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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110화 (110/325)
  • 110화. 또 다른 시작 (1)

    “이렇게 뵙게 되네요, 회장님.”

    대양 그룹 회장 하장만은 매우 불편한 기색으로 내가 건넨 손을 잡았다.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걸까?

    애써 마지막 자존심은 지키고 싶은 건가?

    “하동석 씨도 같이 오셨네요?”

    회장 옆에는 하동석이 함께 하고 있었다. 녀석은 내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하며 고개를 푹 숙인 채였다.

    어제 성일환이 보여 준 깜짝 쇼가 어마어마한 충격을 준 게 틀림없다. 그 트라우마로 일상생활이 가능할진 모르겠다.

    이게 다 인과응보려나?

    “애들한테 이야기는 들었소. 사실, 듣고 나서도 믿어지지 않더군.”

    역시, 하장만은 어제 있었던 일부터 꺼내 들었다.

    난 싱긋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회장님. 저희는 깡패입니다. 사람 패는 걸 본업으로 삼는 인간말종들인데, 그보다 더 한 일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도 들으셨겠지요? 대양 그룹을 상대로 똑같은 일을 벌일 수도 있다는 것을요.”

    하장만의 이마에 핏줄이 곤두섰다. 당장이라도 고성을 지르고 싶어 하는 얼굴이었지만, 그는 크게 숨을 내쉬며 참았다.

    “젊은 사람이 성질 건드리는 법을 잘 아는구먼.”

    “지금은 제가 회장님 위에 있으니까요. 아랫사람이었으면 이런 말도 안 하죠.”

    내가 갑이고, 넌 을이라는 걸 확실히 말해 준 것이었다.

    저 말대로 내가 성질 긁는 건 참 잘 하는 것 같다.

    하장만은 이를 갈았지만, 이번에도 꾹 참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제 그만 하지. 내가 잘못했다는 것도 알고, 충분히 대가도 치렀다고 생각하네만.”

    “정말이십니까? 회장님께서 엄한 목숨 하나 죽일 뻔했다는 걸 아실 텐데요?”

    이 정도로 일을 크게 만든 건, 결국 하장만의 무분별한 대처 때문이었다.

    그가 날 죽이기 위해 청부업자를 보내지만 않았어도 화진파 전체가 움직이진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을 한곳에 모아 놓고 서로 죽이게 하는 건 어떻고? 그에 비하면 나는 새 발의 피라고 생각되는데.”

    “하하. 회장님.”

    난 웃음을 터트리며 잔에 담긴 술을 단번에 들이켰다. 그리고 하장만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그런 쓰레기들과 저를 비교하시다니요. 너무 엇나가셨습니다.”

    하장만의 몸이 살짝 움찔거렸다.

    난 이 기세를 몰아 더욱 하장만을 궁지에 몰아갔다.

    “회장님께서 정말 그렇게 생각하신다면야… 더는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겠군요. 그냥 조용히 나가십시오. 그리고 저희는 대양 그룹이 망할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그 후의 일은 굳이 설명해 드리지 않아도 되겠지요?”

    결국, 참다못한 하장만이 폭발하고 말았다.

    그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고성을 질렀다.

    “이 자식이 끝까지! 내가 여기까지 찾아왔으면 됐지. 감히 날 협박하는 거야!?”

    하장만이 내 멱살을 잡기 무섭게 조직원 세 명이 달려들어 그의 목에 칼을 들이밀었다.

    “놓으십시오. 그 목, 잘리기 싫으면.”

    “이, 이 새끼들. 가, 감히 내가 누군지 알고….”

    난 하장만의 손을 힘으로 눌러 버린 다음, 그의 다리를 걷어찼다.

    “아악-!”

    그렇게 세게 찬 것도 아닌데, 비명을 지르는 것으로 보아 하동석이 누굴 닮았는지 알 것 같다. 난 쭈그려 앉아 하장만의 턱을 손가락을 추켜 올렸다.

    “잘 들어, 하장만 씨. 난 당신이 대양 그룹 회장이라는 거, 좆도 신경 안 써. 그리고 고작 대양 그룹 따위로 위세를 부리는 건 좀 아니지 않나? 25억을 못 빌려서 쩔쩔매는 새끼들이 말이야.”

    “이, 이 자식….”

    “또 하나. 솔직히 대양 그룹이 망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돼. 지금 나라가 워낙 시끄러워서 말이야. 당신네 사라진다고 해서 누가 신경 쓸 거 같아? 주주들이야 좀 난리 치겠지. 근데 그것도 우리가 해결할 수 있어. 하장만 당신이 비자금 빼돌리고 외국으로 밀항준비 중이라 하면, 꽤 괜찮은 시나리오지?”

    내 협박이 먹힌 것인지, 하장만은 안색히 하얗게 질려가고 있었다.

    사실, 그냥 단순한 협박에 불과하긴 하다. 진짜 저렇게 할 마음도 없고, 설사 한다고 해도 일이 상당히 복잡해져서 오히려 우리 쪽에 피해가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하장만의 얼굴을 보니, 내가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역시, 성일환이 보여 준 깜짝 쇼의 효과가 있던 건가.

    “그, 그래서… 나한테 원하는 게 뭡니까?”

    결국 하장만은 꼬리를 내리고 타협을 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런 자세를 원했다.

    “이제야 대화를 할 마음이 생기신 모양이군요, 회장님.”

    나도 험악하게 짓던 표정을 온화하게 바꾸었다.

    난 그를 일으킨 다음 자리에 앉히고 다시 본론으로 들어갔다.

    “25억, 융통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담보가 없으면 안 되겠죠? 회장님이 가지고 계신 지분을 알아보니, 이것저것 합해 보면 40%쯤 되더군요. 그중에서 25%를 담보로 맡겨 주셔야겠습니다.”

    시대를 고려해도 40%의 지분이면 어마어마한 경영권이다. 이 외에도 우호 지분을 생각한다면, 경영권 방어에서는 선방을 하겠지만….

    대양 그룹이 계속 휘청거린다면, 우호 세력도 지분을 계속 들고 있을 이유가 없을 거다.

    난 이번 기회에 대양 그룹의 지분을 전부 빼앗을 작정이니까.

    “25%…. 너무 많은 양이 아닙니까?”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25억을 융통해 드리면, 이자율을 75%로 책정해 놓겠습니다.”

    “7, 75%! 이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수준이 아니요!”

    “아, 물론 한 3개월 정도는 이자를 받지 않을 생각입니다. 하지만 그다음 달부터는 꼬박꼬박 이자를 받아야 하니까, 얼른 갚으세요.”

    이자율이 75%면 사기가 맞다. 하지만 사채라는 게 원래 그렇다.

    200%가 넘는 이자율로 사기를 치는 사채업자들도 있는데, 75%면 많이 봐 준 거지.

    그러나 하장만이 이 거래를 받아들이는 순간, 대양 그룹은 내 것이 된다.

    왜냐고?

    내가 그의 모든 계획을 방해해서 반드시 무너지게 만들 생각이니까.

    감히 나를 죽이려고 한 죗값을 치르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새, 생각할 시간을 주시오.”

    “하하. 생각할 시간이야 언제든 드리죠. 하지만 명심하십시오.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대양 그룹이 이대로 망하게 되면… 저희는 학수고대했던 일을 진행할 겁니다.”

    지독한 협박을 곁들이니 하장만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어차피 저놈은 내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계약서는 이미 준비해 두었습니다. 그냥 인장만 찍으시면 돼요. 정 싫다면 그냥 나가시고요. 우리도 아쉬운 거 하나 없어요.”

    하장만은 주먹 쥔 손을 부르르 떨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 사람도 알고 있지 않은가. 이미 막바지에 몰렸다는 것을.

    결국, 그는 인주에 엄지를 비빈 후 내가 탁자에 올려둔 계약서 위로 지장을 찍었다.

    난 속으로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소리쳤다.

    대양 그룹은 이제 내 거다.

    “25억은 언제 줄 수 있나?”

    “지금이라도 당장 드리겠습니다. 현금 또는 계좌, 원하는 것만 말씀하시면 됩니다.”

    “…알겠네.”

    하장만 회장은 펜으로 계좌번호를 적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얘기 끝났으면 난 가 보도록 하지.”

    “예. 멀리 안 갑니다. 살펴 가세요.”

    그는 나를 표독스럽게 노려본 다음, 거칠게 문을 열고 사무실 밖을 나갔다.

    그러자 그 뒷모습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던 동욱이가 내게 말했다.

    “저 늙은이한테 왜 기회를 주신 겁니까?”

    “기회? 내가 언제?”

    “돈을 융통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냥 이대로 자금줄이 마르게 한 다음, 복수하는 것도….”

    아직 동욱이가 뭘 모르는 것 같다. 내가 설마 이 정도로 저 양반을 용서했겠는가?

    “동욱아.”

    “예, 형님.”

    “내가 화진파에서 제일 지독한 놈이야. 이 정도로 안 끝내. 저 사람이 내 목숨을 노린 순간부터 이미 인생을 말아먹은 거야.”

    “그럼….”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거지.”

    난 황규혁이 선물해 준 잔에 술을 채워 넣었다.

    “동욱아. 대양 그룹 지분을 가지고 있는 기관이 어디어디인지 알아놔. 그리고 그쪽에다 전해. 돈이 얼마가 되었든, 그쪽이 가지고 있는 지분을 전부 사겠다고.”

    내 계획을 조금 알아차렸는지, 동욱이의 입가가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형님.”

    내가 동욱이에게 말했던 것처럼,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 * *

    총 세 개의 기관이 대양 그룹의 대부분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 그중에서 두 군데가 매도 의사를 밝혔는데, 거의 두 배에 가까운 금액을 내게 요구했다.

    어차피 그리 큰 금액도 아니라서 나는 그 거래를 받아들여, 대양 그룹 지분 30%를 매수했다.

    대양 그룹 회장 하장만이 끝까지 내가 빌려준 25억을 갚지 못한다면, 나머지 지분도 내게 넘어오게 될 터. 그렇게 되면 대양 그룹은 온전히 나의 것이 된다.

    그리고 대양 그룹은 이미 끝난 회사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내게 빌린 돈을 쉽게 갚진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내게 빌려 간 25억은 단순히 급한 불을 끄기 위한 용도였으니까.

    그저 내가 할 일이라고는 천천히 시간을 보내며, 하장만 회장이 밀항하지 못하게 철저히 감시하면 된다.

    “얘기는 들었다. 대양 그룹이랑 한판 떴다며?”

    영등포에 있는 황규혁 사무실을 오랜만에 찾아갔는데, 그는 여전히 카리스마 넘치는 얼굴로 나를 반겼다.

    “예. 사실, 저보다는 성일환 형님이 제대로 손을 봐 주셨죠.”

    “흐흐. 그 형님이 뚜껑 열리면 무섭긴 해. 그래서 진용이 형님도 일환이 형님을 안 건드리고 있잖아. 괜히 빡치게 했다가 대일 거 같아서.”

    과연 그럴까?

    내가 아는 이진용은 그런 것에 겁을 먹을 사람이 아니다.

    그는 그저 때를 기다릴 뿐이다.

    성일환의 목덜미를 단숨에 물어뜯을, 바로 그때를.

    “그런데 여긴 무슨 일이야?”

    “딱히 일이랄 게 있나요? 그냥 오랜만에 인사나 드리려고요.”

    “뭐, 그래. 마침 잘 왔다. 안 그래도 오늘 술이나 한잔하려고 했는데. 같이 할까?”

    “예, 좋습니다.”

    황규혁은 수납장에서 샬루트 20년산을 하나 꺼낸 뒤 뚜껑을 열었다.

    “너랑 마시는 건 오랜만이네. 한잔 받아라.”

    “예, 형님.”

    그가 잔을 채워주자, 나도 그의 잔을 채워주었다.

    “아. 네 어머니 닭갈비 가게는 아주 잘 되고 있더라. 가게도 몇 개 늘렸다며?”

    “예. 벌써 5호점을 여셨더라고요.”

    “네 어머니가 그런 사업적인 감각은 있으신 거 같아. 사람들 입맛도 잘 잡고, 또 구상이나 위치 선정도 잘하시는 것 같더라고.”

    난 잔에 담긴 술을 마시며 황규혁의 말을 듣다가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근데… 그걸 다 어떻게 아세요?”

    “응, 뭐를?”

    “사업 구상이나 위치 선정 같은 거요. 마치 옆에 쭉 계셨던 것처럼 말씀하시기에….”

    황규혁은 내 이마를 살짝 치며 핀잔을 주었다.

    “짜식. 네가 아들 노릇 안 하니까 내가 대신하고 있잖아. 네 어머니 체인점 내시는 거, 내가 다 도와드렸어.

    이건 몰랐다.

    도대체 나 모르게 언제 그런 일을….

    왠지 어머니가 내 도움 없이 체인점을 잘만 내신다고 했더니.

    뭔가 좀 씁쓸하면서, 어머니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형님.”

    “아니다. 나도 네 어머니를 내 어머니라고 생각해서 도와드리는 것뿐이야. 그러니까 부담 가질 필요 없어.”

    저런 것도 쉽지 않을 텐데, 참 고마운 사람이다.

    “그런데 너도 신경 좀 써 드려. 너무 일에만 붙잡혀 있지 말고. 어머니가 요즘 네 얼굴 못 봤다고 섭섭해하시는 것 같던데.”

    대학교 생활을 시작하기도 했고, 본격적으로 조직 일에도 신경을 쓰는 터라 따로 집을 구해 살고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께 소홀해진 부분이 생긴 것 같았다.

    그토록 효도하며 살겠노라 다짐을 했건만, 어째 더 불효를 저지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예, 형님. 명심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오늘은 술자리를 오래 갖지 못할 것 같다.

    선물 한 보따리와 함께 어머니를 뵈러 가야 하지 않겠는가?

    오랜만에 이 불효자의 얼굴을 보여 드리고, 가게 일도 도와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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