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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111화 (11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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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1화. 또 다른 시작 (2)

    “형님까지 오실 필요는 없는데….”

    “아냐. 나도 도와드려야지.”

    “그래도….”

    “됐어. 그러니까 들어가기나 해.”

    황규혁은 막무가내로 나를 가게 안에 밀어 넣었다.

    가게 밖에서부터 고기 냄새가 진동하더니, 아니나 다를까.

    밤 9시가 다 되가는데도 여전히 가게는 북적거렸다.

    덕분에 직원들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고, 어머니도 바삐 서빙을 하고 계셨다.

    “오늘도 바쁘구먼.”

    “그러게요. 저녁 먹을 시간도 다 지났는데, 인기가 대단하긴 하네요.”

    “흐흐. 네 어머니 음식이 좀 맛있냐? 난 매일 여기서 닭갈비를 먹어도 안 질리겠더라.”

    황규혁은 내 어깨를 두드린 다음에, 어머니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어머니. 저희 왔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그를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어이구. 우리 황 사장 왔어?”

    이제 말도 편하게 하시는 걸 보니, 정말 엄마 아들 사이라도 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거 왠지 질투가 나는데?

    “어, 어머니! 저도 왔어요!”

    나도 반갑게 인사를 해 보았지만, 어머니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아 보였다.

    “음…. 우리 태산이는 이 어미가 보고 싶지도 않았나 보구나. 오랜만에 얼굴을 보여주는 거 보니까.”

    뼈가 있는 말씀을 하신다.

    아무래도 오늘은 온종일 어머니 옆에서 계속 아양을 떨어야겠다.

    “그, 그런 게 아니고요. 제가 요즘 일이 바빠서….”

    “그래서, 어미 볼 시간은 없었고?”

    “…죄송합니다, 어머니.”

    그런데 황규혁 이 양반이 한술 더 뜨고 나섰다.

    “어머니. 이런 놈은 그냥 잊어버리시고 저랑만 같이 사시죠. 하하하.”

    “아이고. 우리 황 사장은 이제 완전히 내 아들이지. 그럼, 그럼.”

    젠장….

    내가 황규혁한테 밀리는 날이 올 줄이야.

    이게 다 내 업보겠지.

    결국, 나는 몇 시간 동안 홀 서빙을 도우면서 어머니의 비위를 맞춰 드렸다. 그제야 화가 풀리신 건지, 어머니는 나와 황규혁을 앉히고 음식을 가져다주셨다.

    같이 식사라도 하면 좋겠다만, 어머니는 정산을 해야 한다며 끝끝내 우리 두 사람을 가게에 놔두고 다른 점포로 떠나셨다.

    “닭갈비는 오랜만에 먹지? 아까 제대로 못 먹었던 술, 여기서 마시자.”

    “소주는 좀 별론데….”

    “새끼가 입맛은 높아 가지고. 그냥 주는 대로 마셔, 인마.”

    회귀 전에는 입에 소주를 달고 살았는데, 요즘은 하도 양주만 마시다 보니 소주가 성미에 차지 않았다. 하지만 오랜만에 닭갈비 한 점을 먹고 소주를 한 잔 마시니, 환상의 조합이라는 게 딱 이거다란 생각이 들었다.

    이 맛에 내가 삼겹살에 소주를 자주 마시곤 했지.

    “근데 그 최정식이었나?”

    말없이 고기를 먹던 황규혁이 갑자기 정식이 이야기를 꺼냈다.

    “예. 제 친구입니다.”

    “그래, 그놈. 아주 물건이던데. 어떻게 만난 거야? 같은 학교였어?”

    “아닙니다. 정식이는 다른 학교였는데, 연합을 통해서 만났습니다.”

    “그랬구나. 그런데 그놈, 실력이 보통 아니던데.”

    황규혁이 어떻게 정식이 실력을 알고 있지?

    이 양반 보는 앞에서 정식이가 싸운 일이 없었을 텐데?

    “아. 너 혹시 모르는 거냐? 정식이 그놈이 우리 애들 몇 명 작살냈어. 신참이라고, 너 때처럼 덤벼들다 골로 갔어. 그때 내 밑에서 제일 주먹 잘 치는 놈이 하나 있었거든? 그놈이 반항도 못 하고 기절하더라고.”

    언제 그런 일이….

    내가 모르는 일이 참 많이도 일어났었구나.

    “내가 그때 그놈 싸우는 걸 직접 봤지. 칼을 잘 쓰는 거 같던데? 주먹 쓰는 실력도 장난이 아니고.”

    “정식이가 싸움을 잘하긴 하죠. 그런데 그런 일이 있었다니….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아니야. 오히려 마음이 놓이더라고. 그놈이 네 옆에 붙어 있다며? 너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진 않겠더라. 정식이 그놈이 옆에 있으면.”

    황규혁도 정식이 실력을 인정했다.

    하긴. 누구라도 정식이 실력이라면 인정을 할 수밖에 없으리라.

    “아, 물론. 네 동생이 더 괴물이겠지만. 솔직히 내가 이제까지 본 싸움꾼 중에서 네 동생만 한 놈이 없었어. 요즘 네 동생은 잘 지낸다냐?”

    그렇지 않아도 미국 갈 일이 생겼다.

    태혁이가 곧 데뷔전을 치르기 때문이다.

    내년 1월이라고 했으니, 이번 대선이 끝나는 대로 놓치지 말고 꼭 보러 가야겠다.

    앞으로 복싱계의 전설이 될 태혁이의 데뷔전이 아니던가?

    “그 녀석, 곧 있으면 데뷔전 한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때 보러 가려고요.”

    “흐흐. 그래? 조만간 신문에 대문장만 하게 나겠구먼. 내가 볼 땐, 서양 놈들이라도 네 동생 이길 놈은 거의 없을 거다.”

    내 생각도 같다.

    태혁이를 이길 만한 상대는 별로 없을 것이다. 물론, 그거야 해 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지만.

    “아무튼, 너도 참 대단하다. 정식이가 네 연합에 들어가 있었다는 건, 네가 그놈이랑 싸워서 이겼다는 거 아니야.”

    “뭐…. 그, 그렇죠.”

    좀 찔린다.

    정식이와 한 번 싸워 보긴 했지만, 제대로 승부를 내진 못했다.

    당시 정식이는 아직 성장 중이었고, 나는 검사 시절 때 익힌 노하우로 간신히 정식이와 비등하게 실력을 자랑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놈이 연합에 흥미를 느껴 들어와 준 거지, 제대로 한판 붙었으면 어떻게 됐을지….

    아마 그랬다면, 내가 최대한 일대일은 피하고 다른 방법을 써서 정식이를 무릎 꿇렸을 것이다.

    만일 지금 정식이와 일대일로 붙으라고 한다면?

    당연히 내가 쪽도 못 쓰고 당할 게 뻔하다.

    지금 그 녀석은 앞으로 몇 년간 더 성장하다가, 절정기를 맞을 게 아닌가?

    17살 때와 지금은 실력 차이가 완전히 딴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싸움을 잘할 필요가 없다. 싸움을 잘하는 사람을 옆에 두면 된다.

    나는 싸움꾼이 아니라 싸움꾼들을 움직이는 통치자가 아닌가?

    “학교는 이제 어떻게 할 거냐?”

    다시 순배가 돌면서 황규혁은 화제를 돌렸다.

    학교라-.

    그 난리를 쳤으니 당분간 안 가는 게 좋겠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나중에 가려고요.”

    “뭐, 그건 네 맘대로 해. 그래도 그 나이 땐 대학 생활도 해 봐야지. 그게 또 청춘이 있지 않냐?”

    이 양반이 청춘도 다 따지고, 의외다.

    “글쎄요. 딱히….”

    “여자 친구라도 만들어야 할 거 아니야. 그 얼굴이면 먹히겠구먼.”

    “여자 친구도….”

    “오. 너 설마… 큰 형님 막내딸한테 정말 관심이 있는 거였냐?”

    응? 황규혁이 권용일 막내딸과 내 사이를 알고 있었나?

    “뭐야, 그 얼굴은. 내가 모를 줄 알았냐? 벌써 소문 다 났어. 막내딸 이름이 권윤아였지? 아마도.”

    “어떻게 아신 겁니까?”

    “큰 형님이 혹시라도 네가 딴 년 만나고 있으면 말하라고 하더라. 그래서 눈치 깠지.”

    젠장. 떠본 거였나.

    “그래서, 진전은 좀 있고? 미국에 있잖아. 큰 형님 막내딸.”

    “진전이라고 할 게 뭐 있나요? 그렇게 깊은 사이도 아니었습니다.”

    “그래? 큰 형님은 당장이라도 널 사위로 만드시려는 것 같던데. 정말 아니야?”

    “설마 그러시겠어요? 그냥 농담으로 말씀하시는 거겠죠.”

    내가 말을 얼버무리려고 하자, 황규혁이 잔을 내려놓으며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태산아.”

    갑자기 이 사람이 분위기를 잡으니까 좀 긴장된다.

    “…예, 형님.”

    “형은 너 믿어. 그리고 네가 내 위로 올라가도 난 불만 없어. 넌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는 놈이야. 아니, 오히려 형은 너 전적으로 도와줄 생각이다.”

    이렇게 훅 치고 들어오다니.

    좀 당황스럽다.

    “형님. 그 말씀은….”

    “큰 형님 마음은 나도 알고 있다. 널 사위로 삼고, 화진파 뒤를 잇게 하려는 거겠지. 일환이 형님도 이미 그건 눈치채고 있어.”

    성일환까지 알고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분명….

    “이진용 형님도 알고 있고.”

    역시, 성일환이 알고 있으면 이진용도 알고 있다는 소리다.

    “이진용 형님, 아니. 이진용 그 새끼가 지금쯤 칼을 갈고 있겠지. 아마 기회만 엿보고 있을 거야.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마라. 그땐 형이 지켜줄 테니까.”

    진지하게 말하는 것 보니, 장난 같진 않았다.

    정말 이 남자는 아무런 질투심도 없이 날 도와주겠다는 건가?

    “내가 네 덕 본 것도 많고, 솔직히 네 옆에 있으면 손해 볼 거 같은 생각이 들진 않아. 그리고… 네가 정말 내 친동생 같기도 하고. 그러니까 내가 도와주겠다는 거야.”

    “형님….”

    “그러니까 인마. 앞으로 이 형한테 잘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지켜주겠다고 하는 것만큼 안심이 되는 게 또 어디 있겠냐? 흐흐.”

    저 말이 맞다.

    황규혁이 책임지고 지켜주겠다는 말은 정말 믿음이 간다.

    조폭 새끼들은 다 믿을 게 못 되지만, 황규혁만큼은 믿어도 된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

    “이진용은… 조만간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황규혁은 잔을 깨끗이 비우며 내게 말했다.

    “계획은 있고?”

    “예. 있습니다.”

    “근데… 그건 알고 있지? 네가 아무 이유 없이 이진용을 치게 되면, 큰 형님이 오히려 널 묻어 버릴 수도 있어. 널 많이 좋아하긴 하시지만, 너 때문에 조직이 분열되면 언제든지 잘라 버리실 수 있는 분이야.”

    내가 권용일에 대해 그것도 모르겠는가?

    권용일은 그 어떤 것보다 조직을 위하는 사람이란 걸, 난 잘 알고 있다. 그러니까 나한테 조직을 넘기겠다는 발상을 하는 것이겠지.

    “알고 있습니다.”

    “그래. 아무튼, 조심해. 이진용 그 사람, 머리 하나는 기가 막히게 좋은 사람이야.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야.”

    황규혁도 이진용이 비상한 머리를 가졌다는 걸 알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의 세력까지 만든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권용일은 현재 나와 이진용 사이에서 저울질을 하는 중이다. 둘 중 누가 먼저 먹히는지 두고 보겠다는 것이다.

    만일 내가 이진용에게 패배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면, 그날로 권용일은 나를 내치고 이진용에게 화진파를 맡기게 될 터.

    그런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 내가 먼저 이진용을 잘라내야 한다.

    * * *

    16년 만에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는 민주화 항쟁의 큰 승리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막상 대선일자가 잡히니, 상황은 전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양 김이라 불리던 양대산맥이 서로 분열했고, 양 김에 이어 삼 김으로 번졌다.

    김강산과 협력하기로 했던 김종욱까지 뒤통수를 치고 대선에 출마하면서, 그나마 있던 진보 진영의 표까지 다 나눠 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이때 까지만 하더라도 대부분 사람이 김강산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1987년 11월 29일.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출발한 KAL기가 북한 간첩에 의해 폭파되었다. 서울 올림픽을 방해하긴 위한 북한의 계획이었는데, 이 일을 빌미로 여당에서는 북풍 몰이를 이어갔다.

    가뜩이나 양 김에게 실망했던 국민들은 안보에 시선이 쏠려, 자연스레 보수 정당에 마음을 열게 되었다.

    그렇게 1987년 12월 17일.

    노일영 후보가 36.6%라는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이 되는 반전을 보여 주었다.

    국민의 힘으로 간신히 독재 정권을 마무리 지었더니, 사리사욕에 눈이 먼 양 김의 크나큰 실수로 모두 말짱 도루묵이 되었던 것.

    나중에 가서야 정신을 차린 양 김은 ‘그때 내가 양보를 했었더라면’ 하고 후회를 하긴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지 않은가?

    나는 이번 대선 결과에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국민들이 피와 땀을 흘리며 쟁취한 민주화다. 그런데 저 두 사람이 이리도 시원하게 말아먹었으니 속이 쓰리기도 했고, 이걸 기회로 이용하는 스스로가 경멸스럽기도 했다.

    “대표님께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전하라고 하십니다.”

    날 찾아온 건 노일영 대표가 아니었다. 바로 노일영과 나를 이어 준 이필기였다.

    대통령 선거에 당선된 사람이 나를 만나기 위해 함부로 움직일 순 없는 노릇이지.

    “꼭 직접 뵙고 말씀을 전해 드리고 싶었지만, 아시다시피….”

    “잘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와 주신 것만 해도 감사드립니다.”

    “하하.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예. 앞으로도 대통령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면 합니다.”

    나이도 나보다 한참 많은 사람이지만, 내게 깍듯함을 잃지 않았다.

    이 사람이 나한테 받아 간 돈도 한두 푼이 아니지 않은가?

    상대방의 예의라는 건 결국 돈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럼, 저는 이만….”

    “살펴 가십시오. 그리고 가시는 길에 목마르지 마시라고 박스 몇 개 좀 넣어 두겠습니다.”

    이필기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

    어차피 이놈이 나한테 온 목적은 그 박스 몇 개 받기 위함이니까.

    난 이필기를 보낸 다음 소파에 엉덩이를 붙이고 TV를 틀었다.

    모든 채널에서 노일영 얼굴 밖에 나오지 않고 있었다.

    민주화의 실패. 하지만 내게는 또 다른 시작.

    이제 이 땅에 있는 쓰레기들을 전부 치워 버리고, 내가 그들 위에 군림할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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