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126화 (126/325)
  • 126. 왕을 죽이는 자 (3)

    미 정부는 부시가 성명문을 발표했던 것처럼 메데인 카르텔을 소탕하기 위한 작전을 공표했다. 온 국민의 공분을 산 일이지 않던가.

    야당도 이번 일에 반대를 할 순 없을 터. 오히려 그들은 이번 특검에서 큰 성과가 있기를 바란다며 부시 대통령을 지지하기까지 했다.

    기회와 더불어 명분까지 얻게 된 부시는 이제 칼을 휘두를 일만 남았다.

    그의 명령에 따라 DEA에서 특수부대를 멕시코로 파견하였으며, 특검 수사는 내가 미리 부시에게 넘긴 서류들로 조사를 이어 갔다.

    물론, 내가 넘긴 조작 서류들은 콘트라 게이트와 메데인에 대한 연관성이 자세히 적혀 있으며, 이 모든 게 레이건 대통령이 비자금을 조성하기 위한 원맨쇼였다는 걸 강조했다.

    아직 터지진 않았지만, 이게 터지면 레이건은 구속이 될 확률이 높다.

    아무리 무죄라고 스스로 변호를 해 봐도 누구 하나 믿어 주지 않을 터. 설령 그가 무죄 선고를 받는다고 해도 이미 그의 인생은 거기서 끝이라고 봐야 한다.

    “워커.”

    “로이. 고생 많았습니다.”

    멕시코에 도착한 나는 미리 마중 나와 있는 로이와 악수를 나눴다.

    “헬기는 어땠어? 꽤 좋아 보이는데?”

    “하하. 돈 좀 들여서 빌린 거예요. 얼른 쓰고 다시 돌려줘야 합니다.”

    헬기를 타 본 건 처음이라 좀 긴장을 했었다. 그래도 헬기가 좋아서인지 생각보다 흔들리거나 어지럽진 않았다.

    “파블로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멕시코에 있는 메데인 은신처에 있지. 아마 지금쯤이면 미국이 그 난리를 치고 있다는 걸 들었을 거야.”

    내가 부시한테 미리 부탁을 해, 조속히 특수부대 파견을 요청한 상태였다.

    그래야 우리가 준비를 모두 끝내고 멕시코에서 콜롬비아로 도망치려 하는 파블로 에스코바르를 잡을 수 있지 않겠는가?

    부시의 협력 덕분에 일이 훨씬 수월해졌다.

    “일차적으로 먼저 메데인의 은신처를 공격하는 건 미국 DEA 특수 부대가 될 겁니다. 우리는 그냥 뒤처리만 하면 돼요.”

    “확실하게 약속을 받아 놓은 거야?”

    “예. 파블로 에스코바르를 사살하는 건 우리 몫입니다. 그러니까 최대한 생포해 주세요.”

    로이는 뭔가를 잘못 들었다는 듯이 내게 되물었다.

    “생포? 아까는 사살이라며.”

    “죽이기 전에 말은 해 줘야 하지 않겠어요? 로이도 당한 게 있고, 저도 그놈한테 당한 게 있는데.”

    “워커가?”

    “예. 파블로와 거래를 했을 때요. 만일 제 사람들이 그날 없었다면, 그놈은 분명히 제 머리에 총을 쐈을 겁니다.”

    내 말에 로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맞아. 뭔가 그땐 카포가 얼버무리는 것처럼 보였지. 꽤 놀랐을 거야. 자기 몸에 저격 레이저가 번쩍이는 게 썩 유쾌한 일은 아니거든.”

    “아무튼, 그냥 죽이기에는 파블로에게 할 말이 많지 않습니까? 로이도, 그리고 나도요.”

    왕을 사로잡고, 그 왕에게 승리자의 모습을 보여 준다라.

    그때 가면 내가 정말 마약왕을 잡았다는 실감이 날까.

    “그럼, 이제 그만 출발할까? 슬슬 쇼가 시작될 텐데.”

    “예. 얼른 가죠.”

    난 로이가 준비한 차량 뒷좌석에 몸을 맡겼다.

    그는 내가 뭔가를 건네며 말했다.

    “이거 챙겨.”

    “응? 이건 뭡니까.”

    “보면 알잖아. 워커 너 쓰라고 준비한 총이야.”

    그렇지 않아도 나한테 있는 무기가 달랑 권총 한 자루라 다른 걸 더 구해야 하나 싶었는데, 로이가 타이밍 맞게 권총 하나를 주었다.

    “권총은 멀리서 쏘면 안 맞는 거 알지?”

    “그 정도는 압니다.”

    사실 M16을 주면 더 잘 쏠지도….

    군대에 있을 땐 사격왕이라는 타이틀까지 얻었었는데.

    “워커는 웬만하면 앞으로 나서지 마. 그냥 애들이 일하는 걸 지켜만 보면 되는 거야. 그게 보스가 할 일이지.”

    나도 알고 있다.

    내가 나설 일은 거의 없을 거라는 걸.

    자고로 보스란 명령을 내리고, 그 결과물을 받는 역할이지 않던가.

    “벌써부터 메데인 카포 흉내를 내는 겁니까?”

    “흐흐. 미리 연습해 놔야지. 그래야 익숙해지지 않겠어?”

    말은 저렇게 해도 이미 로이는 메데인 카포 그 자체였다.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그는 이미 메데인 수뇌부를 일부 장악하기에 이르렀고, 그로 인해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동선을 알 수가 있었다.

    만일 이번 작전에서 로이가 없었다면 파블로의 행방을 전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겉모습만 보면 텉털하고 별생각 없이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굉장히 치밀한 사람이라는 것.

    정말 우리가 파블로를 붙잡게 되면, 메데인은 새로운 카포를 맞이하게 될 것이고 그땐 과연 메데인 카르텔이 얼마나 더 성장할지 알 수 없었다.

    로이 루스테.

    내가 정말 이 사람을 제대로 다룰 수 있을까?

    * * *

    킬 더 킹 작전.

    원래의 역사대로라면 이 작전으로 미국이 파블로 에스코바르를 사살하게 된다.

    이게 1993년도의 일인데, 처음에는 파블로도 콜롬비아에서 아주 잘 나가는 사람으로 각광받는다. 왜냐하면 그가 콜롬비아의 가난한 동네에 마구 돈을 뿌려 그들을 부유하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웬만한 정치인보다 낫다며 국민들은 파블로를 적극 지지하고, 그는 야망을 품어 콜롬비아의 지도자가 되려 한다.

    그러나 그가 저지른 수많은 악행이 드러나면서 파블로는 정치계에서 쫓겨나고, 그 일로 앙심을 품은 파블로가 무식한 테러를 일으켜 국민들에게도 버림을 받는다.

    결국 갈 데까지 가 버린 파블로는 콜롬비아와 미국 정부의 눈을 피해 이리저리 피해 다니지만, 꼬리가 붙잡혀 미국 특수부대의 손에 목숨을 잃는다.

    이것이 1993년 12월에 일어나는 일이다.

    그런데 내가 이 순간 그 역사를 바꾸고 있다.

    파블로의 죽음을 무려 4년이나 앞당긴 것이다.

    “저기입니까?”

    “응. 어때?”

    “진짜 저기라고요? 저 마을 전체가 다?”

    “그래. 저 마을 전체가 다 메데인 소유야. 멕시코에서는 저게 메데인 카르텔의 본부라고 할 수 있지.”

    그리 큰 마을은 아니지만, 고전 서부 영화에서 볼 법한 분위기를 자랑하는 마을이었다.

    사막 같은 평야 위에 만들어진 마을이지만, 자세히 보면 있을 건 다 있었다. 거기다가 고급스러운 별장에 호텔까지 보였다.

    내가 회귀하기 전에 파블로의 기록을 본 게 있는데, 1990년에 파블로는 여론이 극심하게 안 좋아지자 제 발로 감옥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그는 감옥이란 이름에 호텔을 만들어 칵테일 바, 클럽, 사우나 등등 그가 즐길 만한 유흥거리는 전부 만들어 놓아 그곳에서 수감했다.

    말이 감옥이지, 실상은 휴가였던 것이다.

    그런 발상을 어디서 했나 했더니, 멕시코에서 먼저 예행연습을 한 모양이다.

    여기도 여자들을 모아 놓은 유흥업소가 있었고, 여러 식당부터 볼링장과 당구장까지 아주 가지가지 만들어 놓았다.

    그렇다는 건, 여기에 메데인 카르텔의 조직원들만 있다는 게 아니라는 건데.

    “로이. 여기 혹시 민간인도 있습니까?”

    “응? 그렇지. 대부분이 메데인 카르텔 조직원들이지만, 여기서 일하고 있는 직원들도 있어. 칵테일 바를 책임져야 할 바텐더도 필요하고, 카포가 껴안고 놀 수 있는 여자도 많이 필요하지 않겠어?”

    그렇다는 건 이번 작전에서 희생될 사람 중에 민간인이 섞여 있다는 것이다.

    깔끔하게 메데인 카르텔의 조직원들만 처치하려고 했는데, 이런 변수는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저들을 대피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그리고 이미 그러기에도 늦었다.

    “이제 시작하려나 보다.”

    로이는 저 멀리서부터 불을 뿜어내며 허공을 가르고 있는 미사일을 가리켰다.

    한 발이 아니다.

    몇 개인지 다 세보기도 전에 미사일 세례가 마을을 덮쳤다.

    콰아앙-!!

    큰 굉음이 터지면서 내가 눈여겨 쳐다보고 있던 호텔 건물 전체가 폭발과 함께 붕괴되며 사라졌다. 설마하니, 시작부터 미사일을 쏠 줄은 몰랐다.

    이런 무식한 새끼들.

    하지만 로이는 박수를 치며 감탄사를 터트리고 있었다.

    “역시, 아메리카! 아주 훌륭해. 저런 무식한 화력이 미국의 장점 아니겠어?”

    로이의 말대로 미 정부는 단순히 특수부대만 파견해, 은밀하게 파블로 에스코바르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아예 헬기 몇 대를 동원해 무자비한 화력을 퍼붓고 있었다.

    덕분에 파블로가 공들여서 만들었을 그의 드림 랜드가 순식간에 불바다로 변했다.

    나와 로이는 본의 아니게 돈 주고도 못 본다는 불구경을 하고 있었다.

    “저 정도로 쏟아부으면… 우리가 나서기도 전에 파블로가 죽겠는데요?”

    여기서 봐도 불지옥이 따로 없는데, 저기 있는 사람들은 오죽하겠는가?

    저렇게 미사일을 퍼부었으니, 파블로가 죽어도 열 번은 더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 말을 들은 로이가 실실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 워커가 아직 카포를 잘 모르네. 이미 헬기가 접근했을 때부터 카포는 대피를 했을 거야.”

    “…예? 그게 정말입니까?”

    “그래. 저게 외형 때문에 속는 경우가 많은데, 진짜 카포의 세이프 하우스는 저 마을 밑에 있어.”

    밑이라는 건 설마….

    “지하를 말하는 겁니까?”

    “맞아. 지하에 벙커 같은 곳이 있지. 지금쯤 거기 통로로 피하고 있을걸?”

    “아니. 그걸 지금 말하면 어떡해요. 당장 가서 잡아야죠.”

    로이는 그만 호들갑을 떨라며 내 어깨를 붙잡았다.

    “워커. 내가 바보인 줄 알아? 다 잡은 먹잇감을 놓치게? 걱정하지 마. 카포가 어디로 나올지는 이미 알고 있으니까.”

    “그게 어디인데요?”

    내 물음에 로이는 내 발밑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네가 지금 밟고 있잖아.”

    “예?”

    “얼른 나와. 슬슬 거기가 열릴 거야.”

    난 소스라치게 놀라며 얼른 뒷걸음질을 쳐서 거리를 벌렸다.

    뭔가 덜컥거리는 게 느껴지는 걸 보니, 로이 말대로 저기가 대피소 탈출구 중 하나인가 보다.

    이 양반이 진짜.

    “장난이라도 이건 너무 심한 거 아닙니까?”

    “흐흐. 내가 말했지. 나 바보 아니라고. 그리고 워커 쪽 사람들은 내가 알아서 배치했어. 그러니까 우리 카포만 밖으로 나오면 되는 거야.”

    로이가 저렇게 살기 어린 눈빛을 띠는 건 처음 본다.

    어쩌면 이날만을 두고두고 기다려 왔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로이는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야심가가 아닐까?

    이윽고 거짓말처럼 내가 서 있었던 자리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땅에 묻혀 있던 입구가 열렸다.

    나는 얼른 권총을 꺼내 상대방에게 겨누려고 했지만, 로이가 손짓해 나를 만류했다.

    뭘 어쩔 작정이지?

    “응? 로이 아니야?”

    열 명이 넘는 조직원들이 먼저 밖으로 나오더니 가장 마지막에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로이를 알아보고 의심 어린 눈초리를 보냈다.

    “그리고 너는….”

    그런 뒤 그는 나와도 눈을 마주치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너희들, 무슨 개수작이야?”

    눈치를 챈 것일까.

    하지만 공격을 하기에는 너무 늦은 게 아닐까.

    파블로가 이미 조직원들에게 둘러싸여 있지 않은가.

    하지만 로이는 다른 생각이 있는지, 친숙한 말투로 파블로에게 말했다.

    “카포를 기다렸죠. 소식 듣고 바로 멕시코로 온 겁니다. 카포를 지키는 게 메데인 카르텔의 조직원이 할 일 아닙니까?”

    그의 말에 파블로는 노기 띤 음성으로 일갈했다.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하는 거야?”

    그러자 로이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너무 티 나게 했나요?”

    그리고 그는 다시 차갑게 식은 목소리로 파블로에게 말했다.

    “너무 오래 해 먹었어요, 카포. 슬슬 세대교체를 해야죠.”

    “뭐, 뭐야?!”

    로이가 배신을 했다는 걸 눈치챈 파블로가 조직원들을 시켜 그를 죽이려고 할 찰나.

    나도 얼른 권총을 들어 로이를 지키려고 했다. 하지만 괜한 수고였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푸푹-! 푸슈슉-!

    놀랍게도 열 명이 넘는 파블로의 조직원들이 동시에 바닥에 쓰러졌다.

    그들 머리에는 전부 총알이 관통한 자국만 남아 있었다.

    “이, 이게 뭐야.”

    로이는 씨익 웃으며 파블로를 향해 총을 들었다.

    “뭐겠어요. 쿠데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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