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127화 (127/325)
  • 127. 왕을 죽이는 자 (4)

    “로이 루스테. 이 개만도 못한 새끼. 은혜도 모르고 감히 내 뒤통수를 쳐?!”

    파블로는 얼굴까지 시뻘겋게 변해 갖은 욕을 쏟아냈다. 하지만 로이는 항상 그렇듯이 실실 웃는 얼굴로 받아들였다.

    “카포. 이쪽 세상에 은혜라는 게 어디 있겠어요? 그냥 상대가 나보다 약해졌으면 치는 거죠. 약육강식, 몰라요?”

    “뭐야? 이 더러운 새끼!”

    파블로가 총을 들려고 하자 로이가 먼저 방아쇠를 당겼다.

    “크악-!”

    허벅지에 총을 맞은 파블로는 바닥에 쓰러져 비명을 질렀다.

    로이는 그런 그에게 천천히 다가가 바닥에 쭈그려 앉았다.

    “그러게 진작 잘하지 그랬어요? 아니면 예전 그 모습 그대로 강렬한 카리스마를 자랑하던 파블로 에스코바르로 남아 있었어야죠. 카포…. 그때와는 너무 많이 달라졌어. 그러니까 당신은 더 이상 내 위에 있을 자격이 없어.”

    “이 건방진….”

    “아아. 험한 말은 삼가시고.”

    로이는 뚫려 있는 파블로의 허벅지를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그러자 그는 몸부림을 치며 신음을 터트렸다.

    “으아아악-! 그, 그만해!”

    “하하. 왜요? 이거 카포가 좋아하는 거잖아요. 저번에 나도 이런 식으로 당했던 거로 기억하는데.”

    파블로의 허벅지를 잔인하게 누르고 있던 로이는 윗옷을 살짝 올리며 옆구리에 있는 흉터를 가리켰다.

    언제 저런 건진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파블로의 작품인가 보다.

    “개 같은 새끼. 너 같은 놈을 받아 주는 게 아니었는데…!”

    “뭐. 저도 카포가 이런 시시한 사람으로 변할 줄 알았으면 밑으로 들어가지도 않았을 거예요.”

    로이는 할 말을 다 했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손짓했다.

    “이제 네 차례야, 워커.”

    나는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충 알 것만 같았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파블로에게 다가갔다.

    “오랜만입니다, 미스터 에스코바르.”

    파블로는 나를 경멸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너도 설마 로이랑 손을 잡고 있었던 거냐?”

    “예. 당신을 처음 만나기 전부터 어떻게 하면 로이를 새로운 카포로 올릴 수 있을까 궁리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이렇게 됐네요.”

    “개소리하지 마. 너희들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내가 없는 메데인은 절대 이어질 수 없어.”

    틀린 말은 아니다.

    에스코바르가 죽고 난 후 정말로 메데인은 조각조각 나뉘어졌으니까.

    하지만 역사는 바뀌었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로이 루스테가 메데인의 중추를 장악해 놓았습니다. 당신이 죽었다는 걸 알면 나머지 두목들은 전부 로이를 따르게 될 겁니다. 그리고 유일하게 방해가 될 당신의 동생을 처리하게 되겠죠.”

    파블로의 얼굴이 시퍼렇게 질려가고 있었다.

    혈액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적잖게 충격을 먹은 것이다.

    “그 말은….”

    로이는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파블로에게 말했다.

    “이미 링겔과 티토, 그 외 12명의 보스가 저와 뜻을 합쳤어요.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당신을 죽였을 거란 겁니다.”

    누구의 이름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메데인 카르텔에서 중간 보스 역할을 하고 있는 간부들일 것이다.

    파블로는 망연자실한 얼굴빛을 띠었다.

    “말도 안 돼. 그놈들이 왜 너를….”

    “제가 말했잖아요. 당신, 너무 변했다고.”

    “내가 뭐가 변했다는 거야! 난 항상 똑같이 파블로 에스코바르라고! 이 세계의 제왕이란 말이다!”

    로이는 이젠 지겹다는 듯이 파블로를 바라보았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요즘 심하게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생각 안 합니까? 예전의 당신이라면 모든 걸 꼼꼼하게 처리하면서 확실하게 영토를 넓혔잖아. 그런데 요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봐. 어차피 메데인에 대적할 수 있는 조직은 없다고 단정 지은 다음, 아무것도 안 하잖아.”

    “그, 그건….”

    “여기서 더 성장할 수 있는 조직인데, 어쩌면 세계를 지배할 수도 있는 조직인데… 당신은 모든 걸 멈췄어. 마치 이룰 건 다 이루었다는 것처럼 그냥 정체됐다고. 덕분에 우리만 죽어 나가는 거지. 이런데도 내가 당신을 따를 이유가 있을까?”

    매너리즘에 빠진 두목.

    어쩌면 로이는 메데인 카르텔의 카포가 되고 싶다는 것보다는 예전의 영광이 점점 사라져 가는 메데인을 구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것이 카포가 되고자 하는 야망이라고 생각했으나, 그게 아니었던 건가.

    저 남자는 메데인 카르텔의 수장, 파블로 에스코바르라는 사람에게 끌려 메데인에 들어갔던 거다. 그리고 어느 순간 변해 버린 파블로의 모습에 실망하고 야망을 키운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저런 말을 하는 거다.

    당신이 변했기 때문에, 내가 반기를 든 것이라고.

    “이름이 워커라고 했었나?”

    파블로는 이제 내게 시선을 돌려 일침을 날렸다.

    “내가 하나 충고할까? 지금 저 새끼가 순순히 너와 손을 잡고 있는 것 같지? 그런데 두고 봐. 너도 곧 나처럼 저 새끼한테 뒤통수를 맞는 날이 올 거야.”

    옳은 말도, 틀린 말도 아니다.

    난 파블로 앞에 쭈그려 앉아 그의 턱을 총구로 올렸다.

    “파블로. 나도 당신한테 한 가지 말해 줄까?”

    나는 흔들리고 있는 파블로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난 당신처럼 그렇게 멍청하지 않아. 뒤통수를 치려고 하는 놈이 있으면, 먼저 그놈 뒤통수를 치는 사람이 바로 나야. 그리고… 당신은 그때 내게 총구를 겨눈 순간부터 끝났던 거야.”

    “뭐, 뭐야?”

    “그때 나랑 거래했을 때 있잖아. 우리 애들 없었으면 그 총으로 날 쏴 죽이려 한 건 틀린 말이 아니지 않나?”

    파블로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침묵은 곧 긍정을 뜻한다.

    “그때부터 결심했지. 원래대로라면 당신, 3, 4년은 더 살았을 텐데 하필이면 세상에서 제일 지독한 놈을 건드렸어.”

    “그, 그게 무슨 소리….”

    탕-!

    난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자 총알이 파블로의 윗머리를 관통하면서 뇌수가 튀어 올랐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덤덤하게 바라보고 있던 로이가 말문을 열었다.

    “워커.”

    “예, 로이.”

    “넌 저렇게 되지 마. 만약 너까지 저렇게 변하면….”

    난 로이에게 고개를 돌려 말했다.

    “로이.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당신이 날 죽이려는 마음을 품는 순간, 이미 당신은 죽어 있을 겁니다. 이건 친구로서 주는 충고에요.”

    좀 세게 나갔나 싶었는데, 로이는 오히려 활짝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나와야지. 내가 처음부터 사람을 잘 봤다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로이는 무뚝뚝한 얼굴을 완전히 지웠다.

    이로써 확신했다.

    로이는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뒤를 잇는 카포가 되려는 게 아니다. 그는 누군가가 이 메데인 카르텔을 운영해 전보다 더 큰 위세를 떨치기 바란다. 그리고 그는 날 선택했다.

    그는 그저 나의 대리인으로 메데인 카르텔의 카포가 되는 것이다.

    난 확신을 얻기 위해 로이에게 물었다.

    “로이. 앞으로 우린 계속 파트너입니까?”

    로이는 그런 날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이제 네가 내 보스지. 옛날부터 내가 널 보스라고 불렀잖아. 그냥 장난으로 그렇게 부른 게 아니야.”

    역시, 그런 것인가.

    로이는 새로운 메데인 카르텔의 선장으로, 날 선택한 것인가?

    난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그렇지 않아도 어떻게 하면 로이 루스테를 내 손아귀에 넣고 이리저리 휘두를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이렇게 통째로 메데인을 넘겨 주다니.

    “로이. 저를 따라오면 단 하루도 지루한 날이 없을 겁니다.”

    “하하. 나도 그것 때문에 널 선택한 거야. 너랑 있으면 항상 익사이팅한 일만 생기거든. 그러니까 잘 부탁해, 보스.”

    나는 로이가 건네는 손을 맞잡았다.

    세계최강의 조직을 난 이렇게 손에 넣었다.

    * * *

    메데인 카르텔의 수장,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시체는 그대로 놔두고 조직원들을 철수시켰다. 그리고 따로 연락을 넣어 파블로의 시체가 어디에 있다는 걸 알려 주었다.

    킬 더 킹 작전이 성공적으로 끝난 것이었다.

    “메데인 카르텔의 카포,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DEA에서 파견한 특수부대에 의해 사살되었습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파블로는 끝까지 저항을 멈추지 않았고, 처음에는 그를 생포하려 했던 요원들도, 어쩔 수 없는 강제 진압에 나섰다고 밝혔습니다.”

    역시,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정치에서는 다를 게 없다.

    국민을 속이는 성명문을 발표하는 건 밥 먹듯이 자연스러웠고, 모든 걸 은폐시켰다. 그리고 한 사람을 역적으로 몰아가는 건, 이제 막 들어선 초기 정부에게는 누워서 떡 먹기였다.

    레임덕에 시달리는 정부는 사방에서 공격을 받지만, 이제 막 정권을 잡은 초기 정부는 그 누구도 대항할 수 없는 무적이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는 항상 희생양이 나오기 마련이다.

    “메데인 카르텔의 본거지에 있는 서류에서 콘트라 게이트 사건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이 비자금을 만들기 위해 독자적으로 메데인 카르텔과 협력해 막대한 양의 마약을 판매한 사실이….”

    뉴스에서는 연일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죽음과 레이건 전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로 시끄럽다. 내가 김아름을 통해 조작한 서류를 받은 부시는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 더욱 철저하게 서류를 조작해 언론에 뿌렸다.

    마치 특수부대가 습격한 메데인의 본거지에서 나온 것처럼 꾸몄던 것.

    과연 누가 전 CIA 국장 아니랄까 봐, 이런 일에서는 정말 무섭도록 철저한 사람이다.

    그것도 미국의 전 대통령을 이런 식으로 사장시켜 버릴 줄이야.

    “미 정부에서 발의한 특검으로 레이건 전 대통령을 철저히 조사할 예정이며, 부시 대통령은 침통한 심경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또한 이번 비밀 서류가 발견되면서, 부시 대통령은 콘트라 게이트와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이 밝혀졌고….”

    또한 부시는 쥐구멍을 통해 콘트라 게이트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졌다.

    완벽하게 조작된 서류와 계속해서 나오는 증거들로 인해 야당에서도 레이건만 공격할 뿐, 부시 대통령을 건드리지 못하고 있었다.

    국민들도 부시가 무죄라고 믿으면서 지지자가 늘어나기 시작했으며, 순풍을 맞은 여당은 레이건을 구속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였다.

    이 기회로 자신들도 빠져나가겠다는 것이다.

    결국, 레이건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기까지 했다.

    “왜 그러십니까, 사장님? 갑자기 술을 다 드시고….”

    “그냥 좀 착잡해서요.”

    나는 TV를 끄고 오랜만에 혼자서 술을 마셨다.

    아니지. 강철중이 들어왔으니, 이제 둘이 마시게 됐다.

    “일도 잘 끝났는데, 기뻐하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하하. 그렇기는 하죠. 그런데 마음이 그리 편하진 않네요.”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남아 있었던 건가.

    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어떤 더러운 짓도 마다하지 않겠노라 결심했거늘, 그래도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다.

    그리고 남모르는 자괴감마저 들었다.

    내가 정말 옳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인가.

    “강철중 씨.”

    “예. 사장님.”

    “저, 아주 나쁜 놈 같죠?”

    “예.”

    강철중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조금은 당황할 줄 알았더니, 오히려 내가 한 방 먹었다.

    “완전히 칼이네요.”

    “사실은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장님이 나쁜 놈이 아니고 그냥 착한 사람이었으면 곁에 있었을 거 같지 않습니다.”

    “그런 가요…?”

    “예. 사장님과 함께 있으면 하루하루가 이상하게 재밌거든요.”

    왠지 로이와 비슷한 대사를 하는 것 같다.

    난 피식 웃으며 강철중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제가 할 말이 없네요.”

    “하하. 제가 사장님을 오랫동안 봐 오지 않았습니까? 떡잎부터가 아주 나쁜 놈이시던데요. 그때부터 직감했죠. 아, 이분은 진짜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악마가 되겠구나.”

    악마라.

    뭔가 썩 기분이 좋은 이름은 아니다.

    “그래서 제가 사장님 곁에 남기로 결정한 겁니다. 이쪽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가장 악마 같은 사람을 만날 수밖에 없거든요.”

    “악마는 좀 무섭지 않나요? 뭔가 매일 재미 삼아 사람이나 죽이고 그럴 거 같은데….”

    “진짜 악마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을 죽이기보다 유혹해서 자신의 마수에 완전히 빠뜨리죠. 솜사탕 같은 달콤함을 주면서요. 물론, 최종적으로는 수십만 명의 사람을 한꺼번에 지옥에 빠뜨리지 않습니까? 생각 없이 사람 죽이는 걸 즐기는 놈들은 사이코고요.”

    강철중의 말이 맞다.

    진짜 악마는 모든 움직임이 계산되어 있고, 힘으로 모든 것을 처리하기보다는 달콤한 유혹으로 사람을 흔들어 놓는다. 그리고 그 뒤로 줄줄이 엮어 들어오게 될 다른 사람들까지 한꺼번에 지옥 불에 넣어 버린다.

    그것이 진짜 악마이지 않은가?

    강철중이 저런 소리도 할 줄 알았던가.

    나는 오랜만에 유쾌하게 웃으며 TV를 다시 켰다. 잠시나마 무뎌졌던 마음을 다시 날카롭게 세운 것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뉴스 속보가 떴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속보가.

    [레이건 전 대통령 자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