이 웃고 말았다.

    “명단부터 먼저 만들어서 알려주시고요. 제가 다시 연락드리면, 그때 움직이세요.”

    “그래, 알겠어, 보스. 근데 미국은 언제 또 오는 거야? 요즘 네 얼굴 못 봐서 얼마나 외로운…….”

    “전화 끊습니다.”

    난 얼른 수화기를 내려놓고 지배인과 어색한 미소를 나눴다.

    앞으로 이틀.

    이틀 후면 나의 조직원들이 일본으로 넘어오게 된다.

    * * *

    이틀 동안 나는 권윤아와 여행을 다니며 이곳저곳을 구경 다녔다.

    권윤아는 아주 좋아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정말 피곤했다.

    그녀는 쇼핑을 매우 좋아하는데, 그쪽에는 영 취미가 없는 나로서는 아주 고역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권윤아가 좋다면 해줘야지. 나를 따라 여기까지 따라 와줬는데. 이정도도 안 해주면 권용일한테 무슨 해코지를 당할지 모른다.

    그리고 이틀 후에 다시 호텔로 돌아와 나는 바로 공항으로 나갔다.

    “아니, 사장님, 이렇게 나오지 않으셔도 되는데…….”

    강철중은 내 얼굴을 보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닙니다, 강철중 씨. 그리고 뒤에 있는 분들은…….”

    “예. 원래 있던 조직원들도 있고, 이번에 새로 영입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런 험악한 인상들을 가지고 잘도 입국 심사를 통과했다는 건가.

    와타나베가 꽤나 돈을 썼다는 게 느껴지는 얼굴들이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그들은 가벼운 목례로 인사를 대신했다.

    직업의 특성 때문인지 다들 과묵한 성격으로 보인다. 오히려 저런 성격이 나한테는 편할 것이다. 군말 없이 알아서 내 명령에 따를 테니까.

    “일단 가시죠. 다른 인원들은 언제쯤 옵니까?”

    “순차적으로 들어오는 중입니다. 오늘 밤 안에 모두 도착할 겁니다.”

    “그럼, 오늘은 다들 쉬게 하세요. 작전 회의 후에 시작을 할 테니까요.”

    “예, 사장님.”

    나는 먼저 도착한 조직원들을 전부 차에 태우고 호텔로 보냈다. 그리고 강철중에게는 따로 서류 하나를 건넸다.

    “이번에 우리가 제거해야 할 명단입니다.”

    “살생부인가요?”

    “그런 셈이죠.”

    봉투 안에 있는 서류를 꺼내 본 강철중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생각보다… 많네요.”

    “그래서 많이 데려오라고 한 겁니다. 우리가 제거해야 할 사람 숫자가 총 55명. 그리고 이번에 일본으로 들어온 우리 쪽 조직원 숫자가 35명. 괜찮으시겠죠?”

    나도 생각보다 명단에 적힌 사람들이 많아 좀 놀라긴 했다. 하지만 강철중은 이내 문제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이번에 영입한 사람들도 그렇고, 원래 있던 사람들 중에서 뽑아 온 정예입니다. 두 쪽 다 실력이 아주 뛰어나요. 좋은 결과를 내놓을 겁니다.”

    “예. 최대한 빠르게, 그리고 은밀하게 해주셔야 합니다. 무기는 얼마든지 지원해 줄 테니까요.”

    “감사합니다, 사장님.”

    무기는 와타나베가 준비를 시켜놓았다.

    얼마나 질이 좋은 무기를 준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신형 모델도 준비를 했다고 하니 그건 내 조직원들이 판단할 문제다.

    총을 쏘는 건 내가 아니라 그들이 아니던가.

    나는 그들에게 총을 쥐여주고 표적을 가리켜 주면 된다. 그럼 그들이 나를 대신해 총을 쏴서 목표물을 쓰러뜨리게 될 것이다.

    곧 이 나라에 한차례 은밀한 피바람이 불게 될 것임을, 난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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