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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149화 (149/325)
  • 149화. 히트맨 (2)

    “음, 이런 곳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마음에 들지 않으시다니, 유감입니다.”

    와타나베는 입이 좀 나온 채로 자리에 앉았다.

    내가 그를 초대한 곳은 이탈리안식 레스토랑.

    항상 일식만 즐기는 양반이니, 싫어할 만도 하다. 거기다가 여기는 따로 룸이 있는 곳이 아니라서 더욱 불편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자네의 부탁이니, 따르지 않을 수도 없고 말이야.”

    “하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쿠미쵸.”

    “그럼, 일단 배부터 채울까?”

    둘 다 배는 고팠던 모양인지, 우리는 말없이 식사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배를 채우고 술잔을 기울일 때가 돼서야 와타나베의 말문이 다시 열렸다.

    “오랜만에 양식인데, 나쁘지 않군.”

    “다행입니다. 마음에 들어 하셔서. 사실, 여기가 꽤 유명한 곳이거든요.”

    “그래? 가끔 생각날 때 와야겠군. 그래도 난 역시 일식이 입에 맞아.”

    “하하. 다음에는 꼭 좋은 일식집으로 모시겠습니다. 오늘은 일이 있어서 여기로 초청을 드린 겁니다.”

    와타나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되물었다.

    “일이 있어서 여기로 초청을 했다고? 무슨 일?”

    “그건 좀 이따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람 참. 싱겁기는.”

    와타나베는 와인 맛을 음미하며 진중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자네 사람들이 들어왔다는 거, 다 들었네. 일은 언제부터 시작하지?”

    “이미 시작했습니다. 주신 명단대로 빠르게 제거를 할 겁니다. 하지만 명단에 주신 대로 일을 하기 보다는 차라리 좀 더 확실한 방법으로 일을 처리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확실한 방법? 그게 무슨 소린가?”

    나는 속에 품고 있던 생각을 와타나베에게 아낌없이 밝혀주었다.

    “나카노 카이의 핵심 간부들, 그리고 그들과 손을 잡은 야마구치 구미 내부의 간부들까지. 이들을 모두 죽인다고 해도 나카노 카이가 완전히 사라지진 않을 것입니다. 설령 그들이 와해된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부족하다니? 뭐가?”

    “공포와 두려움. 일본에 있는 모든 조직들이 우리 연합을 두려워하도록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야마구치 구미를 건드리는 것은 곧 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연합을 건드리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걸 똑똑히 보여줘야 합니다.”

    와타나베는 그러면 얼마나 좋겠냐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아직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게 틀림없다.

    “쿠미쵸, 저는 지금 단순히 암살만 하자고 제안을 드리는 게 아닙니다.”

    “그렇다면?”

    “나카노 카이의 흔적을 이 땅에서 완전히 지워 버리겠다는 겁니다. 다시는 그와 같은 조직이 나와 야마구치 구미를 아니, 우리 연합에 들어 있는 조직을 건드릴 수 없도록 말입니다.”

    “나카노 카이를… 완전히 지워 버려?”

    내 말을 들은 와타나베가 눈을 몇 번 깜빡였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 이해했을까?

    “대학살이라도 벌이겠다는 건가? 나카노 카이에 소속되어 있는 조직원들 수만 1천 명 가까이 돼. 그 외 사람들까지 합하면 도합 2천은 될 거야.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을 다 죽이겠다고?”

    “비전투원은 어차피 상대할 일도 없을 겁니다. 물론, 싸움에 휘말려 죽을 순 있겠지요. 하지만 그건 제가 상관할 바가 아닙니다.”

    “이, 이보게 잠깐만.”

    “제가 원하는 건 오직 하나. 연합에 대항하는 자는 모조리 말살시키고, 누구도 감히 반기를 들 수 없을 정도의 공포심을 전 세계에 심어주는 겁니다.”

    이쯤 말했으면 와타나베도 일이 심상치 않게 흘러간다는 걸 느꼈을 것이다.

    그는 명단에 적힌 간부들만 죽이면 일이 끝나는 걸로 생각했겠지만, 난 이대로 넘어갈 수 없다.

    그 무엇보다도 확고하게 여기서 자리를 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야마구치 구미가 나의 연합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일본 전체가 알게 해야 한다. 그리고 연합을 건드리게 되면 어떤 꼴을 당하는지도 이번 기회에 똑똑히 알려줄 심산이다.

    “저, 정말로 모두를 죽일 셈인가?”

    “필요한 청소입니다. 쿠미쵸도 분명 이해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건…….”

    와타나베는 목이 타는지 와인을 벌컥 들이켠 다음, 말을 이었다.

    “언제부터 시작할 생각이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이미 시작했다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했다. 그리고 그에 맞춰 오른쪽 끝의 테이블에 앉아 있던 남성이 구역질을 하며 쓰러졌다.

    “크헉-!”

    “소, 손님! 왜 그러십니까!”

    와타나베는 깜짝 놀라 시선을 돌렸다. 나도 그 자리에서 몸부림을 치며 죽어가는 한 남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저 남자, 낯이 좀 익지 않습니까?”

    “으응?”

    “쿠미쵸가 주신 명단 중 가장 아래에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름이 아마… 타나카였던가요?”

    아는 이름인지 와타나베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보시는 바와 같이, 저렇게 천천히 죽일 겁니다. 독살을 하기도 하고, 잠을 자고 있을 때 몰래 들어가 죽이기도 할 거예요. 무차별적으로 학살을 벌이는 건… 글쎄요. 언제쯤 그러려는지.”

    나는 넋을 잃은 채 앉아 있는 와타나베에게서 몸을 돌렸다.

    “그럼, 일이 다 끝나면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 * *

    나는 권윤아에게 따로 가이드를 붙여줘서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어디든 가게 했다. 나도 같이 가고 싶긴 했지만, 지금은 한시도 이곳에서 떠날 수 없는 처지이지 않은가.

    난 조용히 위스키 잔을 기울이며 전화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따르르르-!

    이윽고 시끄러운 전화기 소리가 들리면서 난 수화기를 들었다.

    “사장님.”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건 강철중의 목소리였다.

    “말씀하세요.”

    “방금 전 타깃을 제거했습니다.”

    “고생하셨어요.”

    “아닙니다.”

    이번에는 어떤 방법으로 암살을 한 것일까.

    “독살입니까? 아니면 저격?”

    “그냥 자살로 위장시켰습니다. 유서를 남기고 방에서 자살한 걸로요.”

    솔직히 나도 히트맨들이 무식하게 타깃을 제거할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꽤나 프로페셔널한 구석이 있다.

    무식하게 총을 갈겨서 죽이기보다는 독살부터 사고사까지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암살을 하고 있었다.

    “이제 약속한 장소로 넘어가면 되나요?”

    “예, 사장님.”

    그런데 오늘은 좀 특별한 날이다.

    다른 날과는 다르게 은밀한 암살보다는 집중 타격을 해야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난 호텔방 밖을 나서 미리 대기시켜 놓았던 차에 올랐다. 그리고 목적지로 향하는 내내 어두컴컴한 거리를 창문을 통해 바라보았다.

    혼란과 광란의 시기.

    지금의 일본이 딱 그렇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일본의 치안은 매우 좋지 않았다. 그 이유로는 야쿠자들끼리의 전쟁을 손에 꼽을 수 있겠다.

    1년에 500억 엔을 허비하며 싸울 정도이니, 이 정도면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는가?

    온갖 무기를 다 들여와 상대 야쿠자 본부를 박살 내놓는 것이 다반사였다. 즉, 지금 같은 시기에 어디서 총을 쏜다고 해서 크게 문제될 게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였으면 아주 난리가 났겠지만, 여기서는 미국처럼 너무 흔한 일로 변질되다 보니, 큰 문제로 발전되진 않는다.

    물론, 야쿠자들의 연이은 전쟁으로 인해 국민들이 목소리를 높여 국회를 압박하기 시작했고 항상 야쿠자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살던 국회의원들은 점점 힘을 찾아가며 그들을 저지할 정책을 내놓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아직은 일본이 야쿠자들의 놀이터라는 건 변함이 없다. 그래서 우리가 좀 더 수월하게 일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오셨습니까, 사장님.”

    강철중은 정중하게 인사를 올리며 어느 고층 건물로 나를 인도했다. 그리고 1층부터 나를 반기는 것은 조직원들이 아닌, 그들이 죽인 시체들이었다.

    “여기가…….”

    “나카노 카이 소유의 건물입니다. 아까 전에 다 처리를 해뒀습니다.”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시체들을 보니, 총을 쏜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그런 내 표정에서 읽었는지 강철중이 말했다.

    “총을 쓰진 않았습니다. 자칫하면 반대편 건물에 있는 나카노 카이 조직원들이 눈치챌 수도 있는지라…….”

    반대편 건물도 나카노 카이 소유라는 건가.

    역시, 이놈들 세력이 정말 많이 커졌다. 하지만 그것도 오늘부로 끝이다.

    “그렇군요. 그런데 고작 칼로 이 많은 사람들을 전부…….”

    고작 30명이서 이 많은 야쿠자들을 죽였다니… 제법 놀라웠다.

    “각개격파를 했으니까요. 이놈들이 한꺼번에 덤빈 게 아닙니다. 오히려 기습을 당해 허무하게 죽은 거죠.”

    말은 저렇게 해도 고작 30명이서 이 많은 야쿠자들을 죽였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강철중은 씨익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직 놀라시긴 이릅니다. 여기 앉으시죠.”

    건물 중간층에 내리자 이곳에도 역시 시체들로 가득했다. 그중에서 강철중은 앞 건물이 잘 보이는 넓은 회의실 안에 나를 데려가 그곳에 마련되어 있는 의자에 나를 앉혔다.

    “저쪽은 정말 모르는 모양이네요.”

    “예, 아직까진 모릅니다. 게다가 여기 유리는 밖에서 안을 볼 수 없도록 막을 쳐놓은 유리라서요. 우리에게는 운이 좋았죠.”

    그래서 아직도 여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지도 모르고 있는 건가.

    나는 피 묻은 위스키 잔에 술을 담아 반대편 건물을 면밀히 살펴봤다.

    이곳과는 다르게 저곳은 유리에 막이 없어서 그런지 안에서 뭘 하고 있는지 아주 잘 보였다.

    서류를 정리하는 여 직원도 있었고, 누가 봐도 야쿠자처럼 생긴 남자들이 복도와 사무실 안을 걸어 다니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왜 강철중인 저런 풍경을 보여주려고 하는 걸까?

    그는 내 호기심에 답을 내놓는 대신, 무전기에 속삭였다.

    “시작해.”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수십 명의 조직원들이 옥상에서 로프를 타고 반대편 건물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와 같은 층에 있는 곳에서 멈춘 다음, 유리 안쪽을 향해 총구를 들이댔다.

    두두두-!

    타타탕-!

    이어지는 무차별적인 사격!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서류 정리에 한창이던 직원들은 유리창이 깨지면서 날아드는 총알에 맞아 쓰러졌고, 안쪽을 배회하던 야쿠자들도 총알받이가 되었다.

    워낙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나도 꽤 당황스러웠는데, 저걸 당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어떻겠는가?

    아마 생지옥을 체험하고 있을 것이다.

    두두두-!

    나는 도심 한복판에서 일어나고 있는 학살을 이 두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도 한가롭게 위스키를 들이켜면서.

    “으아악-!”

    “꺄아아-!!”

    총소리와 비명 소리가 서로 섞여 끔찍한 화음을 만들어냈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아주 차분하게 술을 음미하고 있었다. 오히려 이러한 학살의 광경을 안주 삼아 즐기는 듯이 말이다.

    탕-! 타탕-!

    내 조직원들은 그 층에 있는 사람들 중 단 한 명도 살려 보낼 생각이 없는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사람들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 넣었다.

    난 술잔을 내려놓고 옆에 가만히 서 있던 강철중에게 물었다.

    “저기에 누가 있는 겁니까?”

    “나카노 카이의 이인자가 있습니다.”

    “이인자요?”

    “예. 처음에는 이쪽 건물에 있는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아니더군요. 어제 저쪽으로 자리를 옮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정에 없던 타격을 실시한 겁니다.”

    차라리 잘된 일이려나.

    나의 목표는 명단에 적혀 있는 인원들만 죽이는 게 아니라 나카노 카이를 완전히 없애 버릴 생각이니까. 하지만 저곳에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야쿠자가 운영하는 회사에 들어가 일을 하고 있던 무고한 목숨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학살을 시작한 조직원들에게는 자비란 없었다. 그저 킬존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죽여야 할 적으로 보고 사살을 하는 것이리라.

    “얼추 끝난 거 같네요.”

    난 반대편 건물에서 조직원들이 한 남자를 끌고 와 무릎 꿇리는 걸 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여기에 있다는 걸 알고 남자의 얼굴을 볼 수 있도록 데려온 모양이다.

    “저 사람이 그 이인자인가 보죠?”

    “예, 사장님.”

    난 강철중에게 손짓해 무전기를 가져오게 했다.

    “모두들 고생하셨습니다. 얼른 마무리 짓고 쉬러 갑시다.”

    “Yes, Sir."

    이윽고 무전기를 통해 대답과 함께 총성이 들려왔다.

    나카노 카이의 이인자가 최후를 맞이한 것이었다.

    “원래 본 게임은 오늘이 아니라 내일이었을 텐데요.”

    내 말에 강철중이 난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아, 문책을 하는 게 아닙니다. 오늘 거하게 일을 벌였으니, 내일은 좀 더 빠르게 일을 끝내고 얼른 한국에 돌아가야 할 것 같네요.”

    오늘의 타격 작전은 원래 계획에 없던 일이다. 그리고 저렇게 학살을 벌이는 것도 오늘이 아니라 내일이어야 했다.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야쿠자의 나라 일본이 아닌가?

    가뜩이나 야쿠자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일본 정부는 이 일을 오히려 반갑게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일 일어날 일에 비교하면 오늘은 식전의 요깃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내일 터지게 될 일을 보고도 일본 정부는 가만히 웃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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