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128화 (128/325)
  • 128화. 정복 (1)

    레이건이 정말 자살을 한 건지, 아니면 부시의 명령으로 인해 살해를 당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부시가 그 정도로 막장 짓을 했다고 보이진 않는다.

    부시는 철저한 사람이다. 레이건을 정치적으로 사장은 시켜도, 진짜 목숨을 빼앗을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전 대통령이라고 해도 곁에 붙어 있는 경호원들의 숫자가 있지 않던가. 하지만 레이건이 권총으로 자살하고 유서 한 장 발견되지 않았다는 건 좀 믿기 힘들다.

    죽음으로써 자신의 억울함을 공표하려 했던 거 같은데, 중간에 부시가 유서를 가로챈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할 뿐이다.

    아무튼, 레이건의 죽음으로 인해 미국은 매우 시끄럽다. 한쪽에서는 강압적인 수사가 그를 죽음으로 몰았다며 질타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자신의 잘못을 피하기 위해 취한 행동이었다며 고인을 비난했다.

    “설마하니 레이건이 자살할 줄은 몰랐던 거지?”

    “예. 솔직히 말해서… 좀 당황스럽네요. 어떻게든 자신의 무죄를 입증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로이 루스테는 내 말을 듣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냐, 워커. 레이건이 설마 구린 게 없었다고 생각해?”

    “그게 무슨 뜻입니까?”

    “네가 부시랑 합작해서 레이건한테 누명을 씌운 건 알고 있는데, 그게 정말 누명이냐고 묻는 거야.”

    잠깐. 그렇다는 건 설마….

    내 표정을 읽은 로이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 잘나신 보스 덕분에 내가 메데인 카르텔의 카포가 됐잖아. 그래서 레이건과 정말 접점이 없었는지 살펴봤지.”

    “뭐가 나온 겁니까?”

    “그래. 정치하는 새끼 중에 깨끗한 놈 하나 없다는 말이 정말인 거 같아.”

    로이는 상 위에 서류 뭉치를 던지며 말했다.

    “생각보다 정리를 잘해놨더라고.”

    서류를 슬쩍 살펴보니, 그동안 메데인 카르텔이 각국에 있는 정계 인사들과 어떤 연결점을 가지고 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어렴풋이 들은 적이 있다.

    내가 회귀하기 전에 들었던 내용인데….

    메데인 카르텔을 소탕할 때 정계 인사들과 연관된 서류는, 전부 파기하는 작업을 함께 진행했었다고 한다.

    메데인은 세계 최고의 조직이지 않던가.

    당연히 각국에 있는 정계 인사들과 오고 간 게 있을 터.

    그 서류들을 없애기 위해 구린 게 있던 정치인들은 부단히 노력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메데인이 이렇게 꼼꼼하게 일 처리를 할 줄은 몰랐네요. 아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가요?”

    “하하. 당연한 거 아니겠어? 옛날부터 대상인이 가지고 있는 장부일수록 가치가 높다고 하잖아. 이것도 딱 그 짝이지.”

    온갖 구린 걸 써 놓은 장부라.

    누구에게 뇌물을 줬고, 또 어떤 걸 받아냈는지에 대해 기록되어 있는 장부라면 누구라도 흥미를 가질 만 하다.

    나는 서류를 대충 훑어보며 짧게 혀를 찼다.

    이런 걸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는 격이라고 해야 하나.

    이건 정말 얻어걸린 거다.

    레이건한테 누명을 씌우려고 메데인과 엮은 거였는데, 사실은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니. 이상하게 배신감까지 느껴지는 상황이다. 그래도 잠시나마 레이건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진짜 많이도 해 먹었네요. 레이건이.”

    “레이건도 레이건이지만, 부시도 만만치 않아. 그리고 여당, 야당까지 아주 다 한통속이야.”

    서로 죽일 듯이 헐뜯고 있던 여당과 야당이 이런 일에는 정말 죽이 잘 맞은 모양이다.

    이렇게 다들 메데인에서 정치 자금을 조달받고 있을 줄이야.

    “이거, 터트릴 생각은 아니죠?”

    “왜? 그렇게 해 주길 바라는 거야?”

    “아뇨. 이 정도 했으면 충분합니다. 더는 찌르고 싶지 않네요. 괜한 벌집을 건드리는 것일 수도 있어요.”

    이걸 공개하면 부시까지 전면으로 나서서 메데인 카르텔을 쳐부수려 할 것이다.

    지금은 파블로 에스코바르 하나로 끝내긴 했지만, 내가 선을 넘게 되면 앞일을 생각하지 않고 보복하려 들 것이란 거다.

    이런 건 그냥 최후의 수단으로 놔두는 게 좋다.

    “잘 가지고 계세요. 언제 또 필요할지 모르니까요. 그리고….”

    “계속 업데이트하라는 거지? 알고 있어.”

    역시, 로이와는 말이 잘 통한다.

    “그건 그렇고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뭐를?”

    “파블로를 죽이긴 했지만, 메데인을 완전히 장악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로이가 미리 약을 쳐둔 덕분에,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죽고 나서 생기게 될 혼란을 최소화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메데인 카르텔 내부에 분열이 일어나지 않는 건 아니다.

    “괜찮아.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그리고 워커한테 부탁할 게 있어.”

    “말하세요.”

    “한국에도 우리가 약을 공급하고 있긴 한데, 워커도 알다시피 그렇게 원활하게 돌아가는 시장은 아니야. 차라리 중국이나 일본이 더 잘 팔리고 있는 추세지.”

    메데인 카르텔의 손이 닿지 않는 나라가 없다.

    왜냐하면 어떤 나라든 마약이 먹히지 않는 곳은 없을 테니까.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로이는 날 빤히 쳐다보다 술잔을 단숨에 비운 뒤 말을 이었다.

    “워커. 내가 저번에 했던 말. 진심이었어. 겉으로는 내가 메데인의 카포이지만, 난 워커의 말이라면 뭐든지 따를 생각이야.”

    그만큼 진심이라는 건가.

    난 로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서 말인데, 나는 워커가 본격적으로 메데인 일에 관여해 줬으면 좋겠어. 그러니까….”

    로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겠다.

    난 그의 말을 중간에 잘랐다.

    “아시아 시장을 맡아달라는 겁니까?”

    “오! 맞아. 어떻게 생각해? 혹시 한국에서의 일이 많으면 안 해도 되지만….”

    그럴 리가.

    내가 미쳤다고 저 제안을 거부하겠는가.

    난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아냈다.

    “아시아 시장이라-. 쉽진 않겠네요. 특히 중국이나 북한 쪽이 문제겠어요.”

    일부러 나는 고심하는 척을 했다.

    그러자 로이는 안달 난 모습으로 말했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 내가 적극적으로 지원할게. 중국 쪽 시장이 정말 크잖아. 인구도 많고. 그쪽에 시장을 더욱 넓히면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그런데 이걸 맡아 줄 사람이 필요해.”

    “하하. 언제는 저를 보스라고 부르지 않았어요? 이건 마치 지사장 파견하는 거 같잖아요.”

    “아니. 내 말은 그런 게 아니고….”

    “농담입니다. 로이 말대로 아시아 쪽은 제가 맡을게요. 그런데 수익은 어떻게 나눌 겁니까?”

    로이가 정말로 날 리더로 생각해 준다면 내가 불리한 요구를 하진 않을 것이다.

    과연 그는 나에게 어떤 제안을 할까?

    “7:3이 어때?”

    7:3?

    고작 30%만 먹고 떨어지라는 건가.

    물론, 아시아 시장을 배경으로 한다면 30%의 마약 판매금도 엄청난 거다.

    내가 좀 실망한 표정을 보여서일까, 로이는 손사래를 치며 얼른 다음 말을 꺼냈다.

    “워커가 7이라는 뜻이야.”

    70%?

    5:5로 갈 줄 알았는데, 70%나 준다는 건가?

    “원하면 더 줄 수 있어.”

    여기서 더 뜯으면 양아치가 되는 거다.

    로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걸로 알게 되었다.

    저 남자는 진심으로 나를 따르고자 하는 것이다.

    “70%면 거절할 이유가 없겠네요.”

    “하하. 그렇지? 그럼, 네가 아시아 시장을 맡는 거다?”

    “물론입니다. 그런데 아시아 쪽 담당자가 있지 않아요?”

    “있긴 있지. 너한테 협조적이지 않을 수도 있어. 그런 건 알아서 처리해. 죽여도 좋아.”

    아시아를 맡아달라고 말한 게 이런 이유도 있었나.

    아시아 시장을 맡고 있는 조직원들이 협조적으로 나오지 않으면 힘으로라도 제압하라는 것이다.

    “필요하면 우리 쪽 사람들을 파견해서….”

    “아니요. 괜찮습니다. 저희 쪽 사람들로도 충분해요. 그런데 죽여도 좋다는 건 진심이겠죠?”

    로이는 살짝 안색을 굳혔다.

    내가 데리고 있는 조직원들의 실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는 잘 알고 있지 않던가.

    그들이 진심으로 나선다면 아시아 쪽에 있는 메데인 카르텔은 전부 다 죽은 목숨이라고 봐야 한다.

    “아…. 진짜 다 죽이려고?”

    “하하. 글쎄요. 하는 거 봐서요. 일단 아시아 쪽에 있는 메데인 카르텔 지부들 위치, 전부 알려주세요.”

    위치까지 알고 있으면 이것보다 더 쉬운 소탕 작전이 어디 있겠는가.

    물론, 전부를 소탕할 생각은 없다. 그중에서 본보기가 될 만한 놈들을 없애면 나머지는 알아서 따라올 것이다.

    “아, 알겠어. 워커의 부탁이라면야….”

    로이는 괜한 말을 한 건 아닌지 걱정하는 눈치였다. 난 그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너무 걱정 마요. 제가 설마 다 죽이기야 하겠습니까?”

    “그… 렇겠지?”

    로이는 일말의 믿음도 들어있지 않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진짜 내가 다 죽이기야 하겠는가?

    * * *

    “도움, 많이 받았습니다.”

    “하하. 슈퍼스타께서 도움을 청하시면 언제든 오케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골든 마피아의 다니엘 로페즈와 오랜만에 악수를 나눴다.

    그는 여전히 푸짐한 인상으로 나를 맞이해 주었다.

    “소식을 듣고 굉장히 놀랐습니다. 저희에게서 헬기를 빌렸던 이유가 메데인 카르텔의 카포를 잡기 위해서였다니….”

    다니엘 로페즈는 내가 파블로 에스코바르를 사살하는 데 관여했다는 걸 알고 있다. 그가 알아내서가 아닌, 내가 헬기를 돌려주며 정보를 준 까닭이었다.

    “사실, 저희가 한 건 별로 없습니다. 미 정부가 다 했죠.”

    “하하. 겸손한 겁니까?”

    “사실을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아시다시피, 제가 절대 겸손을 떨 사람은 아니라서요.”

    저 말대로 내가 한 건 그렇게 많지 않다.

    그날 나는 보았다.

    아무리 거대 조직의 두목이라도 미국이 나서면 순식간에 무너진다는 것을 말이다.

    그 압도적인 힘 차이에 나는 미국이란 나라의 강대한 힘을 다시 한번 느꼈다.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죽음을 보고 좀 더 겸손하게 살아야겠다는 걸 배웠다고 해야 하나.

    “그나저나 제 동생을 잘 보살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여기까지 온 건 여러 일을 겸사겸사 확인하기 위함이다.

    비싼 값을 치르고 빌리긴 했지만, 어쨌든 헬기를 빌려달라는 무리한 부탁을 들어준 것은 맞으니…. 로페즈에게 감사를 표할 겸 태혁이에 대한 것도 듣기 위해서였다.

    “하하. 태혁 선수를 저한테 보내주신 것만으로도 제가 감사해야 할 일이죠. 돌풍 연승 행진을 이어 가고 있는 유망주이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5승 모두 1라운드 KO 승리에요. 벌써 도박꾼들 사이에서는 동양의 초신성이 나타났다고 흥분하고 있지요.”

    태혁이의 괴물 같은 피지컬 때문인지 다섯 번 모두 1라운드 KO로 승리했다.

    거기다가 태혁이는 지칠 줄 모르는 체력으로 2~3개월에 한 번씩 경기를 치러, 벌써 5승을 달성했다. 또한 미들급 랭킹이 10위까지 올라갔다.

    여기서 2승을 더 쌓으면 타이틀 매치를 성사시킬 수도 있는 상황.

    굉장히 빠른 루트이지만, 다니엘 로페즈가 미뤄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이게 다 미스터 로페즈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하하. 아니에요. 제가 한 게 뭐 있다고. 그저 할 일을 했을 뿐이죠. 유능한 선수를 키우는 것. 그게 프로듀서가 할 일 아닙니까?”

    복싱이란 세계가 이렇다.

    처음부터 스타성을 가지고 태어나는 선수가 있긴 하지만, 그건 아주 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스타성은 프로듀서에게 달려있다.

    프로듀서의 눈에 들었냐, 들지 못했느냐가 복싱 세계에서 얻게 될 인기도를 나누게 된다.

    태혁이가 정말 운이 좋았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복싱 세계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다니엘 로페즈의 눈에 들었으니 말이다.

    앞으로 태혁이가 이 페이스를 유지하며 경기를 이어 간다면, 동양인 사상 최초로 전 세계를 놀라게 할 복싱 스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언제쯤 돌아가십니까?”

    “그렇지 않아도 내일이면 돌아갑니다.”

    “하하. 이번에도 미국을 한바탕 뒤집어 놓고 가시는군요. 분명 한국도 그렇겠죠?”

    은근슬쩍 한국에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냐고 묻고 있다.

    뭐, 굳이 숨길 필요는 없지 않은가.

    “예. 미국 못지않게 꽤 시끄러운 일이 있을 예정입니다.”

    “오. 그게 뭡니까?”

    “음…. 글쎄요. 정복이랄까요?”

    “정복이요?”

    로페즈는 아리송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난 그런 그를 보며 슬며시 미소를 보일 뿐이었다.

    정복.

    이제 한국에 남겨 두고 온 모든 것을 정리할 때가 되었다.

    오성파, 그리고 이진용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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