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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108화 (108/325)
  • 108화. 돈이 최고다 (2)

    대양 그룹에게 의뢰를 받아 나를 차로 죽이려 했던 곳은, 야인파라고 불리는 신생 조직이었다. 이놈들은 들어오는 의뢰란 의뢰는 전부 받아 외형을 불리기에 급급해하는 곳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도 소처럼 일한 보람은 있었는지, 허름하긴 하지만 버젓이 창고도 하나 있고 사무실에 도박판까지 보유 중이다. 그러나 아무리 세력을 넓히고 싶다지만, 사람이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게 있지 않던가.

    이놈들은 그 선을 넘어 버리고 말았다.

    “형님까지 오실 필요는 없었는데….”

    “아니다. 누가 감히 겁대가리 없이 우리 태산이를 건드렸는지, 면상 한 번 봐야지.”

    성일환도 이번 일에 참여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내가 누군가에게 공격을 받았다는 것에 단단히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정식아.”

    난 내 옆에 있는 정식이를 불러 말했다.

    “오늘은 마음대로 해도 좋아.”

    “그 말은… 다 이거?”

    내 말을 들은 정식이는 헤벌쭉 미소를 지으며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저런 모습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섬뜩한 기분이 든다.

    “그렇다고 다 죽이진 말고. 이따 애들이 치울 때 힘들다.”

    “그래. 다 죽이진 말라는 거지?”

    가끔 보면 이놈은 나이도 어린 게 사람 죽이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기에 이런 걸까?

    우리가 친하긴 하지만, 그런 민감한 부분에 대해서는 한 번도 터놓고 말한 적이 없다. 나중에 기회가 생기면 천천히 물어봐도 되겠지.

    “동욱아.”

    “예, 형님.”

    “여기 빼고 다른 곳은 어떻게 했어?”

    나는 지금 조직원들을 이끌고 야인파의 창고를 포위한 상태였다. 그들이 관리하는 다른 구역은 동욱이에게 맡긴 상태다.

    “애들을 보내놓은 상태입니다. 지금쯤 정리하고 있을 겁니다.”

    야인파 놈들, 외형만 불리고 속은 대충 채워 넣은 터라 화진파 조직원들을 당해낼 만한 실력자가 없다.

    이쪽이 정리가 끝나면, 아마 다른 곳도 금방 정리가 끝나게 될 것이다.

    “그럼, 우리도 지체하지 말고 바로 밀어. 청소부 애들한테도 연락해놔. 오늘 치울 거 많을 것 같으니까.”

    청소부라면, 따로 뒤처리를 해 주는 곳을 말한다.

    시체들을 내팽개치고 뺄 순 없지 않은가?

    청소부들이 와서 청소를 해 줘야 뒤탈이 없다.

    그래서 이런 일을 주로 삼아 뒤처리를 해 주는 업체가 몇 개 있다.

    “알겠습니다, 형님.”

    나는 허름하긴 하지만, 나름 크게 만들어진 창고를 바라보며 조직원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하나둘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데리고 온 조직원 숫자가 30명.

    저 창고에 야인파 조직원이 몇 명이나 있는진 아는 바가 없다. 단지, 이들의 지루함을 달래 줄 정도의 숫자가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꺼번에 들어가. 단숨에 끝낸다.”

    “예, 형님!”

    처음엔 조용히 창고로 접근하던 조직원들이었지만, 내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우악스러운 함성을 지르며 창고로 우르르 들어갔다.

    벌써 누군가의 비명이 들리는 것을 보니, 창고에 야인파 똘마니들이 꽤 모여 있는 모양이다.

    난 항상 그랬듯이, 여유롭게 창고 안으로 발을 들였다.

    과연 예상대로 야인파 놈들은 화진파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잠깐 봐도 압도적이라는 느낌이 풀풀 나지 않은가. 더군다나 정식이는 신이 난 것처럼 이리저리 상대방을 농락하며 칼을 쓰고 있었다.

    난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꼰 채, 상황이 정리되기만을 가만히 기다렸다.

    * * *

    “형님. 이놈이 야인파의 두목이랍니다.”

    나는 생김새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완전히 피떡이 된 거구의 남성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몇 군데 칼에 베인 상처가 있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정식이가 이놈을 잡은 것 같다.

    하필이면 정식이한테 걸리냐.

    “나 누군지 알지?”

    내 물음에 상대는 우물쭈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누군데?”

    “화, 화진파의 김태산….”

    “김태산…?”

    “혀, 형님이십니다.”

    “잘 아네. 너, 이름이 뭐야?”

    “이, 이재악입니다.”

    이재악이라.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다.

    “그래, 재악아. 그럼,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 아니?”

    “그, 그건….”

    “똑바로 대답해, 이 새끼야!”

    이재악이 또 말을 흐리자, 뒤에 있던 동욱이가 녀석의 뒤통수를 갈겨 버렸다.

    놈은 깜짝 놀라 얼른 대답을 했다.

    “저, 저희가 감히 형님을 건드려서 그렇습니다!”

    순순히 실토를 하는 건가.

    아니라고 오리발을 내밀며 좀 버틸 줄 알았더니.

    “잘 아네. 너 내가 누군지 안다면서 그런 병신 같은 짓은 왜 한 거야? 너희가 나 담그는 데 성공할 줄 알았어?”

    “소, 송구합니다. 형님!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제가 정말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맞아. 너 죽을죄 지은 거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날 건드렸으니까. 그것도 화진파에서 가장 지독한 사람을.”

    “사, 살려 주십시오. 시키는 건 뭐든지 하겠습니다!”

    난 길게 들을 것도 없이 여기서 이놈을 죽일 작정이었다. 그런데 줄곧 조용히 있던 성일환이 불쑥 끼어들었다.

    “시키는 건 뭐든지 한다고?”

    “예! 그렇습니다.”

    “정말이야?”

    “예, 형님! 정말입니다!”

    “음…. 그렇단 말이지.”

    성일환은 미묘한 미소를 보이며 동욱이에게 물었다.

    “동욱아. 안 뒤진 새끼들 몇 명이나 돼?”

    “한… 일곱 명쯤 됩니다.”

    “이따 다른 곳에서 몇 명 잡아 오겠지?”

    “예. 그쪽에서도 한 열 명 정도는 데려오겠죠.”

    화진파 조직원들이 워낙 거칠다 보니, 한번 싸우면 상대가 죽을 때까지 싸운다. 그래서 의도하고 싸운 것이 아니라면, 우리 쪽과 싸워서 절반 이상 살아남은 조직이 이제까지 단 한 곳도 없었다.

    열 명이면 오히려 많은 숫자다.

    “그럼, 그것들 다 이쪽으로 끌고 와서 잠깐 여기다 묶어놔. 움직이지 못하게.”

    “…알겠습니다.”

    성일환 명령에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짓긴 했지만, 동욱이는 질문 없이 바로 대답했다.

    “나머지는 동욱이 네가 지휘해. 나는 태산이랑 돌아갈 테니까. 방금 내가 말한 대로 이것들 다 묶어놓고 대기해. 이따가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말해 줄게.”

    “예, 형님. 살펴 가십시오.”

    동욱이가 정중히 인사를 올리자, 이재악도 안도의 한숨을 쉬며 머리를 조아렸다.

    “감사합니다, 형님! 정말 감사합니다!”

    성일환은 피식 웃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글쎄. 아직 감사하긴 이른데.”

    이 양반. 이번에는 무슨 일을 꾸미려고 이러는 걸까?

    * * *

    대양 그룹이 망하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이 내 앞에 와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는 건 이미 예상한 바였다. 하지만 적어도 회장과, 그 버릇없는 아들내미가 같이 와야 하지 않겠는가?

    야인파에 나를 죽이라고 직접 지시한 회장은 쏙 빠지고, 회장의 큰아들과 둘째 아들 그리고 이 모든 문제의 발단이 된 막내가 같이 왔다.

    아. 한 명 더.

    이사라는 직함이 박힌 명함을 건네는 사람도 함께 있었다. 그것도 감히 고개를 뻣뻣이 세우면서 말이다.

    지금 누가 갑의 위치에 있는지 전혀 모르는 건가?

    “귀하께서 우리 회사에 막대한 해를 끼치고 있다는 건 아십니까? 계속 이렇게 하시다가는 우리 대양 그룹이 어떻게 나올지 모릅니다. 그러니 여기서 그만하시죠. 그리고 여기 하동석 군과 있었던 일은 원만하게 화해를 했으면 합니다.”

    아까 명함을 보니까 이름이 하태훈이라고 되어 있던데, 그럼 이놈도 회장의 가족 관계인가?

    그래서 저렇게 나를 벌레 보듯 바라보며 여전히 고개를 빳빳하게 세우고 있는 건가?

    난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도 존대까지는 해 주려고 했는데, 생각을 바꿨다.

    이런 놈들에게는 예의를 차려 줄 가치가 없다.

    “거기 아저씨. 이름이 하태훈이라고 했던가?”

    “이보세요. 지금 내가 이 나이 먹고 말까지 높여 주고 있는데, 젊은 사람이….”

    쾅-!

    난 상을 강하게 내려치며 하태훈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지금 상황판단이 잘 안 되나 본데, 당신들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빌어도 모자랄 판이야. 그런데 뭐? 회사에 막대한 해를 끼치고 있어? 대양 그룹이 어떻게 나올지 몰라? 그럼, 한번 하고 싶은 대로 해 봐. 난 상관없으니까.”

    “아니. 이, 이 사람이!”

    “그리고 한 번만 더 내 앞에서 고개 뻣뻣이 들고 말하면, 그땐 이렇게 언성 높이는 거로 끝나지 않을 거야. 명심해.”

    내가 눈을 번뜩이며 말하자 하태훈은 잔뜩 겁먹은 얼굴로 꼬리를 말았다.

    평생을 이렇게 대놓고 협박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저러는 것이다.

    진정한 공포가 무엇인지, 이놈은 아무것도 모른다.

    “대양 그룹이 25억 정도 필요하다는 건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은행에서도 안 받아 주고, 명동에서도 받아 주는 곳이 없다는 것도. 우리가 계속 그렇게 돈줄 잡고 있으면, 대양 그룹은 한 달 내로 공중분해 되는 거야. 설마, 이사라는 사람이 그것도 모르고 있었나?”

    하태훈의 안색이 붉게 변해 가고 있었다. 하지만 함부로 화를 낼 순 없을 것이다.

    내 뒤쪽과 하태훈의 뒤에 서 있는 조직원들이 눈을 부라리고 있으니까.

    이걸로 파투인가.

    저 하동석은 아까부터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있었다.

    회장을 데려오라는 말로 끝마무리를 지으려고 할 때, 삼십 대로 보이는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히 명함 하나를 내게 건넸다.

    하동석이나 다른 한 놈보다 나이 들어 보이는 것 보니, 이놈이 큰아들이겠지?

    “김태산 사장님. 저는 대양 그룹의 전무를 맡고 있는 하영석이라고 합니다.”

    전무라.

    고작 삼십 대에 말이지.

    “일단, 불쑥 찾아와 무례를 저지른 점,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이놈은 그래도 정신이 좀 박혀 있는 놈처럼 보였다.

    상대가 곱게 나오니, 나도 고운 말을 꺼냈다.

    “아, 예. 저도 흥분해서 죄송합니다. 워낙 이쪽 분의 말에 가시가 돋쳐 있길래요.”

    하태훈은 애써 내 눈길을 피하며 헛기침을 뱉었다.

    “저희는 김 사장님과의 마찰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 막내가 무례를 범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부디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 주셨으면 합니다.”

    똥구멍으로 나이를 처먹은 저 이사라는 놈보다 하영석이 훨씬 나아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처를 해 줄 생각은 요만큼도 없었다.

    “전 되도록 폭력을 쓰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써야 할 때는 확실하게 씁니다. 다시는 상대가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밟아 놓는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쪽 회장님은 선을 넘으셨어요. 아들 문제로 화가 난 건 알겠는데, 절 죽이시려고 까지 하다니. 제가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에 그냥 넘어갈 줄 알았습니까?”

    “그, 그럼 어떤 걸 원하십니까?”

    “간단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필요 없어요. 회장님과 여기 있는 하동석만 제게 와서 용서를 구하면 됩니다. 간단하죠? 그럼, 제가 돈을 빌려 드리지요.”

    말이야 쉽지, 회장을 데리고 오라는 게 정상적인 발언은 아니라는 걸 하영석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돈을 가진 건 나다.

    돈의 힘 앞에서 직위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회장님을 데려오라고? 지금 그게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요?”

    가만히 있던 하태훈이 또 분위기를 차갑게 만들었다. 난 옆에 있던 동욱이에게 말했다.

    “동욱아.”

    “예, 형님.”

    “저 양반 또 입 열면 그땐 네가 처리해.”

    김동욱은 살기 어린 눈동자로 하태훈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형님.”

    그리고 품 안에 있던 손도끼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입을 벙긋하는 순간, 바로 그 주둥아리부터 잘라 버리겠다는 엄포였다.

    당연히 하태훈은 입에 지퍼를 잠그며 몸을 쭈뼛쭈뼛 세울 수밖에 없었다.

    분위기가 또 한 번 험악해지려고 하자, 하영석이 진화에 나섰다.

    “회장님을 모시고 오는 건…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은데요.”

    “그럼, 그걸로 끝이군요. 더는 당신들과 이야기 할 이유가 없습니다.”

    “기, 김 사장님.”

    “똑똑히 들으세요. 대양 그룹 회장님이 직접 내게 와, 용서를 구하지 않는다면… 대양은 이제 이 나라에서 사라지게 되는 겁니다.”

    난감한 얼굴빛을 하고 있던 하영석은 결국 백기를 들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회장님을 설득해 보죠.”

    “예. 꼭 그렇게 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쯤 하면 된 건가.

    “오. 다 모여 있었네.”

    이야기가 마무리되려니까 성일환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이야기는 대충 끝낸 거지?”

    “아…. 예, 형님. 그런데 어쩐 일로….”

    갑자기 이 양반은 왜 여기에 나타난 거지?

    대양 그룹이랑 할 이야기라도 있나.

    “하하. 그럼, 다들 자리 좀 옮길까?”

    “예? 자리를 옮기다니요?”

    “여기 있는 사람들한테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서.”

    성일환의 음흉한 미소가 왠지 섬뜩하게 보였다.

    도대체 뭐 때문에 그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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