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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109화 (109/325)
  • 109화. 돈이 최고다 (3)

    “모두 따라와요.”

    성일환이 먼저 사무실 밖을 나가버리자 하영석을 비롯한 나머지 사람들도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 뒤를 따랐다.

    성일환은 그들을 차에 태우고 야인파 조직원들을 붙잡아 놓은 창고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정식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 오셨어요?”

    “어. 그래, 최정식이. 내가 말한 건 준비했지?”

    정식이랑은 언제 안면을 튼 거지?

    뭔가 친숙해 보이기까지 한데….

    “흐흐. 방금 다 준비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형님이 오시기만을 기다렸습니다.”

    “허허. 그래. 들어가자.”

    난 성일환에게 다가가 물었다.

    “형님. 저 사람들을 갑자기 왜 여기에 끌고 오신 겁니까?”

    성일환은 씨익 웃으며 내 뒤에 있던 하영석에게 말했다.

    “들어가 보면 알아. 우리 화진파가 대양 그룹과 대양 그룹 회장님께 보내는 메시지랄까?”

    “메시… 지요?”

    나와 하영석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성일환의 뒤를 따랐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그 뒤를 따르며 창고 안에 들어왔다. 그리고 우리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철사로 대충 꼬아 만든 케이지가 창고 한가운데에 있었고, 칼과 도끼 그리고 몽둥이 등등 여러 도구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누가 봐도 이게 뭔지 금방 눈치를 챌 것이다.

    “서, 설마 기, 김 사장님!”

    깜짝 놀란 하영석이 날 불러보았지만, 난 그에게 아무런 대답도 해 줄 수가 없었다.

    성일환은 이걸 준비하고 있었던 것인가.

    이게 바로 성일환이 말한 메시지라는 건가?

    “뭣들 하고 있어? 손님들 오셨다.”

    성일환이 손짓하자 조직원들이 달려와 굴비마냥 줄줄이 밧줄에 묶여 있던 야인파 조직원들을 케이지 안에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성일환은 무섭도록 차분한 목소리로 그들에게 말했다.

    “알고 있겠지만, 우린 너희들을 다 죽일 작정이야.”

    시작은 협박이었다.

    성일환의 말에 야인파 조직원들은 몸을 미세하게 떨었다.

    “그런데 그냥 다 죽이면 너무 정 없어 보이잖아. 그래도 자비는 베풀어야지.”

    희망을 주는 말에, 몸을 떨고 있던 조직원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하지만 시작은 지금부터였다.

    “그래서 딱 한 명만 살려 주려고 한다. 바닥에 있는 연장들 보이지? 어떤 걸 써도 좋으니까 한 명만 살아남을 때까지 싸워. 그럼, 그놈은 내가 살려 줄게.”

    서로 싸우게 하고, 마지막 남은 한 사람은 살려 주겠다는 건가…?

    “미, 미쳤구먼. 미, 미쳤어! 당신 지금 제정신이야!”

    하태훈이 저 주둥아리를 또 놀리기 시작했다. 내 눈짓에 동욱이가 하태훈의 다리를 걷어차 넘어뜨렸다.

    “잠자코 거기서 보고나 계시오.”

    확실히 이건 미친 짓이다. 당장 내 조직원들도 두려움 가득한 눈동자로 성일환을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왜 성일환이 이런 일을 꾸몄는지 알 것도 같다.

    화진파를 건드리게 되면, 나 김태산을 건드리게 되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 줄 필요가 있다. 그것이 아군이든, 적군이든.

    내 조직원 중에서 언젠가 나를 배신하게 될 사람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땐 어떤 응징을 받게 되는지, 이 기회에 단단히 새겨두는 게 좋을 것이다. 그리고 어디선가 나를 노리고 있을 적들에게도 이건 강력한 메시지가 될 것이다.

    성일환은 바로 이걸 의도한 것이리라.

    “기, 김 사장님. 도대체 이게 무슨….”

    “하 전무님. 거기 앉으시죠. 자리까지 미리 마련해 두었는데.”

    하영석은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내 옆에 앉았다.

    하영석의 동생들도 후들거리는 다리를 애써 움직이며 착석했다.

    “시작해.”

    “예, 형님.”

    성일환의 명령이 떨어지자, 조직원들이 파이프로 땅을 내려치며 소리쳤다.

    “자자. 얼른 시작해! 형님께서 빨리하라고 하시잖아!”

    “한 놈만 사는 거다, 한 놈만!”

    “한 놈은 진짜 살려 주신다고 하잖아.”

    케이지 안에 갇힌 야인파 조직원들은 서로 눈치만 보며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이러다가는 아까운 시간만 흐르게 될 것이다. 난 정식이와 눈을 마주친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의미를 알아챈 것인지, 정식이는 품 안에 있는 칼 하나를 꺼냈다.

    “계속 그렇게 멍만 때리고 있으면, 너희들 나한테 다 죽는다?”

    정식이가 칼을 던져 케이지 안에 있는 사람 한 명을 맞췄다.

    곧 울리는 비명 속에, 그것이 트리거가 되어 너도나도 바닥에 떨어진 무기를 집어 들기 시작했다.

    “뭐, 뭣들 하는 거야! 다들 그러지 마!”

    야인파의 두목 이재악이 그들을 만류해 보았지만, 이제 그는 더 이상 저들의 두목이 아니지 않은가. 케이지 안에 갇혀, 서로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인간에 불과하다.

    “입 닥쳐!”

    콰직-!

    싸움을 말리려고 들던 이재악이 먼저 몽둥이에 뒤통수를 가격당하면서 바닥에 쓰러졌다. 그것을 시작으로 완전히 개싸움이 벌어졌다.

    오직 나는 살겠다는 집념이 훤히 보였다.

    “죽어, 이 새끼야!”

    “으아악-!!”

    둔탁한 소리와, 섬뜩한 비명이 조화를 이루며 케이지 안은 점점 피바다로 변해 갔다.

    그 광경을 차마 바라보지 못하고 하영석이 고개를 돌렸다.

    “이, 이제 그만 하세요. 이건 도저히….”

    그때 우리에게 다가온 건 성일환이었다.

    “거기 청년 이름이 하영석이라고 했나?”

    “…그, 그렇습니다.”

    “잘 들어요. 만약 내일까지 대양 그룹 회장을 우리 태산이 앞에 데려오지 않는다면, 당신들도 똑같이 저 일을 겪게 될 거야.”

    하영석은 화들짝 놀라며 성일환에게 말했다.

    “그, 그게 가능할 것 같습니까? 아버지는 대양 그룹의 회장님이십니다. 당신이 납치를 하게 되면….”

    “이 친구야. 내가 나이를 똥으로 먹은 거 같아? 나도 그 정도는 알아. 하지만 대양 그룹이 망하고 당신네가 바닥에 나앉게 되면, 그때도 지금과 같은 소리를 할 수 있을까?”

    하영석은 말문이 막혔는지 성일환의 입만 바라보았다.

    “난 아니라고 보는데. 길거리에 나앉은 사람 하나 없어진다고 누가 신경이라도 쓸 거 같아?”

    재력 있는 사람 한 명이 납치를 당하면 굉장히 큰 사건마냥 보도가 된다. 하지만 돈도 없고 빽도 없는 사람이 납치된다면?

    누구도 그가 납치된 사실을 모를뿐더러, 설사 안다고 해도 도움을 줄 사람은 거의 없다.

    지금은 대양 그룹 회장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물리적으로 건드릴 순 없겠지만, 한 달만 지나면 상황은 역전된다.

    대양 그룹이 공중분해 되고, 대양 그룹 회장이 모든 것을 잃었을 때.

    바로 그때 쥐도 새도 모르게 납치를 해 버린다면, 누구 하나 신경 쓸 것 같은가?

    실종 신고는 들어갈 수도 있겠지만, 경찰들이 돈 없는 양반 하나 찾겠다고 백방으로 뛰어다니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화진파에서 박스 좀 돌리면 알아서 입 닫고 모른 척하게 될 터.

    이것이 바로 돈의 힘이다.

    성일환이 케이지에 저 쓰레기들을 한데 모아 이런 미친 짓을 벌이는 것도, 결국 돈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지 않은가.

    나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 잠깐 놀란 마음을 추스른 다음 성일환을 거들었다.

    “불가능할 것 같습니까? 그렇다면 한 번 시험해 보시죠.”

    하영석은 몸을 오들오들 떨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최후의 승자가 나온 것 같았다.

    “형님. 결정된 것 같습니다.”

    동욱이의 말에 따라 시선을 올려 보니, 팔에 칼이 박힌 채 씩씩 숨을 몰아쉬고 있는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성일환은 박수를 치며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고생했네. 약속대로 한 명은 살려줘야지. 너희는 아직도 숨 쉬고 있는 새끼 있으면 마무리하고, 청소부들한테 넘겨.”

    “예, 형님!”

    갑작스럽게 벌어진 배틀로얄이 끝이 났다.

    최후의 승자는 어디론가 끌려갔고, 간신히 숨만 쉰 채 바닥에 쓰러져 있는 다른 놈들은 우리 쪽 애들이 숨통을 끊어 주었다.

    이토록 끔찍한 일을 자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성일환은 멀쩡한 얼굴로 일어나 사람 좋은 웃음을 보였다.

    “다들 좋은 구경 했습니까?”

    “미, 미친. 다, 당신들 이러고도 사, 사람이야?”

    하태훈은 저 나이에 오줌까지 지린 모양이다.

    성일환은 껄껄 웃으며 하태훈 앞에 쭈그려 앉았다.

    “내가 아직도 사람 새끼로 보여?”

    “….”

    “우린 사람 죽이고 다니는 깡패야. 우리랑 싸우려고 마음먹었으면 이 정도는 각오했어야지?”

    “허… 헉!”

    성일환의 기백에 완전히 넋이 나갔는지, 하태훈은 뒤로 쿵 넘어졌다.

    “아무튼, 분명히 난 말했어. 내일까지라고.”

    “아, 알겠습니다.”

    하영석은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한 채 대답했다.

    “그런데 그 하동석인가 하는 놈은 누구야? 그 새끼가 감히 우리 태산이를 건드렸다고 하던데.”

    성일환의 말을 들은 하동석은 경련을 일으키며 결국 제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뭐가 그리 웃긴지, 성일환은 ‘흐흐’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우린 가자. 여긴 애들한테 맡기고.”

    “아…. 예, 형님.”

    저번에도 느낀 거지만, 성일환은 생긴 것과는 완전히 딴판인 사람이다.

    대룡파 때도 저 인상 좋은 사람이, 권총으로 간부 몇 명을 단숨에 보내버리지 않았던가?

    이번에는 저런 기상천외한 일을 벌이다니….

    “놀랐냐?”

    성일환은 차 옆자리에 앉은 나를 툭 쳤다. 난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게… 이렇게까지 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뭐, 어때? 우리 건드린 새끼들한테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해야지. 그게 우리 화진파야.”

    원수는 몇 배로 갚는다는 건가.

    “그리고… 이건 큰 형님 명령이기도 했어.”

    “저렇게 서로 싸우게 하는 거요?”

    “뭐, 그런 건 아닌데. 아무튼, 아주 갈아 버리라고 하셔서 그렇게 한 거야. 그만큼 화가 많이 나신 거지. 큰 형님이 널 좀 이뻐하시냐?”

    결국, 성일환의 아이디어였다는 것이군.

    저 얼굴로 저렇게 끔찍한 짓을 서슴없이 벌일 수가 있다니.

    역시, 이쪽 세계에서는 사람을 얼굴로 판단해선 안 된다.

    “이 정도 했으면 대양 그룹 회장도 어쩔 도리가 없겠지. 너한테 와서 아주 싹싹 빌거다.”

    “만약 안 그러면요?”

    “그럼, 오늘 보여줬던 저대로 똑같이 해 줘야겠지.”

    대양 그룹이 망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똑같이 해 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양 그룹 회장을 케이지에 넣는 다라….

    도저히 상상이 안 간다.

    “너도 그냥 단순히 죽이는 거로 끝내면 안 돼. 죽기보다 더 무서운 걸 겪게 해 줘야지. 그게 진짜 복수야. 막말로 그 회장 놈의 의뢰가 성공했으면 넌 저세상 사람 되는 거였어. 그런데도 그놈을 그냥 죽이는 거로 끝내고 싶냐?”

    “그렇진… 않죠.”

    “그래. 영원히, 아주 철저히 노예로 부려 먹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다. 아주 비참하게 만들어 주는 거지.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잠깐 잊고 있었다.

    화진이 어떤 곳인지.

    오랫동안 이곳 생활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무감각해진 걸까.

    나도 화진파에 의해 제거당했던 사람이지 않은가.

    대양 그룹 회장이 정말로 내게 와서 무릎이라도 꿇게 되면, 그땐 자금을 빌려줄 생각이다. 하지만 겨우 그런 거로 만족할 순 없다.

    이 기회에 대양 그룹을 내 손아귀에 넣어서 차라리 죽여 달라고 빌 정도로, 처절하게 나락으로 빠뜨릴 생각이다.

    “대양 그룹이 사채 빌리고 나서 갚을 순 있을까요?”

    “글쎄다. 그 회장 새끼가 하는 꼬락서니를 보니까, 또 말아 먹을 것 같기도 한데.”

    성일환의 말이 맞는 것 같다.

    대양은 어차피 몇 년 있다가 사라지는 곳이다.

    그동안은 간당간당하게 버티긴 하겠다만, 그전에 내가 그곳을 접수해 놓는다면 어떨까?

    그 회장이란 놈에게 진정한 갑질이 뭔지 보여 줄 수 있지 않을까?

    지금껏 사람을 막 대하면서 살아온 거 같은데, 반대로 당해 볼 기회를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일단, 기다려보죠. 정말 그 양반이 올지 안 올지.”

    “흐흐. 아마 올 거다. 오늘 그 난리를 피웠으니까.”

    성일환 말대로 오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나저나 그 끔찍한 광경을 목격한 하동석은 지금쯤 정신을 차렸으려나.

    그놈도 내일 회장이랑 같이 와야 할 텐데.

    오늘 다시 느끼는 거지만, 역시 돈과 폭력이 최고다.

    이 모든 것도 결국 돈과 폭력에서 나오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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